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13 다시, 주의를 돌려서. (3)
“잘 먹었어 오빠~”
“맛있었다. 나도 잘 먹었어.”
둘은 내 기분을 알면서도 내 앞에서 즐거워 하고 있었다.
그녀들 덕분에 당분간은 책을 못 읽고 심지어 필요한 자재도 사기 힘들어진 것 같다.
‘정말 감사하네요~’
나는 이를 빠득빠득 갈며 다음을 기약했다.
* * *
언제 그랬냐는 듯, 평화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두 사람을 보자니, 얼마 전의 일이 거짓말 같았다.
왕궁과 마녀들의 연관성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지만, 물증이 없을 뿐더러 정보가 턱없이 부족하다.
과연, 이 찜찜한 기분의 원인은 대체 무엇 일까?
일단은 왕궁으로 돌아가서 선생들이 무엇을 하려고 생각을 했었는지 알아보는 것이 중요해 보였다.
갑작스러운 일로 인해 하려던 것이 뒤로 밀려난 듯한 분위기가 흘렀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조이드가 착잡한 표정을 짓지 않았겠지.
그런데 나도 참 이상하다.
그가 사람이 아님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나도 모르게 사람처럼 대하게 되는 것 같다.
물론, 그가 사람 이하의 무언가 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인간이 아니며 다른 무언가도 아니다.
그것은 단순한 인형일 뿐이라고 생각이 들지만, 그가 보여주는 모습은 그 생각을 흔들리게 해준다.
그는 인간이 아닌데도 웃고, 농담하고, 부드럽게 말하고, 화내고 하는 등 감정 표현이 풍부하다.
과연 그를 인형이라고 할 수 있는가?
어쩌면 베피와 팜 아저씨는 [인간]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의 몸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그들은 만들어 낸 것이다.
나는 그들처럼 굉장한 무언가를 만들 수는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조이드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다른 인형들이 오작동을 일으켜버린 결과를 생각해보면, 그다지 훌륭한 일을 했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람은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필시 불순물을 남긴다.
조금 더러운 생각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사람은 먹으며 그 먹은 것의 찌꺼기를 남긴다.
사람은 발전을 위해 발견하고 발명하지만, 오염을 남긴다.
나는 그들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지만, 좋은 일을 했다고는 단언하지 못한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 누구도 피해받지 않고 최상의 결과를 얻는 것이 내가 지금 추구하고 있는 희망이며, 목표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일단 정보가 급선무다.
나는 여러 습관 중에 하나인 생각 정리를 시작했다.
이것은 특정한 일을 시작하기 전에 늘 하는 것이다.
일종의 준비운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최대한 빠르고, 최대한 효율적이게 일을 수행해 나가는 것이 정말 좋은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시간을 두어 머리를 정리하고, 계획을 세워야 일의 진행이 빠르게 되는 것 같았다.
아직 확신하는 부분도 아니며, 나의 방식이 언제나 옳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확언할 수 없는게 당연할 것이다.
우선, 내가 해야할 일, 그리고 이루어야 할 단기적인 목표들을 세우기 시작했다.
첫번째로, 나는 왕궁에서 이 찜찜함을 풀 수 있는 정보를 얻어야 한다.
주위 사람들에게서 얻은 정보가 석연치 않는다.
그래서 나는 과거의 일과 현재의 일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이질적인 원인이 상황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전에는 보이고, 느껴지지 않았던 것들이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한다.
나의 감을 너무 신뢰하는 것은 좋지 않지만, 항상 불안한 예감은 적중하고 말아버린다.
그래서 늘 최악의 상황을 염두해두고 계획을 짜기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두번째로, 나는 제 5구역에서 만난 마녀들에 대한 정보를 더 얻어야 한다.
그들이 누구이며, 왜 [마녀]라고 불리우고 있는지 말이다.
그래야 루이스와 히로 없이도 나 혼자 대비가 가능해지고, 가능하다면 내가 그들을 완전히 몰아냄으로써 위험 요소를 없앨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알 수 없는 힘은 어떤 종류가 있는지, 그리고 그들의 한계는 어디까지 인지 아는 것도 중요하다 생각한다.
그들의 수도 마찬가지다.
그런 괴물같은 힘을 가진 사람이 많다면 수가 월등히 적은 우리가 상당히 불리하게 될 것이다.
마녀.
동화에나 나올법한 인물.
전혀 엉뚱한 곳에서 튀어나온 인물.
마치, 나의 방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내가 그 누구도 말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계획도 세워놓지 않은 일을 막아버렸다.
