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27화.
아너스 왕국에는 세 명의 영웅이 있었다.
순서대로 일검, 이검, 삼검이라는 이름을 가지고있었는데, 최근 일검은 왕의 명령을 거부하고 반역자 가문 프라이드가의 탈주를 도와 아너스 왕국의 군에 쫓기게 되었다.
이에 로서 왕은 예정되었던, 성녀 탈환 작전을 시행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초조함이 극에 달하게 되었다.
일검이 반역자의 가문여식과 함께 사라진데다, 르나르국은 성녀 탈환을 위해 영웅과 동격 혹은 그 이상의 힘을 가진 칠각보전을 무려 셋이나 성녀 탈환에 투입했기 때문이다.
욕심 많은 그는 불사자의 비밀을 놓칠까 싶어 애가 탈 수밖에 없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처럼 로나스 왕이 힘을 얻게 될 것을 우려한 로서 왕은 남몰래 네빌을 응원하기에 이르렀다.
그의 응원이 먹힌 것인지 머지않아 르나르국에서 파견한 군대가 대패했다는 소식이 퍼졌다.
투입된 르나르국의 칠각보전들은 모두 죽었고, 르나르국의 떠오르는 샛별이라 할 수 있는 파이로 대신까지 전사했다.
“크크큭! 한심한 로나스 왕 같으니! 꼴좋구나!”
로서 왕은 사절들을 통해 르나르국에 위로의 메시지를 전했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그들의 실패를 비웃으며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다.
거기다 은밀히 진행되고 있던 사검의 완성까지 멀지 않았으니, 일검이 가출한 것만 빼면 그의 기분은 최고조에 달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성녀의 탈환을 위해 협약을 맺고 부대를 합쳐 출정을 나간볼그, 칼토르, 갈론 세 왕국의 군대가하멜 성으로 향하던 진로를 갑자기 아너스 왕국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처음 이 소식을 들었을 때, 로서 왕은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들이 갑자기 자신의 왕국을 노리는 이유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로서 왕은 동분서주했고, 곧 그 들려온 소문에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귀에 들려온 소문은 일리오스와 알고르 교국에서 30만이나 되는 신성 부대와 여덟이나 되는 영웅들을 파견했다는 소식이었다.
일리오스와 알고르 교국에서 성녀 탈환을 위해 군대를 파견한다는 소식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그 규모를 듣자 로서 왕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30만의 신성 대군도 놀랍지만, 함께 파견된 8명의 영웅은 두 교국이 보유한 모든 영웅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교국을 방어할 최소한의 병력을 제외한 모든 병력을 성녀 탈환 원정에 투입한 셈이었다.
두 교국의 느닷없는 올인 소식을 듣고, 로서 왕은 그제야 성녀 탈환 명분으로 뭉쳤던 세 왕국이 자신의 왕국으로 진군하는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네빌이 르나르국에서 파견한정예부대를 상대로 승리했다고는 하지만, 병력의 8할을 투자한 두 교국의 30만의 신성 부대와 여덟 영웅을 상대로는 절대 승리할 수 없다.
숫자와 그 질에서도 너무나 큰 차이가 날뿐더러, 언데드와 성기사라면 상성도 최악으로 나쁘기 때문이다.
네빌이 아무리 열심히 저항하더라도, 상성과 병력 그리고 영웅에서 벌어진 차이를 메울 수 없으니 결국엔 성녀를 두 교국에게 빼앗기는 것은 기정사실이나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본래 이를 막고 견제해야 할 위치에 있는 국가가 영웅을 일곱이나 보유한 르나르국일 테지만….
그런 르나르국마저 이번 원정으로 칠각보전 3명을잃어 그 세가 크게 꺾이고 말았으니.
사실상 두 교국의 힘에 맞설 수 있는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이에 볼그, 칼토르, 갈론 세 왕국이 가질 생각은 뻔했다.
성녀는 포기하고 다른 것을 얻기로 한 것이다.
바로 아너스 왕국을 갖는 것이다.
예전부터 칼토스, 갈론 왕국은 아너스 왕국과 시시콜콜 삼파전을 일으킬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세 왕국 모두 서로가 가진 곡창지대, 광맥, 수자원을 탐내고 있었다.
