소설리스트

〈 66화 〉#14 숨통을 조여오는 손아귀. (6) (66/128)



〈 66화 〉#14 숨통을 조여오는 손아귀. (6)

“콜록! 콜록!”

나는 숨을 토해내며 눈을 떴다.
잠시 멈춘듯한 폐는 다시 펌프질을 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허억… 허억….”

나는 거친 숨을 몰아 쉬며 숨을 골랐다.

“아…?”

조금 진정이 된 듯해서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익숙하지 않은 천장과 방안의 분위기에 나는 조금 당황하고 있었다.

“응…? 일어났어…?”

아래 쪽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나는 방황하던 시선을 아래로 떨궜다.

“어… 페퍼….”

나는 낯선 공간에서 아는 사람을 발견해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페퍼는 졸린 눈을 비비며 나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아마 그녀는 침대 옆에 계속 엎드려 있었던 것 같았다.
나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어서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창문 밖은 이미 어두워져 늦은 밤인 듯 했다.

“…어떻게 된거야?”

나는 조금 받아들일  없는 기분에 떨떠름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기억이 맞다면 괴물을 쓰러트리고 나서 마리가 배에서 뛰쳐 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쓰러트린 직후에 나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던 것 같았다.
 뒤의 기억이 전혀 없는 것을 보면 확실한 것 같았다.

“아… 음… 미안… 잠이 덜깨서….”

내가 느끼는 것보다 상당히 늦은 시간임을 페퍼를 통해 알게 되었다.

“어… 그럼… 내일 물어볼게. 난 괜찮아 졌으니까, 네가 침대에서 자.”

나는 하나 밖에 없는 침대를 고생했을 페퍼에게 양보하려고 했다.

“으음~ 아니야… 큰 일이 있었잖아….”

페퍼는 여전히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눈은 느릿느릿 떠지고 감겨지기를 반복되고 있었고, 시간이 느려진 것처럼 움직였다.
상당히 피곤해 보였다.
고생을 한 듯이 수척해 보이는 페퍼의 얼굴에 마음속이 움찔거렸다.

“…고마워.”

나는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지켜 준다고 했었는데 오히려 지켜지고 말았다.
자존심도 자존심 이지만, 내가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수 없는 씁쓸함에 나는 차마 페퍼를 바라보지 못했다.
내가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왼손에 따뜻한 손이 얹어졌다.

“뭘… 크게 안다쳐서 다행이지.”

기운이 없지만 포근한 그녀의 목소리에 나는 고개가 저절로 들렀다.
그녀의 눈가는 촉촉해져 있었고, 눈길 조차도 따스했다.
나는 나에게 증오에 가까운 감정을 늘 품고 있지만, 그 눈길을 보니 머리가 멍해졌다.

“…미안해.”

나는 고개를 힘겹게 돌려 창 밖을 바라보았다.
분명 어둠 뿐이었을 풍경이었지만 달빛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희망을 보려고 노력하지만 그렇게  수록 나를 힘겹게 하는 것들이 옭아맨다.
그래서 저렇게 아름다운 것을 놓치고 마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욕심이 많지만 내 욕심과는 달리, 나는 얻을 수 있는 것이 너무나도 적었다.
포기는 늘 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나는 욕심이 많다.

“헤헤… 그런 표정은 처음인걸?”

페퍼는 베시시 웃으며 내 얼굴을 가리켰다.

“…그래?”

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역시 나는 욕심쟁이다.

* *


아까 보다 더 깊은 밤이다.
고요하고 적막만이 가득차있는 밤이다.
그 누구도 움직이지 않고 소리도 내지 않는 밤이다.
나는 그런 밤에서 홀로 깨어있다.
아까부터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멍하니 앉아만 있다.

“…”

아까부터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페퍼의 일정하고 작은 숨소리만 들릴 뿐이다.
불도 끄고 오로지 달빛에만 의존하며 맞은 편에 있는 벽을 바라만 보고 있는 나는 좀처럼 잠들 줄을 몰랐다.
분명 피곤한 느낌이 들었지만, 잠이 오질 않는다.
숨을 크게 들이 마시기도 하고 페퍼가 깨지 않게 기지개를 피기도 했다.
그렇게 하는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의 눈은 좀처럼 감기지가 않았다.

‘페퍼… 저렇게 자면 분명 감기 걸릴텐데.’

* *

“페스틴, 그렇게 자면 감기걸린 단다.”
“예? 그래요?”
“그럼, 못 믿겠으면 아빠한테 물어보렴.”
“음~ 그건 싫어요.”

