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7화 〉66화. (67/83)



〈 67화 〉66화.

눈앞에 나타난 사람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제는 기억마저 가물가물 해진  사람의 얼굴은 매일 아침 면도를 하며 보았던 나 자신, 이두영의 모습이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처럼 눈앞에 나타난 나는 늙어 있었다.

눈가는 주름이 자글자글했고, 얼굴에는 제대로 정돈하지 않은 수염이 듬성듬성 자라 있었다.

머리는 산발이었고, 가슴에는 야성미 대신 성미만 급한 털들이 자라 있었다.

복부에는 복근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민망한 평범한 뱃살이 튜브처럼 자리를잡고 있었다.

소파에 누워 있던 또 다른 나는 팬티 한 장만 입고 털이 수북하게 자란 종아리를 다른 발로 긁적였다.

한 손에 들린 리모컨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그때마다 채널이 빠르게 돌아갔다.

채널 돌리는 솜씨만 현란했다.

채널이 돌아가자 딸내미가 쪼르르 달려와 소파에 앉은 또 다른 내게 몸을 날렸다.

옆구리로 올라간 딸내미는 리모컨을 달라는 듯 보채기 시작했고, 또 다른 나는 늘 그렇듯 채널을 내려 세연이가 좋아하던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을 틀어주었다.

펭귄을 닮은 만화 캐릭터에 환장하던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어느새 마법 소녀가 나오는 애니메이션에 환장하고 있었다.

지팡이  번 휘두를 때면 적들의 몸이 폭발하며 죽는 것이 12세 이용가가 맞는지 의심스러운 애니메이션이었지만, 아무튼 이 애니메이션은 딸내미가 많이 컸다는일종의 증거라고  수 있었다.

만화가 나오자 보채던 딸이 아래로 내려가 텔레비전 앞에 섰다.

적정거리 3미터를 지키라는 잔소리도 무시하고 1미터 앞까지 걸어가 엎드려 누운 채, 물장구라도 치듯이 다리를 흔든다.

애니메이션의 노래가 시작되는 타이밍에 늘 하던 행동.

오프닝이 시작되고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한다.

흥얼거리듯이 말하는 딸내미의 모습에 이번에는주방에 있던 아내가 나왔다.

요리를 하느라 머리를 묶은 아내는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세연이를 보더니 딸내미가 아닌 내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소파에 앉아 흐뭇하게 딸을 바라보고 있던 또 다른 나의 등을 때렸다.

매서운 스매시에 맞은  다른 내가바닥을 구르며 몸을 배배 꼬았다.

 그러냐고 따지니 아내가 말한다.

“애가 텔레비전 앞에 딱 붙어 있잖아! 말려야지! 뭐하는 거야!”

내가 답한다.

“애가 그럴 수도 있지. 원래 다 그러면서 크는 거야!”

아내는  눈이 나빠지면 어쩔 거냐며 폭풍 잔소리를 쏟아냈다.

그러다 아직도 물장구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딸내미를 보더니 복잡하게 움직이는 다리를 잡아 뒤로 당겼다.

소파 밑까지 끌려온 딸이 투덜거린다.

소파에 있던 나는 아내의 잔소리가 무서워 다시 텔레비전 앞으로 다가가려는 세연이를 꼭 붙잡았다.

아내는  사이 과일을 내왔다.

이번에 나온 과일은 사과였다.

빨갛게  익은 사과가 나오자 텔레비전을 보느라정신이 없는 달을 대신해 아내가 포크를 찍어 입으로 떠먹여 준다.

샘이  내가 아내를 보챘다.

“나도. 나도. 아앙!”

“내가  둘을 키운다. 애 둘을 키워. 으이그!”

아내는 화를 내면서도 포크로 사과를 찍어 입안에 물려줬다.

그렇게 사과를 먹으며 무슨 내용인지, 무슨 조화인지도 모를 만화 영화를 딸과 함께 봤다.

