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2화 〉61화. (62/83)



〈 62화 〉61화.

힘은 물론, 그 규모에 이르기까지 보통이 넘는 망령 대군의 공격.

그 엄청난 군세에 법주승들은 겁을 먹었다.

“재앙이다!”

“과거의 재앙이 다시 동토에 재래했어!”

동토가 다시 암흑으로 물들게 되리란 공포로 모두 이성을 잃었다.

이에 법사인 강명은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

“정신 차리지 못하겠는가!”

주위의 공기를 밀어내는 그의 외침에 법주승들이 정신을 차리고 그를 보았다.

“우리의 사명은 사악한 것으로부터 동토를 지키는 것! 눈앞의 간악한 마괴와 마귀의 무리를 보고 겁을 먹어서야  동토는 누가 지킨다는 말인가! 다들 정신을 바짝 차리게!”

그가 호통하듯 소리쳤다.

이에 법주승들은 정신을 차리고 다시 망령 대군을 보았다.

엄창난 수의 망령 대군이 돌진하는 것은 말 그대로 재앙이나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강명의 말대로 이대로 자신들이 물러나면 산을 지킬 사람이 없었다.

평생을 살아온 수미산이 망자에게 더럽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그들은 용기가 샘솟았다.

“우리가 막아야 한다.”

“그래.”

다시 일어난 법주승들을  강명이 외쳤다.

“바로 그 마음가짐이다! 산을 지키고  세상을 구제하는 것이 바로 우리 승려의 본분!두려워하지 말고 화엄경을 펼쳐라!”

그가 해일처럼 몰려드는 망령 대군을 향해 손을 뻗으며 소리치자 법주승들의 손아귀에서도 황금색 빛이 올라왔다.

빛은 방진을 만들었고, 방진이 완성되자 불꽃이 맺혔다.

불꽃은 연못 위에 핀 한 송이 연꽃의 모양을갖추고 있었다.

빙글빙글 회전하는 연꽃의 주위에는 화염들이 계속해서 넘실거렸는데, 실제 연못에 핀 연꽃처럼 화염이 아름다웠다.

그저 불을 만들어 쏘는 것 같은 아라타의 화엄경과는 질적으로 차원이 달랐는데,  같은 아름다움은 부처의 연꽃 또는 진리의 연꽃이라 알려진 화엄경이 높은 경지에 도달해야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생자는 삶을, 망자는 윤회를! 이승에 미련을 지닌 것들이 세상을 어지럽히지 못하도록 막아라!”

강명이 소리치자 빙글빙글 회전하던 불의 연꽃이 움직였다.

회전이 더욱 빨라지더니 잎사귀가 동시에 퍼졌다.

퍼진 잎사귀들이 바람에 흩날리며 망자들을 공격했다.

잎사귀 모양으로 흩어진 화염이 망자들의 몸에 닿자 스켈레톤의 몸이 겁화에 휩싸이며 삽시간에 재가 되어 흩어졌다.

법주승들의 불꽃도 스켈레톤들을 공격하며 그들의 몸을불태웠다.

비록 강명 법사처럼 깨달음이 깊지가 않아 제대로  연꽃의 모양을 갖추지는 못하였으나, 망자들에게 있어 그들의 법력은 치명적인 것.

형태가 온전치 못해도 많은 수의 스켈레톤들이 재가 되어 흩어졌다.

수백 명의 법주승들이 동시에 화엄경을 펼치는 모습은 흡사 가을바람에 쓸려 떨어지는 낙엽과도 같았다.

본디 계절은 피할 수도, 거스를 수도 없는 법.

시간의 흐름을 상징하는 화엄경의 힘에 순리를 거스르고 부활한 스켈레톤들이 다시 정화되어 사라졌다.

동시다발적으로 불어온 화엄경의 불꽃으로 선두의 스켈레톤들이 제대로 된 저항 한  하지 못하고 사라졌다.

천이 넘는 스켈레톤들이 증발하자 법주승들 역시 자신감을 얻었다.

그러나 수만의 언데드 중 천 마리가 사라졌다고 해서 승패가 좌지우지되지는 않았다.