그런데 근래에는 세 왕국의 중심부에 있는 하이칼 산맥에서 대규모의 금맥까지 발견되었다.
하멜의 성주가 네빌의 문제로 막대한 자금을 쥐여주며 도움을 요청하는 사건만 없었더라면 세 왕국은 동맹은커녕 아직도 서로 치고받고 있을지도 몰랐다.
국가간에 쌓인 이골이 큰 만큼 악감정을 품은 국민도 많기에 칼토스와 갈론 왕국의 입장에서 아너스 왕국을 공격할 명분은 충분했다.
볼그 왕국 역시 아너스 왕국의 곡창지대와 자국의 고질적 식량난 문제의 해법이 필요한 상황.
침략에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세 왕국이 결탁하여 아너스 왕국을 치기로 약속을 한 것이다.
이들이 일치단결하여 모은 병력의 규모는 후발 병력까지 합치면 대략 20만, 영웅의 수는 무려 여섯이나 되었다.
반면, 일검이 사라지면서 아너스 왕국의 영웅은 겨우 둘 뿐인데다 설상가상으로 병력도 5만을 조금 웃도는 정도밖에 없다.
일검을 쫓던 기사들이 돌아오더라도 그 수는 6만이 채 되지 않는 것이다.
수성이 아무리 유리하다고 해도 모든 면에서 너무나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에 아너스 왕국이 세 왕국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뻔하지, 칼토르와 갈론 놈들은 하이칼 산맥의 금광을 나눠 가지기로 했을 테고, 볼그 놈들은 우리 왕국의 곡창지대를 받기로 했겠지. 빌어먹을….”
로서 왕은 이를 갈았다.
“로나스 그놈이 도움을 주면 좋겠는데….”
로서 왕은 잔뜩 씹어댄 로나스 왕에게 이미 도움을 요청한 상황이었다.
자존심이 상하지만, 르나르국에서 아너스 왕국을 돕겠다는 발표만 해도 이 상황은 면피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로서 왕의 희망 사항일 뿐.
냉정하게 생각해서 칠각보전 셋과 파이로 대신을 잃은 르나르국에서 로서 왕을 위해 군대를 움직여 줄 리 없다.
이미 민심도 흉흉할뿐더러 나라의 위신도 많이 떨어졌으니까.
“젠장! 사검의 완성이 코앞인데. 하필이면 이런 일이!”
로서 왕은 밀집한 세 왕국의 군대를 보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병력의 규모와 보유한 영웅의 수에서 너무나 차이가 났다.
전무후무한 전투력을 가진 사검이 완성이 된다면 농성이라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주 약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차라리, 영토의 절반을 넘기는 것으로 거래하고 훗날을 도모할까? 하지만 저쪽에서 응해주지않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애초에 영토를 반이나 넘기고 내가 살 길은 있는 건가? 없다. 책임질 사람이 없어.”
로서 왕은 왕국을 지킬 생각을 하다, 일찌감치 그 가능성을 접었다.
압도적인 병력을 보유한 세 왕국의 군대가 왕국의 영토를 절반 아니, 전부 내놓는다고 해서 자신을 그냥 놓아줄 리가 없었다.
계속해서 저항하면 당연히 그를 처형할 것이고, 투항의 의사를 밝히고 성문을 열고 영토를 내놓더라도 왕이라는 이유로 본보기 삼아 그의 목을 칠 것이다.
목을 치지 않더라도 명예를 중요하게 여기는 아너스 왕국 국민의 정서상 그를 가만히 둘 리 없었다.
세 왕국이 로서 왕에게 악감정이 있고 없고는 문제가 아니다.
애초에 한 나라의 왕으로서 나라를 잃는 책임을 면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라도 살아야 한다. 내가 살아야 아너스 왕국도 다시부흥할 수 있다!”
상황이 어렵다고판단한 그는 자신만이라도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그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획책은 오직 하나.
“전하! 사검이 완성되었습니다!”
“뭣이?! 그게 정말이더냐?!”
