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71화.
나는 품에 안긴 앤디를 보았다.
아무 언데드나 이렇게 막 끌어안으면 위험할 텐데…. 같은 걱정이 생겼지만, 그런 문제는 둘째치고 지금은 이 어린 녀석과의 재회가 반가웠다.
[무사해서 다행이다.]
나는 앤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굶주림으로 볼살이 쏙 들어가고 팔다리도 앙상하게 말랐지만, 귀여운 인상은 여전했다.
[그나저나 내 모습이 많이 변했는데…. 용케도 알아봤구나.]
“눈빛이 푸른 언데드는 두영님 뿐이었으니까요!”
[눈빛? 아아. 눈빛으로 알아본 거구나.]
“예!”
[눈빛으로 구분하다니. 그래. 그러면 아무 언데드한테나 이러지 않아서 안전하겠구나. 똑똑하다. 똑똑해. 게다가 내 이름까지 기억하고. 정말 장하구나. 앤디.]
“저희를 구해주셨는데 어떻게 잊겠어요! 그 은혜 한시도 잊은 적이 없어요! 그때 그렇게 지켜주셔서 정말, 정말 고마웠습니다! 두영님!”
나는 하반신을 끌어안은 채 감사 인사를 전하는 앤디를 보았다.
시간이 꽤 지났는데, 아직도 고마워하는 앤디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뭉클하면서도 안쓰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겨우 구해줬는데, 어렵게 구해준 애가 지금은 노예 신세였기 때문이다.
“언데드와 대화를?”
“많이위험해 보이는데 괜찮은 건가?”
“우릴 풀어준 걸 보면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앤디의 행동을본 노예들이 웅성웅성거렸다.
그들에겐 살아 있는 인간과 언데드의 유대가 진풍경이리라.
당연히 그 배경도 궁금하리라.
“저기 꼬마야. 그 언데드와는 어떻게 아는 거니?”
“우리 안전한 거 맞니?”
“사정을 물어봐도 될까?”
이곳이 동토였다면 주입식 교육으로 ‘사악한 망자 놈! 어린아이에게서 떨어져라!’, ‘사악한 망자가 어린아이를 잡았다!’ 같은 소리부터 하며 온갖 비난을 일삼았겠지만, 망자에 대한 혐오감이 상대적으로 덜한 아르카디아 대륙인들은 앤디에게 전후 사정을 묻는 등 신중하고도 진중하게 행동을 보였다.
앤디는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하멜 성에서 겪었던 일을알려주며 내 무용담을 알려주었다.
“덕분에 우리 모두 목숨을 건졌습니다! 사악한 마법사 네빌도 우리를 죽이지 않고 풀어주었고요.”
“오오. 그런 일이….”
“언데드가 인간을 돕다니. 그게 가능한 일인가?”
“내가 아는 언데드는 살아 있는 모든 것을 공격했는데….”
“그러고 보니 이 언데드들의 눈빛은 좀 다르군. 시뻘건 색이 아니라 고등어처럼퍼런 빛깔이야.”
“푸른 눈의 언데드라니…. 새로운 발견이로군. 저 아이의 말이 사실이라면 믿어도 될 것 같아.”
“그래. 해치려면 묶였을 때 해쳤을 테니. 믿어도 될 것 같아.”
쑥쓰러운 무용담을 들은 노예들이 안심했다.
나는 노예들과 앤디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상단주가 숨은 마차를 보았다.
그리고 마침 마차 주변에 있던 스켈레톤 나이트 2마리에게 안으로 들어가 상단주를 끌어낼 것을 지시했다.
“히익! 언데드! 언데드다! 살려줘! 사람 살려!”
마차 뒤로 달아나려던 상단주가 바닥에 고꾸라졌다.
튜브 같은 뱃살이 완충재 역할을 해준 덕분에 크게 다치지않고 금방 일어났는데, 마차 안에서 상황을 보고 있던 것인지 일어나자마자 앤디에게 달려가더니 그 뒤에 숨으며 말했다.
“꼬마야! 나 좀 살려다오!”
“예?”
