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52화.
“지존이시여!”
상촌 사람들은 무릎을 꿇은 채 같은 말을 반복했다.
망가진 잔해를 치우고 있던 사내와 고기를 썰던 푸줏간의 백정.
망가진 그릇을 치우던 주막 아주머니와 아이들과 함께 지나가던 아낙들이 아이들과 함께 나와서 내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경찰청장님 발끝만 봐도 경외감에 쫄아 화장실로 도망치고 마는 나 같은 일개 소시민 형사에게 이처럼 많은 사람의 존경 어린 관심은 허들이 높았다.
내가 무슨 신이나 임금도 아니고 이렇게 대접받을 필요가 어디 있단 말인가.
지존이라 칭하며 고개를 조아려도 기쁘기는커녕 무안할 뿐이다.
[왜 그러는지 몰라도, 다들 일어나세요.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나는 얼른 사람들을 얼른 일으켜 세우려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한 번 조아린 머리를 좀처럼 다시 들지 않았다.
그들은 계속 머리를 조아린 채로 “지존이시여!” 같은 말을 반복했다.
[뭐, 뭐야? 다들 왜들이래?]
나는 서둘러 옆에 있는 아라타를 황급히 찾았다.
아라타라면 이들을 말려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옆에 있던 아라타도 하는 짓이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라타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은 채 중국 무협지에 나오는 포권 자세를 취한 채 소리쳤다.
“역시! 두영님! 지존이라는명함은 두영님을 위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상촌의 고수들이 이렇게 간단히 제압하다니! 소승 탄복하였나이다! 소승은 앞으로 영원히 두영님을 따르겠습니다!”
[이 새끼가? 야 인마! 헛소리하지 말고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설명이나 해! 부담스러워 죽겠으니까!]
“제가 말씀 올리겠습니다. 지존이시여.”
재촉하는 내 말에 아라타를 대신해서 한 노인이 다가왔다.
꼽추처럼 등이 굽은 노인이었는데, 한쪽 다리마저 절절 절고 있었다.
앞에 도착한 노인은 어설프게 손을 모아 예를 취하며 말했다.
“지존이시여, 저희는 오래전부터 당신 같은 재야의 고수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니, 어르신 느닷없이 왜 날 지존이라고 하시는 겁니까? 몸도 불편해 보이시는데, 우선 몸부터 일으키시고. 차근차근 설명해 주십시오.]
노인은 내가 쓴 하회탈을 보며 말했다.
“부탁하겠나이다. 지존이시여! 이 노부 무릎이 닳도록 빌겠나이다. 부디 저희 상촌을 구제해 주시옵소서!”
[구제라니, 어르신 대체 무슨 구제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무릎 아프게 그러지 말고 일단, 일어나서 자세히 이야기해주세요.]
뜬금 없는 이야기에 내가 당황하자 아라타가 얼굴에 묻은 똥을 닦으며 끼어들었다.
“혹시 노인장께서는 두영님에게 가네샤에게 도전해 달라고 부탁하시려는 것입니까?”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맞습니다. 젊은 스님.”
“역시!”
[뭐야, 도전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확신하는 아라타의 모습에 나는 설명을 요구했고, 아라타는 이들의 부탁을 아주 간단하게 설명해주었다.
그 이야기는 바로 현재 상촌을 지배하고 있는 괴이 가네샤의 지배로부터 탈출하고 싶다는 말이었다.
가네샤는 술과 금은보화만 제때에 상납하면 절대 상촌 주민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
그래서 일각에서는그래도 가네샤가 인명을 중히 여기고, 명예를 아는 성군이라고 알려졌다.
술과 금은보화만 제때 상납하면 아무 문제가 없으니 철없이 여인을 희롱하고 핍박과 겁박을 일삼는 왕보다는 훨씬 낫다는 인식이 잡힌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1, 2년이다.
가네샤는 바라는 술과 금은보화 중에서 술은 상촌의 주민들이 조금만 고생을 하면 그 양을 맞출 수 있다.
하지만 금은보화는 다르다.
금은보화는 구하기가 어려워서 제대로 상납하기 힘들어진 것이다.
못해서 가네샤의 분노가 극에 달했고, 폭군으로 변한 가네샤의 괴롭힘을 당해야 했다.
이에 상촌의 주민들은 집안의 자산까지 외지인들에게 팔아가며 힘겹게 가네샤가 원하는 금은보화의 수량을 꾸역꾸역 맞춰 주었다.
마한하티를 잡고 그 고기와 뼈와 가죽을 파는 것도다 그것을 위한 일이었다.
어떻게든 가네샤의 욕심을 채워주기 위해 자신과 상촌의 모든 것을 팔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이제 한계에 봉착한 상태였다.
돈이 될만한 것들은 다 팔렸고, 마한하티도 이제 많이 남지 않았다.
