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32화.
쾅!
1호의 대포알 브레스와 크릭의 창이 충돌하며 일어난 폭발이 강력한 충격파를 만들었다.
위력이 어찌나 강력했던지 충격파만으로도 뼈로 된 온몸이 전동마사지 의자에 앉은 것처럼 덜덜덜 떨릴 정도였다.
폭발이 만든 흙먼지와 잿가루로 주변을 살필 수가 없었으며, 하늘은 맑은 물에 검은 물감 한 방울이 떨어진 것처럼 검은 버섯구름이 자리를 차지했다.
뭉게뭉게 피어오른 버섯구름은 마치 뉴스와 영화에서만 보았던 핵무기의 폭발 장면 같아 위협적으로 와 닿았다.
검을 날이 아닌 면으로 휘두르면서 먼지와 잿가루를 밀어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폭발에 휘말린 연합군의 병사와 기사들 대부분이 충격파로 장기가 상했는지 피를 토한 채 쓰러져 있었고, 생존한 일부만이 고통에 찬 신음을 뱉고 있었다
아직 걷히지 않은 연기로 영웅들의 모습은 찾기 힘들었지만, 거대한 1호의 모습은 확실히 보였다.
비록 아드리나가 쏜 화살들과 폭발로 주둥이와 갈비뼈, 어깨 관절 등에 금이 가서 전치 30년의 진단이 내려질 것처럼 몸이 망가져 있었지만 그래도 1호는 아직 건재했다.
이 거대한 폭발 속에서 사망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크아앙!]
1호는 자신의 건재함을 포효로 증명하며 몸을 일으켰다.
늠름한 그 모습에 나 역시 검을 들고서 경계를 섰다.
1호가 포효했으니 분명 위치를 가늠한 누군가의 공격이오리라.
그 예상이 적중하며 연기 속에서 빛이 번쩍였다.
검은 연기를 몰아내며 나타난 반짝이는 빛은 아드리나의 단창이었다.
그녀의 단창은 연기를 꿰뚫으며 어마어마한 속도로 1호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날아오는 기세가 흡사 파죽지세와도 같았다.
[저 여자가 멀쩡하다면, 다른 놈들은 말할 것도 없겠네!]
나는 아드리나만이 아니라 다른 영웅들도 건재하리라 추측하며 그녀의 공격을 쳐냈다.
하지만 검이 닿기 전, 그녀의 창이 분리되더니 아까처럼 넓게 퍼졌다.
그물망처럼 넓게 퍼지며 1호를 노리는 단창의 파편들.
내가 아닌 1호를 중점적으로 노린 공격이다.
아무래도 강력한 화력을 지닌 1호부터 처치하고 나를 제거할 요량인 것 같았다.
하지만 처음도 아니고 같은 공격에 또 당하지 않는다.
[1호! 날개 접어!]
나는 즉시 몸을 돌리며 외쳤다.
그리고 날개를 접는 1호의 모습을 확인한 후 대각선 아래 방향으로 검을 한번 내리침과 동시에 다시 반대쪽 대각선 방향으로 올려치며 검기를 쏘았다.
마구잡이로 흩어지는 검기가 아니라 V자를 이룬 거대한 검기가 넓게 퍼지면서 날아갔다.
내가 쏜 검기는 유도탄처럼 흩어져 1호를 노리는 아드리나의 창날을 정확히 베었다.
몸을 일으킨 1호를 중심으로 V자 모양의 땅줄기가 생겼고, 검기에 닿은 창날들이 그힘을 잃고 잘려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게 되네.]
쓰러뜨린 망자들의 기억 중에 이런 식으로 검기를 쓰는 기억이 있어서 해보았는데,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쉽게 성공할수 있었다.
“짜증나는 해골이네!”
V라인을 그린검기가 자신의 창날들을 쳐내자 아드리나가 격분하는 소리가 들렸다.
[크아앙….]
1호는 자신의 발밑에 그려진 V라인 검기과 아드리나를 보더니 조심스레 날개를 펼치더니 몸을 크게 회전했다.
