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9 서서히 드러나는 쓴 맛 (6)
별 생각이 마구 드는 바람에 방으로 돌아오는게 늦어지고 말았다.
나는 눈꺼풀이 자꾸만 무거워져 가는 바람에, 서둘러 내 방을 향해 걸어가야 했다.
밤이 상당히 깊었는지 복도를 밝혀주던 등불도 꺼져있었다.
터벅- 터벅- 터벅-
창틈 사이로 비춰지는 달빛에 홀로 걸어가니 신비로우면서도 스산한 분위기가 온 몸을 휘감았다.
나는 그 오묘한 분위기에 쉽쓸리 듯이 머릿속은 더 복잡해져 갔다.
그래서 그런 머릿속을 정리하고 싶어 머리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머리는 복잡했고, 어지러움만 더해졌을 뿐이었다.
부스럭-
나는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복잡했던 머릿속은 어느새 인가 말끔해져 있고, 보다 또렷해 졌다.
나는 복도 끝의 어둠을 향해 시선을 집중했다.
얼마 안되는 달빛에 의존해 그 심연 너머를 들여다 보았다.
하지만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그 심연은 고요했다.
역시, 나는 피곤해서 잘못 들은 것인가 하고 내 방으로 가는 발걸음을 다시 움직이려고 했다.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앞이 아니라면…?’
그래서 나는 두어 발자국 앞으로 가다가 금세 멈추어 버리고 말았다.
나는 고개를 천천히 돌리면서 창문 밖을 보았다.
‘흠….’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달빛에 반짝이는 빈 공터만 보였다.
그리고 나는 몸을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오로지 적막 뿐, 역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하….”
역시 피곤해 진게 확실하다 느껴진 나는 신경을 끄고 방으로 향했다.
* * *
“끄아아아….”
나는 굳어진 어깨를 쭉 피면서 잠에서 깨었다.
나는 잠에서 깼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뻑뻑한 눈을 비비면서 눈이 떠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똑- 똑- 똑-
그런데 갑자기 어딘가 조급해 보이는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음…?”
나는 덜 깨어진 채로 어기적 어기적 문을 향해 걸어갔다.
“누구세요….”
나는 힘없이 대답하면서 문을 열었다.
“페스틴 씨…!”
문 앞에는 엘리스가 심히 당황하고 있었다.
눈가가 촉촉해져 있는 것을 보아 보통 일이 아닌 것 같았다.
* * *
엘리스의 손에 이끌려 온 곳은 이미 많은 사람이 모여있었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이미 일어나 있었는지 평상복 차림이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후자에는 나도 포함 되었다.
언제 부터인가 늦잠을 자게 된 것인지 의문이 들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건 아닌 것 같았다.
“무슨… 일인가요?”
“아, 페스틴 군. 일어났나요?”
오랜만에 보는 왕이었다.
“네, 일단은… 말이죠.”
나에게 부드럽게 말하면서도 얼굴은 매우 심각해 보였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몇명이 벌벌 떨고 있었다.
‘…?’
무겁고도 심각한 분위기에 나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면서 나는 불안해졌다.
‘왕궁은 평화로운 곳이다…. 설마…?’
코끝을 스치는 피비린내가 나의 불안한 마음을 더 크게 동요시키기 시작했다.
시야에 들어온 것은 힘없이 쓰러져있는… 메이드 아주머니였다.
* * *
이곳은 정말 오래 간만에 들어오는 것 같았다.
선생들을 비롯해 나와 페퍼도 그리고 다른 모두도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이 방에 처음 들어온 사람들은 이리저리 두리번 거리며 잔뜩 긴장한듯 굳어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겁니까?”
힐다가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왕에게 책망했다.
“흠….”
그도 알고 있었지만 재빠른 대처를 하지 못해 죄책감을 가지고 있어보였다.
그가 회의에 집중을 전혀 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를 다그치거나 몰아ㅠ붙이지 않았다.
그의 심정을 모두는 이해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이 든다.
베피는 선생들 틈에 숨은 것인지 숨겨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성격과는 달리 한쪽 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다.
아까 잠깐 보였던 그녀의 표정은 마치 자신이 원인이라도 된다는 것처럼 오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보다는 지금 선생들의 태도가 조금 이상했다.
그들은 학생들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꺼려하는 듯 했다.
“다 속시원하게 말하자고!”
브란도가 보다못해 크게 외쳤다.
“후… 그게 말처럼 쉽다면 진작에 했겠죠.”
테리스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하… 귀찮으니까, 원인이 불면 되잖냐.”
히터가 답답했는지 고개를 까딱하면서 말했다.
그가 눈치를 준 상대는 베피였다.
그의 시선에 그녀는 고개를 돌리며 시선을 회피했다.
그런 그들을 한참동안 바라보던 소피가 입을 열었다.
