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33화.
[1호! 괜찮아!?]
나는 쓰러진 1호를 얼른 찾았다.
내 부름에 1호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지금 1호의 몰골은주둥이의 윗부분이 반절 잘려나가 있었다.
또한, 망가진 주둥이와머리 부근에서는 검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공격당한 주둥이의 윗부분에서 신성력이 깃든 새하얀 빛이 물감처럼 진득하게 붙어서 1호의 뼈마디를 침식하고 있었다.
빛이 침식할 때마다 1호의 뼈가 염산에 들어간 것처럼 차츰차츰 부식하며 녹았다.
[크오오오!}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인지 1호는 앞발을들어 자신의 주둥이를 긁으며 그 산성을 떼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앞발을 대는 바람에 녀석의 얼굴뿐 아니라 두 앞발에서도 검은 김이 올라왔다.
[크아앙!]
벌에쏘인 강아지처럼 1호가 얼굴을 비비며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빌어먹을 언데드 같으니!”
먼 거리에서 마법으로 원뿔형 무기를 회수한 성기사가 나와 1호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뭐야. 저것들은 성기사잖아. 저것들이 왜 여기 있어? 성녀 찾으러 간 게 아니었어?”
“흠, 뭔가 좋지 않은 일이라도 당한 것 같은데요?”
아드리나의 말에 크릭이 여덟 성기사들의 모습을 살피며 답했다.
그들의 대화에 나는 기억속에서 성기사들에 대한 정보를 황급히 찾았다.
다행히도 일리오스 교국과 알고르 교국의 성기사들은 유명해서 네빌이 준 기억뿐 아니라 망자들을 잡으며 얻은 기억에 그 정보가 낱낱이 기록되어 있었다.
나는 성벽 근처에 있는 8명의 기사를 보았다.
좌측 진영부터 설명하자면.
우리 1호를 공격한 원뿔형 랜스를 든 놈의 이름은 광명의 성기사코르넬리오였다.
그는 태양을 상징하는 일리오스 교국의 심벌이 새겨진 방패를 등에 메고 있으며, 온몸을 단단한 갑옷으로 중무장하고 있었다.
잘생긴 근육질의 미남자지만, 기억 속의 그는 죄인을 끝없이 혐오하며 언제나 악의 단죄에 목말라 있는 광인 성기사였다.
일리오스 교국의 교황과 신을 향한 절대적인 충성심으로 유명한 자였다.
그런 그를 중심으로 우측에는 각각 영광의 성기사 글로리아가.
그 우측에는 창공의 성기사 라파엘이 있었다.
반대쪽에는 개척의 성기사 가브리엘이 있었다.
글로리아는 여성으로 코르넬리오와 같은 중무장에 마찬가지로 태양을 상징하는 심벌이새겨진 방패를 들고 있었다.
무기는 검이며 한눈에 봐도 아름다운 외모의 미녀였다.
금발에 피부는 조금 까무잡잡한 것이 남미나 멕시코 쪽 이국 미녀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라파엘과 가브리엘은 중무장을 한 두 성기사와 달리 가벼운 무장을 한 남자들이었다.
무기는 각각 검 한 자루씩만 지니고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얼굴을 드러낸 두 사람과 달리 가면을 쓰고 있었다.
쌍둥이처럼 똑같은 가면이었다.
등 뒤에는 천사처럼 새하얀 날개가 자라 있었다.
크고 넓은 날개인데, 1쌍이 아닌 2쌍의 날개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이어서 알고르 교국의 성기사들을 보았다.
일리오스 교국의 성기사들처럼 알고르 교국의 성기사들 역시 중무장을 한 인원이 둘 있었다.
중무장을 한 성기사 2명 중 한 명은 긴 창과 초승달을 상징하는 문양이 새겨진망토를매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평화의 성기사 솔로몬.
성기사들 중 가장 창을 잘 다룬다고 알려진 기사다.
다른 성기사들과 달리 평화롭고 인자함이 넘치는 성기사로 유명할 뿐 아니라, 몬스터라 하더라도 필요하지 않으면 구태여 살생을 하지 않는 인자한 성격으로 유명했다.
그의 우측에 있는 엄청난 갑옷 차림의 성기사는 바라그.
왼팔과 등에 방패를 매고 있으며, 한 손에는 망치를 들고 있었다.
맞으면 뼈도 못 추릴 것처럼 거대한 망치였는데, 그 망치를 아무렇지 않게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힘이 장사인 모양이었다.
이런 둘과 달리 나머지 둘은 가벼운 무장을 하고 있었다.
먼저 축복의 성기사 바루그는 접시처럼 작은 방패에 강철처럼 튼튼한 재질의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눈매는 매우 가늘며 사기꾼에 어울릴 것 같은 인상이었다.
마지막 자비의 성기사 나자렛은 한 손에는 성서를 다른 한 손에는 한손검을 들고있었다.