“예, 마지막 주인의 등록 작업만이 남았습니다.”
“알겠다! 내직접 가서 내 두 눈으로 사검을 확인하겠다. 너는 이검과 삼검 그리고 친위대에 연락을 넣어 지금즉시 보물전으로 돌아오라 알려라. 그리고 병사들에게 수성 준비를 하라 전해라! 끝까지 싸워야 한다! 알겠느냐!”
“예! 알겠습니다! 전하!”
소식을 알리러 온 신하가 나가고, 홀로 남은 왕은 왕좌에 왕관을 놓으며 말했다.
“그래. 왕이 있어야 나라가 있는 법. 약간의 돈과 영웅들만 있으면 나라는 얼마든지 새로 만들 수 있다!”
세 왕국에서 쳐들어오면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힘드니, 중요한 것들만 챙겨 나라와 백성은 버리고 떠날 심산이다.
마음을 굳힌 로서 왕은 얼른 실험실로 향했다.
그마저 사라진 왕좌에는 오직 텅 빈 왕관만이 왕좌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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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왕국의 후발대가 도착하는 순간.
아너스 왕국의 병력이 일사불란하게 물러났다.
모든 병력이 성안으로 집결했으며, 궁수들과 투석기 그리고 발리스타들이 성벽에 배치되기 시작했다.
아너스 왕국은 수성을 위한 준비를 서둘렀고, 빨강, 주황, 노랑의 옷을 입은 세 왕국의 연합군 역시 투석기와 발리스타를 배치하며 진군했다.
아너스 왕국의 병사들과 연합군의 병사들은 서로 투석기와 발리스타를 노리며 전투에 임했다.
뿔피리 소리가 크게 울리자 기합소리도 여기저기에서 울리며 방패를 든 연합군의 병사들과 기사들이 움직였다.
거침없이 달려오는 병사와 기사들의 모습에 아너스 왕국의 병사들이 화살을 쏘며 응전했다.
그러나 그들이 쏜 대다수 화살은 연합군의 후방에 배치된 마법사들이 펼친 장벽에가로막혀 기세를 잃고 떨어지고 말았다.
이번엔 연합군의 궁수들이 활을 들었다.
그들이 가진 활은 평범한 활이 아닌 장대 활이었다.
“쏴라!”
하늘 위 구름을 겨냥한 그들이 손을놓자 화살이 창공을 가르며 날아갔다.
수만의 궁수들이 쏜 화살들은 성벽을 넘어 마치 비처럼 떨어져 내렸다.
우수수 떨어지는 화살의 비에 아너스 왕국의 병사들이 방패를 들었지만, 방패를 든 병사들보다 들지 않은 병사들의 수가 더 많았다.
많은 병사가 화살에 맞아 쓰러졌고, 부족한 인원을 보충하기 위해 군수품을 나르던 백성마저 희생되었다.
“빌어먹을 놈들! 반격해라!”
병사 지붕 가릴 것 없이 몰아친 화살에 파란 옷을 입은 아너스 왕국 병사들이 악에 받친 소리를 지르며 화살을 쏘고 마법을 사용했다.
화살과 마법이 오가며 치열한 공방이 계속되는 사이, 100명씩 구성된 별동대가 수비가 약해진 동쪽 성벽과 서쪽 성벽을 노리기 시작했다.
각 별동대는 거대한 대검을 든 영웅과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영웅이 이끌고 있었다.
그들은 각각 칼토르와 갈론 왕국의 영웅들이었다.
대검을 든 인물이 칼토르 왕국의 영웅 괴력의 헥토르.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인물이 갈론 왕국의 영웅 블랙소드였다.
두 영웅은 자신의 별칭에 어울리는 외견을 하고 있었다.
덩치가 큰 헥토르는 붉은 검기가 깃든 거대한 대검으로 동쪽 성벽을 마구 내려치며 성벽에 구멍을 냈다.
각 국가의 성벽은 마법으로 가공된 것이라 매우 튼튼하다.
거기에 방어 마법까지 걸려 있어서 어지간한, 공격력으로는 흠집조차 낼 수 없다.