거대한 1호가 그 자리에서 한 바퀴 돌자 강한 돌개바람이 일어났고, 주변의 연기가 모두 흩어졌다.
일부러 연기를 치운 것이다.
적의 숫자가 많아서 연기 속에 숨어 공격을 피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지만, 그것도 같은 사이즈일 때의 이야기다.
1호처럼 덩치가 크면 오히려 이런 가림막이 상대의 공격을 피할 때 더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1호 역시 이를 알기에 바람을 일으켜 연기를 걷어낸 것이리라.
“멀쩡하네.”
“잘 좀 쏘지? 신격의 아드리나라는 명성이 울겠다!”
“닥쳐! 저 해골바가지 아니었으면 진작 끝났어!”
창을 회수한 크릭의 말에 아드리나가 소리쳤다.
그 사이 그의 옆에 있던 론노가 작은 골렘 뒤에서 1호 못지않게 거대한 토사 골렘을 소환했다.
공중에는 1호가 날아오를 것을 대비해 스펙터 백작이 대기 중에 있었다.
[아무래도 넷이서 일시에 몰아치는 것이 좋겠군. 다들 준비해라.]
“언제는 혼자 데스나이트를 상대하겠다더니.”
스펙터 백작의 말에 빈정대는 론노.
백작은 화내지 않고 조용히 유령 군대를 일으켰다.
그를 중심으로 뭉친 유령 군대가 빠르게 질주를 시작하자 1호가 다시금 브레스를 쏘기 위해 가슴으로 마력을 모았다.
본능적인 반응이겠지만, 내 생각에 이는 좋지 않은 판단 같았다.
적은망자가 아닌 인간이다.
하물며, 평범한 병사도 아닌 영웅 레벨의 인간들.
몇 번이고 같은 방식의 공격이 통할 리 없었다.
분명히 1호가 다시 브레스를 사용할것을 대비해 이미 대응할 방법을 고안했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발목을 잡는 것, 무리해서 싸울 필요는 없다.
[1호야, 반격하지 말고 그냥 튀어!]
[크앙!?]
내가 먼저 뒤쪽으로 달리며 외치자 1호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브레스를 멈추고 명령대로 내 뒤를 졸졸 따라왔다.
[좀 더 자세 낮추고! 아기 걸음으로 아니, 사족보행으로 따라와!]
[크아앙!]
“서, 설마 도망치는 거야?”
“귀찮게!”
우리가 갑자기 달아나자 당황한 4명의 영웅이 우리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아드리나! 론노! 빨리 공격해!”
크릭이 외쳤다.
그의 부름을 받은 아드리나는 다시 창을 활에 걸었지만, 쏘지 못했다.
이는 바위를 소환한 론노 역시 마찬가지였다.
“젠장! 할 수 없어!”
“마찬가지야.”
무지막지한 힘을 가진 2명의 영웅은 추적만 할 뿐, 제대로 된 공격은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와 1호가 도망치는 방향이 연합군이 득실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벽도 가볍게 무너뜨리는 그들의 힘이라면 수많은 연합군 병사들을 다치게 할 수 있다.
아군이라면 대의를 운운하며 어쩔 수 없다는 변명이 통하겠지만, 동맹군들이 뒤섞여 있다.
동맹국의 병사와 기사를 자칫 다치게 하면 외교적으로 좋지 않은 상황에 몰릴 수 있으니 감히 공격할 수 없다.
당연하게도 이 상황은 나나 1호에게 더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영웅들의 고충을 모르는 연합군의 빨강, 노랑, 주황색의 병사들은 나와 1호의 등장에 개미떼처럼 모여들었다.
그들은 화살을 쏘고, 창을 던지며 강하게 저항했다. 그러나 그들이 가진 화력은 영웅들의 힘에 한참 못 미쳤기 때문에 나와 1호에게 큰 위협이 되지 못했다.
