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7화 〉26화. (27/83)



〈 27화 〉26화.

네빌은 까마귀들을 풀어 주변을 정찰하며 이동했다.


정찰을신중히  덕분에 열흘이 되는 날, 일리오스 교국과 알고르 교국의 30만 신성 부대가 하멜 성으로 진군하는 것을 미리 발견할 수 있었다.


이에 나는 네빌이평소의 괴팍한 성격대로  교국의 군대를 노릴 것을 의심치 않았다.


살아 있는 인간만 보면 [죽여라. 없애라.] 이런 말만 해대는 놈이니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런 내 예상은 빗나갔다.

당장에라도 공격을 지시할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네빌은 그들을 지나쳐 아너스 왕국을 먼저 공격할 것이라 말했다.

나는 네빌에게 어째서 일리오스 교국과 알고르 교국의 군대를 공격하지 않는 것인지를 물어보았다.

평소 성격대로라면 두 교국의 군대를 발견한 즉시 공격을 퍼부으며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 과시하고, 동네방네 자신의 이름을 널리 퍼뜨리며 자기자랑을 할 텐데 갑자기 자중하고 몸을 사리는 것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이에 네빌은 이렇게 답했다.

[교국의 사제와 성기사가 지닌 힘은 언데드와 상극이다. 영조 피닉스 정도는 아니지만, 그 나름대로의 신을 믿고 있어서 신성력을 발휘할 수 있지. 아무리 뛰어나고, 대단하고, 위대하고, 멋지고, 엄청난 대마법사인 나라도 리치의 몸으로는 신성력으로 무장한 교국의 군대를 만만히 볼 수는 없다. 거기다  교국이 이번에 파견한 영웅의 수는 모두 합쳐서 여덟이나 된다. 승산이 없다.]

쉽게 말해 이번에 파견된 두 교국의 군대 규모가 엄청나다는 의미.


아무래도 엘리아나를 탈환하기 위해 두 교국이 작정하고 모든 밑천을 다 쏟아 부어서 만든 군대들인 모양이었다.


확실히 30만의 병력은 내가 처음 이쪽 세계로 불려 와서 보았던 군대의 규모보다도  배나 거대한 대군이었기 때문에 네빌이 몸을 사리는 것도 충분히 이해되었다.


힘으로만 몰아붙이리란 예상과 달리 신중한 네빌의 행동에 감탄하며 우리는 두 교국의 군대를 피해서 산을 타며 이동했다.


그렇게 산을 타며 방향을 잡던 네빌이  번째 표적으로 삼은 곳이 아너스 왕국이었다.


어째서 아너스 왕국을 첫 표적으로 삼았는지에 대해 물으니 네빌은 아너스 왕국을 가장 먼저 공격하는 것에는 3가지 이유가 있다며  이유를 알려주었다.

첫 번째는 하멜 성에서 아너스 왕국이 가장 가깝다는 것.


 번째는 일검을 지배하게 되면서 아너스 왕국의 영웅이 이검과 삼검 둘밖에 남지 않아 일곱 국가들 중 국력이 가장 약하다는 것.

마지막 세 번째는 예전부터 그가 로서 왕을 두들겨 패고 싶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번째와 두 번째 이유는 그렇다 치고.


 번째 이유에 나는 호기심이 생겼다.


[로서 왕이랑 안 좋은 사연이라도 있어? 왜 패고 싶은 건데?]

[아너스 왕국은 하멜과 가장 인접한 국가다. 예부터 나는 놈들과는 많은 전쟁을 벌여왔다. 너희 세계의 말로는 일종의 견원지간 같은 것이지.]

 말만 들어보면 역사와 국제적인 이유로 아너스 왕국을 목표로 삼은 것 같지만, 네빌이 하멜에 대한 미련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나는 진짜 이유를 물어보았다.


[진짜 이유는 뭔데?]

[그 빌어먹을 인간쓰레기가 내 아내를 넘보려고 했었다. 버러지만도 못한 자식이 감히!  아내를! 나의 엘리아나를! 그 따위 음흉한 눈으로 쳐다 보다니! 눈깔을 뽑고 거기를 거세해 산채로 벌레들의 먹이로 만들어 버리겠다! 아니,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손톱과 발톱 사이에 바늘을 쑤셔 넣으면서 서서히 그리고 고통스럽게 괴롭히면서 죽여주마!]

네빌은 분노하며 외쳤다.