재미 하나 없는 유치한 애니메이션이지만, 변신이라도 할라치면 그게 그리 좋은지 혼자 꺄르르꺄르르거렸다.

그런 딸을 보면서 나도 아내도 똑같이 웃었다.

노래가 나올 때면 세연이를 따라 나도 아내도함께 그것을 따라 부른다.

우리 가족은모두 음치지만, 세연이가 보는  만화 주제곡은 만큼은 틀리지 않고 기가 막히게 잘 불렀다.

만화지만, 유명 가수가 부른 곡이어서 그렇다.

아무튼, 노래까지 부르면서 한가롭고, 평화로운 하루가 저물었다.

멀리 여행을 가는 것보다.

그 어떤 산해진미를 먹는 것보다.

행복하고 충실한 시간.

“세연아. 여보.”

나는 딸과 아내를 불렀다.

목소리는 떨리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손을 뻗어 두 사람을 만지려 했지만, 만질 수 없었다.

나는 죽었으니까.

이제 집 안의 온기를 느끼고 싶어도 느낄  없다.

이렇게 기억으로 회상하는 게 전부다.

어째서 이렇게 죽어 버린 것일까?

어쩌다 이렇게 허무하게 놓쳐버린 것일까?

내가 그때 복수를 꿈꾸지 않았더라면.

놈에게 집착하지 않았더라면.

무모하게쫓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진짜인지 허구인지 모를 이 상상 속에서 지금 아내와 딸 곁에 있는  다른 내가 현재까지도 이어졌을 텐데.

다시 함께 저 노래를 부를 수 있었을 텐데.

저 속에서 함께 있을  있었을 텐데.

후회가 밀려왔다.

파도처럼몰아친 후회는 저주스런 몸뚱이만 남기고 내 모든 것을 앗아버렸다.

나는 목을 놓아 울음을 터뜨렸다.

마침내 눈물이 떨어졌다.

원망과 후회로 얼룩진 초라한  방울 눈물이 뼈만 남의 손으로 떨어졌다.

흡수되지 않고 뼈를 타고 흘러내린 손에서 황금빛이 올라왔다.

[후회하십니까?]

아라타의 목소리가 들렸다.

침착하고 조용한 그 말에 나는 답하지 않았다.

눈물을 억누르고 주먹을 쥐었다.

손등에서 올라온 황금빛이 점차 줄어들었다.

아라타는 뒤에서 계속 말했다.

[형님께선 바른 사람입니다. 누구보다 정의감이 강하고, 올곧으며 강직한 사람이시죠. 큰 슬픔을 겪었기에 다른 이의 슬픔을 이해할 수 있는 맑은 영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너무 자신의 실수를 자책하지 마십시오. 남에게 하는 것만 폭행이 아니라 자신에게 하는 것도 폭행입니다. 자신을 원망하고, 추하다 채찍질하는 것만큼 잔인한 짓도 없습니다.]

아라타의 말에 천근 짐이라도 짊어진 것처럼 앙상한 두 팔이 덜덜 떨려왔다.

거짓이 아닌 진실을 이야기하는 그의 말에 눈물이 떨어졌던 손바닥에서부터 서서히 금빛 광채가 올라왔다.

쇳덩이가 달아오르는 것처럼 손과 팔에서 끔찍한 열기가 느껴졌다.

손을 타고 손목과 팔꿈치에 으르는 광채를 본 아라타는 다시 말을 이었다.

[형님께서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어머니를 지키지 못한 한과 그리워하는 마음은  어떤자식이라도 품을 당연한 감정이니까요. 하지만 분노에 몸을 맡겨 자신을 그르쳐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야 똑같은 마귀가 될 뿐입니다. 마도에서 벗어나시고 정도를 걸으시길 바라신다면 지금이라도 복수심을 내려놓으시기바랍니다.]

아라타의 이야기에 팔 뿐 아니라 발끝에서부터 또 다른 열기가 올라왔다.

