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7화 〉46화. (47/83)



〈 47화 〉46화.

나는 동명으로 이동하며 아라타의 화면을 보았다.

아라타는 내게 전해줄 물건을 한 남자에게 넘겨주고 있었다.


전후사정을 모르는 나라도 아라타가 뭣 때문에 생판 남에게 옷을 주는지 알 수 있었다.

내게 옷을 전달해 달라고부탁하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나와의 약속을 지키는 모습은 무척 대견했다.

하지만….

[아라타 녀석. 인망이 없구나.]

아라타에게 부탁을 받은 남자는 아라타가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받은 옷은 바닥에 던져버리고 여자와 함께 도망쳤다.

“미안하오! 스님. 우린 우리 몸을 지키기도 바쁘다오! 용서해주시오!”

목숨까지 구해준 아라타의 부탁을 내친 것이다.


괘씸한 모습이지만, 그들을 원망할  없었다.


혐오스러운 망자들이 인명을 마구 해하며 지옥도를 그려가고 있는데, 자기 목숨을 챙기기도 바쁜 와중에 부탁받은 옷을 전해주러 간다?


두영이 남자였어도 절대 들어주지 않았을 부탁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다리를 다친 여자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챙기는 것만 해도 남자는 대단했다.

[모쪼록 무사히 탈출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멀어지는 사내와 여인을 뒤로하고 그들이 바닥에 버리고 간 옷을 줍기 위해 움직였다.

“히이익! 여기도 마귀가!”

“어서 피해!”

“사악한 마귀 놈! 또 나타났구나! 그때처럼도망치지 말고 어디 죽일 테면 죽여보아라! 내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다!”


“아가! 도망쳐야 해! 어서 이리 와!”


질척한 바닥을 밟으며 동명 땅에 내려서자 갑자기 나타난 내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혼비백산하며 달아났다.

그중에는 전에 산에서 마주친꼬마와  부모도 있었다.


꼬마는  째라 식으로 나오며 배짱을 부렸다.

어린 녀석이 기개가 대단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이번엔 내가 먼저 꼬리를 말고 달아날수 없었다.


“비켜라. 꼬마야. 헬파이어.”


손을 뻗어 네빌처럼 화염 마법을 사용했다.

뜨거운 지옥불이 날아가 꼬마와 그 부모를 노리고 혓바닥을 뻗으려던 개구리형 마귀의 몸을 불태웠다.

[키이이익-!]

지옥불에 휘감긴 마귀가 배가 되어 사라졌다.

“으아….”


그 모습을  아이는 그제야 겁이 났는지 뒷걸음질을 치다 바닥에 주저앉았다.


“히끅!”


주저앉은 아이가 다시 날 보더니, 두려움이 일었는지 딸꾹질을 했다.


[괜찮….]

“히익! 부처님! 제발! 우리 아가를 살려주세요! 아가! 어서 이리온!”

내가 아이를 챙길 틈도 없이 근처에 있던 부모가 아이를 부르더니 그 손목을 낚아채고 부리나케 달아났다.

해치려던 것도 아닌데 조금 씁쓸했다.

 반응을 보니 역시 변장은 필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저기에도 마귀가 있구나.]

나는 아이와 아이 엄마가 달아나는 방향을 보았다.

그곳엔 사마귀형 마귀가 달려오고 있었다.

날카로운 앞다리를 낫처럼 휘두르며 사람들을 도륙 중인 괴물로 당충이라 불리는 동토의 괴물이 마귀가 된 것이었다.


당충은 생김새는 그냥 덩치만 큰 사마귀지만, 덩치가 큰 만큼 외피가 튼튼해 평범한 사람들에겐 위협적인 몬스터였다.


게다가 한 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가 있었다.


날개를 퍼덕이며 사람들을 쫓던놈들은 추적을 멈추고 날 보았다.

가까운 자리에 있던 호랑이를 닮은 마귀 역시 인간들을 쫓던것을 멈추고 가만히 서서  모습을 살펴보았다.


사마귀와 호랑이 마귀는 동시에 고개를 갸웃했다.


짧은 정적이 흐르고.

놈들은 날 무시한 채 다시 동명 사람들을 추적해 공격하기 시작했다.


 모습이 생소해 당황했지만, 일단 같은 언데드여서 공격하지 않는 것 같았다.

