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4화 〉#12 마녀 사냥 (8) (54/128)



〈 54화 〉#12 마녀 사냥 (8)

‘뭐야…?’

나는 침을 삼키며 아무런 미동조차 없이 쓰러져 있는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필시 은빛의 색갈이 나온 다거나, 다른 어떤 인공적인 표면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거기에는 까맣게 타버린 속살이 보일 뿐이었다.
아주 작은 가능성을 던져버리고 성급하게 행동한 것은 아닌가 하고 후회가 되었다.
순간적으로 두려움에 휩싸였다.
미약한 가능성을 무시하고, 나도 모르게 내가 원하는 결말로 생각해버린 모양이다.

심호흡을 하고 주방쪽을 살펴보았다.
살짝 소란스러워졌다.
그들은 편안하게 간단한 야식을 만들며 이야기를 하고있다.
냄새를 보아하니, 조금 더 시간이 걸릴 듯 하다.
페퍼가 하는 말소리를 들어보니,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살폈다.
어두운 심연 너머에는 아무것도 빛나지 않았다.
움직임도, 그림자의 일렁임도 없었다.

창가로 시선을 옮겼다.
불투명한 유리 너머에는 사람들이 뜨문뜨문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누구하나 이쪽을 눈여겨 보고있지 않았다.

좋아.
짧은 시간 내에 모든 정보를 얻어보자.
시체라고 느껴지는 것들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재빨리 허리를 숙여 그들의 콧구멍으로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다.
별다른 느낌이 나지 않았다.
침을 바르고 다시 한번  숨결을 느껴보았다.
공기의 흐름은 일절 없었다.
그들의 가슴께 역시 움직이지 않았다.
숨을 참고 있는 것을 유념해 두며, 20초 이상 가만히 있어본다.
그들의 코와 피부 조직은 미세한 떨림조차 없었다.
차분히 바닥에 귀를 대보았다.
심장의 일렁임은 없었다.

죽음.
그들은 그런 상태에 놓여져 있었다.
언제부터?
그들은 움직였다.
냉각수를 뿌리고 휘발유에 불을 붙일 때까지는 움직였다.
속박하고 장시간 대기 후에, 그들은 움직임을 멈추었다.

나는 그들에게 치명상을 입히지 않았다.
참기 힘든 고통을 느끼도록 급소를 피해 공격했다.
그들은 감각이 없는 것처럼 달려들었다.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고통을 느끼자마자 반사적으로 자신의 몸을 보호하려고 한다.
그것은 근육의 경련이든, 감정을 표출하는 것이든 강한 반발력을 가진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그런걸  하지 않는편이다.
나는 참고가 안된다.
그래서 내가 세상의 전반적인 지식을 얻기보다, 사람의 감정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마녀들에 의해서 세뇌를 당하면 고통이 무감각해지나?
세뇌가 풀리는 즉시, 그들이 받고 있었던 고통이 한번에 몰려오나?
그래서, 쇼크사로 그들은 죽었나?
이 가설이 사실이라면, 나는 살인을 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와 반대로, 마녀가 이미 죽어있는 사람들을 조종했다면?
뭐… 그게 사실이면 내 마음이 편하긴 하다.
시신을 가지고 불장난을 해버린 내 행동이 심한 행동인 것에는 변함이 없지만….
결과적으로 한사람의 가능성을 한순간에 없애버리는 이 살인이라는 멍청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이 나올 뿐이다.

 점에 관해서는 그 어떤 결론을 지을 수 없다.
기간을 두고, 정확한 사실을 알아내야 한다.
그래야만, 내 마음이 편해진다.
그렇지 않으면 이 짐을 평생 끌고가야 한다.
내 탐욕은 마녀에 대한 지식욕으로 가득 메워졌다.

끼익ㅡ 끼익ㅡ

계단쪽에서 부터 나무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자연스럽게 시신들에서 부터 몸을 떼어내고 근처 소파에 차분히 앉았다.

“좀 쉬셨습니까?”
“뭐, 그럭저럭. …페퍼는?”
“주방이요. 출출한  같더라고요.”

겉치레에 삼켜진 나의 발언에 팜 아저씨는 심드렁하게 대답하고는 내 옆으로 앉았다.

“…지켜봐온 결과,  변화시키는 힘을 가진 마녀에게는 한계가 있더군.”

