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44화.
몸에서 금빛 후광이 일어나자 아라타는 하회탈과 삿갓 그리고 검은 분소의를 한 손으로 꼭 안더니 남은 손을 뻗었다.
“그대로 있으시오! 화엄경.”
장법을 펼치듯 손을 뻗자 매끄러운 그의 손짓에 금빛을 띤 화기가 맺히더니 남성과 남성을 노리는 호랑이 마귀를 향해 쇄도했다.
“히이익!”
화엄경의 금빛 불꽃을 본 남성은 겁에 질려 몸을 웅크렸지만, 아라타가 쏜 화기는 유령처럼 남성을뚫고 지나가 호랑이 마귀만을 감쌌다.
[크아아앙!]
화엄경의 불꽃이 호랑이 마귀의 몸을 태우다 못해 완전히 녹여버렸다.
마귀는 피부가 녹아내린 채 삭은 뼈만 남아 바닥에 쓰러졌다.
뼈에 깃들어 있던 원혼은 성불하며 사라졌다.
남은 뼈는 잔가지처럼 맥없이 바닥에 떨어져 덜그럭거렸다.
“고, 고맙습니다. 스님.”
“아미타불. 마귀들의 수가 많소. 어서빨리 이곳에서 먼 곳으로 도망치시오.”
“예. 예.”
도망치는 남자들을 보며 아라타는 다시 손을 뻗었다.
그의 뒤로 새로운마귀들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예전 같으면 마귀의 수를 감당하지 못해서 꽁지가 빠지도록 도망을 쳤을 것이다.
그러나 아라타는 달아나지 않았다.
동굴에서 두영이 준 해골물 덕분에 깨달음을 얻어 예전보다 훨씬 강해진 탓이다.
예전보다 법력도 심득도 상승한 상태였기에 그는 달아나지 않고 자신의 기운을 방출하며 마귀들에게 대적하고자 했다.
“이 간악한 마귀들아! 이곳은 넘을 수 없을 것이다!”
아라타가 소리치며 손을 휘둘렀다.
찬란한 황금빛 성광이 휘몰아치더니 마귀들을 강타했다.
빛에 휘감긴 마귀들은 육신을 잃은 채 쓰러졌다.
“어서 피하시오! 이곳은 소승이 막을 터이니!”
“예, 예!”
아라타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전진했다.
그의 손에서 장법이 금빛을 발휘할 때마다 마귀들이 속절없이 성불했다.
상성이 상성인지라 거왕의 부하와 협객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활약이 이어졌다. 그러나 아라타의 눈에 띄는 활약에도 불구하고 마귀의 수는 줄지 않았다.
그만큼 동토에 몰려온 마귀의 숫자는 많았다.
“소승이 아무리 노력해도 이대로는 승산이 없다. 대체 이 국난을 어찌 넘기면 좋단 말인가….”
아라타가 이를 악물고 하늘을 보았다.
부처의 도움을 기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혹자들의 앞날을 밝히기 위한 여래의 빛은 여전히 도래하지 않고 있었다.
불심으로 가득 찬 아라타마저 그 의의를 의심할 정도로.
한편, 아라타가 엄청나게 많은 마귀들의 군대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 시각 두영도 동명에 닥친 위기를 뒤늦게 알아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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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대체 무슨 난리야?]
까메라들이 비춘 화면을 통해 동명의 상황을 확인했다.
이상하게 생긴 마귀들이 동명 땅에 잔뜩 몰려와서 사람들을 마구 해치고 있었다.
망자들은 좀비, 구울 같은 하급 망자부터 스켈레톤 나이트급의 중급 망자는 물론, 데스나이트나 리치에 이르는 상급 망자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흡사 잘 구축한 군대 같았다.
형태 또한 인간부터 짐승형 마귀에 이르기까지 무척 다양한 편이었다.
놈들의 공통분모는 하나같이 몸뚱이가 썩을 대로 썩어 피부가 다 문드러진 망자라는 것뿐이었다.
놈들로 인해 엉망진창으로 변하는 동명을 보자 혼란스러움이 앞섰다.
설마 이 시기에 동토의 망자들이 쳐들어오리라곤 생각지도 못한 탓이다.
[힘도 꽤 강한 것 같네.]
나는 화려하게 싸우고 있는 덩치 큰 남자와 교룡의 화면을 확인했다.
덩치 큰 남자는 스스로를 거왕이라고 소개한 남자였다.
기술보다는 힘으로 승부를 볼 것처럼 생긴 큰 덩치와 강해 보이는 근육이 돋보이는 남자였다.
그와 싸우고 있는 교룡은 용의 아류 같은 생명체다.
이무기의 일종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차이가 있다면 이무기와 다르게 다리가 달렸다는 것 정도다.
네빌의 기억 정보에는 뱀을 닮은 동양의 드래곤이라고 저장되어 있었다.
드래곤이나 용이나 똑같은 것이니 놈도 용이라고 볼 수 있지만, 완전한 용은 아니고 용이 되기 직전의 생명체였다.