사람 취급도 안 하는 놈들의 행태에, 기뻐해야 할지 아니면 화를 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래도 이대로 내버려 둘 수만은 없지. 나와라. 아그들아.]

나는 손을 들어 데스나이트와 리치 부대를 불러냈다.


거대한 검과 허름한 갑옷을  데스나이트들과 수정 구슬을 손에 들고 로브를 입은 리치가 마법진과 함께 소환되었다.

수는 대략 100.


마귀보다 훨씬 적지만 그래도 스펙만 따지면 내쪽이 훨씬 우세했다.


[가서 사람들을 구조하고, 저 마귀 놈들을 다 죽여라.]

 명령에 데스나이트와 리치들이 붉은 안광을 번뜩이더니 동명을 침공한 마귀들을 마구 공격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나타난 데스나이트와 리치들의 모습을  사람들은 혼비백산하며 도망쳤지만, 데스나이트와 리치는 겁에 질린 인간들을 무시하고 마귀들만 공격했다.

데스나이트의 공격에 호랑이의 몸이 잘려나갔다.


그러나 유령이라 금방 본래의 모습을 돌아왔고, 이를 깨달은 데스나이트는 까만 검기를 만들어 다시 호랑이를 베었다.


 번째 검격에 호랑이는 포효하며 사라졌다.

사마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리치들이 화염을 만들어그들의 썩은 육신을 불태우며 전진했다.

놈들은 리치에게 앞다리 한 번 휘두르지 못하고 재가 되어 사라졌다.


“마귀가 마귀를 공격하고 있어?”

“대체 왜?”


“우리도 모르지! 일단, 도망부터 치자고!”

마귀와 언데드의 동족상잔을  동명 사람들은 부리나케 달아났다.

내가 나설 필요 없이 부하들이 해치우니 기분이 좋았다.


[조직 보스가 부하들을 부릴 때도 이런 기분일까?]

같은 생각을 하며 나는 달아나는 사람들을 두고 바닥에 떨어진 옷을 주워 입었다.

까만색 분소의는 크기가 적당해 몸에 걸치기에 좋았다.

가슴뼈를 가리기에도 충분했기에 몸에 둘러서 모습을 가렸다.

하회탈과 삿갓은 뼈만 남은 머리와 얼굴을 충실히 가려주었다.


아라타 녀석이 옷을 제대로 고른 것 같았다.

그렇게 옷을 다 입은 크리스털을 만들어  모습을 확인했다.


[나쁘지 않네. 근데 목이 드러나는 게 좀 그러네.]

목, 목이 문제였다.

[마땅한 게 없나? 음…, 저게 좋겠군.]


무너진 상점에서 하얀 천을 주웠다. 그리고  천을 목도리처럼 목에 꽁꽁 둘러 묶었다.

그리고 마무리로 마법까지 사용했다.

[블랙 라이트.]

머리의 양옆과목에 검은빛을 뿜어내는 빛의 구를 소환해 상대가 잘 볼 수 없게 했다.


이렇게 하면 삿갓을 벗기기라도 하지 않는 이상 내 얼굴을 확인할  없을 것이다.


[어디 볼까?]


크리스털을 소환해 부자연스러운 부분은 없는지 확인했다.


특별히 이상한 부분은 없었다.

[좋아. 완벽해.]

그렇게 점검을마친 나는 마실 나가는 어르신처럼 뒷짐을 지고 엉망이 된 동명의 거리를 걸었다.


내가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상대 측 마귀들이 데스나이트와 리치의 공격을 맞아 쓰러졌다.

마치 바람 앞의 등불처럼 힘없이 꺼지며 사라지는 마귀들.


훌륭한 구조 작전이었으나 부작용도 있었다.


데스나이트와 리치의 모습을 본 일부 생존자들이 자신을 구하러 온 것인지 모르고 공격하거나, 그들을 피해 마귀가 있는 방향으로 다시 도망치다 도리어 귀한 목숨을 잃는 일이 생긴 것이다.

매우 안타까운 사태였지만, 이런 착각은 시간이 조금 흐르자 해결되었다.

데스나이트와 리치가 마귀들로부터 사람들을 구한다는 것을 깨달은 눈썰미 좋은 사람들이 데스나이트와 리치 쪽으로 피하라며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모두 이쪽으로 피하시오!”


“투구를 사람형 망자는 괜찮습니다!”

“수정 구슬을  망자도 안심할  있소!이들은 우릴 공격하지 않으니일단 이쪽으로 피하시오!”


