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3화 〉62화. (63/83)



〈 63화 〉62화.

아라타가 말했다.

“형님의 힘은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아라타, 방금 뭐라고 했느냐?”

갑자기 이어진 아라타의 말에 강명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형님이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말입니다.”

“저 마괴의 우두머리 말이더냐? 놈은 망령들을 조종하고 있지 않느냐? 그런 놈이 어찌 움직일 수 있겠느냐!”

“소승은 지난 시간 동안 형님과 함께하며 그 힘을 직접 보았습니다. 형님이 가진 힘은 평범한 마괴들과는 그 격이 다릅니다. 사방신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격이 다르다니?”

아라타의 말에 강명 법사의 심기가 더욱 불편해졌다.

그는 터질 것 같은노기를 억누르며 아라타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말 그대로입니다. 형님의 진짜 힘은 그 본인에게 있으니…. 이대로 싸움이 지속되면 피해만 커질 뿐입니다.”

“그래서. 네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냐? 이대로 망자에게 무릎 꿇고 백기라도 들라는 말이더냐?”

“예, 형님이 정말로 화가 나시게 되면 걷잡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부디 피해가 이 이상 커지기 전에! 형님의노여움이  커져 자신을 잃기 전에 비급을 내어주고 다독여주어야 합니다!”

“네 이놈! 마괴 놈과붙어 다니더니 정신이 어찌 된 것이더냐?! 산을 수호하고 중생을 구제해야 할 승려인 네가 마괴를두둔하다니!? 파계승으로 쫓겨난 것이 분해 산에서 배운 가르침과 깨달음은 모두 잊어버린 것이더냐!”

아라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강명이 호통을 쳤다.

그 어느 때보다도 노한 그의 모습에 법주승들은 자신이 잘못이라도  것처럼 겁에 질려 침묵했다.

예전의 아라타라면 그 노기에 놀라 고개부터 숙이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두영 덕분에 깨달음을 얻은 아라타는 훨씬  이성적이었다.

줄곧 앉아 있던 그는 오히려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더욱 빳빳이 세운  목소리를 높였다.

“산에서 배운 가르침과 깨달음은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네놈이 미쳤구나!  시간 가르침을 받지 못해 승려의 본분조차 잊고 말았어!”

“틀렸습니다. 산에서 배운 가르침보다 형님을 만나고 얻은 깨달음과 그분의 가르침이 제겐  컸습니다!”

“뭐라? 마괴에게서 가르침을 받아!? 네놈이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욕정에 눈이 멀어 산에 망신을 끼친 것으로 모자라 이제는마괴의 수발까지 자처하는것이더냐! 뛰어난 아이라 내 좋게 봐주려고 했거늘! 탐욕에 정신까지 지배당한 모양이로구나! 산의 신동이 이렇게까지 망가지다니! 오호통재로다!”

“어찌 말씀하셔도좋습니다! 어떻게생각하셔도 좋습니다! 비록 망자라고는 하나 저는 두영님과 함께 다니며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결코 거짓이 아닙니다!”

“네 스스로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는 있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이놈! 한낱 마괴에게서 대체 무슨 가르침이 있다는 말이냐! 놈들은 그저 사악함과 미련만 남은 해악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마괴에게서 가르침이라니! 부처님의 위대함과 승려의 본분마저 잊어버렸단 말이더냐!”

강명은 황당해하며 아라타를 나무랐다.

하지만 아라타는 움츠리지 않고 더욱 강하게 주장했다.

“강명 법사님. 진정한 가르침은 글이 아닌 속세에 있는 법입니다. 세상을 보지 않고 세상을 공부해서야 그것이 어찌 가르침이 될 수 있겠습니까?! 또한, 진정 위대함은 불상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기만 해서는 진정한 깨달음은 언제까지고 멀어질 뿐입니다!”

“부처님이 위대하지 않다는 말이더냐? 아라타 네 이놈! 속세로 나가 자신을 반성하면서 얻은 결론이 고작 자기 부정이었느냐! 내 너를 잘못 보았구나! 잘못 봐도 단단히 잘못 보았어!”

강명 법사는 그치지 않고 호통쳤다.

이에 아라타는 눈을 감더니 손을 모았다.

말보다는 행동, 그는 두영과 함께하면서 얻게 된 깨달음을떠올렸다.

“어제와 오늘을 다르게 하는 것은 환경이 아닌 나 자신의 마음가짐에 있으니, 진정한 진리란 밖이 아닌 내 안에 있노라. 이 진리를 깨우치면 내가  부처고, 부처가 곧 나이리니….”

아라타의 말에 나무라던 강명은 깜짝 놀랐다.

‘저것은 광명 목탑의 가르침이 아닌가?!’

광명 목탑이 세워진 후 승려들 사이에서 널리퍼진 깨달음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지금 그가 이룩한 깨달음이기도 했는데, 아라타는 이것을 해골물을 마셨을  깨달은 상태였다.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성취이지만, 아라타는 여기에서 한 번  나아갔다.