그의 격한 반응에 나는 예전에 일리나가 해주었던 로서 왕에 대한 소문이 떠올랐다.

분명, 로서 왕의 아내들 모두가 하나같이 만신창이가 되어 최악의 최후를 맞이했다는이야기였다.


[하여간, 이쪽 세계나 우리 세계나 권력자 놈들의 아랫도리가 문제로군.]

속으로 그런 놈들의 아랫도리는 일찌감치 그냥 콱 잘라버리는  세계 평화를 위한 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네빌이 아너스 왕국을 첫 번째 표적으로 삼은 이유를 이해했다.


하지만 아직도 궁금한 것은 남아 있었다.


[그 심정이해 못 하는 건 아닌데 말이야. 진짜 복수를 하려는 이유는 뭐야?]

네빌에게 궁금한 것.

그것은 바로 그의 과거에 대한 것이었다.

네빌과는 전투와 각종 훈련을 하며 시시콜콜 대화를 주고받았지만, 어째서 일곱 왕국에 대한 복수를 하려는 것인지는 알려주지 않은 상태였다.


종종 아내의 이름을 언급하며 복수를 하겠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엘리아나가 얼음 속에 갇히게 된 것과 연관된 어떤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자세한 내막까지는 설명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형사 짬밥으로 쌓은 눈치 100단으로도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다.

평소대로라면 주변 인물을 통해 탐문수사라도 하겠지만…, 언데드가 된 네빌에게 친구가 있을 만무했다.

기껏해야 일리나, 일검, 잠든 엘리아나 밖에 없다.


셋 다 뭘 물어봐도 모르니 결국, 자세한 건 본인에게 듣는 수밖에 없다.


[있지? 진짜 이유. 그러지 말고 좀 말해 봐.]


지금까지는 그러려니 하고 가슴 속에 이 호기심을 묻어두고 있었지만, 이제는 다르다.


무슨 원한인지 몰라도 많은 사람의목숨이 걸린 이상, 그 복수에 대한 것과 이유에 대해서만큼은 확실히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면 나중에 다 알게 될 것이다.]


기껏 지랄이 돌아올 것을 각오하고 이야기를 꺼냈건만, 당사자인 네빌이 말을 아꼈다.


시간이 지나면 다 알게  거라니?

내가 무슨 독심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알게 된다는 것인지 몰랐기에 답답함은 점점  커져만 갔다.

내가 내연관계, 불륜, 꽃뱀, 사기 등의가설을 토대로 전전긍긍하는 사이.


네빌이 본드래곤의 머리 위로 이동하며 말했다.

[다 왔군. 저곳이 아너스 왕국이다.]


고층 아파트처럼 커다란 본드래곤의 위에서는 아너스 왕국의 국경이 보이는 모양이었다.


나는 하멜 성 외의 다른 왕국은  적이 없었기에 팬텀스피드의 엉덩이를 철썩 때린 후 산을 올랐다.

팬텀스피드도 나처럼 언데드라 고통을 느끼지 않았기때문에 때려도 딱히 빨라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내 명령을 용케도 알아차린 팬텀스피드는 투레질도 없이 가파른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지치지 않는 유령답게 막힘 없이 산을 오르면서 아너스 왕국의 전경이 펼쳐졌다.

힘들게 찾은 아너스 왕국의 전경은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왕국의 이미지대로였다.


평야에 넓은 성벽을 쌓은 평범한 왕국이다.

거대한 왕국을 중심으로 무수히 많은 도시와 마을들이 거미줄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런데 어찌  영문인지 좌측 국경지대로 보이는 구역에 엄청나게 많은 병사가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파란색 옷을 입은 말을 탄 기병들과 지팡이를  마법사들 그리고 성경을 든 사제들과 활을 든 궁수들이 후방에 배치되어 있었고, 전방에는 창과 검과 방패를  병사들이 사단장님 방문을 기다리는 사병처럼 바짝 긴장한 채로 줄을 지어 늘어서 있었다.

멀어서 잘  보이는 탓에 그 수가 확실히 가늠되지는 않았지만, 대충 5만의 병력이 운집해 있는 것 같았다.

만반의 전투태세를 갖춘 병력 사이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딱딱하게 굳은 병력의 행동으로 보아 사단장이 아니라 말 한마디로 산 하나를 치워버렸다는 전설 속 군단장님이라도 방문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아니, 군단장이 지휘할 것 같은 분위기야. 일촉즉발의 분위기. 혹시 우리가 오는  알고 미리 전쟁을 준비한 건가?]