누군가의 외침에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데스나이트와 리치들의 뒤로 대피했다.


마귀들의 수에 비해 데스나이트와 리치의 수는 훨씬적었지만, 질적으로 차원이 달랐다.


그 덕분에 마귀들이 우르르 몰아쳐도 가차 없이 짓밟았다.

[나쁘지 않은 모습이야.]


마귀들과 함께 사람들의 편견 역시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아라타를 찾았다.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동명의 성이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날아오는 잔해들을 옷을 보호하기 위해 마법 장벽으로 막으며 걷는 그때.

“부처님. 부디 보고 계신다면 이 불쌍한 중생들을 구원해 주시옵소서.”


아라타가 기도하는 소리가 들렸다.

녀석은 교룡이 다음 공격을 발사하는데도 도망치지 않고 앉아서 기도나 하고 있었다.

나는 놈의 앞으로 이동했다.

[답답한 녀석.]

“두영님?”


굳이 답하지 않고 이블 나이트의 검을 소환했다.

1미터 길이에 검신이 굵은 투핸디드 소드였다.

일직선에 칼날이 무척 긴 검이었다.

이름처럼 본래는 두 손으로 휘둘러야 하는 검이지만, 나는 한 손으로 검을 들었다.

[엎드려 있어라.]

멍청한 얼굴로 바라보는 아라타에게 한마디 하고 검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길쭉한 검에 새까만 검기가 일어났다.

칠흑보다 더 새까만 어둠이거대한 검기가 되어  늘어난 순간에 맞춰서 다가오는 교룡의 번개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 순간 거대한 초승달형 검기가 발사되어 교룡의 번개를 베고 하늘로 쭉 날아갔다.

“뭣!?”

반으로 잘린 번개가흩어지며 사라지자 아라타도 거왕도 깜짝 놀라 헛바람을 들이켰다.

나는 검을 들고 교룡을 보았다.

[네 이놈!]

교룡은 입을 벌리더니 냉기를 이용한 장벽을 만들어  검기를 막았다.

하지만 얼음 따위로 막을 수 있는 검기가 아니었기에 교룡은 왼쪽 앞다리 어깨를 크게 베이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힘의 차이.]


[크아아!]

상처를 입은 교룡이 괴성을 지르며 미꾸라지처럼 물러났다.


내가 발사한 검기가 먹구름을 베었다.

먹구름이 칼자국이 생기며 빛이 내려왔다.

빛은 아래에 있던 날 정확히 비췄다.

“오오! 이것은 계시!”

빛이 내 몸을 비추자 아라타가 외쳤다.


“혹시 부처님께서도 두영님을 보살피시는 것인가! 망자인 두영님을?!”


아라타가 소리쳤다.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일단 무시하고 미꾸라지처럼 물러나는 교룡을 보았다.

놈은 멀찌감치 물러나 하늘을 맴돌았다.


지렁이가 꿈틀거리듯이 하늘에서 난리 블루스를 추는 것을 보니 당분간은 거동이 어려울 것 같았다.


[아라타. 일어설 수 있겠냐?]

“가, 가능합니다. 으악, 냄새!”

아라타는 땅을 짚고 일어나다가 손에서 풍기는 냄새에 얼굴을 찌푸렸다.

평범한 흙이 아니다.


좀  질펀한 것이 똥물이 분명했다.

[음…, 이 자리가 돼지우리였나 보네. 아라타. 당분간 3미터 이내로 접근하지 마라. 새 옷에 냄새 배니까.]


“…아, 알겠습니다. 그런데 진정 도와주러 오신 겁니까?”


[…새끼가. 보고도 모르겠니?]


나는 건틀릿을 착용한 손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마귀들을 처치하느라 여념이 없는 데스나이트와 리치가 있었다.

놈들은 일당백의 위용을 자랑하며 교룡의 부하들을 가볍게 쓰러뜨렸다.

“저,저럴 수가…. 마귀들을 저리도 쉽게?”

아라타는 너무나 쉽게 마귀를 제압하는 데스나이트와 리치를 보며 충격에 빠졌다.


“이, 이렇게 강력하다니…. 그런데어찌하여빨리 나서서 돕지 않으신 겁니까!?”

[…기껏 도와줬더니 하는 말이 고작 그거냐?]

“두영님이 좀 더 빨리도와줬으면 희생자가 없었을 것 아닙니까!”

