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65화.
점점 가까워지는 아라타의 모습에 나는 두려움이 일었다.
놈이 가까이에 오면 이대로 내가 지워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빌어먹을!]
나는 땅바닥에 손을 대었다.
그리고 이번엔 네빌의 기억에 남아 있던 마법 중 하나인 어스퀘이크와 방금 흡수한 백호의 힘을 융합해 아라타를 발밑에 있는 땅을 통째로 꺼트렸다.
검은 마력이 바닥으로 스며들자 백호가 땅바닥을 내리친 것처럼 주위의 모든 땅이 크게 요동을 쳤다.
그리고 흔들림이 정점에 달한 순간.
아라타가 발을 디디고 있던 땅이 갈라지며녀석의 몸이 아래로 떨어졌다.
[그래! 그대로 나락으로 떨어져라!]
사라진 아라타를 보며 그리 말했다.
하지만 곧 아라타가 떨어진 자리에서 빛이 올라왔다.
광명에 휩싸인 녀석의 민머리가 여명과 같이 밝아오더니 이윽고 일출처럼 떠올랐다.
나는 허공을 계단을 오르듯이 오른 아라타를 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아라타가 말했다.
“소용없습니다. 소승은 이미 심득을 얻은 몸, 자연의 법칙에 구속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형님께서도 무의미한 저항은 삼가시지요.”
녀석이 다시 내 앞으로 걸어왔다.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두려움이 일었다.
나라는 존재 자체가 지워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망할!}
나는 다시 손을 뻗어 마법을 사용했다.
돌기둥을 만드는 마법으로 아라타의 주위를 둘러싸 놈을 가두려고 했다.
이에 아라타가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땅이 갈라지더니 솟구친 돌기둥들이 옆으로 밀렸다.
나는 지지 않고 일으킨돌기둥을 무너뜨려 아라타를 깔아뭉갰다.
아지만 아라타를 노리고 쏟아진 돌기둥은 놈의 머리 위로 떨어지자 모래로 변하며 흩어지고 말았다.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 공격했다.
사방신의 힘과 교룡 그리고 가네샤의 힘을 차례로 떠올리며 할 수 있는 모든 공격을 했다.
번개, 불꽃, 비바람, 폭풍 모두 소용없었다.
심지어 사각의 힘으로 아라타의 발밑을 모래로 바꿔 다리를 묶어도 놈은 멀쩡히 걸어나왔다.
모래를 나오는 녀석의 모습에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지닌 힘으로는 아라타를 막을 수없다는 것을.
망자인 내가 사용하는 모든 힘은 아라타의 앞에서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을.
[빌어먹을….]
점점 가까워지는 아라타를 본 데스나이트와 리치들이 녀석을 막았다.
나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소환한 데스나이트와 리치를 돌려보냈다.
놈들의 모습이 암흑 오라 속으로 사라지자 아라타가 코앞에 도착했다.
“형님. 화는 좀 풀리셨습니까?”
[…닥쳐라 빌어먹을 새끼.]
나는 두려움을 억누르며 답했다.
검기도, 마법도 통하지 않는 녀석이다.
이런 녀석이 코앞까지 다가오는데 무섭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형님. 저는 형님의 편입니다.”
[아직도 형님 같은 소리를 하는 거냐? 가증스러운 새끼. 그래. 이젠 아무래도 좋다. 죽일 테면 죽여라. 배신자 놈.]
“아내와 딸이 기다린다고 하지 않으셨으면서 어찌 그런 말을 하십니까? 다시 가족의곁으로 돌아가셔야지요.”
[놀리는 거냐?]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형님. 제가 형님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크큭! 비급으로 나를 꾀어내 함정에 빠트린 네가! 이제 와서 날 도와주겠다고?! 그걸 지금 나더라 믿으란 말이냐!]
“저는 형님을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가증스러운 말에 나는 아라타의 목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녀석의 목을 움켜쥐고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촛불 위에 손을 올린 것처럼 녀석의 목을 잡은 손에서 고통이 밀려왔지만, 꾹 참고 소리쳤다.