또한, 스켈레톤들이 줄어들 때마다리치와 데스나이트가 또 다른 스켈레톤들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상대의 머릿수가 금방 회복되고 말았다.

“끝이 없습니다!”

“큼! 내 보통 마귀가 아니리라 생각하였으나.  정도일 줄이야!  정도면 마괴 중의 마괴가 아닌가!”

벌집을 쑤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적중하자 강명은 눈살을 구겼다.

“강명 법사님! 어찌하면 좋습니까?!”

점점 가까워지는 망령의 군대에 기가 죽은 강명이 외쳤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놈들이 산에 오르지 못하도록 막는 것뿐! 그치지 말고 수련의 성과를 보이도록 하라!”

그의 명령을 받은 법주승들이 다시 화염경을 펼쳤다.

화염이 스켈레톤들을 불태워 없앴으나, 스켈레톤들은 압도적인 인해전술로 법주승들의 코앞까지 스켈레톤들이 닿았다.

수많은 스켈레톤이 서슬 퍼런 칼날을 앞세운  흉측한 얼굴을 들이밀자 위험을 느낀 강명은 목에 건 108염주를 풀어헤치려 했다.

그러나 그가 염주를 풀기 전, 뒤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방신들이 나섰다.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주작이었다.

수미산의 남방의 수호를 담당한 주작은 온몸이 이글거리는 화염으로 이루어진 괴이였다.

그는 아주 오래전, 망령으로부터 동토를 구제한 불교의 활약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각 지방에서 이름을 떨친 청룡, 백호, 현무  세 괴이와 함께 사천왕을 섬기고 수미산을 지킬 것을 맹세했다.

그 맹세는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변함이 없었다.

하늘 높이 날아오른 주작이 자신을 따르는 화조(花鳥)들과 함께 전진하던 스켈레톤들을 일거에 덮쳤다.

화엄경 못지않게 강력한 화염이 수미산의 앞마당에 불을 질렀고, 그 강력한 힘에 법주승들을 덮치려던 스켈레톤 군대 수천이 일시에 녹아내렸다.

반격을 시작한 것은 주작만이 아니었다.

주작에 이어서 청룡도 비바람과 강풍을 일으키며 비상했다.

전설 속의 용과 꼭 닮은 생김새를 가진 청룡은 뿔과 갈기 그리고 여의주가 없는 비룡들을 이끌고 날아오더니 스켈레톤 군대를 향해 강력한 번개를 발사했다.

콰콰콰콰쾅!

주둥이에서 쏟아진 번개가 스켈레톤들을 덮치자 망치로 내려친 것처럼 뼈가 부서지며 파편이 마구 튀었다.

쓰러지는 스켈레톤들의 수가 늘어나자 이번엔 리치와 함께 망령들을 일으켜 세우던 데스나이트들이 움직였다.

주작과 청룡의 공격을 위협적이라 생각한 데스나이트들은 첫 명령 이후 침묵을 고수하고 있는 두영을 대신해 팬텀스피드들을 소환해 직접 하늘로 날아올랐다.

하늘을 날아오른 데스나이트들은 주작과 청룡들의 무리를 발견하자 검을 꺼냈다.

흑요석처럼 검은 데스나이트들의 검에서 동굴 속 짙은 어둠 같은 검기가 발현되었다.

데스나이트들은 검을  손목을 자유자재로 돌리더니 각자의 검술을 이용해 주작과 청룡들을 향해 검기를 쏘았다.

정점에 오른 데스나이트들의 검기에 주작과 화조들은 일시에 부리가 돋아난 주둥이를 벌려 화염을 뿜었고, 청룡과 비룡들은 동시에 용트림을 일으켰다.

주작과 화조의 앞으로는 불길로 이뤄진 결계가.

청룡과 비룡의 앞으로 빗물과 번개가 연결된 결계가 생성되었다.

각 결계는 데스나이트들의 검기를 막았다.

검기가 불기둥과 투명한 막에 적중하자 화염과 빗물이 사방에 튀어 공기를 뜨겁고, 차갑게 만들었다.

두 힘은 잠시 대치하는 듯했다.

허나, 짧은 시간이 지나자 결계가 잘려나갔다.

