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8화 〉57화. (58/83)



〈 58화 〉57화.

동명과 상촌을 지나 작은 해협을 건넜다.

금빛을 띤 높고 거대한 산이 나타나자 아라타는 손을 뻗어 만년설이 가득 쌓인가장 높은 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얀 눈이 서린 저 산들의 너머에 있는 것이 바로 세상에서가장 높은 산이자 세계의 중심인 수미산입니다.”

[저곳이 수미산이구나.]

“모든 승려는 저곳에서 수행을 받지요. 그리고 우리가 서 있는  산과 수미산을 두르고 있는 일곱개의 산의 띠를 바로 칠금산이라 합니다.”

[칠금산?]

“예, 칠금산은 마지막 산지부터 순서대로 지변산, 상비산, 마이산, 선견산, 담목산, 지축산, 지쌍산이라고 하지요.”

[무슨 산이 그렇게 많아?]

“산만 많은 것이 아닙니다. 바다도 많습니다. 일곱 산 아래에 있는 각각의 바다는 칠해라고 부르는데, 가장끝에 자리 잡은 이곳 지변산의 밖의 바다를 함해라 부릅니다. 또한, 방위별로 함해에 있는  개의 땅을 우리 스님들은 사대주라 부릅니다. 동쪽이 승신주(勝神洲), 서쪽이 우화주(牛貨洲), 북쪽이 구로주(俱盧洲), 남쪽이 섬부주(贍部洲)라고 하지요.”

아라타의 긴 설명에 나는 목적지인 광명 목탑을 떠올렸다.

[지리 수업은 됐으니까. 목적지나 말해. 그래서 광명 목탑이 어디에 있다는 거야?]

“수미산 아래 높게 솟은 탑이 바로 광명 목탑입니다. 두영님.”

 물음에 아라타가 손으로 수미산의 앞에 솟아오른 탑을 가리켰다.

산 중턱까지 치솟은 탑이었다.

[저기까지 위험한 곳은 없지?]

“예? 아. 칠금산까지는 짐승들을 빼면 위험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승려들이 자리 잡은 땅이라 마귀나 마괴도없지요.”

[그러면 됐어.]

산 위에서 칠금산과 그 아래 광명 목탑을 보았다.

방해되는 것도 없고, 일곱 개나 되는 산과 바다를 다 넘기엔 시간도 아까우니 곧바로 이동하는 게 나을  같다.

[바로 이동하자.]

아라타를옆구리에 끼고 네빌의 마법을 사용했다.

마법을 펼치자마법진이 빛을 발휘하며 눈앞의 광경이 바뀌었다.

단숨에 수미산과 광명 목탑의 근처까지 이동한 것이다.

하지만 목표했던 광명 목탑의 코앞까지 이동할 순 없었다.

[저기에도 장벽 같은  처져 있구나.]

코앞까지 이동하려고 했지만, 보이지 않는 장벽이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겉보기엔 아무것도 없는 같지만, 네빌의 마법으로도 뚫을 수 없는 결계가 수미산의 영역 정체를 두르고 있었다.

흑마법을 쓴 것도 아닌데 넘어갈 수 없었다.

여기서부터는 걸어서 이동해야 하는 것이리라.

나는 아라타를 내려놓고 광명 목탑을 보았다.

녀석의 말대로 광명 목탑은 수미산의 입구 바로 아래에 세워져 있었다.

목탑이라는 이름답게 모든 것이 나무로 지어져 있으며 목탑의 높이는 무려 300m에 달했다.

250m 정도인 63빌딩보다 높았다.

위가 두껍고 아래가 홀쭉해서 젓가락을 세워 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강철도 아니고 나무로, 저게 가능한 건가?]

이곳의 인간들이 만들었다고는 믿기 힘들었다.

“어떠십니까? 멋지지 않습니까?”

[그래. 멋지긴 확실히 멋지다.]

자랑스러워하는 아라타의 모습에 솔직하게 답한 후, 아래를 보았다.

목탑까지 이어진 4개의 길은 만(卍)자 모양을 하고 있었으며, 길마다 아름답게 핀 복숭아나무 꽃잎이 흩날리고 있었다.