개구리로 비유하자면 올챙이 상태에서 앞다리와 뒷다리가 나온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꼬리가 다 사라지면 완전한 개구리 성체가 되는 것처럼 교룡도 여의주를 가지고 승천만 하면비바람을 부리고 영험한 힘을 지닌 진짜 용이 되는 것이다.
용은 사악한 괴물이 아니라 선하고 영험한 신수로 통한다.
그렇기에 교룡 또한 본래는 사악한 생명체가 아니다.
오히려 교룡은 건기에 인간들을 위해서 비바람을 일으키는 등 온순하고 정감 있는 생명체에 더 가깝다.
그 덕에 인간들에게도 영험한 짐승이라 하여 영수라 불렸다.
인간을 이롭게하기 때문에 인간에게 이로운 영수이자 괴이의 한 부류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금 교룡의 모습은 완전히 타락한 언데드 그 자체, 복수의 화신이었다.
[잘 싸우네.]
번개를 부리며 공격하는 교룡과 갈색 검기를 마구 뿌리며 대적하는 거왕.
둘의 싸움은 박진감이 넘쳤다.
전설로 회자될 만큼 웅장하고도 화려한 싸움이었다.
[지닌 힘은 네빌보다 조금 아래일까?]
갓 마인드 리치에 이른 수준이거나 그것보다 한 단계 높은수준 같았다.
네빌이 마인드 리치 단계의 최정상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교룡역시 순수 강함만 따졌을 때 모자람이 없었다.
[까메라 5호는 거기 그대로 있고, 6호는 좀 더 오른쪽으로.]
나는 까마귀들을 조종해 위치를 조종한 후 거왕과 교룡의 전투를 다각도에서 확인했다.
거왕은 강했다.
그의 거대한 대도가 허공을 가를 때면 주위의 공기가 모두 밀리며 강한 바람이 일었다.
그 바람이 어찌나 센지 초가집 지붕에 쌓아둔 볏짚이 뭉텅이가 다 날아갈 정도였다.
심지어 그곳에 검기까지 실으니, 갈색을 띤 그의 검기가 품은 위세는 태산마저 가를 것 같았다.
말 그대로 검기의 노도.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위세가 흡사 파죽지세와도 같았다.
[거왕이 지닌 힘은 내가 진화하기 전 단계와 비슷하겠구나.]
공격 하나하나가 정말 엄청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거왕의 강력한 검기도 교룡의 비늘과 뼈를 베기에는 그 힘이 조금 모자랐다.
[어림없다! 동명의 모든 인간은 내 발아래에서 조아리리라!]
교룡은 거왕을 저주하며 입을 벌렸다. 그러자 그 입에서 차가운 냉기가 뿜어져 나와 거왕이 밟고 있던 망루와 지상을 단숨에 얼려버렸다.
극한까지 얼어붙은 망루는 불어 닥치는 바람과 떨어지는 우박을 이기지 못하고 산산이 조각났다.
끔찍할 정도의 냉기에 위험을 느낀 거왕 급하게 호신강기를 펼쳤다.
호신강기로 몸을 지킬 둥근 보호막을 일으킨 그는냉기를 겨우 막더니 눈보라를 베기 위해 대도를 휘둘렀다.
“놈!”
기합과 함께 아래에서 위로 대도를 크게 휘두르자 굵직한 검기가 뿜어져 나갔다.
굵디 굵은 그의 검기는 교룡의 입에서 나오던 눈보라가 반으로 가르면서 나아가 교룡을 노렸다.
그 기세는 흡사 하늘끝까지 닿을 것 같았으나, 교룡과의 거리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기세가 죽었다.
이윽고 교룡의 코앞까지 당도한 순간 눈보라를 가르며 뻗어 나가던 거왕의 검기가 그 힘을 잃은 채 흩어지고 말았다.
“빌어먹을 마괴 같으니!”
거왕은 바닥의 얼음이 자신의 다리를 묶자 힘으로 부수더니 허공을 발로 차며 교룡과의 거리를 벌렸다.
교룡은 미꾸라지처럼 꿈틀거리며 허공을 날았다. 그리고 물러나는 거왕을 노리고 움직였다.
하늘을 미끄러지듯이 내려온 교룡이 순식간에 거왕의 앞에 당도해 날카로운 앞발을 휘둘렀다.
거왕은 급히 속도를 높였지만, 발톱 끝이 그의 등을 강하게 긁고 지나갔다.
“크윽!”
등을 크게 긁힌 거왕이 바닥을 굴렀다.
긁힌 자리의 살점이 찢어졌다. 또한, 교룡의 발톱에 맺혀 있던 독기는 물감처럼 그의 몸 곳곳에 스며들어 온몸을 바늘처럼 들쑤셨다.
“쿨럭!”
자세를 바로잡은 거왕이 기침을 하더니 입으로 피를 토했다.
그 짧은 사이에 독이 몸 곳곳에 침투하며 피가 나온 것이다.
