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42화.
대나무 숲의 갈림길 앞.
[야. 이제 여기서 어디로 가야 하냐?]
나는 뒤에 있는 아라타에게 물었다.
녀석은 머리에는 혹이 오르고 눈탱이가 밤탱이가 된 채로 내 뒤를 쫄래쫄래 쫓아오고 있었다.
“오, 오른쪽이오.”
[이걸 확! 또 맞을래?]
“오, 오른쪽입니다.”
[그래야지.]
간밤의 정신교육이 효과가 있었는지 아라타는 고분고분해져 있었다.
지난 밤.
아라타의 멱살을 잡고 동굴에 끌고 갔을 때 녀석은광명 목탑에 대해서죽어도 알려줄 수 없다며 버텼다.
하지만 매 앞에 장사 없다고, 구석에 가둬 놓고 때린 데 또 때리면서 구타하자 죽어도 못 말한다던 놈이 어느 순간부터는 살려달라며 바짓가랑이를 잡고서 애걸복걸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죽을 수 없다며, 한 번만 살려달라고 말이다.
싹싹 비는 아라타의 모습에 나는 다시 처음의 타협안을 내놓았다.
광명 목탑까지만 데려다 주면 놓아주겠다는 제안이었다.
아라타는 순순히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실컷 맞고 제안을 받아들이는 바람에 아라타의 머리는 못난이 감자처럼 울퉁불퉁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패는 건데. 괜히 시간 낭비했네.]
시간 낭비에 아쉬움을 느끼며 나는 순종적으로 변한 아라타와 함께 다음 마을로 이동했다.
“저, 저기 한 가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뭐야?]
“육체를 찾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은 없으신지요?”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 이를테면, 비급의 힘을 원하시거나 그런 것은 아니신지…?”
[비급의 힘? 비급에 무슨힘 같은 게 있어?]
“아, 아닙니다. 없습니다! 그런 힘!”
[그렇게 둘러댈 거면 차라리 있다고 말해라. 비급에 무슨 힘이있어서 그러는 거야?]
“벼, 별것 아닙니다.”
[맞기 싫으면 솔직하게 말해라.]
“불로장생의 비밀이 있다고 합니다.”
[불로장생의 비밀?]
“예…. 소승도 정확한 것은 잘은 모르나 반신의 경지에 이르는 깨달음의 비법이 담겨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네빌의 기억 덕분에 이미 아는 이야기였다.
그래도 조금 궁금한 것은 있었다.
[여기도 비급을 노리는 놈들이 있어?]
“그건…. 소승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광명 목탑의 관리자가 아니어서…. 다만, 중요한 비급이니 바라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얻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이참에 비급에 대한 것 좀 이야기해봐. 광명 목탑에 대한 것도.]
“…혹시 아무것도 모르시는 것입니까?”
정말 모르냐는 듯 되묻는 아라타의 모습에나는 다시 네빌의 기억을 훑어보았다.
유감스럽게도 네빌이 가진 기억 중에 광명 목탑에 대한자세한 정보는 없었다.
그저 죽은 자를부활시킬는 힘이 있다는 것과 동토판 불로불사의 비밀이라는 것 그리고 그걸 이용하면 육신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정보가 다였다.
동토도 조금 여행했지만, 그래도 출신이 아르카디아 대륙인지라 동토에 대한 정보 자체는 많이부족한 편이었다.
“정말 모르시나 보군요. 그럼, 광명 목탑을 수호신들에 대한 것도 모르시는 것입니까?”
[수호신들? 그건 뭐야?]
“수호신들은 광명 목탑 자체를 지키는 신령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방위별로 서쪽의 광목천왕(廣目天王), 남쪽의 증장천왕(增長天王), 북쪽의 다문천왕(多聞天王), 동쪽의 지국천왕(持國天王)이 광명 목탑을 수호하고 있지요. 과거에도 불로장생의 비밀을 노리고 광명 목탑에 도전한강호들이 많았지만, 모든 고난을 넘기고도 네 명의 수호신들의 힘을 넘지 못해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수호신들의 인정을 받아 비급의 위치에 도달한 자는 아직 한 사람도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수호신이라는 녀석들 많이 강력한가?]
“아무렴요. 소문에 의하면 과거에는 용과 싸우고도 밀리지 않았다고 했으니 범부는 감히 그들 앞에 당도할 수조차 없을 것입니다. 냉정히 말해서…. 저보다 조금 강한 정도인 두영님의 수준으론 수호신들에 감히 맞서지 못할 것입니다.”
[흠…, 내가 너보다 조금 강하다라….착각인지 모르겠지만, 말에 씨가 있는 것 같구나.]
“예?”
[난 아라타 너보다 조금 강한 게 아니거든. 더럽게 많이 강하지.]