나의 퉁명스러운 대답에 엄마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도 엄마의 무릎이 좋니?”
“음~ 네!”
“하하하~”

엄마의 무릎에서 일어날 생각이 없어보이는 나를 보고는 엄마는 항상 웃었다.
그러고 보니 엄마는 나에게 화낸 적도 없었다.

* * *

‘아….’

머리가 갑자기 지끈거렸다.

‘흐음… 많이 피곤한가….’

떠올리기 싫은 옛날 일이 떠오르고 말았다.
내 기억력은 오묘하게도, 부모님과 함께 했던 순간 일부를 자세히 기억하고 있다.
불현듯 떠오르는 조각같은 기억들은   없는 허탈감만 안겨주고 사라진다.
유아의 기억은 잊혀지는게 일반적이라 생각이 들지만, 어째서 일까.
필요한 지식이나 기억하지….

“후….”

페퍼가  세라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나는 자리에서 살며시 일어났다.
체감상 많은 시간이 흘렀을 것이라 생각한다.
시계를 보아서 시간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감에 의존한 것이다.

‘음….’

나는 침대에 엎드려서 불편하게 자고 있는 페퍼를 내려다 보았다.

‘미안…실례할게.’

나는 침대에서 내려와 페퍼가 깨지 않도록 조심히 들어 올렸다.
생각보다 가벼운 무게에 여자들은 다들 이런건가 하고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페퍼를 침대에 조심히 누였다.
몸이 들린 것에 반응을 하듯이 페퍼는 이리저리 꿈틀 대더니 뭐라고 중얼거리고는 다시 새근새근 자기 시작했다.

‘…’

나는 한쪽으로 걷어져 있는 이불을 제대로 덮어주고는 방을 나섰다.


* *

“여기는 어디야…?”

나는 조용히 중얼거리며 복도를 걸어갔다.
어둡고 적막이 흐르는 긴 복도를 타고 내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분명 나는 조용히 말했음에도 멀리멀리 퍼져가는 소리에 나는 움츠러들었다.

‘누군가를 깨운거 아냐…?’

괜한 걱정을 하며 나는 뒷꿈치를 들며 걸어갔다.

“어이.”
“흐엇!”

갑자기 등 뒤에서 소리가 나서 나는 놀라고 말았다.

“그렇게 까지 놀랄 것 까지야….”

뒤돌아 보니 안토리오가 머쓱해 하고 있었다.

“하아… 당연히 놀라지….”
“놀란건 오히려 우리거든? 이제 몸은 괜찮은가 보네.”

그가 팔꿈치로 나를 쳤다.

“…겁이 많은거야? 생각보다  놀라네?”

그는 방금 막 잠에서 깬 참인지, 덜 떠진 눈으로 나를 놀렸다.

“됐고, 화장실이나 가, 바지에 실례하는 것은 창피하잖아?”

나는 안토리오의 바지쪽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하하핫! 이제  나았나보네, …걱정했다고?”

그는  어깨를 살짝 두드려 주고는 제 갈길을 걸어갔다.

‘별 싱거운 녀석이 다있네.’

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계속해서 걸어나갔다.

* *


한참을 걷다보니 얼추 어디인지 알게 되었다.
보기보다 넓은 왕궁에 나는 혀를 내두르며 공방으로 향했다.
아까부터 잡생각이 마구마구 떠오르는 바람에 나는 몇번이나 내 뺨을 때려야 하는지 모를 정도였다.

“후… 사람은 참 성가시구만?”

나는 조용히 문을 열었다.
기름칠을 누가 잘 해놓았는지 소리없이 문이 열렸다.
밤이라 분명 소피는 안쪽 방에서 자고 있을 것이다.

‘음… 토니도 있으려나?’

나는 별 시덥잖은 생각을 하는 나를 헐뜯고는 늘 쓰던 공구함으로 다가갔다.

‘음… 잡생각….’

아무래도 나는 꽤나 귀찮은 사람 같았다.

“몸을 좀… 움직여 볼까?”

나는 구석에서 큰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무언가를 만들었다.
밤이 깊었음에도, 나는 기계처럼 코어의 회로를 손보았다.


* *

“어이~”

‘아…?’

“이봐~”

‘하… 누구야?’

나는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미동조차 하지 않으며 속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흠… 왜 여기서 자고 있는 걸까요?”
“내가 아냐? 그것보다 왜 안일어나는 거야?”
“음….”
“것보다… 환자가 이런 곳에서 자고있는 건 좀 안좋은거 아니야?”
“아… 그러게요.”