“그 녀석 혼자 짐을 질 필요는 없지.”
마치 자기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듯이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짐이라는게 뭐죠?”
포드가 뜸을 들이는 선생들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그럼… 내가 설명해 볼까?”
힐다는 무게감 있게 목을 가다듬었다.
“다들 그 시체를 보았겠지.”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의 몸은 심하게 훼손 되어있었고, 날붙이에 베여 죽은 것 같았다.
“아…! 역시 제가 말하겠습니다.”
잠자코 듣고 있었던 조이드가 외쳤다.
순간 선생들이 경직되었다.
“어쩌면… 제가….”
그는 고개를 푹 숙이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힘들면 내가 말하마.”
힐다는 조이드의 처지를 이해라도 하는 것처럼 말했다.
“…아닙니다.”
그는 큰 결심을 했는지 목소리에 힘이 실려있었다.
나는 베피를 흘깃 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두려움이 가득해 보였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알기 쉽게 알려드리자면요….”
조이드는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 * *
그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먼저 메이드를 죽음으로 몰고간 녀석의 정체는 조이드와 같은 ‘인형’이라는 점이다.
그 이야기를 꺼낼 시점에는 선생들의 시선이 좋지 않았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었는지, 심각하게 느껴지는 시선들은 각기 사연이 있어보였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그들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조이드가 그 점에 대해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초기 ‘괴물 토벌반’은 별다른 무기도 없었고, 기계도 없었다.
그래서 사상자가 많았다고 한다.
밖으로 나갈 때마다 겪는 슬픔을 후대에도 물려주고 싶지 않았는지, 선조들은 무기들을 개발해 나갔다.
하지만 새로운 무기들은 슬픔을 줄이기만 했을 뿐, 여전히 슬픔은 생겼다.
원인은 방심과 부족함.
인간이라면, 사람이라면 마음속에 존재할 그 두가지 때문에 죽음이라는 결과를 얻게 된 것이다.
따라서 그들로서는 응급처치는 가능하나 완치는 불가능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인간이 아니라면 슬픔을 없애지 않을까?’
그 누군가의 생각 때문에 ‘괴물 토벌반’은 크게 변화를 겪었다고 한다.
그 변화한 시기는 비교적 최근이라고 한다.
그 누군가는 바로 베피의 부모라고 한다.
베피의 부모님을 선두로 사람들은 무기가 아닌 인형을 연구하는데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들이 완성한 것은 그 당시에 완벽에 가까웠다고 한다.
우리가 잡아야 할 그 괴물들을 잡으면 일정 확률로 떨어뜨린다는 코어를 사용해서 거의 무한에 가까운 동력과, 내구도를 자랑했던 그 인형들은 딱 한가지 오점이 있었다.
그것들은 단순했고, 딱 한가지의 명령밖에 내리지 못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괴물을 토벌하라는 명령을 하되, 복귀하라는 명령은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이디어는 좋았으나, 밖으로 내보내면 그동안의 노력과 시간과 돈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각자의 생각대로 흩어져버렸다고 한다.
인형에 사람의 마음을 이식하려는 사람, 인형을 가볍고 싼 소재로 양산 시키려는 사람, 인형은 포기하고 무기 개발에나 힘쓰자는 사람.
각기 사람들은 자신들의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내달렸다고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그들의 부족함을 드러냈다.
무기 개발은 진전이 없었고, 오히려 퇴화 하고 있었다.
양산을 시키면서 나라의 자원은 고갈되어 갔다.
인형에 사람의 마음을 집어 넣을 수 있을 거란 오만한 생각이 그들을 파멸로 이끌었다.
그들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들의 생명 역시 무로 돌아갔다.
베피는 현재 사건의 중심 인물이었다.
부모를 일찍이 여윈 그녀는 하나뿐인 친오빠에게 의존했다고 한다.
그 역시 그녀를 다정하게 보살폈다.
그에게는 애인도 있었다.
베피는 그녀에게 질투심을 느꼈는지 관심을 자신에게 돌리기 위해서 팜과 함께 인형의 연구를 했다고 한다.
그녀는 천재였고, 팜의 도움으로 그들의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그들은 50여개가 넘는 인형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다 잘 흘러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모든 것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기계들은 폭주하게 되었고, 왕궁을 포함한 주위의 도시가 큰 피해를 입게 되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그의 애인이 죽고 말았다.
애초에 그는 인형을 개발하는 것에 내키지 않아했고, 자신만의 무기를 갈고 닦아 왔었다.
하지만 하루 아침에 모든게 사라진 것처럼 느껴진 그는 훌쩍 떠나버린 것이다.
인형에 대한 두번째 시도 역시 그들에게 파멸을 가져왔다.
그 인형들은 눈에 띄는 종종 처리되었지만 여전히 몇개는 도시를 활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설명에 근거해서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인형을 목격한 것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녀의 오빠도….
