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29화.
네빌이 내게 내린 임무는 영웅 넷의 발목을 잡는 것.
네빌이 로서 왕을 잡는다고 난리를 치면 그때 나서서 3왕국의 연합군과 아너스 왕국 부대의 주의를 끌면 된다.
그들을 살해하는 것이 아니므로 때에 맞춰서 시간만 끌면 된다.
그 미션을 재차 상기하며 계획을 세웠다.
다행히 사각과 싸운 경험으로 나는 영웅들이 얼마나 강한지, 얼마나 위험한 놈들인지 잘 안다.
[직접 대결은 피해야 한다. 깡패가 셋 이상 나타났을 때처럼 좀 튀면서 싸워야 해. 그러니까. 상황 발생하면 덩치만 믿고 나대면 안 된다. 알겠지?]
[크르르.]
1호가 거대한 머리를 끄덕였다.
말귀를 알아들으니 좀 귀여웠다.
[이래서 펫을 키우는구나. 집에 돌아가면 나도 마누라한테 졸라서 한 마리 분양해 봐야겠어.]
전장이 복잡해지면서 네 명의 영웅들이 왕국 안으로 진입하는 것이 보였다.
특히 하늘을 나는 유령 같은 놈은 공중을 날아서 이동 중인 상태.
[저놈이 진입하면 네빌이 나중에 지랄하겠지. 막아야 해. 1호야. 가자. 일단, 머리 위로 날아가자.]
[크릉!]
나는 1호의 머리 위로 올라타 함께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높이 날아오른 후 성벽으로 이동 중인 스펙터 백작을 가리키고 소리쳤다.
[1호 저 유령에게 브레스 부탁한다.]
[크릉?]
[그래. 진짜 쏴! 본래 이런 건 기세 싸움이 중요하다고. 초장에 기를 잡으려면 확실히 휘어잡는 게 유리하니까!]
나와 1호 둘이서 영웅 넷의 발목을 잡으려면 초반부터 강하게 나가야 한다.
어줍잖게 보이면 넷 중 몇 명만 우릴 상대하고 나머지는 빠져나갈 우려가 있다.
그러니 시선을 끌려면 가오가 육체를 지배한 고등학교 일진들처럼 첫인상을 세게 잡을 필요가 있다.
[좋아. 지금이다! 저 유령 같은 놈 노리고 쏴버려!]
[크아앙!!]
1호가 숨을 크게 들이키듯이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러자 가슴에서 시작된 녹색 빛이 호스에 연결된 물처럼 목을 타고 올라가더니 1호의 주둥이에서부터 강렬한 불꽃으로 변해 뿜어져 나왔다.
스치기만 해도 곧바로 녹아버리는 고열의 브레스였다.
브레스는 스펙터 백작이라는 영웅의 몸을 정확히 노렸다.
하늘을 날아가고 있던 스펙터 백작은 난데없이 자신을 노리는 브레스에 깜짝 놀라며 검막(劍幕)을 펼쳤다.
검막은 검기로 펼치는 일종의 보호막이었다.
브레스는 스펙터 백작의 검막을 녹이며 그를 밀어냈고, 버티지 못한 스펙터 백작이 추락했다.
사망에 이른 것 같지는 않았고, 출력에서 밀리는 바람에 추락한것 같았다.
그가 추락하자 브레스가 바닥으로 쏟아지며 그 아래에 있던 인간들이 불길에 휩싸여 죽음을 맞았다.
동료들이 신체가 녹으며 죽는 것을 본 연합군과 아너스 왕국의 군인들은 깜짝 놀라며 브레스가 발사된 방향을 확인했다.
바닥에 떨어진 브레스로 피어오른 아지랑이를 뚫고 수십 만의 시선이 우리에게 향했다.
“저건…?!”
“마, 마룡이다!”
“피, 피해라! 마룡의 습격이다!”
1호를 발견한 기사들과 병사들이 혼비백산했다.
“스펙터! 살아 있나?”
[…그렇게 물으면 괜찮다는대답 외엔 할 수 없다.]
긴 창을 든 폭탄마가 스펙터를 챙겼다.
그는 크릭이라는 이름의 영웅이었다.
투창의 크릭이라 불리며 폭발을 일으키는 기술을 사용하는 볼그 왕국의 수호신이었다.
[신기하네, 얼굴만 봤는데 누군지 이름이 떠올라. 네빌이 주입한 기억의 덕분인가?]
감탄하는 사이 크릭과 같은 왕국 소속인 스펙터 백작이 일어났다.