마한하티의 고기, 가죽, 뼈를 바라는 고객도 점차 줄어들어서 이젠 세금으로 바칠 금은보화를 벌어들이는 것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애초에 같은 금은보화를 계속 마한하티에게 상납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금은보화가 무한히 존재하는 것도 아닌데다가, 가네샤는 받은 금화를 한 번도 소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념품처럼 쌓아두고 소비를 안 하니 금은보화의 값만 천정부지로 치솟고 자금 융통이 불가능해졌다.
경제가 완전히 망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 바람에 주민들의 부담도 더 커졌다.
주민들이 벌어들이는 돈은 한정되어 있는데, 금값은 자꾸만 오른다.
게다가 상납할 금은보화의 양을 조금만 낮춰 달라고 요청해도 가네샤의 거대한 손이 사람을 몸통을 통째로 짓뭉개버리니 점점 더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마을의 치안, 경제, 관리 등 모든 것을 주민들이 도맡아서 하는 것으로 모자라 매달 일정량의 술까지 준비해야 하니, 밭일조차 일도 제대로 할 수 없다.
거기다 몇 년 사이에 세금이 수익을 역전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노략질이라도 해서 세금을 맞춰야 하는 상황으로 몰리자 상촌 주민들의 희망은 사라졌다.
이제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왕이 바뀌기를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매일 가네샤를 쓰러뜨릴 고수가 나타나기만을 염원하게 되었다.
하지만 가네샤는 힘이 줄어들지도 않고 그대로 건재한 상황.
강한 힘으로 말미암아 계속해서 장기 집권을 이어가고 있었다.
도전자가 나타나긴 했지만, 나타난 도전자들이 하나같이 비참한 꼴로 죽음을 맞자 가네샤의 명성만 더 대단해지고 말았다.
그 바람에 상촌의 왕 가네샤에게 도전하는 고수들의 숫자도 격감하고 말았다.
주민들의 희망은 짓밟혀 벼랑 끝에 내몰리고 말았다.
그나마 남아 있던 마지막 희망이 있다면, 그건 상촌의 이인자 흑랑 정도였다.
흑랑도 좋은 인간은 아니다.
성군은커녕 폭군의 자질만 갖고 있었다.
그래도 힘의 순리가 절대적인 동토에서 그는 상당한 고수이고, 억지를 부리며 학살을 일삼는 그런 폭군은 아니었기에 상촌의 사람들은 그가 가네샤를 제압해 상촌의 새로운 왕이 되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는 괴이가 아닌 인간.
수명이 그리 길지않기에 지금 대의 상촌 주민들은 괴롭더라도 그들의 자녀들의 세대는 괜찮아지리라 기대했다.
그래서 그가 언젠가 가네샤를 꺾고, 혼잡한 이 땅을 구제해 주기만을 간절히 염원했다.
그런데 그런상촌 주민들의 희망을 지금 내가 손도 안 대고 제압해 버리고 말았다.
상촌 사람들 입장에선 내가 가네샤를 무찔러주리란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심신 미약으로 정신을 잃은 흑랑을 보았다.
[이놈이차기 대권후보 같은 거였구나. 뭐야. 보기보다 대단한 놈이었네.]
대권 후보라고 생각하니 오만한 생양아치 같던 첫인상이 얍삽해도 지지율은 높은 정치인처럼 다르게 보였다.
노인은굳은살이 박인 자신의 손을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 상납 기일까지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마땅한 양의 금은보화를 준비하지 못하면 가네샤님이 노할 것이고, 또 죄 없는 사람들이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이제 더는 그 욕심 많은 괴물의 술이나 빚는 노예로 살고 싶지 않습니다. 하여 이렇게 부탁합니다. 지존이시여. 부디 저희를 구원해주시옵소서!”
“구원해 주시옵소서.”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며 간곡히 부탁하는 상촌 주민들.
하나 된 그들의 모습에 나는 한 가지 의문을 느꼈다.
[그렇게 두렵다면 이곳을 도망을 치면 되지 않습니까? 어째서 그렇게까지 상촌에 남아 있으려고 하시는 것입니까?]
가네샤가 두렵다면 도망치면 된다.
내가 아라타와 함께 이곳을 지나쳐 광명 목탑을 향해 가는 것처럼 이들도 열린 문으로 나가서 떠나면 되는 것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는 법.
못 가게 막는 이도 딱히 없으니 떠나기에 어렵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남아서 나더러 가네샤를 없애 달라고 하다니.
그 마음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이들이…. 아이들이 잡혀 있습니다.”
[아이들이?]
내 말에 노인을 대신해 노인의 옆에 있던 한 여성이 답했다.
바짓가랑이라도 잡을 듯 가까이 다가온 여인은 간절한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었다.
“예…. 제 아이가, 이제 열이 되는 제 아이가 잡혀 있습니다.”
“제 아이도 잡혀 있습니다.”
“우리 금곡이도 잡혀 있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 항아리를 옮기며 노역을 하고 있습니다. 흑흑!”
“가엾은 내 새끼…. 아이고! 하필이면 내 자식으로 태어나서. 아이고!”