* * *
“인형에 사람의 마음을 집어넣을 생각을 하다니….”
포드는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그 말에 동감했다.
그래서 심리학에 관한 학문을 모조리 폐기처분 한건가?
그렇다고 한다면 뭔가… 매우 극단적인 조치가 아닐까 싶다.
“그러게….”
‘물론, 성공 사례도 있는 듯 하지만….’
우리는 조이드의 긴 설명을 듣고 일단 강의실로 들어와 앉았다.
“그보다… 다들 왜 아무렇지도 않아…?”
안나가 훌쩍이면서 말했다.
“…글쎄. 익숙해져서 그런가?”
나는 난감해하는 안토리오를 대신해, 담담하게 대답해 주었다.
모두가 무표정하게 있었기는 했지만, 다들 두렵고 슬픈 마음을 참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들의 눈은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렇지 않은게 아니야.”
페퍼가 자그마한 두 주먹을 꼭 움켜쥐었다.
“나는… 어떻게 반응을 해야할지….”
줄리는 눈에 띄게 동요하고 있었다.
강의실의 분위기는 숙연해 졌다.
내 심정에 대해 괜히 솔직히 말한게 아닌가 하고 걱정이 들 때 즈음 히터가 문을 열고 힘없이 걸어 들어왔다.
“…”
히터는 우리의 표정을 보고는 시선을 돌렸다.
그는 교탁까지 걸어가지 않고 우리들 옆에 앉으면서 말했다.
“너희는 어떤 의미로는 행복한거고, 어떤 의미로는 불행한거다.”
영문 모를 소리를 하는 히터를 우리는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참고로 나는 배려를 잘 못해. 기분이 나빠도 이해해줘.”
그렇게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말하고는 말을 이어갔다.
“아무튼간에 말이야, 너희는 상황이 좋든 나쁘든 ‘경험’을 했다. 지금 너희가 어떻게 반응하고 대처하느냐에 따라….”
그는 말을 잠시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크흠, 앞으로의 너희들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너희들은 앞으로의 힘든 일들을 헤쳐나갈 수 있는 강인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는 우리들의 표정을 찬찬히 살폈다.
“그러니… 너희에 마음속에 있는 그 감정을 잊지 않고, 마음속 깊이 묻어라.”
갑자기 잠자코 듣고 있던 포드가 물었다.
“감정은 불필요한게 아니던가요?”
‘확실히… 실전에선 불필요하다. 아무리 불리한 상황이더라도, 냉정하게 판단한다면 타개할 수 있다.’
“너희는 사람이다.”
그의 대답에는 확신에 가득차 있었다.
그는 머리를 휘젓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에잇! 나도 마음이 뒤숭숭해서 뭐라 말이 잘 안떠오르네!”
그렇게 말하고는 문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는 문을 열고 나가려다 말고 이렇게 대뜸 말했다.
“오늘은 푹 쉬어라… 너무 신경쓰지도 말고….”
그리고 문을 닫고 나갔다.
그의 나름대로 우리를 신경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 * *
나는 식사도 거른채로 침대에 누워 생각에 잠겼다.
‘어제 들은 것은 착각이 아니었던 것인가?’
나는 어제의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 * *
바스락-
‘…?’
* * *
분명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들린 것은 그 작은 소리 뿐이었지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은빛으로 빛나는 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뒤척이면서 따뜻한 햇살 아래서 기억을 돌이키고 있었다.
덜컥!
갑자기 열린 문에 나는 놀라고 말았다.
“헉….”
무엇보다도 나는 매우 편한 상태로 있어서 이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기에는 좀 그랬다.
“아, 제가 방해를 했나 보네요.”
방에 들어온 것은 엘리스였다.
“아, 아닙니다.”
나는 그녀에게 함부로 말을 꺼내지 못했다.
누구보다도 슬픈 것은 그녀일 것이기 때문이다.
“어디 있는지 찾고 있었습니다. 다행이도 왕궁 밖으로 나가지 않았군요.”
그녀는 침착하게 말하고 있었다.
“음… 그래서 무슨 일로…?”
나는 자세를 고쳐잡아 침대 끄트머리에 앉았다.
“지금부터 장례식을 치룰 건데, 괜찮다면….”
그러고 보니 그녀의 옷차림이 평소와는 달랐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었다.
* * *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시간은 도약이라도 하듯 훌쩍훌쩍 뛰어넘어 어느새 밤이 되었다.
나름 친분이 있었던 사람의 죽음에 나는 당혹감을 면치 못했다.
‘이것은 누구의 잘못 일까?’
현재의 나로서는 전혀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현실을 마음속에 묻었다.
어쩌면 어젯밤에 내가 막을 수도 있었던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물은 이미 엎질러졌다.
나는 옷도 갈아입지 않은채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