한층 더 소란스러운 분위기에 나는 부스스한 머리를 움켜쥐며 일어났다.
겨우 눈을 떠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헤맸다.

“아, 일어났네요.”
“오….  참 대단하구나?”

차츰차츰 시야에 들어온 것은 삐딱히게 서있는 소피와 웅크려서 나를 살피던 토니였다.

“오… 좋은… 아침입니다.”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그들을 반겼다.

“허 참, 그래. 좋은 아침이다.”
“페스틴, 괜찮아?”
“어? 어… 일단은 말이지.”

나는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뭘 하고 있던거냐?”
“…몸도 성치 않은 것 같은데?”
“아… 머리 좀 식힐 필요가 있어서 말이죠.”

나는 내 등 뒤에 있을 자재 더미들을 가리켰다.

“아… 그러냐? 일단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그렇게 말한 그녀는 앞장서서 공방을 나가기 시작했다.
토니는 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곧이어 소피를 따라갔다.

‘음… 나도 가볼까?’


* * *

우리가 식당 근처에 다다렀을  즈음, 왕궁은 꽤나 소란 스러웠다.

‘음?’

나는 아까보다는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뒤라 이리저리 두리번 거리며 익숙한 복도를 걸어갔다.

“어째… 소란스러운 걸요.”

토니도 이상함을 느꼈는지 소피에게 말했다.

“흠… 가보면 알겠지.”

소피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내뱉었다.

‘뭐… 그러려나.’

나도 생각하기 귀찮아서 그대로 받아들였다.

* * *

“음?”
“어디갔었어!”
“밤에 마주치고는 전혀 보이지 않아서! 엄청 걱정 되었다고!”

페퍼와 안토리오를 포함한 모두가 나를 에워싸고 외쳐댔다.
덕분에 머리가 웅웅 울려대었다.

‘…다들  이러실까.’

나는 단지 아침을 먹고 싶었을 뿐이었지만 사람들은 그러지 못한 듯 했다.

“며칠 동안 안 일어나더니, 이렇게까지 우리를 걱정시키는 거냐?”

베피도 끼어들어 한 소리 했다.

“며칠이요?”

내가 전혀 듣지 못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같이 온 토니와 소피에게 시선이 몰렸다.

“음? 나는 모른다.”

소피는 눈치 빠르게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토니만 덩그러니 남겨지고 말았다.

‘냉혈한.’

“아….”

토니는 난감한 듯한 표정으로 주춤거리고 있었다.

“아… 그럼 일단 차분히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 해볼까요?”

꼬르륵—

“배가… 고프거든요.”

나의 부탁에 모두는 웬일로 순순히 따라주었다.

‘뭐지…?’

* *

“진짜 기억 하나도 안나~?”

마리가 먹던 음식을 거들떠 보지도 않으면서 내게 물었다.

“…아까도 말했듯이 괴물을 쓰러뜨린 직후에 네가 뛰쳐나온 것까진 기억나지.”
“흠… 이거 상당히 위험한거 아닌가?”

줄리가 심각한 얼굴로 말하니 페퍼가 옆에서 안절부절 못했다.

“아니 그것보다, 정말 사실이야? 내가 닷새째 눈을 안떴다는게?”

나는 전혀 믿겨지질 않았다.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긴 시간 동안 눈을 감고 미동도 하지 않는 것인가?

“그래~! 그래서 페퍼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갑자기 마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마터면….”

그리고는 눈물을 글썽이며 울먹거렸다.

‘아.’

그녀는 자신 대신에 큰 일을 겪은 나에게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어보였다.

“…내가 아무래도 간과한  같네…. 미안해, 다음부턴 조심할게.”

여기서 제대로 사과를 하지 않는다면 모두에게 짐을 지우는 것 같았다.
마음에 상처가 있는 것은 나로 충분했다.

* * *


“아니, 일어난지가 언제인데 벌써 움직여?”

줄리가 졸졸 따라오며 꼬치꼬치 캐물었다.

“맞아 맞아! 쉬어야 해!”

마리도  등에 대고 외쳐대었다.

‘것참….’

“그런데 어쩐일로 도서관에 가는거야…?”

조금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페퍼가 나를 바라보자, 나는 안심하라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조금 조사할게 있어서.”

그리고는 나는 제자리에 멈추어 섰다.

“네 도움이 필요해 페퍼.”

그리고 손을 뻗어 악수를 청했다.
페퍼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내 손을 잡고는 조금씩 흔들었다.

“좋아! 가보자고?”
“어, 어…?”

나는 당황하는 페퍼를 뒤로하고,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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