대뜸 던져진 말에, 나는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그의 시선은 심상치 않음을 담아내고 있었고, 그 시선 끝에는 주방이 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만, 경계심이 뭍어나왔다.

“변화 시키는 수는 둘에서 셋, 종류에 따라서는 다섯 넘게도 가능한 듯하네.”
“…만능은 아니었네요.”

나였다면  고효율적으로 할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사람을 변화 시키는 경우, 그 대상의 영향을 자기도 일부 받는 것 같더군.”
“…그래서 도망간 건가요?”

갑작스럽게 달려드는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아마… 그런 것 같네.”
“그런데 분명 몸을 숨기고 있을 텐데 어떻게 알았나요?”

생각해보니 그런 점들은 직접 보지 않는이상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보였다.
만약 그 마녀의 힘이 그것 뿐이라면 본인은 매우 취약한 상태가 될 것이 분명했다.
그 마녀는 몸을 숨기기 위해 주위 사물을 변화시키는 방법도 사용했을 법했다.
나라면 그랬을 것 같다.

“히로에게 아직 듣지 못했나?”

나는 팜 아저씨의 물음에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했다.

“그럼 나중에 그를 통해 듣게.”
“아, 네 그러죠.”

나는 납득을 하지 않았지만 일단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업상 비밀이네.”

팜 아저씨는 내가 납득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는지, 느끼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런 팜 아저씨와 그 뒤로 계속 이야기를 했다.
진짜 루이스와 히로가 올 때까지.


* * *


“참 안오네요.”

시계를 보니 제 2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게나 말이네.”

팜 아저씨도 시계를 보며 말했다.

“원래 이렇게 늦나요?”
“사람 일은 모르지. 이런 날도 있는 걸세.”

딱히 큰일은 없는 듯 한 평온한 팜 아저씨 말투에 나는 안심이 되었다.

“음… 그렇다고 하면….”

나는 커다란 소파에 제대로 자리를 잡고 자기 위해서 머리를 누였다.
기다릴 때  편하게 기다리자.

“음? 자려는겐가?”
“뭐… 그렇게 하려고요. 안됩니까?”
“음… 안되는건 아니네만… 내가 심심해서 그러네.”
“아… 그래요?”
“…자넨 안즐거웠나?”
“예? 아뇨 아뇨 아뇨, 즐거웠는데요?”
“난 자네 없는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단 말이네. 소브 이야기 듣고 싶지 않은가?”

‘음…?’

“아, 좋죠.”
“그런가? 근데 피곤한 거 아니었나?”
“아, 괜찮습니다. 아직 그렇게까지 피곤하지 않아요.”
“하! 괜찮은 근성이네!”

 아저씨는 만족한다는 표정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정답이네?’

그렇게 우리는 그동안의 공백이 무색 하게도, 즐겁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런 일이 있었구만….”

팜 아저씨는 페퍼의 이야기를 듣고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할지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흠… 그럴 만도 하네. 사람과 사람이 엮여있는 문제는 언제나 복잡하기 마련이지.”

나는 마음 깊이 공감해주는 팜 아저씨가 고마웠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말이네, 자네는 잘 대처한 것 같네. 계속 곁에 있어 버릇 하면 언젠가는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겠나?”
“그럴까요? 아직… 확신이 서질 않아서 말이죠. 최근에는 괜한 말을  것일까 라는 생각까지 드는 걸요.”
“나는 페퍼 양을 잘 알지 못하네. 자네가 이야기한, 여기 있으면서 본 페퍼 양 밖에 모르네.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확답할 수 있겠네.”

사뭇 진지해 보이는 팜 아저씨의 눈빛에 나는 귀를 쫑긋했다.

“그 아이가, 자네의 도움에 감사하고 있다는 것을 말일세.”

‘잘 모르겠던데….’

“당사자는 쉽게 눈치채지 못하겠네만, 지금의 페퍼 양은 편히 쉬고 있지 않은가? 누구 때문에 안심이 되겠는가?  봐도 듬직해 보이는 나? 아니면 소브, 아니면 내 아내?”

‘아….’

팜 아저씨는 잠시 뜸을 들였다.

“다름아닌 자네라네.”
“…그렇군요.”

나는 팜 아저씨의 깊은 속마음에 응답을 했다.