“높은 곳에 오르면 많은 것을 견지할 수 있으나, 그것은 그저 보이는 것에 불과할 뿐. 진정으로  속을 알려면 높은 곳이 아닌 넓은 곳으로 내려가야 할지니…. 우리가 진정으로 깨달아야  세상의 가르침은 부처나 경전이 아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민중의 곁에 머물고 있노라.”

두영이 온갖부와 권력을 마다하며 상촌을 떠날 때, 그에게서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얻은 깨달음이었다.

사물과 현상을 봄에 있어 모든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깨달음.

그리고 진정으로 중생들을 구원하고 그들을 인도하기 위해서는 승려와 스님이 중생들을 높은 곳에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그들을 보고 그 삶에서 배움을 얻어야 한다는 이치.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지만 항상 견지하기 힘든 가르침이자 깨달음이었다.

이 깨달음으로 아라타는 이미 강명 법사와 동등한 위치 아니, 그보다 조금  앞선 법력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아라타는 그간 얻은 깨달음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그만의 진리에 도달하려 하고 있었다.

자신의 입신양명이나 성취욕을 바라고 깨달음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다.

순수하게 두영을 구원하고, 그를 돕고 싶다는 성심의 발로였다.

이대로 두면 두영이 마에 완전히 빠져 악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직접 깨달음을 얻어서 증오와 분노에 빠진 두영을 구원할 생각이었다.

망자를 향한 편견이 사라진 아라타만이, 오직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두영을 보면서 품은 생각과 마음을 토대로 진정한 구원은 무엇인지를 가슴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복잡한 이 난전 속에서 아라타는 마침내 그 깨달음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냈다.

깨달음을 얻은 아라타의 몸에서 황금색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술법을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모양새였으나, 아라타의 몸 주변에는 어떤 방진도 법력도 보이지않았다.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는 평온하기 짝이 없는 모습.

합장을 한 아라타는  모습을 유지한 채 강명에게 말했다.

“강명 법사님. 저는 산으로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지금 그게 무슨 말이더냐!?”

“저는 지금부터 두영님을 따라 떠날 것입니다.”

“네 이놈!”

결의의 찬 그의 말에 강명이 다시 노했다.

예전의 아라타라면그의 노기에 움츠러들고 자신의선택을 재고했을 테지만, 지금의 아라타는 달랐다.

그는 자신의 선택을 믿었고, 자신이 해야  일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렇기에 그는 조용히 눈을 감고 강명의 어깨에 한 손을 올렸다.

“이런 황당한….”

계속해서 아라타를 나무라려던 강명은 어깨에 닿은 아라타의 손에서 신묘한 힘이 느껴지자 깜짝 놀랐다.

 신묘한 빛의 힘이 그의 속을 휘저었고, 강명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아라타가 손을 떼자 그는 그제야 아라타의 상태를 깨달았다.

“심득(心得)…, 설마 벌써 열반에 이른 것이냐?!”

잠깐 사이에 아라타가 열반에 이르렀음을 깨달은 것이다.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깨달음의 최고 경지였다.

한참 어린 아라타가 자신보다 먼저 열반에 올랐다는 사실에 강명 법사는 충격에 빠졌다.

“르나르 국…. 그곳에서 네빌을 퇴치하기 위해 비급을 가져갔군요. 법사님이 직접 비급을 내어주었고요.”

“그것을 어찌…? 설마 내 속을 읽은 것이냐?”

강명의 짐작대로였다.

아라타는 그에게 손을 대는 것만으로 기억을 읽었다. 그리고 비급을 누가 왜 가져갔는지 단숨에 알아냈다.

과거네빌이 두영의 기억을 읽은 것과 비슷한 방법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네빌은 망자의 기억을 읽었지만, 아라타는생자와 망자 모두의 기억을 읽어서 모든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다는 것 정도였다.

기억을 읽은 아라타가 말했다.

“강명 법사님 그리고 법주승님들. 여러분은 착각하고 있습니다. 네빌이라는 자는 이미 죽었습니다.”

“뭐라? 그것이 사실이더냐!?”

아라타는고개를 끄덕이며 강명에게서 읽은 기억을 떠올렸다.

강명 법사의 기억에 의하면 근래에 르나르 국에서 희각이라는 자가 수미산을 찾아왔다.

그녀는 사악한 마괴인 네빌을 처치하기 위해서 비급이 필요하다며 강명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마괴를 증오하는 수미산에서는 회의 끝에 희각을 믿고 특별히 비급을 내어주기로 했다.

강명이 그 모든 과정에 참여한 데다가 그의 손으로 직접 희각에게 비급을 넘겨서 다른 사람을 확인할 것 없이 강명의 기억을 읽는 것만으로도 그 모든 사실을 알  있었다.

시점은 두영이 이블 나이트가  직후였다.

즉, 그때 이미 네빌은 죽었으며 비급을 내줄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희각이 좀 더 늦게 목탑에 도착했거나, 소문이 좀 더 빨리 퍼졌다면 결과가 달라졌겠지만….