브레스를 맞은 스펙터 백작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팔과 다리가 녹아 있었고, 몸통 대부분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모습이지만, 유령처럼 생긴 그는 조종하던 유령들을 불러들여서 흡수했다.
여러 마리의 유령들이 그의 몸에 흡수되자 몸에생겼던 상처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부하의 영혼을 흡수해서 힘과 신체를 회복하는 기술, 융합이었다.
같은 전쟁터에서 함께 전사한 기사들을 부리는 기술이었다.
충성심 강한 기사들은 영혼이 되어서도 그를 따랐고,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희생했다.
[편리하다고 해야 할지 잔인하다고 해야 할지 말하기 애매모호한 기술이네.]
나는 크릭과 스펙터 백작을 두고 다른 두 명의 영웅을 보았다.
칼토르 왕국의 신격의 아드리나와 갈론 왕국의 대지의 론노였다.
아드리나는 하프 엘프에 8등신 미녀였다.
유부남인 내가 봐도 아주 아름답고 수려한 용모를 지니고 있었다.
용병 출신의 실력자로 다양한 무기를 다룰 줄 알 뿐만 아니라 마법에도 소양이 있지만, 지금은 활만 썼다.
그녀의 활은 신궁이다.
신이 내려준 활로아주 먼 고대 때부터 내려온 물건이었다.
이 신궁을 받기 전에는 일류 용병이었으나, 신궁의 발견하고 선택을 받은 후 영웅으로 거듭났다.
신궁으로부터 힘을 빌리고 있으며 아직 강해질 여지가 있어서 네빌이 주의하는 대상중 하나였다.
그 옆에 있는 론노는 전장에 어울리지 않는 어린 소녀였다.
진짜 소녀는 아니고 어디까지나 소녀의 형상을 한 인형에 정령이 깃든 인공생명체였다.
골렘을 부리고 대지를 조율하는 정령이라 땅과 바위와 관련된 마법과 기술을 잘 구사했다.
위대한 지모신 가이아의 힘을 일부 물려받았다는 네빌의 추측도 있지만, 정확한 정보는 없었다.
다만, 정말로 지모신의 힘을 물려받았을 가능성이 있어서 아드리나처럼 요주의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다.
현재는 거대한 바위 골렘의 어깨에 앉아 있었는데, 겉으로만 봐서는 인형인지 사람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반응이 싱숭생숭하네. 1호. 1+1이다. 한 발 더 갈겨.]
[크릉!]
1호가 다시 브레스를 발사했다.
바닥을 녹이며 브레스가 정면에서 날아드는데도 론노는 피하지 않았다.
대신 방어를 펼쳤다.
“대지의 기둥.”
그녀 마력을 일으키며 브레스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피사의 사탑처럼 옆으로 기운 거대한 바위가 바닥에서 솟구쳐 올랐다.
대지의 기둥이었다.
지상과 이어진 채로 솟구쳐 오른 거대한 대지의 기둥은 이윽고 1호의 브레스와 맞부딪쳤다.
처음에는 단단한 대지의 기둥이 1호의 브레스를 밀어내는 듯했다.
하지만 자신의 브레스가 밀리는 것을 느낀 1호가 주둥이를 더 크게 벌리고 출력을 높이자 론노가 만든 대지의 기둥이 순식간에 시뻘겋게 달아올라 바스러지기 시작했다.
“어,어라? 생각보다 강하네.”
힘으로 밀어낼 생각이었던 론노는 자신의 마법이 1호의 브레스의 버티지 못하고 쇳물처럼 시뻘겋게 익은 채 부서지기 시작하자 크게 당황했다.
“풋! 뭐야? 그것도 못 막아?”
“뭐가 어째?!”
“하는 수 없지. 내가 도와줄게.”
“됐어! 네 도움 필요 없어!”
“사양하지 마. 내가 한 방에 끝내줄 테니까.”
옆에 있던 아드리나가 론노를 비웃으며 활을 들었다.
신기하게도 그녀가 오른손의 손바닥을 쭉 펴자 그녀의 손등에 있던 창의 문양이 빛을 발하더니 아무것도 없던 그녀의 손에서 끝이 드릴 같이 생긴 단창이 생겨났다.
아드리나는 그것을 활에 걸더니 1호의 머리를 노리고 쏘았다.
“허리케인 에로우.”
그녀가 길게 당긴 활의 시위를 놓자, 드릴처럼 생긴 단창의 끝이 모터라도 달린 것처럼 빠르게 회전해 대기를 뚫고서 날아왔다.