“하. 하. 하. 그, 그렇지요! 두영님은 많이 강하십니다. 하지만 아무리 강한 두영님이라도 수호신에겐 어림도 없을 것입니다. 설사 힘으로 대적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시험에 통과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 힘과 무력이 아니라바라는 것을 얻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아라타가 내 눈치를 보더니 자존심을 세웠다.
수호신을 향한 절대적인 믿음 같은 것이 엿보였다.
녀석의 자존심 같은 건 아무래도 좋지만, 힘과 무력으로 시험을 통과할 수 없다는 말은 조금 궁금했다.
[…그럼, 뭐가 필요한데? 무슨 수로 그 시험이라는 걸 통과해야 하는 거야?]
아라타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다시 말했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시험에 응한 자가 얼마나 순수한 영혼을 지녔느냐입니다.”
[그건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 순수한 영혼을 가진 자에게만 허락되는 힘이라는 뜻입니다. 육체의 강함만이 아니라 정신의고결함과 영혼의 순수함까지. 부정하지 않은 이들이 비급을 얻을 최소한의자격이 있다는 말입니다. 한번 부정한 길로 들어선 두영님에게는 절대 허락되지 않는 것이지요.”
[흠, 그러고 보니 네빌도 순수함에서 포기했었던가….]
그럴싸한 말이다.
하회탈을 벗은 지금 내 얼굴은 단순한 타락 그 이상의 악함이 깃든 괴물 중의 괴물일 테니까.
가족조차 보여주기 무서울 정도였다.
“소승 역시 두영님께서 미련을 가지시고 육체를 찾는 그 심정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헛된 미련은 본인의 영혼을 혼탁하게 하여 고통을 부추길 뿐입니다. 그러니 이제 생에 미련을 벗고 성불하심이 어떠신지요?”
이야기를 하던 아라타가 조심스레 성불을 권했다.
기승전성불이라니.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절대 그럴 순 없다.
[내가 얼마나 순수한지는 거기 가서 판단할 테니까, 너는 길 안내나 잘해라.]
“흠, 역시 말이 통하지 않으시는군요.”
[시끄럽고, 광명 목탑까지 여기서 며칠이나 걸리겠냐?]
“쉬지 않고 간다면, 그믐은 족히 걸립니다.”
[생각보다 기네. 사흘정도로 단축할 순 없어?]
“사흘이라니…. 어떻게 10배나 시간을 단축한다는 말입니까? 천리마를 타고 달려도 불가능합니다.”
[그렇게나 멀어?]
“거리도 거리지만, 동명에서 광명 목탑까지 가려면 배를 타야 해서….”
[배를? 진짜야? 너 이 새끼, 혹시 또 약속 다 해놓고 뒤통수치려는 거 아니야?]
“아, 아닙니다! 광명 목탑으로 가는 길 중 가장 빠른 길은 동명항에서 상촌항을 거쳐 가로질러 가는 것뿐이라 그런 것입니다. 믿어주십시오!”
[진짜겠지?]
“무, 물론입니다. 두영님.”
[좋아. 믿어주겠어. 혹시 또 어제처럼 약속 다 해놓고 뒤통수치면 나중에 국물도 없을 테니까. 명심해.]
“예.”
[그리고 사람들이 쫓아오면 서로 피곤하니까. 잘 피해서 다니고.]
“며,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
[또 뭐?]
“지금 두영님의 몰골로 동명항에 들어가면, 제가 아무리 백성들을 잘 피해 다닌다 한들 결국, 들통이 나지 않겠습니까?”
[음, 그건 그렇지.]
“도망치지 않을 테니. 제게 시간을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그게 무슨 말이야?]
“제가 동명으로 가서 두영님에게 어울릴만한 옷과 가면을 구해오겠습니다. 그때까지만 이곳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나중에 틈을 봐서 내가 먼저 부탁할 생각이었는데, 아라타가 먼저 나섰다.
갑자기 순종적으로 변한 건 좋지만, 한 번 뒤통수를 친 놈이라서 영 믿음이 안 갔다.
아무래도 미심쩍었기에 나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물었다.
[너…, 설마 도망치려고 둘러대는 거 아니겠지?]
“아, 아닙니다. 이미 두영님의 힘을 확인했는데, 소승이 어찌 그런 간계를 부리겠습니까.”
[근데 갑자기 왜 이렇게 협조적이야? 역시 뭔가 꿍꿍이가 있어서 그런 거 아니야?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거나 그런 거.]
“아닙니다. 소승은 그저…. 두영님이….”
끈질긴 내 추궁에 말끝을 흐리던 아라타가 조심스레 말했다.
“행여 백성들을해치지 않을까 싶어서….”
