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10 잠시 멈추어 숨을 고르자. (5)
쪼르륵-
나는 물을 받으며 멍하니 앉아있었다.
정신이 멍해서 아무런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많이 피곤해 하구나….’
나는 내 몸이 지쳐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쪼르르륵-
팜 아저씨 공장에서 맞는 아침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나는 문득 창 밖의 풍경이 궁금해져 고개를 내빼고 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하지만 노란빛 하늘만 보일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일어서서 보려고 하려다 그냥 포기하고 말았다.
아침 공기는 정말 상쾌 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며 나는 이리저리 몸을 흔들었다.
조금씩 흔들리는 내 몸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힘이 없었다.
내가 의도하는 흔들림인가?
어쩌면 흔들리는 이유가 나의 무의식일 수 도 있다.
나는 의식하지 못하지만 무의식적으로 몸을 흔들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의식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의식한다면 더 이상 무의식이 아니게 된 것이 아닐까?
아니면 무의식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여전히 무의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형.”
하지만 인식을 했기 때문에 더 이상 무의식이 아니게 된다는 것도 맞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무의식이라는 것만을 인식하기 때문에 그 이전의 행동들은 무의식 속에서 한 것이 된다.
“형?”
그렇다면 좀 전에 무의식 행동을 의식한 순간, 나는 더 이상 무의식한 행동을 하지 않게 된 것일까?
“형!”
동생의 외침에 나의 정신이 번뜩 들었다.
“어, 어…!”
하마터면 저 멀리 가버릴 뻔 했다.
쪼르륵-
“고맙다, 소브.”
갑자기 감사를 표하는 내가 어이가 없었는지 소브는 혀를 찼다.
그리고 수도꼭지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형 물 넘치잖아.”
“아!”
그제서야 나는 물이 넘쳐 바닥이 흥건해져 있다는 것을 눈치채었다.
“에휴…. 갑자기 왜 그래 형.”
한숨을 쉬면서 나를 딱하게 쳐다보는 소브였다.
나는 수도꼭지에 서둘러 손을 가져가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나는 손목을 휘휘 돌리면서 수도꼭지를 잠갔다.
끼릭- 끼릭-
나는 흥건해져 있는 바닥을 보면서 소브에게 물었다.
“이거 어쩌지?”
소브는 몸을 돌려 주방으로 향하면서 말했다.
“내가 알아? 형은 오늘 아침은 못 먹겠네.”
어찌 저렇게 말을 잘하는지 형인 내가 봐도 감탄스러웠다.
분명 저렇게 된 것은 팜 아저씨 때문일 것이다.
* * *
쓱- 쓱-
마른 헝겊을 잔뜩 가져와서 바닥을 닦고 있었다.
“페스틴?”
바쁘게 손을 앞뒤로 움직이며 바닥을 닦고 있는 나를 부르는 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다.
“음?”
고개를 돌려보니 욕실 문 앞에 페퍼가 서있었다.
“물놀이 하기에는 나이가 있지 않아?”
페퍼는 바닥을 열심히 닦고 있었던 내가 웃겼는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뭐?”
나는 페퍼의 놀림에 격한 반응을 보였다.
아마도 그녀는 이런 나의 반응이 재미있어서 계속 놀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덤덤하게 맞받아 치려고 노력하지만 매번 이렇게 반응해버리고 만다.
‘나는 영원히 놀림 받을 사람인가 보다….’
한참 절망에 빠져 자신의 인생을 한탄하고 있을 때, 페퍼가 마른 헝겊을 하나 집더니 내 옆에 쪼그려 앉아 같이 닦기 시작했다.
“뭐야, 물놀이 하는게 부러웠나봐?”
나는 바삐 움직이는 손을 멈추고 말했다.
“아니, 그냥 불쌍해서.”
짧고 강렬한 페퍼의 대답에 나는 할말을 잃었다.
“그래….”
“파하하!”
말문이 막혀버린 내가 웃겼는지 페퍼는 웃었다.
