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6화 〉55화. (56/83)



〈 56화 〉55화.

애들이 많다.

어설프게 공격을 하거나, 들어갔다가는 지금도 줄을 지어 이동하고 있는 애들이 휘말려 다칠 우려가 있었다.

비켜달라고 말을 하면 좋겠지만, 최면이 걸려서 말을 듣지 않으니 애들이 다 지나갈 때까지는 얌전히 기다릴 참이었다.

그러나 이런 내 생각을 모르는 사람들은 걱정이 앞섰다.

“역시 천하의 지존께서도 금인장들을 당해내기는 힘든 것인가?”

“소문에 의하면 가네샤의 금인장들은 순도가 높아서 하나하나가 상촌의 사천왕에 비견된다고 하던데….”

“혹시 겁을 먹으신 것은 아니시겠지?”

내가 가만히 있자 의심의 목소리가 나온 것이다.

단,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럴 리가 있겠는가?! 지존께서는 그 많은 관문을 수고도 없이 간단히 제압하신 분일세!”

“그래! 우리가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네. 다들 참고 기다려 보세나!”

“조바심내지 말게나. 지존께서 여기까지 우릴 이끌어 주신 것만 해도 우리는 감사해야 할 것이네.”

사람들은 각기 다른 추측을 내세우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영님…. 소승 실례를 무릅쓰고 한 가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뭔데?]

“사람들이 걱정하는 대로, 저 많은 수의 금인장들을 상대하는 것은 무리이신 겁니까?”

아라타마저 내 실력을 의심했다.

뒤에 있는 사람들의 걱정이 깊어지니 그 역시 덩달아 초조해진 것이리라.

[글쎄다.]

나는 쉬이 답하지 못했다.

금인장과 싸워 본 적이 없어서 뭐라고 단언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상촌의 사천왕과 비견된다는 마을 사람들의 말에 크게 걱정은 되지 않았다.

[싸워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마력이라도 느껴지면 얼마나 강한지 예측이라도 하겠는데…. 저놈들한테서는 마력도 안 느껴지니까 말이야.]

“그렇습니까.”

[그보다 아라타  생각은 어떤 것 같아? 내가 금인장을 못 이길  같아? 아니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소, 소승이 보기에 교룡을 제압한 두영님의 실력이라면 능히 금인장을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저놈들을 상대하느라 힘이 빠지면가네샤를 상대하기 힘들 것 같아. 염려됩니다.”

[그래. 가네샤도 상대해야 하지.]

“예. 이분들의 처지가 딱하나. 어려우시다면 이쯤에서 물러나고 다음을 기약하시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금인장들만 무찌르고 돌아가는 것이지요. 그리고 힘을 회복하고 다시 오는 것입니다. 금인장은 금방 마련할  없을 테니…. 조금 더 여유를 갖고 싸울 수 있을 것입니다.”

아라타가 진지하게 말했다.

최상의 컨디션에서 가네샤와 싸워야 한다는 전략적인 의견이었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꼬리를 말고 돌아갈 순 없지. 그래도 내가 지존인데.]

“그러십니까?”

지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지존인데, 여기서 꼬리를 말고 도망가는 건 좀 그렇다.

[그래. 게다가 아까부터  코끼리 눈초리도 마음에 안 들어. 아직 놈이 얼마나 강한지 몰라서 견적 안 나오니까. 일단, 싸워 보고 무리다 싶으면 도망치든지 하자.]

“알겠습니다.”

답을 마치고 나는 다시 가네샤를 보았다.

놈은 매서운 눈초리로 날 쏘아보고 있었다.

오랜만에 나타난 침입자를 경계하는 것이리라.

자신의 황금을 빼앗아 갈까, 자신의 자리를 빼앗길까 염려하는 놈의 눈초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되도록오늘 안에 끝내고 싶었다.

[마지막 줄이네. 다들 물러나라고 해.]

“예!”

나는 마지막 줄의 아이가 지나가는 것을 확인한 후 검을 들었다.

그리고 양손으로 검을 잡고 검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새까만 검기가 일어났다.

“오오! 드디어 지존께서 검기를!”

“다들 물러나세요! 휘말릴지도 모릅니다!”

검기를 본 아라타가 사람들을 물렸다.

나는 검기가 일어난 검을 곧바로 휘두르지 않고 검에 마력을  추가했다.

금인장들이 사천왕과비견될 정도로 강하다고 했으니, 힘을 잔뜩 실어 공격을 할 참이었다.

마력이 들어가자 검은색과 보라색이 섞인 검기가 화염처럼 이글거리며 솟구쳐 올랐다.

거대한 검기에 금인장들이 위험이라도감지했는지 간격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음에도 무기를 들고 기운을 일으켰다.

아라타의 술법처럼 황금빛을 띤 기운이 넘실거리며 솟구쳐 오르는 것이 보였다.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기운.

아무래도 사천왕에 비견되거나 그 이상이라는 소문이 거짓은 아닌 모양이다.

[이 정도면 되겠지.]