결계를 뚫은 검기들은 그치지 않고 화조와 비룡들의 몸을 베고 지나갔다.

날개와 다리, 몸통의 비늘과 신체 일부들을 베인 화조와 비룡들이 지상으로 추락했다.

화조는 유리 알갱이로 변하며 흩어졌고, 비룡은 은으로 변하여 떨어졌다.

그들은 진짜 생명체가 아니었다.

사방신이 수미산의 광물을 이용해 만든 부하였기에 피를 흘리지 않았다.

바닥에 잘린 광물의 파편이 떨어졌다.

전체에 비하면 적은 숫자지만, 주작과 청룡에게 경각심을 일으키기에는 충분했다.

위험을 느낀 주작과 청룡은 지상으로 뿌려대던 화염과 벼락을 데스나이트들에게 돌렸다.

그들은 접근 중인 데스나이트들에게 화력을 집중했고, 데스나이트와 치열한 공중전이 펼쳐졌다.

벼락에 맞은 데스나이트들이 추락하고, 신체가 잘린 화조와 비룡들이 본래의 형태로 돌아가 쓰러지는 등 경천동지할 전투가 벌어졌다.

이는 지상도 마찬가지였다.

데스나이트들이 본격적으로 나서자 리치들 역시 거대한 화염과 얼음 등의 마법을 만들어내 망자들과 함께 공격에 나섰다.

리치들이 움직이자 사방신 중 하나인 백호가 강명과 법주승들의 앞으로 나섰다.

백호는 흰색 바탕에 수박을 연상시키는 검은 줄무늬를 가진 괴이였다.

백호는 10미터는 될법한 덩치를 가지고 있었으며,  곳곳에 날카로운 수정이 박혀 있었다.

여타 범처럼 앞다리에는 날카로운 발톱이, 주둥이에는 뾰족한 송곳니가 있었으며 전신에 강력한 마력을 품고 있었다.

백호가 마력이 실린 발톱으로 땅을 치면 땅이 솟았다.

주둥이를 벌리고 포효하면 대기가 요동치며 먼지가 파도처럼 몰아쳤다.

게다가 백호의 옆에는 그 부하들까지 있으니,  힘은 가히 인간의 군대 그 이상이었다.

“크아앙!”

망자들과 리치들의 마법이 날아오자 백호가 크게 포효했다.

대기를 쩌렁쩌렁 울리는 백호의 포효에 다른 호랑이들도 그를 따라서 깊게 들이쉰숨을 입으로 내뱉었다.

대기가 진동하더니 화염 마법은 사라지고, 얼음 마법은 산산이 부서졌다.

대단한 소리였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강명과 아라타는 귀를 막고 눈앞에 펼쳐진 현상을 보았다.

땅이 갈라지고 있었다.

마치 지진이 일어난 듯 갈라진 땅이 이리저리 흔들리더니 스켈레톤 군대의 발밑에서 딱딱하게 뭉친 흙과 바위가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솟구친 흙과 바위에 스켈레톤들의 몸이 성난 황소에 치인 것처럼 망가졌다.

일부는 낭떠러지에 빠져 사라졌고, 나머지는 솟구친 바위에 깔려 박살이 났다.

곳곳에 싱크홀이 생기며 지형이 복잡해졌다.

그 위에서 스켈레톤들은 우왕좌왕하자 틈을 놓치지 않고 백호와 호랑이들이 갈라진 땅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가차 없이 스켈레톤들을 공격했다.

거대한 앞발로 후려치고, 송곳니로 두개골을 끊는 호랑이들의 공격에 스켈레톤들은 맥을 못 추고 부서졌다.

상황이 위협적으로 바뀌자 리치들은 낭떠러지가 생긴 땅의 위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후방에 배치된 스켈레톤 메이지들에게 명령을 내려 뼈 마법을 쏘도록 지시했다.

메이지의 마법으로 백호와 호랑이들을 교란하는 자신의 마법을 완성한 리치들이 수정 구슬을 들었다.

리치들의 수정 구슬에 빛이 서리기 시작하자, 공중으로 솟은 리치들의 앞으로 바닥이 일어났다.

