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30화.
[하늘까지 날다니. 완전 반칙이잖아.]
[돌격하라!]
사방으로 퍼진 스펙터 백작와 그의 유령 군대.
놈들은 더욱 속도를 높여 나와 1호를 사방팔방에서 덮치기 시작했다.
[1호! 오른쪽으로 브레스! 왼쪽은 내가 저지한다!]
[크앙!]
나는 왼쪽으로 검기를 발사했다.
마력을 넓게 퍼트리면서 검을 휘두르자 검기가 제비가 떼를 지어비행하듯이 날아가며 유령들을 노렸다.
명령을 받은 1호도 머리를 흔들며 우측으로 브레스를 뿜었다.
흥분한 용이 마구 화염을 흩뿌리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흩어지며 날아가는 검은 검기와 녹색 화염에 우리를 포위하려던 유령기사들 일부가 몸이 잘리고, 녹으며 사라졌다.
하지만 그렇게 사라진 유령기사들보다 회피에 성공한 유령들이 더 많았다.
[소용없네. 어쩔 수 없지! 위로 가자!]
[크릉!]
1호가 다시 날개를 움직였고, 뼈만 남은 날개가 펄럭이자 단숨에 옅은 구름이 있는 곳까지 몸이 솟구쳤다.
[쫓아라!]
스펙터 백작이 선두에서 속도를 높였다.
1호 못지않게 빠른 스펙터 백작들의 유령들!
그들은 어느새 꽁지까지 따라붙더니 검을 휘둘렀다.
곧이어 날카로운 연두색 검기가 날아와 일부는 1호의 몸을 때렸다.
빗나간 일부는 머리 위 하얀 구름을 조각내며 사라졌다.
[마법 장벽!?]
검기로 1호를 맞춘 스펙터가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1호의 몸에 검기가 닿는 순간, 불투명한 마법 장벽이 1호를 보호해주었기 때문이다.
네빌이 미리 걸어준 방어 마법이 작동한 덕이리라.
[말을 하는 것부터 평범한 데스나이트가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본드래곤을 다루는 것으로 모자라 마법까지 사용할 줄이야! 망자여, 대체 네 정체가 무엇이냐! 대체 정체가 무엇이기에 마법까지 쓸 수 있지?]
방어 마법을 내가 걸어준 마법이라고 착각한 것인지 스펙터 백작이 흥분해서 소리쳤다.
굳이 답할 필요가 없었기에 나는 쫓아오는 유령기사들을 공격하고 1호에게 알아서 잘 싸우라는 명령을 내렸다.
일일이 명령을 내리면 좋겠지만, 지금 내 능력으로는 그것이 힘들어 어쩔 수 없었다.
[크릉!]
내 말을 이해한 1호는 스펙터 백작과 유령들을 무시한 채 동쪽 성벽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성벽 위를 아슬아슬하게 활강하며 입에서 브레스를 뿜었다.
피아구분을 할 필요 없이 모두 적이었기 때문에 1호의 브레스에는 자비가 없었다.
1호는 자신의 시야에 보이는 모든적을 향해 브레스를 쏴대기 시작했고, 갑작스러운 본드래곤의 등장과 브레스 공격에 놀란 연합군과 아너스 왕국군은 비명을 지르며 녹아내렸다.
[이 잔인무도한 놈!!]
녹아내리는 연합군의 모습에 스펙터 백작이 화를 감추지 않았다.
특히 노란 옷을 입은 자신의 왕국 소속 기사와 병사들이 불에 타 죽는 것을 보자 그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전쟁이나 일으키는 너희보단 낫다!]
아너스 왕국의 군대를 학살하던 스펙터 백작의 모습을 떠올리며 나는 그에게 검기 다발을 선사해주었다.
흩어지며 날아오는 검은 검기에 스펙터 백작의 유령들이 튀어나오더니 그의 앞에서 투명한 몸들을 겹치며 내가 쏘아 보낸 검기들을 모두 쳐내었다.
한 장소에 수십의 유령들이뭉쳐서 검을 휘두르니 한 사람이엄청나게 빨리 검을 휘두르는 것만 같이 느껴졌다.
공격을 다 막은 유령기사들은 거대한 하나의 검기를 만들어1호를 노리고 휘둘렀다.
[귀찮은 유령들 같으니!]
1호를 대신해 나는 검기를 막으며 버텼다.