나는 가네샤와 금인장들의 간격 그리고 위치를 계산한 후,한  앞으로 내딛으며 마력을 불어넣은 검을 휘둘렀다.

쿵!

궁궐 바닥이  꺼질 정도로 강하게 한 걸음을 내딛고 검을 힘껏 휘둘렀다.

가로로 휘두르자 묵직한바람과 함께 비단길 같은 궁전 바닥이 부채꼴 모양으로 망가지더니 이어서 검은 검기 다발이 바닥을 가르며 뿜어져나갔다.

날카로운  검기를 확인한 금인장들은 황금빛 기운을 일으키며 저마다의 무기를 앞으로 내밀었다.

금빛 기운이잔뜩 실린 그들의무기가  검기와 충돌했다.

불똥 튀는 힘 싸움이 일어나리라 기대했지만,  기대와 다르게 금인장이 일으킨 기운이 그대로 지워지더니 놈들의 무기가 내 검기에 그대로 썰렸다.

마치 두부처럼 토막토막이 난 채로 잘린 것이다.

잘린 것은 무기만이 아니었다.

무기를 내지르며 앞으로 나온 8기의 금인장 모두가 토막이  채로 썰려 바닥에 떨어졌다.

생각보다 약했다.

[아니, 내가 그만큼 더 강해진 건가?]

쿵!

금인장들을 뚫고 간 검기는 성의 천장을 부쉈다.

술을 마시며 금은보화를 확인하고 있던 가네샤는 깜짝 놀라며 우리를 보았다.

“오오! 여덟이나 되는 금인장을 단숨에!”

“역시 지존이십니다!”

금인장의 등장에 두려워하던 사람들은 다시 환호했다.

“역시 두영님! 이제 가네샤만 쓰러뜨….”

아라타 역시 기뻐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말을 다 듣지 않고 앞으로 움직였다.

속전속결!

곧바로 달려가 고개를  가네샤를 향해 다시 검을 휘둘렀다.

힘껏 휘두르자 두 번째 검기가 바닥을 수직으로 가르며 나아갔다.

목표는 가네샤.

마력을 잔뜩 불어넣은 만큼 검기는 놈의 몸통을 반으로 쪼갤 듯이 맹렬한 기세였다.

[감히!]

기습을 눈치챈 가네샤가 눈을 부릅뜨더니 여섯 개의 팔을 앞으로 뻗었다.

그러자 여섯 개의 손에서 황금색 기운이 흘러나와 가네샤의 앞으로 두터운 장벽을 만들었다.

네빌이 몸을 보호하던 마법 장벽과 비슷한 것이었는데, 그것이 내 검기와 맞닿자 불꽃이 튀었다.

창과 방패의 대결처럼 검기와 장벽이 충돌하며 스파크가 튀었다.

맹렬한  싸움이 시작되며 주위의 바닥이 갈라지고 망가졌다.

[크윽!]

방어를 펼친 가네샤가 코를 흔들며 괴로워하는 소리를 냈다.

그것을 시작으로 그의 장벽이 기운을 잃더니 검기와 맞닿은 부분에서부터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윽고 가네샤가 만든 장벽은 검기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완전히 깨지고 말았다.

내가 발사한 검기는 방어에 실패한 가네샤의 몸을 베고 지났다.

본래는 머리와 몸뚱이를 완전히 반으로 가를 생각이었지만, 조준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귀와 왼쪽 팔 하나 그리고 두툼한 손가락 두 개만 자르는데 그쳤다.

[한 번에 골로 보낼 수 있었는데, 조금 아쉽네.]

[크아아아악!!]

처음 겪는 격통에 가네샤는 코와 입으로 술을 뿜으며 괴성을 토했다.

잘린 부위가 떨어지며 피가 쏟아졌다.

귀와 손가락에서는 많은 양의 피가 나오지 않았지만, 잘린 팔에서는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바닥으로 떨어진 그의 신체 일부분과 뜨거운 피가 금은보화를 적셨다.

마치 용암에 닿은 것처럼 가네샤의 피가 닿은 황금들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큭! 누구냐! 네놈은!]
가네샤는 남은 손으로 금은보화 속에 파묻혀 있던 검들을 집으며 소리쳤다.

다섯 자루나 되는 그의 검에서 흑조나 황우와는 비교도 안 되는 크기와 강도의 검기가 뿜어져 나왔다.

[알 거 없어.]

두고 볼 것도 없이 나는 마력이 실린 검을 휘둘렀다.

가네샤 역시 지지 않고 다섯 자루의 검을 동시에 내리쳤다.

검은 검기와 가네샤의 누런 검기들이 부딪치며 반경 10미터의 모든 바닥이 무너지며 먼지가 올라왔다.

가네샤가 검을 내려치면서 바닥에 다섯 방향으로 갈라진 칼자국도 생겼다.

먼지속에서 빛이 번쩍이며 다시 피가 분수처럼 치솟고, 폭격이라도 맞은 것처럼 검기에 휩쓸린 상촌의 궁궐 벽면이 날아갔다.

피가 강처럼 흘러 머리 위에서 우수수 떨어졌다.