[웃기지 마라! 내가 네 속셈을 모를 줄 알고? 보나 마나 또 성불이 어쩌고저쩌고하면서 날 없앨 생각이나 하고 있겠지! 가증스러운 새끼! 너 같은 양아치 새끼를 믿고 함께한 내가 어리석었다! 그때 너도, 동명에 있던 그 비겁한 인간들도! 모두 죽도록 내버려뒀어야 했는데!]
목을 움켜쥔 채 소리쳤다. 그러자 아라타가 모으고 있던 손을 풀었다.
놈의 몸에서 나오던 신성한 황금빛 기운이 흩어졌다.
뜨거운 통증도 사라졌다.
나는 그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채 아라타를 보았다.
녀석이 말했다.
“소승이 죽여서 형님의 마음이 풀린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뭐?]
“진정 소승이 미우시다면 형님의 뜻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너 이 새끼, 대체 무슨 꿍꿍이냐?]
“형님.행자는 행자를 해치지 않는 법입니다. 타생지연이라고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지 않습니까? 전생에 제가 형님과 어떤 인연이었을지는 모르나, 지금의 저는 형님의 동생이 되기로 맹세할 몸일진대, 어찌 아우가 형님을 해칠 수 있겠습니까?”
아라타가 목이 조이면서 붉게 충혈된 눈을 하고서날 보았다.
그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자뒤에 있던 강명이 소리쳤다.
“그게 무슨 소리냐! 아라타! 자비를 베풀어선 안 된다! 마음이 약해져 망자에게 속아서는 안 된다! 지금이라도 저 마괴를 막아야 한다!”
아라타의 생각을 알아채기라도 한 것인지 강명이 허둥대며 소리쳤다.
다른법주승들도 계속해서 날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아라타는 그러지 않고, 아무 힘도 없는 손으로 내 팔목을 잡은 채 말했다.
“이 동생 형님을 만나고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형님을 만나고 많은 이치를 깨우쳤습니다. 혼자서 세상을 방황할 때보다 형님을 만난 근래가 가장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나는 잠자코 아라타의 말을 들었다.
조용히 울리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 증오와 분노가 얼른 그를 죽이라고 소리쳤다.
빨리 아라타의 숨통을 조이고, 목을 분지르라고 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점점 더 시끄러워지면 시끄러워질수록 손아귀의 힘이 빠졌다.
아라타가 다시 말했다.
“그렇기에 이 동생 좀 더 형님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형님과 세상을 여행하며 많은 것을 보고 배우며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쌓고 싶습니다. 후에 형님이 가족의 곁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아쉽지 않도록. 형님과 함께 추억을 쌓고 싶습니다. 그러니 이 동생을 좀 더 거둬주지 않으시겠습니까?”
눈물이 맺힌얼굴로 말하는 아라타.
그 눈을 바라보자 멱살을 잡고 있던 손의 힘이 완전히 풀리며 시끄럽게 울리던 증오와 분노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에 나는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보았다.
엉망진창으로 변한 수미산의 전경과 망가진 산과 하나가 된 바다가 보였다.
다 내가 망가뜨린 것이었다.
[내가 괴물이 되었었구나.]
증오와 분노에 몸을 맡겨 괴물이 된 것이다.
내가 그토록 혐오한 범죄자와다를 바 없는 괴물이.
그렇게 생각하자 머리끝까지 치솟았던 증오와 분노가 완전히 멎었다.
목소리도 더 들리지 않게 되었다.
나는 아라타를 보았다.
“정신이 좀 드셨습니까? 형님.”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 목을 풀고 일어난 아라타가 웃으며 말했다.
세상이 이렇게 망가졌는데도, 내가 세상을 이렇게나 망가뜨렸는데도 녀석은 해맑게 웃었다.