바로 그때.
펑!!
[크오오오!]
[이런!]
위쪽에서 엄청난 폭음과 함께 나와 1호의 몸이 꺾였다.
다시 공중으로 치솟으려던 1호의 등으로, 어느새 솟구쳐 오른 크릭이 창을 내리친 것이다.
마법 장벽 덕분에 큰 피해는 없었으나, 너무 강한 폭발과 그 충격파로 몸이 떨어지고 말았다.
쾅!
1호의 몸이 바닥으로 떨어지자, 덩달아 나도 바닥으로 떨어졌다.
“본드래곤을 먼저 처리하라!”
1호의추락을 확인한 연합군의 기사가 검기를 만들더니 지붕을 디딤돌 삼아 밟으며 덤벼들었다.
수천 명의 기사가 검기를 일으킨 채 다가오자 1호가 다시 브레스를 모았다.
그렇게 1호가 입을 벌리고 다시 브레스를 발사하려는 순간!
크게 벌렸던 1호의 주둥이 아래로 대지의 기둥이 솟구쳐 올랐다.
론노의 마법이었다.
턱주가리를 가격당한 1호의 머리가 높이 올라가고 말았다.
방향을 잘못 잡은 브레스의 화염이 푸른 하늘의 구름을 불태우고 분수처럼 쏟아졌다.
이것으로 공격이 끝나면 좋으련만 적의 공격은 이것이 다가 아니었다.
1호의 머리를 노리고서 아드리나의 단창이 날아왔다.
나는 얼른 1호의 머리로 몸을 날려 날아드는 단창을 쳐냈다.
강하게 후려친 덕분에 이번에도 단창의방향이 틀어지며 우리를 향해 덤벼들던 연합군의 기사들을 휩쓸었다.
“끄아악!!”
아드리나의 공격에 휘말린 기사들이 태풍을 만난 비닐하우스처럼 힘없이 찢기며 날아갔다.
연합군의 기사들이 추풍낙엽으로쓰러지는 것으로 보니 역시 아드리나의 공격도 브레스 못잖게 강력했다.
내가 쳐내지 않았더라면 네빌의 마법 장벽이 작동하더라도 그것을 부수고 1호의 주둥이까지 부쉈으리라.
“어딜 쏘는 거야! 너 때문에 기사들 죽었잖아! 이 멍청아!”
“닥쳐! 레인 에로우!”
론노의 잔소리에 아드리나다 다시 단창을 쏘았다.
나와 1호를 노린 단창은 가까운 지점에서 갑자기 그물처럼 분산되었다.
수십 갈래의 빛으로 분산된 단창은 사방으로 흩어지며 날아들었다.
몸집이 작은 나라면 충분히 피하고 막을 수 있는 공격이었지만, 덩치가 산만한 1호는 그 공격을피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크앙!!]
[1호야!]
화살들이 몸을 두드리자 1호의 마법 장벽이 깨지고 말았다.
마법 장벽이 깨지자 통증을 느낀1호가 괴성을 질렀다.
마구 괴성을 지르던 1호는 자신을 공격한 아드리나를 향해 주둥이를 벌렸다.
1호의 주둥이로 모이는 범상치 않은 마력에 아드리나의 옆에 있던 론노가잔소리를 멈추며 다시 대지의 기둥을 만들어 턱을 노렸다.
공격을 방해하려는 론노의 속셈에 1호는 알아챘다.
녀석은 노련하게도 앞발을 들어 자신을 턱을 노리고서 솟구치는 기둥을 단숨에 깔아뭉갰다.
강력한 앞발 내려치기에 대지의 기둥이 더 솟구치지 못하고 부서지자 브레스가 다시 뿜어져 나왔다.
이번 브레스는 호스 물줄기 같은 형태가 아니었다.
동그란 구체의 모양에 대포알 같은 브레스였다.
일종의 수류탄 형태의 브레스로 충돌하면 강한 폭발을 일으키는 특징이 있었다.
“미친!”
“망할!”
네빌이 사용하는 헬파이어와 닮은 그 공격에 화살을 쏜 아드리나와 론노가 긴장했다.
그때 두 사람의 뒤에서 크릭의 외침이 들려왔다.
“폭뢰(爆雷)!!”
아드리나처럼 음속 장벽을 가볍게 돌파하며 날아온 크릭은 1호의 대포알을 쳐내며 폭발을 일으켰다.