살을 불에 지지는 것만 같은 끔찍한 열기에 당장에라도 발버둥을 치고 싶었으나, 몸이 무거워 입조차 열리지 않았다.

빛은 점점 팔과 다리를 타고 올라와 목으로까지 치달았다.
고통은 극에 달했고,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억지로 턱을 움직여 말했다.

“가족을 잃은 슬픔이 얼마나 큰지. 그런 망할 범죄자들이 얼마나 혐오스러운지 말로 다  수 없다. 내가 없는 동안 어머니가 혼자 두려워하셨을 시간, 그 범죄자에게 맞아 고통스러워하셨을 시간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잊어버리고 싶어도 잊을 수 없어.  번이고 잊으려고 했지만, 비슷한 사건 비슷한 범죄라도 보면 그때가 생각난다. 집으로 돌아갈 때도 마찬가지다.”

[형님….]

“아라타야. 이건 분노가 아니다. 살기 위한 발버둥이다. 가족이 죽어서 복수하고 싶은 게 아니라 가족을 죽인 괴물을 죽여야지만 내가숨을  수 있는 거다. 애초에 복수는 죽은 자를 위한 게 아니야. 남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지. 남은 사람들이 또 다치지 않게, 이미 다친 사람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그들을위로하는 거다.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지만, 네 가치관처럼 물렁하게 행동해서야 진짜 악한 놈은 잡을 수 없다. 그런 놈들을 잡으려면 우리도 독해져야만 해. 더 강하고, 더 빨라야 한다. 더 단단해지고, 더 날카로워져야만 한단 말이다.”

[…심지가곧으시군요. 하지만 정의를 실현하는 것과 증오와 분노에 몸을 맡기는 것은 엄연히 다릅니다. 이것을 보시지요.]

아라타의 말에 몸을 태우던 열기도 조금씩 흐려지더니 차갑게 식어가기 시작했다.

열기가 물러가자 싸늘한 한기가 바늘처럼 몸을 찔렀다.

온몸에 시미는 냉기에 반사적으로 몸을 웅크리자 눈앞에 다른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새롭게 나타난 장면은 장례식장이었다

아내와 딸이 상복을 입은 채로 장례식장 한쪽에 앉아 울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본 순간, 온몸에 들어가 있던 힘이 구멍 뚫린 풍선처럼 쭉 빠지고 말았다.

제복을 입은내 영정 사진을 하릴없이 바라보며 엉엉 우는 아내와 딸의 모습에 가슴에 구멍이 뚫린  같았다.

온몸의덮은 냉기가 대수롭지 않을 정도로 지독한 통증이 가슴을 마구 찔렀다.

장례식장에 찾아온 동료가 손을 모아 절을 올리더니 울음을 그치지 못하는 딸과 아내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남겼다.

아내는 그들의 위로조차 받지 못했다.

그저 망부석처럼 앉아서 꺼이꺼이 울며 자꾸만 쏟아지는 눈물을 딸과 함께 닦았다.

절망이 엿보였다.

내가 어머니를 잃었을 때 느꼈던 것과 같은 절망과 앞으로 혼자서 딸을 키워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엿보였다.

남겨진 자의 슬픔과 삶의 무게가 아내의 마음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그런 아내를 보고 있던 내 마음도 무너졌다.

“안 돼.”

나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앞으로 걸어가 손을 뻗었다.

하지만 손은 닿지 않았다.

뻗으면 뻗을수록 딸과 아내는 멀어져만 갔다.

이런  모습에 아라타는 말했다.

[닿지 않을 것입니다.]

“안 돼!  된다! 안 된다고!”

바닥을 움켜쥐며 소리를 질렀다.

악에 받쳐 소리를 질렀다.

내가 대체  그렇게 잘못했는데!

내가 대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는데!

왜 부모를 떠나 보낸 내게이런 가혹한 시련을 주는 것인지 하늘에 따졌다.