티 없이 깨끗한 웃음을 보니, 날 배신하지 않았다던 녀석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착각이었구나. 바보같이 생사람을 잡으려 했어. 형사라는 놈이….]
“괘념치 마십시오. 형님. 다시 마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될 일입니다.”
[…아라타야. 나는 이제 뭘 해야 하는 거냐? 비급도 없고, 평생, 이 꼴로 살아야 하는 거냐? 이 괴물 같은 꼬락서니로?]
“무슨 소리십니까? 다시 가족에게 돌아가셔야죠.”
[그러니까. 이 꼴로 어떻게 가족의 곁에 돌아가냔 말이다.]
다시 절망에 빠졌다.
세상을 증오해라, 세상을 저주해라 같은 증오와 분노의 목소리가 다시 귓가에 울렸다.
파괴밖에 모르는 이블 나이트의 본능이 내는 소리.
아무래도 내가 스트레스만 받거나, 이성을 잃으면 목소리가 커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이 꾐에 그대로 넘어가면 아까처럼 나 자신을 완전히 잃고 악이 되는 것이리라.
저주받은 몸뚱이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파괴밖에 모른다면….
차라리 일찌감치 성불하는 게 나을지도….
절망에 빠져 고민하는 그때였다.
“비급이 어디에 있는지 압니다.”
아라타가 정신이 번뜩 뜨이는 말을 해주었다.
[방금 뭐라고 했어?]
“비급이 어디에 있는지 안다고 했습니다. 형님.”
[그게 진짜냐?]
“르나르 국의 칠각보전 중 희각이라는 자가 있습니다. 그자가 두영님께서 오시기 전에 네빌이라는 자를 막기 위해 이곳에 들러 비급을 빌려 갔다고 하더군요.”
[희각?]
아라타의 말에 나는 네빌과 사각의 기억 속에 담긴 희각의 정보를 찾았다.
하지만 내가 희각의 모습을 완전히 기억하기 전에.
앞으로 걸어온 아라타가 손을 뻗어 내 팔목을 낚아챘다.
그 순간.
팔목을 타고 찌릿한 통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너!]
갑작스런 통증에 놀라 아라타를 노려보았다.
또 내 뒤통수를 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아라타는 평온한 모습으로 말했다.
“비급을 찾는 것은 나중입니다. 지금은 혼탁해진 형님의 마음부터 정화하겠습니다.”
[뭐라고?]
아라타가 손목을 잡은 채 힘을 주었다.
바늘이 들어온 것처럼 짜릿하고 아찔한 통증이 전신을관통하는 순간.
새하얀 빛이 가득 차며 우주가 나타났다.
거대한 우주의 중심에서 항성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블랙홀을바라보고 있자 빛이 나타나 말했다.
“이쪽입니다.”
아라타의 목소리, 그 목소리가 이끄는 곳을 바라보자 몸이 움직였다.
아니, 정신이 움직였다.
빛의 속도로 아니, 빛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로 정신이 끌려가며 수많은 행성과 항성을 지나쳐 한 행성, 한 집에 떨어졌다.
그곳은 바로 우리 집이었다.
한편, 두영과 아라타가 기억에 잠기는 사이 강명과 법주승들이 일어났다.
“단숨에 마괴를 잠재우다니. 정말 대단하군. 저게 깨달음을 얻은 자의 경지라는 것인가?”
“그 엄청난 괴이의 공격을 모두 막아낼 정도라니…. 정말 엄청났습니다.”
그들은 두영의 위협적인 공격을 모두 막으며 전진하는 아라타의 모습을 떠올렸다.
수행을 쌓는 그들에게 있어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광경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옆에 있던 법주승이 그에게 물었다.
“법사님. 열반에 오르면 그 어떤 마괴도 상대가 되지 않는 것입니까?”
“…열반에든 적이 없는데, 내 어찌 알겠는가?”
법주승의 말에 강명이 살짝 날이 선 목소리로 답했다.
내심 아라타와 자신이 비교되는 것 같아 마음이 상한 것이다.