원뿔형의 기둥처럼 크게 솟구쳐 오른 바닥이 두더지처럼 땅을 가르며 돌진하더니 호랑이의 배를 꿰뚫었다.

배를 꿰뚫린 호랑이는 유리와 은으로 변한 화조와 비룡처럼 수정으로 변해 바닥으로 쓰러졌다.

몸이 꿰인 호랑이들이 쓰러지자 강명이 서둘러 외쳤다.

“염주를 끊고! 금강경(金剛經)을 펼쳐라!”

강명의 외침에 법주승들이 목에 걸고 있던 염주를 끊었다.

염주 알들이 바닥에 우수수 떨어지자, 법주승들이 기도를 하듯 양손을 모으고 금강경의 구절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들이 모두 함께 금강경을 외우자 끊어진 염주 알들이 동시에 움직였다.

공중에서 둥글게 뭉쳐 빙글빙글 회전하던 염주 알들이 총알처럼 날아갔다.

수천 개의 염주 알이 날아간 곳은 백호와 호랑이들의 앞이었다.

생존한 백호와 호랑이들의 앞으로 날아간 염주 알들이 일정 간격을 두고 거대한 원을 이뤘다.

그리고 그 속에 또 다른 작은 원과 또 다른 작은 원들을 이뤄 톱니바퀴처럼 돌아가기 시작했다.

총 6개의 크고 작은 원이 생기자 뭉친 염주 알들이 빛을 뿜으며 장막을 만들었다.

장막은 백호와 호랑이들을 덮치던 바위를 막아내기 시작했다.

바위와 황금빛이 맞닿자 정전기가 일어나듯 스파크가 튀더니 바위가 옆과 뒤로 밀리며 다시 쏟아졌다.

“평정심을 유지하라!”

작은 원의 염주 알부터 조금씩 밀려나 바닥으로 떨어지자, 강명이 법주승들을 다독였다.

모든 염주 알들을 소모하고 나서야 결국 리치의 마법을 무사히 막아낼  있었다.

“그래! 평정심이다! 평정심을 지키면 막을 수 있다!”

공격을 막아낸 강명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그려졌다.

그라나 리치들의 공격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마법을 끝내고 하늘 높이 날아오른 리치들이 이번엔 뼈 가시를 소환했다.

우후죽순 생겨난 기다란 뼈 가시들은 이내 비처럼 하늘에서 쏟아져 내렸고, 이를 확인한 백호와 호랑이들이 앞발로 바닥을 탁 치며 다시 포효했다.

진동하는 대기에 뼈 가시들도 튕겨 공중에서 흩어졌다.

공중전을 펼치고 있는 데스나이트들과 주작과 청룡의 무리가 격렬한 공방을 주고받듯이 지상도 격렬한 전투가 계속되었다.

“강명 법사님. 이제 어쩌면 좋습니까?”

“이대로 우리가 밀린다면….”

법주승들은 걱정이 앞섰다.

적이 너무 많고 강력하니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상황을 확인한 강명은 하늘과 땅을 번갈아 보더니 입가에 승소를 지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지금 망령들은 아무런 대응도  하고 있다. 마지막 사방신, 북방의 현무가 저들을 공격한다면 망령들을 몰아내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강명의 말에 법주승들은 바다를 보았다.

함해에서 일어난 용오름이 태풍을 일으키며 몰려오고 있었다.

용오름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바로 현무.

바다에서 긴 목과 단단한 등껍질만 드러낸 채 입을 벌리고 있는사방신였다.

그는자신과 닮은 생김새를 가진 해룡들과 함께 하늘을 보며 입을 벌리고 있었는데, 그들의 입에서는 구름을 닮은 연기가 회오리바람을 끝없이 일으키고 있었다.

“이제 곧 끝이  것이다! 사방신의 힘을 믿어라!”

강명은 자신했다.

역시 아무리 뛰어난 마괴라도 한  이 세상을 정화한 수미산의 스님들을 해칠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과연! 강명 법사님의 말대로입니다!”

“수미산은 불교의 성지! 고작 마괴 따위에 굴복하지 않겠지요!”

“이 역경 또한 이겨낼 것입니다!”

자신만만한 강명의 말에 모두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러나   사람.

아라타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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