“그리고… 아직 자네에게 말 못한 것이 있네.”
“네…?”

나는 팜 아저씨가 또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가 하고 마음 편히 듣기 위해 자세를 고쳐잡았다.

“……그동안 고마웠다는 것이네. 내 말에 잘 따라주고, 무엇보다도 잘 해내주고 있으니 말이네.”
“아하하… 아닙니다.”

나는 괜히 쑥스러워져 머리를 긁적였다.
 아저씨는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 옆의 작은 탁자에 놓인 차를 한모금 들이켰다.

“그리고… 미안하네, 자네를 이곳으로 끌어들여 버렸네.”
“음? 아뇨, 괜찮습니다. 제가 좋아서 하니깐요.”

이것은 거짓이 아니라 사실이다.
이것으로 팜 아저씨를 도울 수만 있다면 기꺼이 하겠다.

“아니… 처음 부터 그럴 생각으로 권유한 거였네.”
“…? 권유라뇨?”
“왕궁 말일세.”
“…네?”

‘뭐야, 그럼 그 때부터?’

“설마 자네가 초코에 혹할 줄은 몰랐네만….”
“아, 아녜요. 소브 줄 생각이었는데….”
“아? 그런가? 으하하하! 그랬구만? 이제야 납득이 가는군!”

 아저씨는 즐겁다는 듯이 웃었다.

“자네도… 이렇게 페퍼 양과 함께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게. 서로를 알아가고 소중히 하는 마음도 커질 걸세.”

팜 아저씨는 대뜸 충고를 해주었다.

“네, 그럴게요.”

팜 아저씨 말대로 해도 나쁠 것은 없어보였다.
나도 그녀와의 사이가 더 가까워졌으면 하니까.
가끔씩 불안해 지기는 하지만, 그런 자그마한 의심 마저도 하지 않도록 그녀와 확실한 관계가 되고 싶었다.
단순한 친구에서, 가장 친한 친구로 말이다.
내가 나의 속마음을 터놓고, 마음 깊숙히 들어있는 음침한 나를 숨김없이 꺼내서 보여줄 만한 그런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을 원한다.

“이미, 상당히 친해보이긴 하네만.”

팜 아저씨는 다정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그런가요?”

‘그렇게나 친해보이나…?’

나는 의외의 시선에 내심 기쁜 마음을 감추며  신경을 안쓰는 듯이 말했다.

“으하하핫! 그렇고 말고!”

똑- 똑- 똑-

즐겁게 이야기 하고 있는데, 뒷문 쪽에서 소리가 났다. 팜 아저씨는 활짝 웃던 얼굴을 접고는 문 앞으로 다가갔다.

“팜?”

노크 소리가 끊겨 한순간 고요했던 그 공간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루이스, 자넨가?”
“넵~ 저희입니다.”

작지만 발랄한 히로의 목소리도 들렀다.

“괜찮은가?”

팜 아저씨는 그들의 안부를 물으면서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순간적으로 피비린내가  풍겨왔다.

“어…?”
“이, 이게 다 무슨 일인가?”

 아저씨도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었다.

“아하… 이런, 좀 옷을 갈아 입고 올걸 그랬다.”

친근하게 팔꿈치로 툭툭치며 말하는 히로와는 달리, 루이스는 무뚝뚝했다.
아무말도 하지않고, 코트를 벗어 한쪽에 놓여있던 박스에 던졌다.
그리고는 히로를 향해 턱짓을 했다.

“…아! 그래! 그러자고! 좋은 생각이야 친구?”

히로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고는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리고 루이스를 따라 코트를 벗고 박스에 차곡차곡 넣었다.

“뚜껑은 어딨지?”

히로는 냄새가 새어나가는 것을 생각해 뚜껑을 덮으려는 듯 했다.
히로의 등 뒤로   박스 뚜껑을 가져온 루이스가 덮었다.
그리고 꼼꼼하게 입구를 틀어막았다.
왠지 죽이 맞는 그들을 지켜보니, 흐뭇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밖의 상황은 어떤가?”

 아저씨는 그들을 위해 차를 내오면서 물었다.

“일단, 그렇게 좋지는 않아요. 자칫하다간, 제 7구역은 없어질 수도 있어요.”

히로가 다급함을 숨기지 못하고 설명했다.

‘…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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