쓱싹- 쓱싹- 쓱싹-
우리는 한동안 아무말도 없이 바닥의 물기를 없앴다.
쓱싹- 쓱싹-
“있잖아 페스틴.”
바닥을 닦는 소리만 들리던 침묵을 깨고 페퍼는 내 이름을 불렀다.
“…왜?”
나는 잠시 뜸을 들이고 대답했다.
“음….”
페퍼는 내 이름을 불러 놓고는 고민했다.
“…? …무슨 일인데?”
나는 나를 불러 놓고는 좀처럼 말이 없는 페퍼에게 다시 물었다.
“음~”
나의 물음에도 페퍼는 여전히 뜸을 들이고 있었다.
아직은 그녀가 대답할 마음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마음의 준비가 안된 것인지 하는 생각에, 나는 그냥 입을 다물고 바닥을 닦았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페퍼는 앞뒤로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물었다.
나는 그녀가 무엇에 대해 묻는 것인지 감이 왔지만, 이해를 하지 못한 척 다시 물었다.
“누구에게?”
나도 손을 멈추고 페퍼를 바라보았다.
“음… 라이브 씨…에게….”
쓱싹- 쓱싹-
나는 페퍼의 대답을 듣고 말없이 멈추었던 손을 앞뒤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페퍼는 그런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자신도 다시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쓱싹- 쓱싹-
“…글쎄.”
나는 적당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대충 대답하기 보다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나도 팜 아저씨가 나에게 그런다면 굉장히 당황할 것이다.
팜 아저씨는 내가 무엇을 하든지 이해를 해주었다.
멍청한 짓을 했을 때도 웃으며 넘어갔다.
실수를 했을 때도 나를 다독여 주면서 넘어갔다.
내가 허둥 대었을 때에도 침착하게 나를 이끌어 주었다.
나에게 늘 진지하게 대해주었다.
비뚤어진 내가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손을 잡아주었다.
수렁에 빠져 허둥대는 나를 구해주었다.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었다.
내가 그에게 도움을 받았 듯이 이제는 내가 그녀에게 도움을 줄 때인 것 같았다.
“…있잖아 페퍼.”
나는 묵묵히 바닥을 닦고 있는 페퍼를 불렀다.
나는 조용하게, 침착하게 그리고 부드럽게 페퍼를 불렀다.
“…응?”
페퍼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떨림이 있었다.
나는 빠르게 움직이던 팔을 천천히 속도를 낮추면서 말했다.
“마음이 충돌되면 상처는 어쩔 수 없이 생기게 돼.”
“…그렇지.”
페퍼는 내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알다시피 상처를 주지 않는 사람은 없고, 상처를 받지 않는 사람도 없어.”
나의 말에 페퍼는 말없이 계속 듣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는 하지만… 나는….”
나는 조금 뜸들이면서 말했다.
그리고 페퍼를 바라보았다.
“나는 네가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해.”
나의 말에 페퍼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그리고 말없이 쳐다보았다.
서로의 얼굴이 가까워져 있었다.
한참 동안 서로에 눈동자에 빠지려 할 때 즈음, 나는 정적을 깼다.
“하지만… 내 마음과는 달리 상황이 영 좋지 않네?”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네….”
페퍼는 그렇게 말하며 시선을 바닥으로 떨궜다.
“있잖아… 페퍼.”
나는 잠시 뒤에 또 다시 페퍼를 불렀다.
“…응?”
아까보다 떨림이 잦아든 페퍼의 목소리가 들렀다.
“네가 생각하는 것을 말해.”
페퍼는 무언가 할말이 있는 것처럼 입을 벌렸다가 다시 다물었다.
“그리고 네가 원하는 것을 말해. 네가 하고 싶은 것을 말이야.”
내가 더 말하려 하는데 페퍼가 내 말을 가로 채면서 말했다.
“하지만, 엄청 화내실 텐데….”
나는 페퍼의 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말했다.
“걱정마, 말했잖아? 곁에 있겠다고.”
페퍼는 내 말에 고개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지막히 말했다.
“…고마워.”