이를 아는 기사들과 마법사들이 검기와 마법을 동시에 쏘았지만, 이 역시 대책이 있었다.
[암흑오라!]
1호의 주위로 모이는 기사와 마법사들을 향해 범위를 최대치까지 확산한 암흑오라를 사용했다.
촉수처럼 구체적인 형태를 띠고뻗어 나간 암흑오라가 기사와 병사들을 감싸자 그들의 몸은 공포 휩싸여 얼어붙었다.
1호와 날 노리고 날아드는 검기와 마법의 화력 역시 떡락했다.
[좋아! 1호! 계속 달려!]
[크앙!]
약해진 적들의 공격을 무시한 채 나는 1호와 함께 질주했다.
앞을 가로막는 병사들은 몸으로 부딪쳐서 쓰러뜨리고, 멀리서 공격하는 놈들은 넓게 퍼트린 암흑오라로 굴복시키며 계속 시간을 끌었다.
도마뱀처럼 사족보행을 하며 따라오는 1호의 늠름한 발걸음에 죽다 산 병사들이 치이며 여기저기 마구 날아다녔다.
건물 벽, 지붕, 마구간, 돼지우리, 똥통 등 1호의 발에 치인 병사들이 성 곳곳에 떨어졌다.
[비열한 놈! 도망치지 말고 싸워라!]
쓰러지는 병사들을 본 스펙터 백작이 노성을 터뜨리며 유령기사들을 전진시켰다.
아드리나, 론노, 크릭 역시 연합군 병사들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위치를 잡으며 신중하게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다시 단창이 날아오고, 바위가 떨어졌다.
그러나 아드리나가 쏜 단창은 내가 막고, 바위는 1호가 몸을 크게 움직여 쳐내거나 부수었다.
힘들게 소환한 것으로 보이는 1호 사이즈의 토사 골렘은 움직임이 느린데다병사들을 밟을 우려가 있어 접근도 못 하고 있었다.
[좋아. 이대로만 가면 충분히 시간 벌 수 있겠어!]
나는 다시 한 번 아드리나의 공격을 막았다.
막아낸 단창과 그 파편이 애꿎은 동맹국 병사들만 휩쓸었다.
이에 론노가 나섰지만, 그녀의 바위 역시 나와 1호에게 피해를 주기보다 병사들에게 파편을 튀길 뿐이었다.
“뭐하는 거야?! 우리 측 기사들이 다쳤잖아!”
[좀 더 주의해라!]
“큭! 누가 몰라?! 저놈들이 저렇게 끌고 가는 걸 어쩌라고!”
“맞아! 이게 왜 우리 잘못이야! 저놈 잘못이지!”
크릭과 스펙터 백작이 화를 내자 아드리나와 론노가 혀를 차며 물러났다.
“비켜!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대들은 뒤에서 지원하라!]
두 사람의 고충을 들은 크릭과 스펙터 백작은 속도를 높여 접근했다. 그리고 유령들과 함께 번갈아가며 나와 1호를 공격했다.
크릭의 창과 검이 맞부딪칠 때마다 강력한 폭발이 일어나 양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에 나는 사각의 기술을 사용했다.
바닥의 모래를 모아 펼치면서 크릭의 폭발 공격의 위력을 감소시켰다.
동시에 예전에 내가 당한 것처럼 크릭이 지상으로 내려가는 자리에모래웅덩이를 만들어 발목을 잡았다.
“파창(波槍)!”
영리한 크릭은 창끝으로 모래를 폭파해 그 반발력으로 모래 웅덩이를 빠져나갔다.
[저런 묘수가, 역시 영웅이라 반사 신경이 남다르군.]
무식하게 마력을 방출한 나와 달리 영리하면서도 빠른 판단력이다.
존경심이 생길 정도지만.
[그래도 이걸로 더는 쉽게 접근하지 못하겠지.]
발이 빠지는 것을 안 그는 이제 쉽게 접근할 수 없을 것이다.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는 것은 하늘을 나는 스펙터 백작과 그의 유령기사뿐이다.