[멍청한 놈. 반대쪽을 잘 봐라.]

[반대쪽?]

네빌의 말에 나는 고개를 돌려 좌측을 살펴보았다.

저편에서 아너스 왕국 국경에 도열한 군대보다  3배 정도 많은 병력이 뭉쳐서 이동 중이었다.

멀어서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파란색 옷을 입은 아너스 왕국의 군대와 다르게 반대편의 군대들은 붉은색, 주황색, 노란색을  옷을 입고 있었다.

현재 각자 파를 나누어 진군 중이었다.

아무래도 다른 나라의 병사들인  같았는데, 흉흉한 분위기로 보아 한바탕 전쟁이라도 벌이려는 것 같았다.


[설마. 저놈들 지금 자기들끼리 전쟁이라도 하려는 건가?]

의외의 상황에 네빌이 턱을 괴더니 손을 뻗으며 말했다.

[한번 확인해 보도록 하지.]

그의소매에서 마술사가 쇼를 펼치는 것처럼 까마귀들이 나타났다.


까마귀들은 네빌의 명령을 받아, 양측 군대의 머리 위를 날기 시작했다.


까마귀들의 시야에 군대가 들어오자 네빌이 손을 튕겼고, 그의 앞으로 일전에 보았던 백색의 크리스털이 나타났다.


크리스털은 감시카메라처럼 까마귀들이 보는 것을 그대로 비춰주었다.

네빌은 까마귀들을 조종해서 양측 군대의 깃발들을 확인해 알려주었다.

[불그 왕국, 칼토르 왕국, 갈론 왕국 왕국인가. 과연. 세 왕국이 연합을 맺고 아너스 왕국을 치려는 것인가. 크크! 탐욕스러운 왕들에게 딱 맞는 어리석은 사고방식이다. 크크크!]

[뭔데?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데?]

상황을 살핀 네빌은 나와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일검을 보더니 자신의 추측을 가미해 현재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그 설명을 짧게 요약하면 이랬다.


아너스 왕국과 가장 가까운 세 왕국.

불그 왕국(노란색), 칼토르 왕국(주황색), 갈론 왕국(붉은색)이 일검의 반역으로 아너스 왕국(파란색)이 힘을 잃은 틈을 타서 협약을 맺고, 침략을 준비 중이라는 말이었다.

땅따먹기인 셈이다.

21세기인류를 살아가는 내게는 이해하기 힘든 사고방식이지만, 이 세상의 문명과 기술 수준을 생각하면 이런 땅따먹기 전쟁이 그렇게 이상한 것은 아닐지도 몰랐다.

[세 왕국에서 파견한 영웅들의 수는 총 여섯. 현재 아너스 왕국에서 보유한 영웅들의 수는 고작 둘. 아너스 왕국에 승산은 없다. 이거 어쩌면 손  대고 코를 풀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견원지간도 그렇고 한국 속담을 자유자재로 응용하는 네빌.


아무래도 내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풀 코도 없으면서 말은 잘해요.]

[코라…. 하긴,  코가 없지. 그런데 최근 들어 신경 쓰이는 것이 있다.]


[신경 쓰이는 거? 그게 뭐야?]


[두영 네놈이 요즘 들어 많이 시건방져 졌다는 것이다.]


[…응?]

[내가 그간 너무 오냐오냐해준 것 같군.]

[아, 아니. 그건…, 네 착각이야. 착각. 그렇지? 그렇게 생각하지? 일검.]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려 일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일검은 고개를 움직여 네빌을 보았다.

그리고 뭔가 고민하듯 다시 날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모른 척했다.

이 새끼 이거 사이보그 아닐지도 몰라.


[일검  새끼. 그동안 내가 얼마나 챙겨줬는데 그렇게 비겁하게 모른 척을….]

[시끄럽고, 두영 너는 당분간 바닥에 찌그러져 있어라.]

네빌은마법을 사용해 날 파묻었다.


나는 머리만 남은 채로 생매장 당했다.

아프지 않지만, 다들 서 있는데 혼자 바닥에 파묻히니 역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콘크리트로 강제 일광욕 당하는 말미의 조직 보스 같은 심경이었다.

[자. 그럼 어떻게 될지 지켜볼까?]


네빌은 진군하던 언데드 대군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 마법으로 군대를 숨긴 후, 산마루에 앉아  일어날 3:1의 전쟁을 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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