요는 내가 사람들을 해칠까 싶어서 그렇다는 것.
사람들이 시비를 걸면, 결국싸움이 일어날 것이고 그 싸움으로 누군가 죽거나 다치는 게 두렵다는 말이다.
문득 사냥꾼들을 구하기 위해 싸우던 아라타의 모습이 생각났다.
아무래도 거짓말을 하는것 같지는 않았다.
[걱정하지 마라. 아무나 막 잡아 죽이는 그런 사람 아니니까.]
“사람이라니. 애초에 사람도 아니시면서.”
[사람들을 해치지 않는다는 말이야. 토 달지 좀 마라. 확 그냥!]
“죄, 죄송합니다.”
[그래도 네 말도 일리는 있다. 이 꼴로 사람들 사이에 섞이기는 좀 그렇지. 항구까지 가려면 네 말대로 몸을 가리는 편이 훨씬 나으니 다녀와라. 날이 완전히 저물기 전까지는 여기서 기다릴 테니까, 적당한 걸로 지금 구해오도록 해. 다만, 도망을 치거나 허튼수작 부리면 그때는 진짜 재미없을 줄 알아.]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지금 당장 두영님에게 어울리는 가면과 옷을 구해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내 말에 아라타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더니, 대나무 숲을 지나 동명으로 향했다.
특별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역시 미덥지 못했다.
[잘 감시해라.]
나는 네빌의 마법을 떠올려 10마리의 언데드 까마귀들을 소환했다.
몇 마리는 주변 경계를 하도록 하고, 나머지는 아라타를 감시하도록 지시를 내리고 크리스털을 소환했다.
정팔면체 같은 크리스털을 마법으로 쭉 펼쳐서, 예전에 아내가 새로 장만하고 싶다고 한 평면 텔레비전처럼 넓게 펼쳤다.
1번부터 10번까지 까메라들의 화면이 들어왔다.
네빌이 보여주었던 방식보다 훨씬 진보된 방식이었다.
[이래서 평면 텔레비전을 갖고 싶다고 했던 거구나.]
새삼 아내가 평면 텔레비전을 가지고 싶어 했던 이유를 이해하고 아라타의 행동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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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먼저 동명으로 향한 아라타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는 본래 수미산의 승려였던 몸.
그 누구보다도 앞장서 망자들을 호되게 야단치고, 그들을 막아야 할 의무를 지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수미산에서 그가 배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방법이자 올바른 정의이다.
비록 파계승이 되었다고는 하나, 아라타의 이러한 믿음은 아직 변치 않았다.
그렇기에 불도를 닦는 사람으로서 망자인 두영의 지시를 따르는 것은 자신의 믿음과 불도에 큰 죄를 짓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거역하거나 저항을 할 생각도 없었다.
단순히 두영에게 매질을 당하는 것이 무서워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분노한 두영이 언제 본색을 드러내 무고한 자들을 함부로 해칠지도 모르기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간계로 무고한 자들이 다치는 것이 두려웠다.
비록 실수로 파계승이 되었다고는 하나 그는 본래 법력이 높고 장례가 유망한 승려였다.
그 힘과 책임은 어지간한 망자들은 그에게 손도 대지 못할 정도로 강력했으며, 당연히 만인의 모범이 되어야 했다.
더욱이 지금은 해골물을 마시면서 깨달음의 깊이까지 더욱 깊어졌으니.
법력과 심득은 수미산에서 수행하던 때보다 훨씬 더 강해진 상태다.
그런데, 그렇게 강해진 법력을 가지고서도 아라타는 두영을 어찌하지 못했다.
피해라도 조금 입혔더라면 이렇게겁을내지 않았을 테지만….
너무나 압도적으로 당했기 때문에 아라타는 두영이 평범한 망자가 아님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더 두려운 것이다.
혹시라도 그토록 강한 두영이 진노하여 힘을 마구잡이로 휘두르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될지.
발전을 이루고 있는 동명의 바다가 사람들의 피로 물들 것이 분명했다.
‘내가 당한 마당에 동명의 그 누구도 이 망자를 물리칠 수 없다. 망자의 바람대로 움직이는 것은 꺼림칙하나, 무고한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는 일. 다행히도 기존의 망자들과 달리 이성을 가지고 행동하고있으니, 그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하고 심기를 거스르는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도록 하자. 어차피 광명 목탑으로 가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곳에서 수호신들에게 강제로 성불 당할 수밖에없을 테니까.’
“그 망자를 목탑까지 데려다 주는 것이 나와 세상 그리고 망자 두영을 위한 길이리라….‘
아라타는 마음속으로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부처께서 자신에게 내려준 최대 시련일지도 모른다 생각하며 마을을 향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