아라타는 아쉬워하지 않았다.

이 또한 자신에게 내려진 운명이라 생각했다.

“네빌이 죽었다니…. 그럴 리가? 네가 무엇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아니더냐?”

“모든것은 사실입니다. 형님께서 직접 네빌을 처단했다고 했으니까요.”

“저 마괴가? 허허! 나더러 마괴의 말을 어찌 믿으란 것이냐!?”

“그것은 형님의 노여움을 보고 법사님께서 직접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강명의 말에 아라타는 두영의 코앞까지 닥친 현무와 해룡의 태풍을 보며 말했다.

현무와 해룡들이 만들어낸 거대한 태풍이 대지를 찢으며스켈레톤들을 부수고 두영에게 향한 것이다.

태풍이 확인한 두영은 마력을 일으키더니 파리를 쫓듯이 검을 들었다.

짧은 동작과 함께 길쭉한 검기가 일어나며 태풍을 단칼에 베었다.

바람이 갈라지며 삽시간에 흩어졌다.

엄청난 무위.

하지만 검기는 태풍을 가르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두영의 검기가 대지와 산 그리고 바다마저 가르며 나아갔다.

모세의 기적처럼 여러 갈래의 검기가산과 바다를 등분했고, 함해에서 태풍을 만들어내던 현무와 해룡들은 두영이 뿌린 엄청난 검기에 휘말리고 말았다.

등껍질과 피부가 잘린 현무는 침몰하는 배처럼 가라앉았다.

현무가 잠들자 해룡들 역시 검기에 잘려 몸부림치다 본래의 형태인 황금으로 변해 사라지고 말았다.

“저, 저럴 수가!산과 바다를 모두 가르는 마괴라니!”

강명은 사방신 중 하나인 현무를 격파한 것보다 칠금산과 칠해를 모두 갈랐다는 사실에 더  충격을 받았다.

산과 바다마저 가르며현무를 제압하는 힘이다.

저만한 힘이라면 사방신들이 모두 나선다 해도 두영을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산을 직접 지키는 광목, 증장, 다문, 지국천왕 등 사천왕이 직접 나선다 해도 승패를 장담하기 힘들 정도였다.

 정도 위험한 힘이었다.

이만큼 강한 마괴를 목도한 적이 없었기에 그들은 충격에 빠졌다.

경악하는 강명과 법주승들을 보며 아라타가 말했다.

“두영님은 선하신 분입니다. 법사님과 다른 스님들이 알고 계시는 증오와 악의로 가득  마괴들과는 다릅니다. 그의 가슴에는 오직 가족에 대한 정과 연민만이 남아 있으니, 참상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이 이상 그분의 마음을 어지럽히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설마 저 마괴에게 자비심이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냐!? 어, 어림없다. 아무리 그래도 마괴는 마괴! 아라타 네놈, 그 자비심 탓에  옛날 얼마나 더 큰 피해가 생겼는지 배웠단 말이더냐?!”

“알고 있습니다. 잊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두영님은 다릅니다.  번만 저를 믿어주십시오.”

진지하기 짝이 없는 아라타의 모습에 강명은 갈등했다.

평상시의 그라면 일언지하에 거부할 테지만, 바다마저 가르는 두영을 힘을 본 탓에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무슨 방책이라도 있다는 것이냐?”

“제가 설득해보겠습니다. 혹시 나서시려거든, 그때 나서주십시오.”

“자신은 있느냐?”

“모든 것은 부처님의 뜻대로 흘러갈 것입니다.”

강명의 말에 아라타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성큼성큼 걸어 두영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법사님. 아라타가 하려는 것이 무엇입니까?”

“저대로 놔둬도 괜찮은 것입니까?”

“신동이라고는 하나 풋내기인 아라타에게 저런 마괴는 위험하지 않는지요?”

멀어지는 아라타의 모습에 법주승들이 그를 걱정하며 나섰다.

강명은 그들의 말에 헛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지금 아라타는 심득을 얻었다.”

“심득….심득이라 하심은?”

“열반에 이른 게지. 육신이 남아 아직 유여열반에 그쳤으나. 머지않아 그 어느 승려보다 일찍 무여열반에 오를 것이다.”

“저 어린 나이에 열반이라니?”

“그게 가능한 겁니까?”

강명의 말에 법주승들은 충격에 빠져 담론을 나누었다.

“과연, 신동이라는 것이 거짓이 아니로구나. 기예천님이 아라타를 특별히 아낀이유가 다 있었어.”

강명은 멀어지는 아라타의모습에 과거 기예천이 나타나 자신에게 크게 될 아이이니 아라타를 잘 부탁한다고 말해 주었던 것을 떠올렸다.

그냥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라타에게는 뭔가가 있음이 분명했다.

“이 믿음이 옳아야 할 텐데….”

강명은 부디 아라타가 뜻대로 두영의 노여움을 풀어주고 자신의 실수를 바로잡아주기를 간절히 염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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