투석기로도 같은 자리를 정확히 10번은 때려야 무너뜨릴까 말까 할 정도로 튼튼한 편이다.
그런데 헥토르가 대검을 한번 내리칠 때마다 동쪽 성벽에 균열이 생겼다.
균열은 점점 더 커지더니 그가 세 번을 내려치는 순간 완전히 갈라지며 성벽에 구멍이 뚫리고 말았다.
작은 구멍도 아니고 무려 집채만 한 구멍이었다.
“징글징글한 아너스 왕국 놈들! 이제야 끝장을 보겠구나! 얘들아! 가서 다 죽여라!!”
헥토르는 힘을 과시하며 외쳤다.
그의 명령을 받은 별동대들이 평범한 기사들의 배는 되어 보이는 검기를 일으키더니 아너스 왕국 곳곳을 헤집으며 군인들을 마구 베기 시작했다.
그들이 기사와 병사들을 베며병력의 수를 줄이자 서쪽 성벽을 노리던 갈론 왕국의 블랙소드도 성벽을 뛰어넘었다.
헥토르 같은 괴력을 가지지 못한 블랙소드는 자신이 대표로 성벽을 타고 오르더니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수백 개의 검은 단검으로 성벽을 지키는 병사들과 기사들을 도륙했다.
그가 별동대들이 올라올 길을 열어주자, 갈론 왕국의 별동대는 그 사이 양손에 무장한 갈퀴로 성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성벽을 넘은 두 왕국의 별동대들은 아너스 왕국을 마구 헤집으며 장교격인 기사들을 처치하고 보급로를 망쳐놓았다.
그렇게 무사히 잠입한 별동대들이 활개를 치는 사이.
정면에서는 또 다른 싸움이 진행되고 있었다.
화살보다 단창에 가까운 무기를 화살처럼 장전한 칼토르 왕국의여성 영웅 신격의 아드리나.
거대한 바위 골렘의 위에서 주먹 모양의 거대 바위를 소환한 갈론 왕국의 여성 영웅 대지의 론노가 그 주인공이었다.
두 여자는 각자 경쟁이라도 하듯 성벽을 향해 단창과 마법을 발사했다.
“허리케인 에로우!”
“가라! 바위 주먹!”
마력이 잔뜩 담긴 아드리나의 단창은 회전하며 날아가 맹렬한 바람을 만들며 성문을 기점으로 좌측에 있던 성벽을 관통했다.
단창이 성벽을 뚫고 나가자 관통한 지점을 기점으로 약 10m의 너비가 힘없이 부서지며 무너져 내렸다.
론노의 공격도 비슷한 결과를 만들었다.
그녀의 공격은 성문을 기점으로 우측에 있던 성벽을 노리고 날아가 마치 불도저가 집을 허물 듯이 단숨에 성벽의 윗부분을 허물어 버렸다.
두 영웅의 공격에 아너스 왕국의 기사들과 병사들은 단창이 일으킨 바람과 무너진 바위 파편에 휩쓸려 백성의 주택이 있는 곳까지 날아갔다.
“내가 더 크다!”
“아니야! 내가 더 크거든!?”
“이년이 눈이 삐었나!? 잘 봐봐! 내가 뚫은 구멍이 네가 무너뜨린 것보다 훨씬 크잖아!?”
“아니야! 내가 무너뜨린 성벽의 구멍이 더 커!”
성문을 기점으로 무너진 성벽을 본 아드리나와 론노는 누가 더 큰 구멍을 뚫었는지 따지며 다투기 시작했다.
아너스 왕국만큼이나 칼토르 왕국과 갈론 왕국도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적국이었던 그녀들은 서로 무척이나 싫어했다.
“드워프 똥자루 같은 년이!”
“뭐가 어째!? 다 늙어서 가슴도 축 처진 년이!”
“흥! 내세울 가슴조차 없는 년이 가슴 타령은.”
“이 걸레 같은 년!”
“뭐가 어째!?”
하프지만엘프의 피를 이어받은 키가 크고 늘씬한 아드리나와 달리 생체 인형에 깃든 고대 정령인 론노는 키도 가슴도 작은 편이었다.