아직 깨달음이 부족하다는 증거였다.
“죄, 죄송합니다.”
“아, 아닐세. 내가아이처럼 굴었군. 잊어주시게.”
“예.”
“그래도 오래전, 가르침 받은 구전에 의하면 열반에 오른 이는 그 어떤 망자가 덤비더라도 쉬이 상대할 수 있다고 하였네. 이는 유여열반이라 하여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야.”
“과연, 그렇다면, 저 마괴는 이제 끝이로군요.”
“음…, 그래. 보통은 그렇겠지.”
“보통은 그렇다니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라타는 저 마괴를 구제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아서 말이네.”
“마괴를 구제하지 않는단 말입니까?”
법주승의 말에 강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아라타가 얻은 깨달음 덕분에 마괴 두영의 노여움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그뿐이다.
아라타가 두영에게 애착을 품고 있어서 그 이상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겼다.
“파계승이라곤 하나 아라타 역시 승려일진대 어찌 그런?!”
“불경한 생각이 아닐는지요?”
“흐음….”
“진정 그렇다면 마괴가 침묵한 지금 공격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지금 공격해서 마괴를 잠재우면 될 일이 아니겠습니까?”
“산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소승들이 나서겠습니다.”
“아니, 아닐세. 지금은 좀 더 지켜보도록 하지.”
법주승들이 두영을 없애겠다며 나서자 강명이 그들을 말렸다.
아까까지만 해도 두영을 없애야 한다고 소리쳤던 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자 법주승들은 믿지 못했다.
“어째서….”
“아라타 또한 생각이 있으니 저러는 것 아니겠는가. 생각해 보니 그에게 맡겨두는 것이 옳을 것 같네.”
법주승들의 의견에 강명이 아라탈르 보며 답했다.
그리곤 시선을 돌려 높이 솟은 수미산을 올려다보았다.
아래에서 일어난 소란을 아는지 모르는지 수미산은 고요했다.
산을 지키기 위해 나서야 할 사천왕 또한 나서지 않았으며, 제석천과 범왕도 강림하지 않았다.
그 이유를 알 순 없지만, 두영처럼 강력한 마괴가 이리도 날뛰는데 산을 지키는 자들이 직접 내려오지 않은 것에는 마땅한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저만한 마괴를 그냥 두는 것은….”
“실질적으로 죽은 자도 없지 않나.”
한 법주승의 의견에 강명이 바닥에 떨어진 유리, 수정, 망가진 은구슬들의 조각과 파편을 보며 답했다.
모두 사방신들과 그의 종속들이 죽고 남긴 것들이었다.
아래에 떨어진 광물들이 사방신들의 정체였다.
사방신은 괴이라고는 하나 생명체는 아니었다.
청룡은 은, 백호는 수정, 주작은유리, 현무는 황금으로 만든 가공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미 죽은 몸에서 힘과 정신만 따로 떼 내 금인장처럼 각각의 광물로 만들어낸 존재들이었다.
피가 흐르지 않는 몸이었기 때문에 이들은 생자도 망자도 아닌 별개의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
고로 두영이 산과 바다를 파괴할 정도로 날뛰었음에도 실질적인 사상자는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자네 좀 끈질기구만.”
“이해할 수 없어서 그렇습니다. 산의 가르침에 망자는 반드시 퇴치해야 할진대. 이리뜸을 들이는 것이.”
“…나도 마찬가지라네. 하지만 이것도 다 뜻이 있어 그런것이겠지. 그리 믿고 기다려보세나.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주인들께서도 곧 내려오실 테니까. 그때가 되면 아라타가 용단을 내리지 않더라도 저 마괴의 명은 다할 것이네. 그러니 우리는 그때까지 이 자리를 지키고 있도록 하세.”
“…법사님의 뜻이 정 그러시다면 그리하겠습니다.”
법주승들이 납득하며 물러났다.
강명은 두영과 아라타를 보았다.
아라타는 물론, 마괴인 두영의 몸에서도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