네빌의 기억 정보에 의하면 신앙을 기반으로 한 두 교국의 성기사들은 각자의 이명에 걸맞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하나하나가 신의 은혜를 받아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한 신성력을 지녔으며 지닌 신성력이 아닌 기본적인 신체능력이나 기술 또한 남다르다고 한다.
[기분 나쁜 놈들이 왔군.]
성기사들의 등장에 스펙터 백작이 투명한 눈살을 찌푸렸다.
“뭔가 이상한데, 저놈들이 왜 여기 있지? 성녀 찾으러 간 거 아니야?”
“모르지 이 데스나이트와 본드래곤을 쫓아 온 걸지도.”
“확실히, 이 정도로 강력한 언데드들이라면…. 성기사들이 쫓을 만도 하겠네. 그런데 성기사들은 아드리나 말대로 성녀를 탈환하러 갔을 텐데…, 이렇게 빨리 오긴 힘들어. 설사 오더라도 지원부대 없이 성기사들만 온 건역시 뭔가 이상해.”
론노의 추측에 크릭이 아드리나를 보며 답했다.
[설마…?]
제대로 사태파악을 하지 못하는 세 영웅의 모습에 스펙터 백작이 성기사들을 한 번 훑어보더니 그들의 갑옷이 멀쩡하다는 것을 깨닫고 하늘을 보았다.
바람이 불어 폭발로 생긴 연기가 다 날아갔을텐데도 아직도 하늘은 검게 물들어 있었다.
특히, 북쪽 하늘이 오염이라도 된 것처럼 심하게 어두웠다.
범상치 않은 기운을느낀 스펙터 백작이 마침내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설마 네빌이 이곳에 온 것인가!?]
“뭐!? 네빌이!?”
“진짜!?”
아드리나와 론노가 충격에 빠진 목소리로 외쳤다.
네빌이 이곳에 올 것이라곤 꿈도꾸지 못했기 때문에 스펙터 백작의 추측에 살짝 충격에 빠졌다.
[그래. 확실하다. 어디서 갑자기 언데드 놈들이 나타났나 했더니, 네빌이 이곳에 온 것이다! 그래서 교국의 성기사들도 이겨까지 온 것이고!]
“네빌이 여길?! 왜? 성녀 어쩌고?”
크릭이 말했다. 그러자 아드리나와 론노가 답했다.
“성기사들이 여기까지 쫓아온 걸 보면…. 네빌이 하멜 성을 버리고 이곳으로 도망을 친 것일 수도 있지.”
“성녀는 봉인으로 못 움직이는 걸로 알고 있어. 네빌이 성녀를 포기했을 리는 없으니까, 봉인을 풀리고 움직였다는 가능성이 가장 현실적이야.”
네 영웅들은 하나 되어 어두운 기류가 뿜어져 나오고 있는 북쪽을 보았다.
깊어지는 네영웅의 심증에 답을 주듯 성기사 코르넬리오가 외쳤다.
“망자여! 네빌과 성녀님은 어디 있느냐! 지금 당장 성녀님을 내놓아라!”
“역시!”
격분한 코르넬리오의 외침에 네 영웅의 시선이 북쪽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네빌이 봉인을 푼 후 성녀를 데리고 하멜 성을 빠져나와 그녀와 함께 모종의 이유로 로서 왕을 공격하러 왔다고 추측하고 있었다.
“그렇담, 이 데스나이트랑 본드래곤은 우리 발목을 잡기 위한 미끼였나?”
크릭의 조심스러운 추측에 아드리나와 론노가 다시 외쳤다.
“어쩐지! 자꾸 쫄래쫄래 도망치더라니!”
“일부러 병사들 틈에 섞여서 시간만 끌고 있던 거였구나!”
추측을 마친 영웅들이 매서운 눈을 하고서 날 쏘아보았다.
격한 시선에 나는 손뼉을 치며 알려주었다.
[저, 정답입니다! 과연 영웅들입니다. 다들 머리가 아주 좋아요. 대단합니다.훌륭해요. 아주 멋져요. 최고입니다!]
나는 그들을 칭찬했다.
다 들통 난 마당에 굳이 모른 척을 할 필요 없다.
게다가 이미 성기사가 여덟이나 합류한 마당에 이 이상 발목을 잡을 자신도 없으니 그냥 사실대로 부는 게 좋았다.
본래 범죄자를 심문할 때도 빨리 이실직고하는 게 서로 편하기도하니까.
빨리 불고 광명 찾는 게 좋으리라. 다만, 성녀가 네빌과 함께 있다는 그들의 착각은 그대로 넣어두는 것이 좋다.
그래야 일리나와 엘리아나가 안전할 테니.
내 칭찬에 네 영웅은 표정을 구겼다.
박수까지 쳐주며 극찬했는데 표정이 어두운 걸 봐선 내가 장난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 빌어먹을 산송장이 지금까지 우릴 가지고 논 거냐!”
“이 썩어빠진 언데드 같으니! 가만두지않겠어!”
아드리나와 론노가 불같이 화를 내며 활을 들고 바위를 소환했다.
한편, 스펙터 백작과 크릭은 다른 움직임을 보였다.