한 사람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아이가 잡혀 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안타까운 모습에 나는 아라타를 보았다.
노인이 부연했다.
그의 설명을 통해 확인한 이 사태는 이랬다.
[그러니까, 마을 주민들이 야반도주라도 할까 봐, 만 10세 이하의 아이들을 매년 잡아서 가두고 강제노역을 시킨다는 말씀이십니까?]
“예, 그렇습니다. 지존이시여.”
[그래서 애들 부모님들은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가 없고요? 계속 남아서 가네샤가 바라는 대로 술을 빚고, 돈을 벌고 있다는 말씀이죠?]
“예…. 그렇습니다. 상촌의 명물인 마한하티가 줄어든 것도…. 바로 가네샤의 욕심 탓입니다.”
노인의 말에 나는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아라타를 보았다.
[진짜냐?]
“예…. 주민들이 도망을 치지 못하도록 매해일정 인원의 아이들을 잡아서 성안의 잡무를 시킨다고 들었습니다. 실제로 괴이와 폭정을 일삼는 자들이 주로 취하는 방법이지요.”
[…그걸 알면서도 왜 안 도와? 스님들 발언권은 센 거 아니었어?]
“승려들이방문해 도움을 주려고 해도 왕의 힘이 강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특히나 가네샤는 고집불통이라 승려를 해치진 않아도 문전박대를 하니 대화 자체가 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승려들도 반쯤 포기한 상태인 것이지요. 지금은 매달 찾아서 간언만 올리고 떠나는 식입니다.”
승려도 소용없다니 새로운 사실이었다.
[승려가 하는 말이라고 무조건 따르는 건 아니구나.]
“예, 그랬다간 승려가 이 나라의 왕이 되겠지요. 진정한 승려는 부와 명예를 탐하지 않는 법입니다. 아니, 그 어떤 욕심도 탐하지 않는 법이지요.”
[아무튼, 이런 이유라면 사람들이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되네. 나라도 그런 괴물이 내 새끼를 잡고 있으면 떠날 수 없을 테니….]
“지존이시여. 아이들이 납치되지 않았더라도 어찌부모, 자식이 묻힌 고향 땅을 버리고 혼자 떠날 수 있겠습니까? 상촌은 저희의 고향입니다. 아직 어린아이들이라면 모를까. 저 같은 늙은이는 목이 달아난다 해도 떠날 수 없습니다.”
등이 굽은 노인이 상촌의 바닥의 흙을 한 손 가득 꽉 움켜쥐며 말했다.
고향을 향한 진한 애정이 묻어났다.
그러나 노인이 아무리 꽉 움켜쥐어도흙은 그의 굳은살 사이로 흘러내렸다.
기껏해야 얼마 안 되는 흙만 남을 뿐이었다.
바람이 불면 다 사라질 것 같은 그 한 줌도 안 되는 양의 흙이 노인의 남은 희망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부탁합니다. 지존이시여. 성안의 금은보화와 술, 그 어떤 것이라도 내어 드리겠습니다. 바라신다면 마을의 젊은 처녀들도 설득해 지존을 보필토록 이야기하겠나이다. 그러니 부디, 부디! 가네샤를 쓰러뜨려 주시옵소서! 그 탐욕스러운 괴이를 엄벌하여 이 땅을 바로잡아 주시옵소서!”
“부탁합니다! 지존이시여! 가네샤를 쓰러뜨려 주시옵소서!”
“우리를 가여삐여겨 구원해 주시옵소서!”
“제발! 이 땅을, 우리 아이들을 구해주십시오!”
주민들이 다시 바닥에 머리를 조아렸다.
한 목소리가 되어 외치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꼈다.
자식을 만나지도 못하고 납치된 그들의 심정이 지금의 나와 비슷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도 내 딸을 못 만나고 이런 영문 모를 세상에서 헤매고 있다.
납치는 아니지만, 자식을 만나지 못하는 부모의 가슴 절절한 심정만큼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다수의 아동 납치, 강제 노역, 지속적인 금품강탈, 살인 및 살해 협박이라….]
나는 조용히 견적을 뽑았다.
이 정도 죄목이면 즉석에서 머리통에 총알을 박아도 인권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솜방망이 처벌로 유명한 판사님들도 친히 사형과 무기징역을 내려주시리라.
“어찌하시겠습니까? 두영님?”
옆에서 아라타가 머리만큼 반짝이는 눈을 하고서 말했다.
기대 가득한 아라타의 눈을 보며 나는 무릎을 꿇은 어르신을 보았다.
[일단, 견적을 내 봐야지. 어르신, 그래서 그 가네샤라는 놈은 어디 있습니까?]
“오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지존이시여!”
내 한마디에 노인은 희망을 찾은 듯 반짝이는 눈을 하고서 날 보았다.
그는 손에 남은 한 줌 모래를 꼭 움켜쥐고 놓지 않았다.
그와 상촌 주민들에겐 이제 내가 마지막 희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