물론, 나의 과민반응일 수 있겠지만, 타이밍이 너무나도 기가막혀서 말이다.
마녀라… 마녀라 함은 [마법]을 부리는 나쁜 존재라고 동화 세계에서는 묘사되고 있다.
누가?
언제부터?
그들을 마녀라고 부르기 시작했을까?
그들이 가진 특별한 힘을 마법이라고 생각했고, 그들이 저지르는 일들을 보고 그렇게 묘사하고 있는 것인가?
인위적인 작명이라고 느껴지는게… 입에 너무 착 감긴다.
아, 이것 역시 나의 감.
마녀사냥.
마녀.
마법.
환상속의 존재
사람들이 만들어낸, 사람들이 만든 ‘인간’ 혹은 이야기 속 ‘인형’.
사람들의 상상력.
좋은 도구이지만, 때로는 불필요하게 작용되는 힘.
마녀는 실제로 존재하는가?
나의 결론은 절대로 아니다.
허구가 실존할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누군가가 실제하다고 믿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상상력이 때로는 구체적이던데, 누군가가 머릿속에 주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세 번째로, 나는 인간을 위협하는 벽 밖의 괴물들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현재까지 관찰해온 바로는 왕궁의 토벌대들이 가지고 있는 간단한 무기들로도 충분히 제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디에서, 어떻게 생겨나 우리를 위협하는 것인지, 그것들의 목적은 무엇인지 알아낼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이 나라를 떠나 이주를 했어도 벽을 또 다시 세워야 할지도 모른다.
왕궁은 그것들의 수를 아직 파악하고 있지 않아보였기 때문에, 그것들의 전력이 얼마나 되는지도 알아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최소한의 인원으로 효율적이게 움직일 수 있게 될 것이다.
네 번째로, 믿을 만한 동료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포크 아저씨의 경우를 보니, 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이 적이되는 경우가 있을 것 같다.
따라서 깊이 신뢰할 만하고 의지가 강한 사람이 필요한 듯 해보였다.
애초에 모든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가지지 않는 나로서는 편한 계획이라 생각한다.
지금처럼 경계심을 가지며, 나에게로의 접근을 불허하자.
그리고 그들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정보들을 가지고 추리해 나가자.
대충 큰 틀을 잡아 내가 할 일들을 정리하고 나니 조금은 기분이 좋아졌다.
안심이 되었다.
일단 내가 해야할 일을 파악하고 나니까, 이제야 길이 보이기 시작한 듯 했다.
머릿속의 모든 것들을 정리하지 않으면 엉키고 설켜 내 머릿속이 뒤죽박죽 해진다.
어쩔 때는 제대로 된 판단을 못할 때가 있기도 했다.
“하….”
나는 조금 지쳐 머리를 식혀야 겠다고 생각했다.
“음? 왜 그래?”
내가 갑자기 한 숨을 쉬어서 그런지, 페퍼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아냐… 그냥 좀 지쳐서.”
“…왕궁으로 돌아갈 건데 괜찮겠어?”
“음… 일단은 조금의 여유는 있어. 괜찮을 거야.”
괜히 그녀를 걱정스럽게 한 것은 아닐까 지레 짐작하며 밝게 웃어보였다.
“오빠, 자세히 보니 좀 수척해 보이는데?”
“…그러네, 잠은 잘 잤어?”
“아….”
나는 최근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것 같다.
오자마자 일에 휘말려 몸은 지칠대로 지쳐있었고, 그나마 회복했던 것도 큰 소동 때문에 소비해 버렸으니, 몸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뭐… 일단은 가서 쉬어야지.”
나는 왕궁의 넓은 욕탕과 푹신한 침대를 상상했다.
팜 아저씨 집의 침대 보다, 예전 나의 집의 침대 보다 지나치게 푹신한 그 침대 말이다.
천천히 나의 눈은 감겨졌고, 내 앞에 있던 두 사람의 모습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 * *
좌우를 두리번 거리며 사방을 둘러보아도, 눈에 들어오는 것은 몽실몽실한 실뭉텅이 뿐이다.
어쩜 이리 푹신해 보이는지, 아무거나 붙잡고 얼굴에 비벼보았다.
보슬보슬한 털들이 얼굴을 스치자, 내 마음은 편안해 졌다.
어느새 내 엉덩이 아래에도 잔뜩 쌓여지기 시작했다.
나는 몸에 힘을 빼고 그대로 몸을 던져 내 몸을 맡겼다.