[물에 빠져 죽어가던 놈 건져줬더니 보따리부터 내놓으라는 격이네. 너 이 새끼 또 맞고 싶어?]

검을 내리고 주먹을 풀자 아라타는 화들짝 놀랐다.

“아. 죄,죄송합니다. 소승이 그만 흥분했소이다. 잊어주십시오. 두영님.”

[됐고!  광명 목탑까지 안내 잘해줄 수 있지?]

“예? 예. 그런데 그것은 왜 갑자기….”


[내 특별히 저 지렁이 놈 마무리해 줄 테니까. 앞으로 허튼수작 부리기 없기다. 알겠지?]

“저 정말이오!? 정말 지렁 아니, 마괴를 무찔러 주시는 것이오?!”

 말에 아라타가 반색하며 외쳤다.


[그래. 아무런 대가도 없이 부탁을 들어달라고 하면 네가 뒤통수를 칠  같아서 말이지.]


“헉! 그것을 어떻게?!”

[역시 뒤통수를 칠 생각이었구나.]


“아, 아닙니다. 소승 그런 치졸한 생각 조금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두영 님의 화를초래해 사람이 다치진 않을까? 걱정했을 뿐입니다.”

[믿음직스럽지 못하지만, 아무튼! 광명 목탑에 데려다 주는 조건으로 교룡을 잡아주마. 이거 거래이자 약속이다. 반드시 지켜라. 알겠냐?]


“물론입니다! 소승 기예천님의 이름과 명예를 걸고 약속하겠습니다! 부디 저 마괴를…. 교룡을 처치해 주십시오! 그리하면 소승 두영님에게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좋아. 마지막으로 번만  믿어주지.]


아라타의 말에 나는 녀석이 말한 교룡을 보았다.


주둥이를 벌린 교룡은 이번엔 눈보라에 번개를 뒤섞은  공격했다.

내가 아닌 데스나이트와 리치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공격이 제법 강력해 벌써 열이나 되는데스나이트와 리치가 사라진 상태.

데스나이트와 리치로는 감당할  없는 괴물이라는 의미이리라.

놈의 능력을 흡수하기 위해서라도 직접 처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두영님.”

[왜 또?]


“정말로 이길 수 있으신지요?”


[지켜보기나 해.]


의심하는 아라타의 말에 나는 소환한 검을 들었다.

그리고 검에 마력을 불어넣어 수백 미터는 떨어져 있는 교룡을 향해서 휘둘렀다.


한층 강력해진 검기가 발사되었다.

과거의 검기가 제비 떼였다면, 이블 나이트가 된 지금의 검기는 독수리 떼였다.


크기도, 숫자도, 속도도 이전과는 비교되지 않았다.

수백 미터 거리를 단숨에 날아간 거대한 검은 검기 다발들이 교룡의 몸을 노렸다.

데스나이트와 리치를 상대하고 있던 교룡도내 공격을 확인하곤 다시 브레스를 뿜었다.


[어림 없다!]

본드래곤처럼 에너지를 뿜자 얼음과 번개가 거대한 소방호스를 풀로  것처럼 무시무시한 기세로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얼음과 번개로는 내 검기를 막을 수 없었다.


검기 다발이 놈의 브레스를 베더니 그대로 몸까지 베고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까지 베었다.

하늘에 드리운 먹구름의 한 부분이 검기에 베인 채 옅어지자냉기와 번개를 뿜어대고 있던 교룡의 몸뚱이가 수백 갈래로 쪼개지며 지상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동명의 멸망을 불러온 무시무시한 마괴 교룡이 한순간에 깨진 얼음파편처럼 산산조각이 나며 추락한 것이다.


충격에 빠진 아라타가 무릎을 꿇었다.

“마, 맙소사! 지금 이게 진정 실화입니까!?”

무릎을 꿇으면서 똥물이 몸과 얼굴 심지어 입에까지 튀었지만, 아라타는 개의치 않았다.


충격이 너무 커서 미처 자신의 입에 들어간 것이 똥물인지 된장인지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녀석은 그저 놀란 표정을 유지한  한참이나  올려다보았다.

[이 내가…. 이렇게 죽다니….  원한은 대체….]


멍청히 바라보는 아라타에게서 시선을 거두자마괴 교룡의 마지막 목소리가 하늘에 퍼지더니 사체에서 놈의 마력이 흘러나와 내게 스며들었다.