우리는 다시 침묵을 했다.
쓱싹- 쓱싹-
다시 일정한 리듬으로 바닥을 닦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흠, 형?”
열심히 닦기 시작하자, 등 뒤에서 소브의 목소리가 들렀다.
“응?”
나는 시선을 바닥에 고정한채로 대답했다.
“음… 뭔가 방해한 것 같지만 말이야, 늦게라도 아침 먹어.”
우물쭈물 하는 소브의 말에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소브가 약간 난처 하다는 얼굴로 문에 기대 서있었다.
“아침?”
나는 못먹을 줄로만 알았던 아침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눈이 커졌다.
“어, 어… 좀 식었겠지만 말이야.”
소브는 딴청을 피우면서 말했다.
“…? 그런데 아직 다 안닦았는데….”
나는 한참을 닦았음에도 여전히 흥건 해져있는 바닥을 두리번 거리면서 말했다.
“괜찮아, 내가 도와줄게.”
그럴 마음이 전혀 없다는 듯이 건성으로 말하는 소브였다.
“뭐… 그래, 그래준다면 나야 좋지.”
나는 딱히 거절하지 않는다는 듯이 흔쾌히 대답했다.
“그러면 배고플테니 일단 먹고 와.”
소브가 옆에 쌓여있는 마른 걸레를 집어들면서 말했다.
“그… 음… 알았어.”
나는 잠시 고민하고 쭈그렸던 다리를 피며 일어났다.
‘으윽!’
다리가 오랜시간 동안 쭈그려져 있던 바람에 피가 통하지 않아 저리기 시작했다.
나는 어정쩡하게 다리를 세우고 엉거주춤 걸어가기 시작했다.
“천천히 먹고 와.”
안심하고 맡겨두라는 듯한 페퍼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고마워.”
나는 나를 도와주는 둘을 번갈아보며 말했다.
그리고 나는 계단을 내려갔다.
얼떨떨하다.
내 앞에 놓인 문제는 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 *
“에휴….”
밑 층으로 내려가자 한숨을 쉬고 있는 팜 아저씨가 보였다.
순간 움찔했다.
왠지 혼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좋은 아침…입니다.”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팜 아저씨에게 인사했다.
“흠… 잠은 푹 잔…것 같지가 않군.”
팜 아저씨는 나의 초췌한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시고는 턱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아… 예… 그런 듯 합니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했다.
“이건 어찌 할 텐가?”
팜 아저씨는 천장을 가리키면서 나에게 물었다.
“음….”
나는 손을 턱에 가져가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내가 멍때리는 바람에 흥건하게 젖은 바닥이 머금었던 물기를 밑으로 내려보내고 있었다.
똑— 똑— 똑— 똑—
천장 몇군데에서 물방울이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졌다.
바닥을 보니 떨어지는 물방울을 받치기 위해 양동이 몇개가 놓여져 있었다.
상당한 물이 떨어졌는지 양동이는 반즈음 채워져 있었다.
내가 상황 파악을 하고 팜 아저씨를 바라보자, 팜 아저씨는 이 녀석이 어디 아픈가 하고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말은 하지 않아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즈음은 바로 알 수 있었다.
“아… 일단은 아침을 먹어도 될까요?”
나는 조심스레 팜 아저씨에게 물었다.
“…그러게나.”
팜 아저씨는 한숨을 팍 내쉬고는 그러라고 주방을 향해 손짓했다.
“그럼, 얼른 먹고 오겠습니다…!”
나는 힘차게 대답하고 서둘러 주방으로 향했다.
* * *
“어쩌다가 그랬어요?”
팜 아저씨 부인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에게 물었다.
“음… 잠이 덜 깼나봐요.”
나는 못 씻어서 푸석해진 얼굴을 매만지면서 대답했다.
“그럴 수 있죠. 배고플 텐데 얼른 들어요.”
팜 아저씨 부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뎁혀 두었던 스프를 나에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나는 두 손으로 접시를 받아들으면서 감사를 표했다.