흘러내린 피로 한쪽에 있던 금은보화가 녹아내리며 가네샤의 거대한 몸을 서서히 덮쳤다.

가네샤는 점점 붉어지는 시야 속에서 눈을 깜빡였다.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알기 위해 코를 움직이던  자신의 크고 긴 코가 이제는 반절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과 눈앞을 가리는 붉은 피가 내 것이 아닌 바로 자신의 몸에서 나온 것이라는  깨달았다.

[어떻게….]

그는 녹아내리는 금은보화 더미 속에서 몸을 일으키기 위해 반절밖에 남지 않은 코와 몸을 열심히 움직였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움직여도 가네샤는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그의 몸은 맞은편에서 머리가 잘린 뱀처럼 허우적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지금의 공격으로 가네샤의 몸뚱이는 반으로 잘렸고, 놈의 뒤에 있던 궁궐 벽은 놈을 뚫고 간 검기에의해서 완전히 뭉개졌다.

가네샤는 녹아내린 금은보화 더미에 파묻혀 아주 서서히 굳어가고 있는 자신의 몸뚱이를 보았다.

[내, 내가 졌단 말인가?]

잘려나간 자신의 몸뚱이를 발견한 그는 성대를 쥐어짜는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의심 가득한 목소리에서 알 수 있듯이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충격으로 얼어버린 가네샤는 점점 굳어가는 자신의 몸을 지켜보았다.

그의 몸에서 나온 피가 열기를 잃고 굳어버렸다.

피가 굳자 허우적거리던 육중한 몸도 활동을 멈추었고, 녹아내린 황금 속에 가네샤는 완전히 파묻혔다.

[이럴 순 없다. 인정할 수 없….]

가네샤는 억울하다는  마지막 말을 뱉으려고 했으나,녹아내린 황금이 그의 입을 막았다.

가네샤는 그렇게 마지막까지 황금을 입에 문 채로 최후를 맞이했다.

놈의 마지막 숨이 끊기자 놈에게서 나온 빛이 내게 스며들었다.

가네샤의 기억도 함께 들어왔다.

분노와 증오가 담긴 교룡과 달리 그의 기억은 똑같이 생긴 마한하티를 포식하는 것과술을 먹고 도전자를 살해하는 기억뿐이었다.

출생은 지워진 도시이며 자신보다 더 강한 괴이로부터 도망쳐서 동토로 넘어왔다.

나는 놈의 기억에서 엄청나게 거대한 학 같은 괴물을 보았다.

번개를 뿌리고, 바람과 대지를 조종하는 그 거대한 괴이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달아나는 기억이 뇌리를 스쳤다.

 기억이 끝나자 자신과 머리가 똑같은 마한하티가 많은 상촌에 도착해 상촌의 왕을 처단하고 그가 왕이 되어 군림하는 기억이 이어졌다.

왕이  이후 가네샤의 기억에는 대단한 것이 없었다.

그저 술과 음식 그리고 금은보화에만 집착하며 주정뱅이처럼 하루를 낭비하는 그런 방탕함에 찌든 삶을 보냈다.

도전자들을 지배하고 최면술을 걸어 현혹하는 기억 같은 것이 드문드문 보이는 게 다였다.

[덧없는 삶이네.]

“가네샤가 죽었다…. 가네샤가 죽었어!”

“상촌의 왕이 바뀌었다!”

“지존이다! 지존 두영께서 상촌의 왕이 되셨다!”

“진정한 지존께서 상촌에 강림하셨도다!”

상촌의 주민들이 눈시울을 붉히며 소리쳤다.

뒤늦게 가네샤의 죽음을 인지하고 환호하는 것이다.

개중엔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우는 사람도있었다.

그간 가네샤에게 핍박받은 설움이 한순간에 달아나면서 마음이 풀린 것이다.

“역시 두영님! 소승 두영님께서 놈을 잡으실 줄 알았습니다! 진정한 지존은 두영님입니다! 만천하에 상촌의 지존! 이두영님의 이름을 퍼뜨리겠습니다!”

“두영! 두영!”

많은 이들이 두영의 이름을 연호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아가! 우리 아가!”

몇몇 사람들이 술 단지를 이고 돌아오는 아이들 틈에서 자신의 아이를 찾았다.

나는 최면에 걸려 술 단지를 옮기고 있는 아이들을 보았다.

가네샤가 죽어도  최면은 풀리지 않은 것인지 아이들은 계속 술 단지를 머리에 이고서 술을 날랐다.

“잠깐 기다려 보십시오! 소승이 설법을 펼치겠습니다. 부처님 가라사대….”

아라타가 아이들의 앞에서설법을 펼쳤다.

아이들을 붙잡고 나도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이상한 말을 웅얼거렸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옹알이해도 소용이 없었다.

애들은 계속 항아리를 이고 뚜벅뚜벅걸었다.

“헉! 두, 두영님! 애들을 정신을  차립니다! 제가 설법을 펼쳐도 소용이 없습니다. 대체 이를 어찌해야….”

[기다려 봐.]

나는 가네샤의 기억을 뒤져 방법을 찾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