“방금 다 봤다! 너 저 언데드랑 친하지? 날 살려달라고 부탁해줘! 돈이라면 얼마든지 줄게. 내가 가진 돈 전부를 다 줄 테니까! 저놈이 날 해치지 못하게 해!”
누가 상단주 아니랄까 봐, 눈치와 행동력만큼은 기가 막혔다.
바들바들 떠는 상단주를 본 노예들은 이를 갈며 그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이 빌어먹을 돼지 새끼! 네가 목숨을 구걸할 처지란 말이냐!”
“너 때문에 우리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가!”
“죽입시다! 이런 놈은 죽여야 해요!”
몇몇 노예들이 호위병들의 무기를 챙겨 모여들었다.
살기가 보통이 아닌 것이 아무래도 지금까지 호되게 당한 모양이었다.
[그 심정 모르는 건 아니지만, 일단 기다려라. 아직 물어볼 것이 있으니까.]
나는 스켈레톤 나이트를 이용해 화가 난 사람들의 접근을 막고 다시 앤디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나와 헤어지고 어떤 일을 겪었는지, 왜 노예가 됐는지를 물어보았다.
앤디는 침울한 표정을 하더니바닥을 보며 설명했다.
네빌이 약속을 지킨 덕분에 앤디와 아이들은 하멜 성에서 무사히 탈출했다.
언데드의 호위까지 받은 그들은 몬스터들의 습격을 피해 가까운 마을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1개월 정도 안락한 생활을 보냈다.
하지만 아너스 왕국이 전란에 휩싸이게 되면서 마을 젊은이들이 징집되었다.
앤디는 징집되지 않았지만, 그의 형은 군에 끌려갔고 말았다.
마을에 남은 앤디는 형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지만, 돌아온 것은 갈론 왕국의 병사들뿐이었다.
그들은 아너스 왕국이 패전 소식을 알린 후 갈론 왕국의 국왕 하트리스 갈론의 명으로 아너스 왕국의 모든 백성은 노예가 될 것이라 밝혔다.
마을 사람들은 그때 가진 재산을 모두 갈론 왕국의 군대에게빼앗겼다.
신분 역시 전쟁노예로 전락하고 말았다.
힘없는 노인들과 장년층은 마을에 남아 강제 노역을 하는 소작농이 되었고, 앤디와 나머지 젊은 사람들은 하이칼 산맥의 금광으로팔려갔다.
사금을 채취하는 일을 하던 앤디는 사지가 멀쩡하고 얼굴이 잘생겼다는 이유로 차출되어다시 노예 시장에 팔리게 되었다.
[그리고 널 사들인 놈이 저놈이라는 거지?]
“네.”
[다른 사람들은? 그대 너 말고 구한 다른 애들도 광산에 끌려갔어?]
“아뇨, 다른 친구들은 왕국과 북부로 팔려갔어요. 르나르국에 팔린 사람은 저 혼자에요.”
[그렇구나. 고생했다.]
“형이 보고 싶어요. 그때 같이 탈출한 애들도 보고 싶어요. 차라리 그때 떠나지 않고 두영님 곁에 있을 걸 그랬어요. 그랬으면 헤어지지 않았을 텐데…. 이렇게 보고 싶지 않았을 텐데.”
앤디가 참았던 눈물을 보였다.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입을 꾹 다물고 숨을 끅끅 참으며 눈물만 또르르 흘리는 것이 안쓰럽기 짝이 없었다.
[힘들면 울어도 된다.]
“형….”
앤디는 서럽게 울었다.
아직 어린 녀석이 그치지 못하고 엉엉 울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앤디….”
노예가 된 여자들이었다.
그녀들은 앤디의 처지에 공감하듯 그의 곁에 딱 붙어 위로해 주었다.
낡은 천 옷으로 앤디의 눈물을 닦아주고, 등과 어깨를 토닥이며 달래주었다.
그 모습을 보니 한 가지 각오가 생겼다.
[거기 너 이름이 뭐냐?]
“예? 저, 저 말입니까?!”
[그래, 상단주 너 말이다.]
“저, 저는 바룸 상단의 바룸이라고 합니다. 성은 없습니다.”