“식었지만 이 빵도 찍어 먹어요.”
팜 아저씨 부인은 먹기 좋게 잘라져 있는 빵이 담겨져 있는 그릇도 나에게 건네주었다.
“오… 감사합니다.”
나는 연거푸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그렇게 심하지 않으니까, 걱정은 안 해도 돼요.”
내 얼굴에 걱정이 가득해 보였는지 팜 아저씨 부인은 나를 다독이면서 말했다.
“네, 제가 얼른 손 볼게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스프를 떠서 내 입으로 가져갔다.
오랜만에 와서 문제를 일으키는 바람에 나는 죄책감을 느꼈다.
팜 아저씨 부부에게 폐를 끼치는 바람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음~ 식어도 맛있네요. 역시 부인입니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팜 아저씨 부인의 음식을 극찬하며 말했다.
덤으로 환한 미소도 지었다.
그러자 팜 아저씨 부인은 호호 웃으면서 말했다.
“뭘요~ 입에 맞다니 다행이네요.”
팜 아저씨 부인은 허겁지겁 먹는 나를 흐뭇하게 잠시 바라보더니 주방을 나가면서 말했다.
“체하지 않게 천천히 먹어요.”
“네~”
나는 입안에 남아있는 음식을 오물오물 거리면서 대답했다.
참으로 배려가 좋은 분이다.
* * *
“그래서 자재는 있나요?”
나는 입가를 닦으면서 팜 아저씨에게 물었다.
그러자 팜 아저씨는 기름져진 내 얼굴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음… 자재 말인가?”
그리고 등 뒤에 있는 자재 더미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턱없이 부족하네, 꼭 필요한 부분만 보수한다고 해도 말이네.”
“그럼… 어떻게 하죠?”
자재만 충분하다면 내가 어떻게든 해볼 수가 있었지만, 자재가 없으니 시도조차 할 수가 없었다.
“포크, 그 녀석에게 가봐야 하겠군.”
팜 아저씨는 내키지 않는 다는 듯이 말했다.
“포크 아저씨요?”
분명 이사를 할 때 도움을 주었던 팜 아저씨 친구 분이다.
“어쩔 수 없지… 그를 만날 수 밖에….”
팜 아저씨는 작게 중얼거리며, 유일한 친구인 포크 아저씨를 꺼려했다.
‘팜 아저씨 입장에서는 거북하려나?’
포크 아저씨랑 팜 아저씨의 성향은 완전 반대여서 그럴지도 모른다.
“아, 그러고 보니 어제 만났어요.”
분명 어제 전망대에서 내려오는 길에 잠깐 마주쳤다.
일이 복잡해지는게 싫어서 도망치긴 했다만, 설마 삐지거나 하지는 않겠지?
“만났다고? 그 녀석이 따로 별말 안하던가?”
팜 아저씨는 흥미롭다는 듯이 한쪽 눈썹을 치켜 뜨면서 나에게 물었다.
“뭐… 별말은 안하시던데요? 별로 이야기를 안해서….”
나는 어제의 기억을 더듬으면서 말했다.
“별로 이야기를 안 하다니, 웬일로 그랬는가?”
확실히 포크 아저씨는 수다스러운 사람이었다.
“음… 얼른 공장으로 오려고 서두르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인사만 하고 왔죠?”
나의 대답에 팜 아저씨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쓰읍, 그런 일로 사람을 쉽게 놔주는 녀석이 아닐 터인데….”
또다.
은연중에 무언가를 흘리신다.
무언가 문제가 생겼다는 말 일까?
똑— 똑— 똑— 똑—
나는 아래로 떨어져 어딘가로 퍼져버리는 물방울을 흘낏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럼, 일단 가볼까요? 얼른 고쳐야 하기도 하니….”
그렇게 말한 나는 천장을 유심히 바라 보았다.
“으흠… 내키지 않지만 어쩔 수 없구만?”
그렇게 말한 팜 아저씨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힘겹게 떼면서 공장 밖으로 향했다.
나도 그런 팜 아저씨를 뒤따라 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