그러나 적 영웅 셋이 접근하지 못하는상황에서 스펙터 백작 혼자서 나와 1호에게 접근하는 것은 상당한 부담이 되리라.
[크크큭! 어디 공격해 봐라!]
“저 망할 데스나이트가! 야! 본드래곤을 노려!”
“나도 아니까, 명령하지 마! 할망구!”
짜증과 화가 오를 대로 오른 아드리나와 론노가 몸집이 큰 1호를 집중적으로 노렸다.
나는 모래와 암흑오라 그리고 검기를 활용해 둘의 공격을 방어했다.
사각의 모래를 다루는 기술이 특히 상당한 도움이 되어서 잔기술로는 내 방어를 뚫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큰 기술을 사용하면 내가 그들의 연합군 쪽으로 튕겨내 막대한 피해를 끼치니, 저들은 병사들이 진형을 다시 갖추기 전까지는 위력이 약한 잔기술밖에 쓸 수 없다.
평범한 생명체라면 잔기술이라도많이 누적되면 쓰러질 테지만, 나와 1호는 언데드다.
뼈마디가 다 부서지지 않는 이상 끝까지 싸울 수 있다.
1호가 적들을 향해 꼬리를 휘둘렀다.
거대한 꼬리에 치인 기사들과 병사들이 날아가 바닥과 건물로 떨어지고, 아너스 왕국의 남문은 태풍이라도 맞은 것처럼 아수라장이 되었다.
분노한 크릭이 폭발을 일으켜 꼬리의 끝 부분을 무너뜨렸지만, 꼬리 관절 몇 개가 망가진 정도로는 1호를 완전히 막을 수 없다.
[좋아! 이런 식으로 계속 버티는 거야! 잘하고 있어, 1호!]
[크아앙!!]
내 칭찬에 1호가 기뻐하며 포효하는 그때였다.
돌연 기다란 원뿔형의 무기가 날아와 1호의 주둥이를 강타했다.
쿵!쿵! 쿵!
총 세 번의 충격음이 퍼졌다.
첫 번째는 갑자기 날아온 원뿔형 무기와 1호의 주둥이가 부딪치면서 난 소리였고, 두 번째는 부서진 뼛조각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난 소리였다.
마지막은 충격을 받은 1호의 몸이 건물을 무너뜨리며 울린 소리였다.
나는 아드리나와 크릭 그리고 스펙터 백작의 공격을 막으면서 원뿔형의 무기가 날아온 곳을 보았다.
[누구?!]
“감히, 하찮은 언데드 따위가 우릴 우롱하다니.”
“그 죄는 심연보다 깊나니.”
“지금 당장 성불하여 속죄하라!”
아직 무너지지 않은 남쪽 망루 위, 새하얀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보였다.
각기 다른 무기를 든 여덟 명의 기사들.
노랗고 하얀빛을 머금은 화사한 자태를 가진 자들이었다.
갑옷과 투구에는 멋들어진 문양과 빛이 가득했으며 그들의 몸에서는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성스러움이 느껴지고 있었다.
네빌이 주입한 기억이 멋대로 알려주었다.
그들은 바로 신성력을바탕으로 한 일리오스와 알고르 교국의 영웅들이라고.
두 교국의 여덟 영웅!
하멜 성으로 향한 그들이 갑자기 아너스 왕국으로 돌아와 참전한 것이다.
[하필 지금!]
상성이 좋지 않다.
잘 모르겠지만, 저놈들은 위험하다.
직감이 그렇게 경고했다.
저들의 몸에서 넘쳐나는 신성력을 보면 알 수 있다.
지금의 나는 저들의 신성력을 절대 감당할 수 없다.
격돌하는 순간 그대로 강제 성불 당하고 말리라.
“망자는 망자답게.”
“관속으로 돌아가라.”
힘을 일으키며 움직이는 두 교국의 영웅들.
[좆됐다.]
그들의 등장으로 전쟁은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