콰아앙!
1호의 대포알과 크릭의 창이 마주치자 대폭발이 일어났다.
대지가 파이며 모래와 먼지가 충격파를 타고서 사방으로 퍼졌고, 핵폭발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검은색을 띤 뭉게구름이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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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없군. 녀석과 1호가 당하기 전에 이쪽도 서둘러야겠어.]
아너스 왕국의 북문 밖 갈대숲.
언데드 대군과 산지로 이동한 네빌이 아너스 왕국의 입구에서 솟구치는 뭉게구름에 걸음을 재촉했다.
1호의 눈으로 본 전투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하고 위험했기에 두영이 생존하려면 그가 좀 더 빨리 로서 왕을 처치하고 합류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자신을 따르는 언데드 대군을 돌아보았다.
네 마리의 본드래곤과데스나이트, 리치 같은 최상급 망자부터, 스켈레톤, 좀비, 구울, 시체 괴물 같은 하급 망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언데드 대군이 뒤따르고 있었다.
규모만 해도 십만 이상!
이 정도 군대라면 로서 왕을 처단하기에 충분한 병력이었다.
[가자.]
네빌이 언데드 대군과 함께 갈대숲을 지나 당당히 북문에 섰다.
평소라면 종이 울리고 화살이 날아오는 등 생난리가 났을 테지만, 남문에서 더 큰 소란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에 북문의 수비는 텅 빈 상태였다.
그래서 네빌은 별다른 방해 없이 유유히 북문으로 움직였다.
연합군에 살해당하거나 잡히는 것이 두려워 북문으로 달아나던 타국의 이주민들은 갑자기 나타난 언데드 대군의 모습에 경악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북문으로 도망치려던 많은 이들이 네빌을 마주하자 오금을 지리며 주저앉았다.
언데드는 파괴와 증오 그리고 복수의 상징!
그들의 상식에서 산 자를 혐오하는 언데드와 맞닥뜨리게 되면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었다.
하물며 본드래곤, 데스나이트, 리치와 같은 상급 언데드들이 네빌과 함께하고 있으니 살아남을 리가 없었다.
“오오! 신이시여!”
“부디 우리를 살려주시옵소서!”
주민들은 도망갈 생각도 않은 채 서로 부둥켜안으며 거듭된 시련을 내린 신께 구원을 간청했다.
죽음이 두려워 신의 구원을 간절히 요망하는 사람들.
그 염원을 들은 네빌은 천천히 북문을 지났다.
예전의 그라면 언데드의 본성에 치우쳐 눈앞에 보이는 인간들을 곧바로 공격하라 명했을 테지만, 그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죽고 싶지 않다면, 한시바삐 이곳을 떠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곧 이곳은 피바다가 될 터이니.]
조언까지 해주면서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관대한 자비를 베풀었다.
“히이익!”
그는 도망치는 산 자를 내버려둔 채 묵묵히 아너스 왕국으로 진입했다.
그와 그의 언데드 대군 중 그 누구도 도망치는사람들을 공격하지 않았다.
상식에 어긋나는 그들의 행동과 네빌의 말에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부리나케 도망쳤다.
[무고한 자들을 해칠수 없다. 였었나? 크큭! 두영. 이제는 네 놈의 기억이 내 본성까지 어지럽히는구나.]
본래 네빌은 잔악무도한 언데드.
산 자를 혐오하는 근원적 특성 탓에 인간뿐 아니라 엘리아나를 제외한 모든 생명체에 매정했다.
게다가 인간이었을 적 그는 자신의 실수와 자신이 섬긴 하멜 성의 성주 그리고 믿었던 동료, 친구들의 배신과 만행에 인간을 향한 끝도 없는 증오심을 품게 되었다.
그래서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인간을 혐오하는 존재가 되었고, 실제로 인명을 해하는데 아무런 죄책감도 망설임도 보이지 않았다.
남녀노소 관계없이 인간은 그저 탐욕에 눈이 먼 어리석은 동물이라고만 여겼다.
그런데 그런 그가 변했다.
두영을 만나고 그의 기억을 읽게 되면서 그 정신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원망스럽고 지독한 고통을 겪었음에도 다시 자신을 바로 세운 두영.
그와 신뢰할 수 있는 직장 동료, 가족과의 기억을 보게 되면서 망자가 되면서 잊었던 인간성이 다시 싹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