곧 녀석의 기억이 재생되었다.

교룡의 정체는 동명에서 인간들에게 죽임당한 300년 묵은 교룡이었다.

한때 이 땅의 지배자였던 교룡은 조업에나선 인간들을 위해 풍랑을 조절해 무사 귀환을 도와주는 등 인간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주며 우호 관계를 쌓았다.


괴이지만, 선량한 괴이로 불리며  땅을 수호하고 지켜주는 존재로 자리를 잡아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300년 전, 여의주의 완성과 승천을 하루 앞둔 때에 그는 인간들에게 배신당하고 말았다.

전설에 따르면 용이 되기 위해서 이무기와 교룡이 승천할 때는 그 누구도 승천하는 이무기와 교룡을 봐서는 안 된다.

그래야 무사히 용이 될  있는 탓이다.

교룡은 용이 되기 위한 대업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을 믿고 따르는 동명의 지도자들에게 신신당부했다.


먹구름과 비바람이 가득 찬 날.


바다에서 용오름이 올라오면 바다를 멀리하라고, 집으로 들어가서 절대 밖으로 나와서는 안 된다고.


그날 만큼은 바다로 나간 자신을 절대 찾아서도, 봐서도 안 된다고 몇 번이고 강조했다.

교룡은 인간들이 자신의 부탁을 들어줄 것이라고 여겼다.

그동안 인간들을 위해 자신이 해온 일들이 있었기에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당일 그가 용오름을 일으키며 승천할  수많은 인간이 밖으로 나와서 그의 승천을 지켜보고 말았다.

그 바람에 승천을 들킨 교룡은 내리치는 번개와 함께 추락하고 말았다.

본래 용의 대업은 믿음과 희망을 상징한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개천승용의 속담처럼 속세의 비루한 생명체였던 교룡, 이무기 따위도 점차 성장하여 하늘에 이를 수 있음을 나타낸다.

즉, 승천하여 용이 되는 것이야말로 그들의 존재 의의이자, 모든 것인 셈이다.

교룡에게 있어서는 무려 300년 동안이나 애타게 기다려온 대업이다.

그런데 그 대업이 한순간에모두 무너지고 말았다.

이에 교룡은 진노하며 자신의 명을 어긴 인간들에게 죄를 물으려 했다.


교룡에게 있어서 그건 그러고도 남을 일이었다.

하지만 동명의 인간들은 교룡의 진노를 샀으면서도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향해 창과 칼을 겨누었다.

알고 보니 타지에서 몇몇 인간들이 비바람을 조종하는 힘을 지닌 여의주 탐내고, 고의로 교룡의 승천을 방해한 것이었다.

그들은 마을 사람들은 거금을 주면서까지 그들을 회유하고, 교룡을 습격한 계획을 감추는  용의주도함까지 보였다.

이러한 사실을 안 교룡은 분노를 감추지 않고 동명의 모든 인간에게 응징을 가하려고 했다.

하지만 동명의 사람들은 준비를 단단히 해두었다.

해협 너머에서 건너온 강한 괴이들까지 이용해 교룡을 공격한 것이다.

힘겨운 전투 끝에역린을 찔린 교룡은 온몸이  찢긴 처참한 몰골로 죽음을 맞았고, 300년의 정성으로 완성한 여의주까지 빼앗기고 말았다.

자신의 처참한 말로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교룡은 배신당한 것에 앙심을 품었다.

그리고 성불도 거부한 채 잃어버린 힘을 회복하고 마귀로 부활했다.

그는 300년 동안 한을 품은 채 힘을 키웠다.


이윽고 마괴까지  후에야 배신자들의 자손이 번성한 동명 땅에 피의 복수하기 위해 돌아왔다.

그것이 교룡이 지닌 기억의 마지막이었다.


[쯧!이놈들이 원흉이었구먼.]


교룡의 기억을 읽은 나는 그의 기억  괴이들의 모습에 짜증이 치밀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교룡을 공격한 괴이들의 정체가 경각, 진각, 사각, 희각이었기 때문이다.


넷  르나르 국의 영웅 칠각보전이었다.

희각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르지만, 나머지 셋의 얼굴은 하멜 성 인근에서 전투를 벌여서 기억하고 있었다.

300년이나 지났는데도 늙지도 않고 그대로여서 기억하기도쉬웠다.


[근데 이놈들은 왜 교룡을 공격한 거지? 진짜 여의주 때문인가?]