음속 장벽을 창호지 문처럼 가볍게 돌파한 그녀의 화살은 브레스와 닿았음에도 그 기세를 잃지 않았다.
오히려 1호의 브레스를 휘감아 사방으로 퍼트리며 1호의 미간을 노렸다.
범상치 않은 힘이 느껴졌기에 나는 즉시 검을 들었다.
[1호! 입 닫아!]
내 말에 반응한 1호가 입을 닫았다.
나는 그 틈에 아드리나의 화살을 검으로 후려쳐 옆으로 쳐냈다.
검과 아드리나의 단창이 마주치자 스파크가 튀었다.
맹렬히 회전하는 단창에서 엄청난 힘과 바람이 흘러나왔다.
태풍 같은 그 기세에 망토 일부가 찢어지고 손이떨릴 정도!
나는 얼른 마력을 불어넣었다.
[꺼져라!]
검기를 일으켜 창의 위력을 낮춘 후, 단창을 좌측으로 밀어냈다.
궤적이 뒤틀린 단창은 타자가 던진 야구 배트처럼 아무렇게나 회전하며바닥으로 떨어졌는데 해당 지점에 있던 연합군이 바람에 휘말려무너진 성벽의 잔해로 날아갔다.
“어라?”
“꺄하하하! 한 방에 끝내준다면서 흠집도 못 냈대요.꺄르르!!”
자신의 공격이 막힌 것을 본 아드리나는 미간을 찌푸렸고, 이 모습을 본론노는바위 골렘 위에서 아드리나에게 손가락질하며 놀려댔다.
“이년이?! 몸만 아니라 머리도 성장이 덜 됐냐?! 사태 파악 안 돼!?”
“이 할망구가 대체 무슨 사태 파악을 하라는 거야?”
“하, 하하, 할망구?!”
두 여자 사이에서 아찔한 스파크가 튀었다.
표현적인 스파크가 아니라 둘 다 마력을 일으키면서 그 마력이 충돌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나와 1호의 존재도 잊은 채 구역싸움에 나선일진 소녀들 같은 험상궂은 표정을 지었다.
당장에라도 같은 연합군끼리 쌈박질할 것 같은 분위기.
[서로 싸워주면 좋겠지만…. 역시 그렇게 쉽게는 안 풀리겠지?]
두 여자의 옆으로 창을든 남자 크릭이 접근하는 것이 보였다.
“자자. 아리따운 아가씨들끼리 싸워서 좋을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아드리나 진정하세요. 론노도 자꾸 아드리나 자꾸 도발하지 마시고요. 지금은 힘을 합쳐서 데스나이트와 본드래곤을 처치하는 것에만 집중합시다. 저놈들 보통이 아닌 것 같으니. 조심하고요.”
“크릭…, 흥! 알았어, 예쁜 내가 참아야지!”
“무슨 소리야. 예쁜 건 난데! 흥!”
크릭이라는 남자의 말에 아드리나와 론노가 성질머리를 고쳐먹고서 나와 1호를 보았다.
[손 안 대고 코 풀 수 있었는데 아쉽네.]
[크릉….]
곧 세 영웅의 뒤로 스펙터 백작이 나타나 말했다.
[데스나이트 놈은 내가 맡도록 하지. 너희는본드래곤을 처치해라.]
“백작, 혼자서 괜찮겠어? 저 데스나이트 좀 강한 거 같은데.”
[난 혼자가 아니다.]
아드리나의 말에 스펙터 백작이 말 위에서 검을 들었다.
그가 검을 높이 들자 수백 아니, 수천이나 되는 유령들이 분신술이라도 쓴 것처럼 그의 뒤에서 새로이 나타났다.
모두 말을 타고 검을 든 유령들이었는데, 도깨비불을 몸에 달고 있었다.
[더럽게 많네.]
스펙터 백작이 높이 들었던 검을 내려 나와 1호에게 겨누었다.
[기사들이여, 나를 따르라! 혼령 질주!]
기수가 깃발을 내리듯 매끄럽게 검을 내린 백작의 외침에 유령들이 눈을 빛내며 말을 몰았다.
놀랍게도 그들의 몸이 점점 더 높이 날아올랐다.
마치 계단을 오르는 것처럼 엄청난 수의 유령기사들이 사방팔방으로 퍼지더니 하늘로 이륙한 것이다.
그들은 나와 1호를 향해 쇄도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