“으아….”
나는 온몸을 감싸오는 포근한 느낌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 * *
역시, 상상하는 것은 내 정신건강에 좋다.
남들은 어떤지 잘 모르겠다만, 나는 상상을 하면 실제로 느끼는 것처럼 상상을 할 수 가 있었다.
언제부터 였는지는 모르지만, 현실적인 연출까지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나치게 빠져버리면 좋지 않지만 적당히 즐기다 정신을 다시 차리는 것은 좋았다.
이런 상상을 하는 것은 실제로 경험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상상의 소재는 요즘 관심이 가는 것, 궁금한 것 위주로 선택한다.
나는 굉장하게도 상상할 거리를 찾아 원하는대로, 언제든지, 무엇이든지 가능했다.
그것이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이어도 말이다.
대부분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은 로망이나, 동경의 마음이 필터로 씌워져 있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페스틴?”
내 얼굴이 풀어져 어딘가 아파보인 듯 했는지, 페퍼가 한층 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 괜찮아. 행복한 상상을 했을 뿐이야.”
나는 더 이상 걱정을 끼치는 것은 실례라고 생각되어 정신을 바짝 차렸다.
“오빠, 혹시 우리가 사주기를 강요해서 그래?”
“음… 아니라고 말은 못하지만… 주된 원인은 그게 아니야.”
나는 그녀들에게 차마 거짓말을 하지 못 해서 솔직하게 말하기로 생각했다.
“으응… 뭔가 미안해지네.”
내 말을 들은 세티도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세티는 집중하면 코가 씰룩 거리는 듯 했다.
움찔 거리는 코를 보며 나는 웃음이 나왔다.
물론 겉으로는 여전히 무표정 이지만 말이다.
달그락-
나는 더 이상 이 주제로 이야기 하고 싶지않아,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변함 없이 깔끔한 제시 아주머니의 여관이 눈에 들어왔다.
후식까지 먹으려고 하려던 페퍼를 말리고 말려 겨우 제시 아주머니 여관으로 돌아온 것이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다, 가게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차를 마시는 사람을 발견했다.
그는 아주 예전에 보았던 그 사람이었다.
조금은 수상하지만 눈길이 가는 사람이다.
분명 예전에 보았던 그는 홀로 넓은 식탁에 앉아 많은 음식들을 가만히 내려다 보고만 있었다.
진수성찬이 놓여져 군침을 흘리며 기뻐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이상하게도 그는 지쳐있고 슬퍼있던 것이다.
나는 홀린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 사람에게 다가갔다.
“어디가?”
페퍼의 물음에 나는 대답도 하지 않은 채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페스틴?”
대답을 하지 않는 나를 이상하게 여기는 듯한 목소리가 들렀다.
하지만 내가 향하려는 방향에는 화장실이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페퍼는 곧 나를 부르는 것을 그만두었다.
아마, 그녀는 내가 화장실에 가려는 듯해 보였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사람 앞쪽에 있는 의자에 털썩하고 주저앉았다.
그리고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 사람 쪽에서 부터 관심을 가져 나에게 말 걸어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딱히 관심을 받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수상해 보이는 그에게서 어떤 정보라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직감 때문에 나는 그렇게 행동한 것이다.
“…”
하지만 그는 나를 신경도 쓰지 않은채로 가만히 차를 홀짝였다.
나는 조바심이 났지만, 애써 침착한 척을 하며 몸을 조금씩 움직였다.
내 움직임에 따라 옷이 부스럭 거리며 소리를 내었고, 가까이에 있던 그 사람의 주의를 이끄는데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바람과는 다르게 그는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나에게 눈길 한번 주지도 않고 멍하니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냥 내가 말거는 것이 낫겠네….’
나는 좀처럼 눈길을 주지 않는 그 사람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저기… 안녕하세요?”
그는 나의 인사에 눈썹 하나 움찔 하지도 않고 차를 홀짝였다.
이래서는 끝도 없다고 생각한 나는 그의 주의를 돌릴 만한 화잿거리를 꺼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 화잿거리는 지나친 정보를 흘려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해서 무의미한 정보를 내뱉어도 안되었다.
나는 말을 꺼내도 리스크가 적고 호기심이 가득해지는 말이 무엇이 있을까 머리를 굴려대었다.
인형?
괴물?
마녀?
나는 가까스로 배 라는 주제를 떠올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말을 꺼냈다.
“배에 대해 아세요?”
그러자 그는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
아무래도 정답인 듯 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