[아직 불사자의 비밀을 아직 확보할 가능성이 남았다는 것인가. 충성심을 보일 기회로군! 크릭! 서둘러라!]
“어쩔 수 없지. 아가씨들 미안해!”
스펙터 백작은 유령기사들과 함께 곧바로 하늘을 날아 북쪽으로 달렸다.
두 아가씨의 곁에 있던 크릭 역시 창으로 바닥을 찍어 폭발을 일으켜 연막을 피우더니 스펙터 백작의 유령기사 위에 올라타 북쪽으로 향했다.
[어딜 가! 좀 더 놀아야지! 1호, 브레스!놈들을 막아!]
[크아앙!]
1호가 깨진 주둥이로 급히 브레스를 쏘아 두 영웅의 앞을 가로막았다.
두 영웅이 브레스에 가로막혀 멈칫하는 사이 나는 1호의 머리로 올랐다.
성기사들이 합류한 이상 더시간을 끄는 것은 무리다.
이놈들 보다먼저 네빌이 있는 곳으로 합류해야 했다.
[서둘러! 1호! 우리가 먼저 도착해야 해!]
[크아앙!!]
“어딜 가는 것이냐!!”
내가 도망치려 하자 이번엔 성기사들이 달려와 공격했다.
신성력이 가득 담긴 코르넬리오의 랜스가 날아오고, 휘황찬란한 금빛을 머금은 검기가 쏟아졌다.
그것으로 모자라 검은 하늘을 뚫고서 금빛을 머금은 두꺼운 번개가 우리들의 머리 위로 떨어지기까지 했다.
매섭게 쏟아지는 공격에 놀라 검기를 쏘았지만, 전력을 다한 검기는 무수히 많은 황금빛 검기에 밀려 금방 사라지고 말았다.
상식적으로 여덟이나 되는 성기사들의 공격을 나와 1호 둘이서 공격을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제길!]
[크아앙!!]
성기사의 랜스에 한쪽 날개를 잘린 1호가 바닥으로 추락하고, 육중한 몸에 눌린 건물들이 도미노처럼 와르르 무너졌다.
무너진 잔해들에 파묻혀 겨우 몸을 일으켰으나, 다시금 우리가 추락한 자리로 폭풍우 같은 검기와 번개가 떨어졌다.
마치 저주받은 망자에게 신이심판을 내리듯이….
[망할!]
이미 죽은 몸이지만, 이번에야말로 정말 끝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그때.
[크앙!]
1호가 육중한 몸을 움직였다.
아무런명령을 내리지 않았는데도 1호는 스스로 앞발과 거대한 몸으로 날 감쌌다.
마치 어린아이를 보호하는 부모처럼 자신의 몸을 방패로 삼은 것이다.
연거푸 떨어진 공격은 1호에게 집중되었다.
누적된 충격에 1호의 남은 반대쪽 날개와 꼬리, 다리 등 모든 뼈가 으스러지고 녹아내렸다.
[1호!]
[크앙!]
뼈가 부서지고, 녹아내리는 고통 속에서 1호는 엉망진창으로 망가진입을 크게 열었다.
그리고 녀석의 가슴에서 시작된 녹색 불꽃이 녀석의 목을 타고 마지막 불을 뿜었다.
마지막 에너지까지 쥐어짠 강력한 브레스는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던 스펙터 백작과 크릭의 꼬리를 노리고 있었다.
“지긋지긋한 녀석!”
1호의 마지막 브레스에 몸을 돌린 크릭은 무섭게 날아오는 브레스를 향해 꾹 쥐고 있던 창을 투척했다.
콰아아앙!!
그의 창과 1호의 마지막 브레스가 부딪치면서 다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규모의 충격이었기에 각 영웅은 충격파에 거리를 벌리며 방어에 집중했다.
“바람의 장벽!”
“바위 방벽!”
“혼령 결계.”
“태양의 방패!”
“달의 방패!”
아드리나와 론노가 뭉쳐서 방어하고, 스펙터 백작은 크릭을 감싸며 결계를 펼쳤다.
일리오스와 알고르 교국은 글로리아와 바라그가 소환한 거대한 태양의 방패와 달의 방패 뒤에 몸을 숨겨 자신을 지켰다.
내게는 아직 네빌이 걸어준 보호 마법이 남아 있어서 괜찮았지만, 1호는 달랐다.
1호의 몸을 지키는 보호마법은 진작에 다 소진된 상황.
이제 스스로를 지킬 힘도 방어 마법도 남아 있지 않았다.
[1호야!]
폭발의 충격은 건물과 민간인 그리고 1호를 고스란히 덮쳤다.
폭발에 휘말린 건물들은 잔해가 되어 사라졌고, 충격파에 노출된 건물과 사람들은 폭풍에라도 휩쓸린 것처럼 힘없이 부서지며 날아갔다.
1호 역시 누적된 충격과 이어진 충격파를 버티지 못하고 서서히 붉은 안광을 잃었다.
녀석의 몸도 점점 가루가 되어 산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