바닥으로 떨어진 꽃잎들은 사찰에서 나온 승려들이 나무 빗자루를 이용해 도랑으로 고이 쓸어내 정리했다.

도랑으로 떨어진 꽃잎들은 도랑 물줄기를 따라서 칠해를 향한 여정을 시작했다.

나는 그 속에서 잎이 아니라 꽃으로떨어진 녀석을 보았다.

모두 잎인데, 녀석만 아름다움을 간직한 채, 꽃으로 떨어져 바다를 향해 여정을 떠나고 있었다.

홀로 아름다움을 유지한 채 흘러가는 복숭아꽃의 모습에 신묘한 기분이 들었다.

“헉! 라마 고승께서 어찌 저곳에!”

꽃에 정신이 팔린 사이 아라타가 행렬을 잇는 승려들의 모습을 보며 그리 말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아라타가 말한 곳을 보니 주홍색의 승복을 입은 승려 하나가 노란 승복을 입은 수백 명의 승려를 이끌고 있었다.

설법을 외우며 느릿느릿 걷는 것이 불공이라도 올리러 가는 모양.

[저들도 광명 목탑으로 가는 거야?]

“예. 매일 스님들이 번갈아 광명 목탑에서 불공을 올립니다.”

아라타의 말에 나는 그들이 향하는 길을 보았다.

그들이 향하는 길에는 양반다리를한 불상이 세워져 있었는데, 단전의 앞에 양손을 곱게 포개고 있는 것이 지구의 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불상의 주위에 세워진 금인장들이 지키고 있다는 것 정도였다.

일종의 관문이라도 되는지 불상의 옆에 여덟 개의 금인장들이 무기를 내린 채 잠들어 있었다.

석상처럼 굳어 있는 금인장들에게서 신성력이 느껴졌다.

상촌에 있는 놈들보다 강한 느낌.

보통이 아닌 것이 분명했다.

[저 정도는 힘으로 충분히 제거할 수 있겠네. 근데 힘으로 뺏어가도 되려나?]

나는 옆에 있는 아라타를 보며 고민했다.

이대로 힘으로 광명 목탑의 비급을 찾는 것과 평화적인 방법으로 광명 목탑의 비급을 찾는 것 중에 무엇이 더 나은지 판단하기 위함이었다.

[아라타.]

“예?”

[혹시 너 저 고승이랑 아는 사이야?]

“예? 예. 그렇습니다만, 어찌 그것을 물으십니까? 두영님.”

[부탁 하나만 하자. 내가 이제부터 사람이 되고 싶은데 말이지, 어떻게 해야 저 사람이 나한테 비급을 줄까?]

힘으로 빼앗아도 된다.

하지만 적을 만드는 행동은 되도록 삼가고 싶다. 게다가 파계승이라 해도 스님인 아라타가 있으니 굳이 무력을 사용할 필요 없이 원만히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고로 평화적인 해결이 제일이다.

아라타에게 기대를 걸어보기로 했다..

“죄송합니다만 두영님. 소승이 아무리 설득해도 라마 고승을 설득하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왜?]

“애초에 비급은 고승들도 함부로건들지 못하는 유물 중의 하나로써….”

[…그럼. 다 부수고 힘으로 뺏을까?]

“제, 제가 한번 설득해 보겠습니다.”

[그래. 믿어보마.]

아라타의 말에 나는 복숭아나무 뒤에 숨어 라마 고승을 보았다.

설법을 외우며 승려들과 함께 전진하고 있던 라마 고승은 아라타와 눈을 마주치자 눈썹을 기묘하게 일그러뜨렸다.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헤헤. 라마 고승님. 그간 평안하셨습니까요?”

옆구리에서 내려온 아라타가 허리를 굽실대며 말했다.

그러자….

“네 이놈! 여긴 어떻게 들어온 것이냐!”

아라타의 모습을 확인한 라마 고승이 불같이 성을 내며 소리치더니 아라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컥!!”

그 행동에 아라타의 몸이 갑자기 떠올랐다.

손이 닿지도 않았는데 마치 멱살을 잡힌 것처럼 아라타가 자신의 목을 보호하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이어서 라마 고승은 마법 같은 힘으로 아라타의 멱살을 잡은채 팔을 굽혔다.