아는 얼굴의 등장에 나는 일전에 흡수한 사각의 기억을 뒤졌다.


그리고 칠각보전이교룡을 노린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르나르 국의 당대 왕이 기근에 시름하는 백성을 안타깝게 여겼다.

그래서 농작물을 보다 안정적으로 기르기 위하여 기후를 다스리는 힘이 있는 여의주를 빼앗으라고 명령했다.


이에 신하들이 동명의  교룡의 여의주를 빼앗자는 묘안을 냈고, 왕은 칠각보전에게교룡의 여의주를 빼앗아 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결국, 첩자들이 동명으로 넘어와 교룡의 백성에게 거금을 주고 승천의 날을 물으니, 욕심에 눈이 먼 우둔한 백성이 교룡과의 신의를 저버리고 약속의 날을 알리고 말았다.

칠각보전은 그날에 맞춰서 당도했고, 예정대로 교룡을 공격해 그의 역린을 찔러 제압했다.


결국, 르나르 국의 욕심으로 교룡이 비참한 죽음을 맞은 것이다.

[늑돌이도 그렇고 르나르 국 이놈들이 끼면 좋은 일이 없네.]


살았다고 안도하며 즐거워하는사람들을 보며 나는 교룡이 한을 품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나저나 용이 승천할 때 보면  된다던 설화가사실이었던 건가?  말은 지구에도 용이 번성했다는 뜻일까?]


뜬금 없지만 지구에도 그런 설화가 있었기 때문에 정말로 용 같은 생명체가 번성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드래곤도 있었던 걸까?]


가볍게 치부하기 힘들었다.

아라타가 가끔 기도 비스무리한 것을  때 부처님을 찾는 것이 불교 사상이 존재하는 탓이다.

부처가 아니라 부따라고 발음하기는 하지만, 마찬가지로 부처를 칭하는 용어였기에 정말로 지구에 용과 드래곤이 번성한 시기가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공룡도 번성했으니까. 진짜 있었을지도 모르지.]

생각에잠긴 사이 동명에 드리웠던 먹구름이 완전히 걷혔다.

빛이내려오는 순간, 아라타가 그 빛을 보고 계시라도 받은 것처럼 소리쳤다.


“오오! 빛이다! 빛이 내려왔다! 어둠이 물러가고 빛이 내려왔도다! 아아! 기예천님. 이제야 제가 수미산에서 쫓겨난 이유를 지금 깨달았습니다! 모두 두영님 때문이었군요! 소승이 욕망에 휩싸여 파계승이 된 것도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도 모두 두영님을만나기 위한 부처님의 혜안이셨습니다!”

[…뭐?]


아라타가 종교에 미친 광신도 같은 헛소리를 해대기 시작했다. 아니, 다시 생각해 보니 저놈은 광신도 같은 게 아니라 광신도가 맞았다.


“두영님! 소승 두영님의 힘과 능력 그리고 정의로움에 탄복하였습니다! 이 또한, 기예천님께서 내려주신 인연! 부처께서 맺어주신 기연!”

라임 맞추는 걸 보니 지구에 가면 랩 좀 할 것 같았다.


“도탄에 빠진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부처께서 두영님을 이 땅에 보내주신 것이 분명합니다!”

아닌데, 부처가 아니라 이상한 괴물이 보냈는데.

“아아! 역시 부처님께선 우릴 굽어살피고 계십니다! 아미타불!”

[…미친 새끼.]


“소승 앞으로 불도를 따르는 제자로서 앞으로 두영님을 평생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두영님이 성불하는 그날까지! 소승 두영님을 형님처럼 섬기겠나이다!”


[….]


“소승 형님을 뵙습니다!”


아라타는 똥물에 혹이 난 머리를 처박으며 내게 삼배를 올렸다.


따른다고 하니 싫지는 않았지만….


똥물에 머리를 박고 언데드를 평생 모시겠다고 하니 아라타의 정체성에 괜한 의심이 일었다.

[이 똥쟁이 땡중을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평생 따르겠나이다! 믿어주십시오.”


[…제길. 알았어. 알았으니까, 좀 떨어져. 아니, 좀 씻어라.]


“예! 두영님! 알겠습니다!”


똥물을 튀기며 외치는 아라타.

가이드로 삼았지만, 온몸에 똥을 묻히고도 즐거워하는녀석의 모습에 나는 처음으로 부담스러움을 느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