그러나 몸이 점점  무거워져 하늘을 올려다볼 수도 없었다.

머리가 바닥에 처박혔다.

아내와 딸을 제대로 응시할 수도 없게 되자 작은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금붕어처럼 바닥에 고개를 처박은 채 턱만 움직이자 아라타가 말했다.

[화와 분노는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다치게 합니다. 형님. 형님께서는 형수님과 따님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십니까? 형님 손으로 범인을 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십니까?]

“나는….”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으시거든. 복수에 미련을 두지 마십시오. 화를 삭이고 복수심을 버리십시오. 삶은 고난과 역경의 연속입니다. 삶은 고통과 슬픔의 연속입니다. 하지만 그 고난과 역경 속에서 보람과 의미를 찾고, 고통과 슬픔 속에서 기쁨과 행복을 찾는 것이 진정한 인생입니다. 그러니 다시 행복해지고 싶으시다면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형님께서 미련과 복수심을 버리시면 그때 비로소 길이 열릴 것입니다. 형님을 위한 새로운 길이….]

아라타의 말에 악에 받쳐 범인들을 잡아들이던 과거의 내 모습이 나타났다.

자신을 돌보지 않고, 오직 범죄자들을 잡기 위해 혈안이  모습이었다.

누구의 말도 귀담아듣지 않고, 오직 복수만을 원하는 악마를 잡는 또 다른 악마의 모습이었다.

악마는 추잡한 이빨을 드러내며 속삭였다.

[인간이여, 살고 싶은가?]

익숙한 목소리.

익숙한 모습.

이미 본 적이 있는 악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날 해골로 부활시킨 그 악마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떠오르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라타가 하고 싶은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내가 무슨 실수를 했던 것인지.

그제야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몸에서 힘이 빠지며, 팔과 다리에서 다시 열기가 올라왔다.

달아오른 다리미에 닿은 것처럼 또다시 고통이 느껴졌다.

몸을 떠는 내 모습에 아라타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형님. 어머님께서 그렇게 되신 건 형님의 책임이 아닙니다. 형님의 탓이 아닙니다. 그러니 인제 그만 자신을 용서하십시오. 어머님께서도 그것을 바라실 것입니다.]

그 짧은 말에 뜨거운 열기가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마음이 차분해졌다.

가슴에 쌓여 있던 딱딱하고 차가운 뭔가가 녹아내리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결, 상쾌하고 시원한 기분.

그래, 어쩌면.

어쩌면, 나는  말이 그토록 듣고 싶었던 것인지 모른다.

용서를 받고 싶은 것이다.

어머니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범죄자들을 잡으면서 화풀이를 했다.

분노와 혐오에 몸을 맡긴 채 계속 그렇게 살아왔던 것이다.

목까지 올라온 황금빛에 차분하게 숨을 들이쉬었다.

공기가 폐부를 찌르는 것 같은 느낌과 함께 눈을 뜨자, 장례식장에서 울고 있는  소년의 모습이 보였다.

어머니의 영정 사진을 두고,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울음을 터뜨리고 있는 소년.

지금까지 자책하고 외면하며 억지로 잊고 있었던  자신이었다.

나는 깨달았다.

너무나 유약해 보이는 저 소년 또한, 지금의 나 자신의 일부라는 사실을.

나는 울고 있는 소년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 어깨에 손을 올리고, 또 다른 나를 받아들였다.

황금색 빛이 입과 코를 타고 눈과 머리로까지 올라와 머리를 감쌌다.

모든 것이 노란 황금빛 세상으로 변하자 나지막한 목소리가 울렸다.

[많이 컸구나. 내 아들.]

세상에서 가장 자상한 목소리.

지금까지 잊고 지냈던 어머니의 목소리에 굳게 닫힌 마음 풀렸다.

[어머니….]

황금색 세상이 사라지고, 두 눈에서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 양손으로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그것은 너무나 그리웠던 세상의 온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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