그러자 아라타의 몸이 그의 앞으로 날아갔고, 그는 코앞에 당도한 아라타를 보며  소리로 외쳤다.

“욕정에 눈이  파계승 따위가 이곳이 어디라고 함부로 발을 디디는 것이냐!”

“커, 컥! 라, 라마 고승님. 그, 그것이 실은….”

“시끄럽다! 승려의 이름에 먹칠을  네놈이 이곳에 들어올 자격 따위는 없다!  직접 네놈을 쫓아내기 전에 이곳에서 썩 사라지지 못할까!”

“하, 하지만….”

“썩 사라지라는 말을 못 들은 것이냐!!”

아라타가 한마디 할 틈도 없이, 라마 고승이 고래고래 고함을 치더니 손을 휘저었다.

분노가 가득 담긴  행동에 아라타의 몸이 공처럼 굴러 도랑 앞에 떨어졌다.

도랑의 크기가 작았기 때문에 빠지지는 않았지만, 바닥을 구르면서 복숭아나무에 머리를 부딪치는 바람에 아라타의 이마에서 피가 나왔다.

머리에서 나온 피가 복숭아꽃의 꽃잎과 함께 도랑으로 떨어져 흘러내렸다.

[승려라는 자가 하는 짓이 생각보다 과격하군.]

“응?”

라마 고승이 내 쪽을 보았다.

“하회탈? 시주는 대체 누구시오?”

[두영이라고 한다. 지금은 저기 있는 저 녀석의 형님 같은 것이지.]

“형님? 허허! 아라타 네 이놈! 기예천님이 친히 기회를 주었음에도  버릇을 고치지 못해 형제 놀음이나 해 온 것이냐? 어리석은 녀석!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구나! 승려들의 입신에 해만 끼칠 놈이로다! 잘 들어라! 아라타! 기예천님께서 주신 사명을 완수하기 전에는 이 수미산에 발조차 디뎌선 안 될 것이다! 알겠느냐!”

라마 고승은 콧방귀를 뀌며 그렇게 소리쳤다.

그는 화가 그치지 않았는지 계속 말을 이었다.

“시주! 시주께서 무슨 용무로 이곳까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속세의 인간은 수미산의 영역에 발을 디딜 수 없소! 못난 동생과 함께 이곳을 떠나시길 요청하는 바요!  부처께 정성을 들이고 싶으시거든 정식으로 절차를 밟아 제대로 된 승려와 함께 와주시오!”

[허락을 받고 와라? 여기까지 왔는데말인가?]

“그렇소!”

[골치 아프네. 잠깐만 이야기를 나누면 안 되나?]

“말귀가 어두우시구려! 다시 말씀드리오. 정식으로 절차를 밟고 다시 오시오!”

라마 고승은 승려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오만하고, 고집이 셌다.

처음에는 아라타와 사이가 좋지 않아 화가 났다고 생각했는데, 내게도 언성을 높이는 것으로 봐선 아무래도 천성이 그런 모양이다.

[이거 평범한 방식으로는 대화조차 되지 않겠어.]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나는 라마 고승이 아라타에게 한 것처럼 손을 뻗었다.

그리고 민간인을 제압하는  있어 최고의 효력을 자랑하는 기술을 준비했다.

“두, 두영님. 포, 폭력은….”

[걱정하지 마라. 똥싸개로 만들진 않을 테니까.]

나는 라마 고승을 잡기 위해 마력을 일으켰다.

“음?! 이 기운은…. 시주, 설마!?”

 정체를 눈치를 챈 것일까?

마력을 일으키자 라마 고승이 깜짝 놀라며 양손을 모았다.

그러나 그가 손을모으는 것보다 암흑 오라가 더욱 빨랐다.

바닥에서 검은 촉수들이 올라왔다.

승려들을 노리고 뻗어 간 암흑 오라는 그들의  깊숙이 스며들어 공포를 자극했고, 죽음을 앞둔 끔찍한 공포에 승려들이 그 자리에서 하나둘 졸도하기 시작했다.