[여기 이 사람들을 어디로 데려갈 계획이었지?]
“노, 노예들 말입니…. 히익!”
옆에 있던 데스나이트가 상단주의 목에 검을 겨눴다.
아슬아슬하게 목 앞에서 멈춘 데스나이트의 검에 상단주는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
“노예 아, 아니, 이분들은 르나르국의 서창에서 팔 계획이었습니다.”
[판다고?]
“예. 볼그 왕국에서 구매한 노예들을 다시 서창에서 파는 것이지요. 서창은 뱃사람이 많아서 노예들이 잘 팔리거든요. 이를테면….”
바룸은 내 기분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말투를 최대한 공손히 하고서 설명했다.
바룸이 하는 일은 갈론, 칼토르, 볼그 왕국에서 사들인 노예들을 선별해 르나르국에 납품하는 일종의 인신매매였다.
3왕국과 분쟁지역 등을 오가며 양질의 노예들을 구매하고, 일손이 필요한 지역에 비싼 값을 주고 되파는 것이다.
그래서 주로 구매한 노예들도 뱃사람이 되기에 적합한 신체 건장한 성인 남성과 돈 많은 뱃사람의 아내로 팔 여성이 대부분이었다.
개중에는 처녀도 있었는데, 처녀는 마차 안에 묶여 있었다.
이야기가 다 끝날 즈음에 다른 노예들이 열쇠를 찾아서 풀어주었다.
나는 새로 늘어난 사람들까지 노예들의 면면을 확인했다.
그의말대로 건강해 보이는 성인 남성과 아직 젊은 여자들이 주를 이뤘지만, 그 사이사이에 앤디처럼 아직 중학생이나 초등학생 정도 되는 애들도 있는 것이 영 거슬렸다.
[애들은? 앤디는 성인도 아닌데 왜 데려온 거지?]
“얼굴이 반반한 어린 애들은 그…. 르나르국의 귀족들이 좋아해서 경매에 부치면 비싼 값에 팔립니다.”
[귀족들이 애들을 산다고? 애들을 사서 뭘 하는 거지?]
“그야 하인으로 부려 먹거나…. 밤시중을 들게 하겠지요.”
[밤시중?!]
바룸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즉, 애들마저도 노리개처럼 취급당한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마차 뒤에 숨어 있는 애들을 보았다.
앤디처럼 중학생정도 되는 애들도 있었지만, 우리 딸 또래 초등학생이나 그보다 더 어린 애들도 보였다.
데스나이트가 날 대신해 바룸의 목에 검을 겨눴다.
[추악한 새끼들. 너는 인정도 없냐?]
“히익! 사, 살려주십시오! 제가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귀족들이 원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저는 그저 애들을 헐값에 사서 다시 팔 뿐입니다! 진짜 죄인은 제가 아니라 귀족 놈들입니다!”
[그래서넌 죄가 없다고? 썩을 놈! 그게 할 말이냐?]
“그, 그것이 아니라, 제가 하지 않았더라도 누군가는 저처럼 애들을 납품했을 것이란 이야기….”
바룸의 변명에 데스나이트가 발로 바룸의 가슴을 걷어차더니 배를 짓밟았다.
“크억!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언데드 나리! 살려만 주신다면 돈이든 뭐든 다 드리겠습니다! 제발, 제발 저 좀 살려주십시오!”
데스나이트는 검을 들고서 명령을 기다렸다.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 죽이고 싶지만, 나는 다시 한 번 인내심을 발휘했다.
아라타의 영향을 받아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이놈과 거래하는 놈들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기절한 놈들의 옷을 벗이고, 밧줄로 몸을 묶어라. 그리고 그들의 옷과 물건을 사람들에게 나눠줘라. 바룸, 너는 마차 안에 실린 짐이 무엇인지, 앞으로 어디와 어떻게 거래할 예정인지 말해라. 하나도 숨기지 말고!]
“아, 알겠습니다. 전부 말하겠습니다!”
명령을 받은 스켈레톤들이 호위들의 옷을 벗기고, 밧줄로 포박하는 사이 바룸이 마차에 실린 짐들과 거래처를 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