인형의 몸이었기 때문에작은 상태에서 더는 성장하지도 않았다.
그 때문에 론노에게 있어 작은 가슴과 성장하지 않는 몸은 콤플렉스였고, 아드리나 역시 성장하지 않는 론노에 비해 자신은 늙는데다 자랑스럽던 가슴이 조금씩 쳐지면서 콤플렉스가 극에 달한 상태였다.
각자의 콤플렉스를 건드렸기에 둘 사이에서는 당장에라도 폭발할 것 같은 범상치 않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거참. 작은 건 작은 나름의 매력이 있고, 크면 큰 대로 매력이 있는 것이거늘…. 어찌하여 서로의 약점을 잡지 못해서 안달하는 겁니까.”
아드리나와 론노의 험악한 분위기에 한 남자가 끼어들었다.
큰 키에 강철로 만들어진 창을 든 남자였다.
남자의 이름은 크릭.
볼그 왕국의 영웅이자 투창의 크릭이라 불리는 자였다.
이름 앞에 붙은 별칭대로 창을 투척하는 재주가 남다른 자였는데, 그의 투창은 목표를 잘 맞추기만 하는 것이아니었다.
“아름다운 두 분 모두 적당히 싸우시고. 일단, 일부터 합시다.”
크릭은 말을 끝냄과 동시에 들고 있던 창을 성문을 향해서 던졌다.
그가 던진 창이 대기를 뚫고 나가 성문에 맞닿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성문을 비롯해 두 여성 영웅이 무너뜨린 성벽까지 모두 전소했다.
지금 공격으로 아너스 왕국의 남쪽 성문의 중심부가 뻥 뚫리고 말았다.
“아참, 그리고 두 분보다는 역시 제가 뚫은 구멍이 더 큽니다. 하하하!”
“뭐라고?!”
무너진 남쪽 성문을 보며 크릭이 그렇게 웃었다.
아드리나와 론노가 얼굴을 찌푸리더니 남은 성벽을 노리고서 단창을 쏘고 바위 주먹을 날리기 시작했다.
이에 얼마 남지 않은 남쪽 성벽이 모두 사라지고, 뻥 뚫린 성벽을 보며 두 여성이 동시에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래도?”
마치 성벽을 누가 더 빨리 무너뜨릴 수 있는지 경쟁이라도 펼치는 것만 같았다.
[시답잖군. 먼저 가겠다.]
요란스런 세 영웅의 촌극을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한 남자가 말했다.
낮게 울리는 목소리와 투명한 몸을 가진 남자였다.
하늘색과 연두색을 섞은 것만 같은 색상에 몸 전체에서 초록빛 기류들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 남자의 이름은 스펙터 백작.
볼그 왕국을 구한 영웅이었다.
겉모습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그는 평범한 인간은 아니었다.
영혼을 흡수하는 독특한 괴이의 침략을 받았을 때, 그 괴이의 몸에 빨려 들어가 사망한 후, 특이하게도 영혼이 되어 다시 부활해 괴이를 소멸시킨 반인반괴의 존재였다.
강력한 무력과 무수히 많은 부하를 부리는 자로 그가 가진 힘은 앞에서 촌극을 펼치고 있는 세 영웅과 동시에 싸우더라도 절대 지지 않을 정도로 까다롭고 강력했다.
[가라.]
스펙터 백작의 짧은 한마디에 그의 주위로 초록빛 기류들이 나타났다.
기류는 물살을 거스르는 강물처럼 언덕을 올라 아너스 왕국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왕국의 입구에 도착한 그의 초록빛 기류들은 곧이어 말을 탄 기사와 창을 든 병사 등 다양한 혼령의 모습을 갖추더니 무기를 갖추고 병사들과 기사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놀란 병사들이 창을 내지르고 화살을 쏘았지만, 마력을 불어넣은 검과 은 그리고 성수와 마법이 깃든 물건들만이 그들의 검에 대적할 수 있었다.
성벽이 모두 사라지자 연합군에 소속된 병사들이 소리를 지르며 진군했다.
그들은 스펙터 백작의 유령들과 함께 아너스 왕국의 병사들과 기사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