심후한 수련을 쌓은 것인지 승려들 대부분이 곧바로 쓰러지지 않고 5~10초 정도 저항하다가 쓰러졌다.

나는 쓰러지지 않고, 유일하게 제자리에서 버티고 있는 자를 보았다.

라마 고승.

그는 암흑 오라의 심장을 옥죄는 공포를 버틴 채 꿋꿋이 서서 손을 모으고 있었다.

“범상치 않은 자라고는 느꼈으나. 설마하니 망자였을 줄이야! 내 눈은 속이지 못한다! 이놈!”

[방금까지만 해도 속았으면서. 잘난 척은.]

“시끄럽다! 내 힘을 모아 네놈을…. 컥!”

저항하는 라마 고승의 모습에 암흑 오라의 기운을 더욱 강하게 실었다. 그러자 힘을 모으기 위해 정신을 집중하던 라마 고승이 뒷간이 급한 사람처럼 다리를 오므린  온몸을 부들부들떨었다.

그는 당장에라도 오줌과 똥을 지릴 것 같은 얼굴을 하고서 나와 아라타를 노려보았다.

“아라타…. 네 이놈.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이냐!?”

[죄 없는  괴롭히지 말고 죽고 싶지 않거든, 광명 목탑의 비급이 어디 있는지 말해라. 그것만 알려주면 내게 다른 용무는 없으니 곱게 돌아가 주겠다.]

라마 고승은 터질 듯 붉어진 얼굴로 날 노려보았고, 나는 그에게 암흑 오라의 기운을 집중하며 대답을 기다렸다.

“크윽! 더러운 망자 놈아! 차라리 나를 죽여라! 내 지금  자리에서 명이다한들  뜻대로 하게 둘  없다!”

라마 고승은 터질것 같은 오줌보를 꽉 조이며 답했다.

망자를 향한 이 혐오성 발언!

정말 오랜만이었다.

[강도를 조금 더 높여야겠네.]

나는 암흑 오라의 힘을 더욱 높였다.

하지만 아무리 높여도 라마고승의 마음은 달라지지 않았다.

죽음의 위협에도 그는 심지를 굽히지 않았다.

[대단하네. 존경스러울 정도야.]

절세고수들도 똥을 지리고 마는 암흑 오라의 심신 쇠약을 이렇게까지 버티다니.

단호하지만 강건한 그의 정신력에 감탄이 나왔다.

[그래도 말하지 않겠다면 어쩔 수 없지. 똥싸개로 만들어주는 수밖에.]

라마 고승에게 집중한 암흑 오라를 더욱 강하게 했다.

폭발적으로 불어난 마력으로 라마 고승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꼈다.

“으으으….”

그는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공포에 몸을 바들바들 떨더니 실신한  정신을 놓았다.

라마 고승의 몸이 바닥에 쓰러졌다.

“라, 라마 고승님. 괜찮으십니까?”

의식불명 상태에 접어든 라마 고승의 모습에 아라타가 반사적으로 그의 앞으로 다가가 걱정해 주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조금 있으면 깨어날 거야. 죽은 건 아니니까. 안심해.]

“그렇군요. 가, 감사합니다. 두영님. 자비를 베풀어 주셔서….”

[됐고, 어디로 가야지 비급을 찾을 수 있는지 말해.]

“…저 두영 아니, 형님. 꼭 비급을 찾으셔야만 하겠습니까? 진정 다른 길은 생각하기 힘드신지요?”

앞날이 걱정되었는지 아라타가 두려움이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겁을 잔뜩 집어먹은  모습이 안쓰러웠지만….

[그래.]

아라타의 말은 내게 있어 생각해볼 가치도 없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내가 이곳으로 올 때부터 이미 정해져 있었으니까.

다시 사람이 되는 것이야말로 이 세계에서 내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바람.

이 바람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각오가 있었다.

“역시 이제 와서 포기할 수는 없으시겠지요. 알겠습니다. 소승이 안내하겠습니다.”

[네가?]

“예.”

심경의 변화라도 생긴 것일까?

쓰러진 라마 고승의 상태를 살피던 아라타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의외로 고분고분 광명 목탑까지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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