[독인가? 하긴, 저렇게 부패한 몸뚱이라면 그만한 독도 품고 있겠지.]
본래 교룡에겐 독이 없지만, 때때로 증오와 원한을 품은 망자들은 스스로 독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신체가 부패하면서 생기는 오염물질로 독을 쌓는 것이다.
감염되면 신체가 썩는 등생명체들에겐 위험한 독이 많았다.
“빌어먹을….”
거왕이 독을 이기지 못하고 양쪽 무릎을 모두 떨자 교룡이 매섭게 날아가 그에게 앞발을 휘둘렀다.
“크악!”
거왕은 대도를 들어 막았지만, 교룡의 힘이 어찌나 강한지 충돌과 함께 뒤로 밀리고 말았다.
얼어붙은 바닥을 부수고 긁으며 날아간 그는 돼지우리를 비롯해 건물을 몇 채나 무너뜨린 후에야 멈췄다.
“크으…. 한낱 마괴 따위가 감히!”
거왕은 철철 흐르는 피를 멈출 생각도 않고 몸을 일으켰다.
독기가 올라와 핏줄이 보라색으로 물들었지만, 그는 호신강기를 일으켜 몸에 붙은 오물과 독기를 밀어낸 후 다시 검기를 일으켰다.
하지만 그가 다시 만든 검기는 처음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일반인들의 기준에서는 충분히 위협적인 수준이지만, 거왕이라는 이름과 동명의 왕이라는 신분을 생각하면 부족하기 짝이 없었다.
[사라져라! 동명의 왕!]
교룡은 다시 입을 벌렸다.
브레스처럼 차가운 눈보라가 뿜어져 나와 그를 노렸다.
거왕은남은 기운을 짜내 호신강기를 극한으로 펼치더니 검기를 불어넣은 대도를 풍차처럼 돌리면서 휘두르기 시작했다.
대도가 그의 손에서 빙글빙글 돌아가자 교룡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눈보라가 사방팔방으로 튀었다.
냉기가 퍼지며 주변의 대기가 얼어붙고, 도망치던 사람들의 몸과 다리도 얼어붙었다.
“지금이다!”
“거왕을 따르라!”
거왕의 부하들이 튀어나왔다.
충성심 강한 그들은 수세에 봉착한 거왕을 돕기 위해서 검기를 쏘며 교룡을 공격했다.
하지만 그들이 멀리서 쏜 검기는 교룡의 썩은 비늘조차 벨 수 없었다.
가까이에 접근해 공격해도, 사방팔방으로 튀는 눈보라 탓에 선두에 선 부하들의 신체가 얼어붙고 말았다.
“아아악! 내 다리가!”
“내 팔이!”
팔 다리가 얼어붙은 거왕의 부하들이 냉동인간처럼 얼어붙은 채 죽음을 맞았다.
먼저 간 동료들의 죽음을 본 부하들은 사방팔방으로 튀는 눈보라와 냉기를 피하려고 거리를 벌렸다.
거왕이 장악한 동명의 일대가 교룡의 브레스로 한겨울의 호수처럼 차갑고 딱딱하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지동왕을 물리친 거왕의 힘으로도 마괴에 대항할 수 없다는 말인가!”
화엄경을 사용하며 마괴들의공격으로부터 사람들을 구출하고 있던 아라타가 소리쳤다.
밀리기만 하는 거왕의 모습에 애가 타는 것 같았다.
[오래 걸린다 싶더라니 아라타 녀석 도망 안 치고 사람들을 구하려고 싸우고 있던 건가? 보통은 겁먹고 도망치기 바쁠 텐데….녀석, 생각보다 용감하구나.]
두영은 아라타에게 붙인 까마귀를 통해 그의 목소리와 상황을 확인했다.
분위기를 봐선 거왕을 도와 교룡을 쓰러뜨리려는 것 같았지만, 거왕이 당한 지금 아라타의 힘만으로는 교룡을 없앨 수 없었다.
[이대로라면 동명은 저 교룡의 손에 무너질지도 모르겠네.]
교룡은 나처럼 이성이 남아 있지 않았다.
아니,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미 분노와 증오에 휩싸여 사리를 분별할 수 없는 지경이다.
완전한 통제불가 상태인 만큼 동명에 남은 모든 인명을 해치고 이 땅을 피로 물들일 때까지 교룡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네빌 또한, 그 분노와 증오에 몸을 맡겨서 자신을 잃었기 때문에 지금의 나는 교룡의 상태가 어떤지 지금 이 땅에 있는 그누구보다 잘알았다.
[동명의 빛이 완전히꺼질 때까지 살육은 반복되겠지. 아니, 빛이 모두 꺼진 후에도 사람들이 죽어나갈 거다.]
교룡을 위해서도, 동명의 사람들을 위해서도 누군가 반드시 놈을 막아야만 한다.
[하는 수 없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보자.]
그리고 땅을 박차 쑥대밭이 된 동명으로 향했다.
그곳 사람들과 길잡이인 아라타를 구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