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22화.
검에 마력을 쏟아부으며 사각을 노렸다.
내가 일으킨 검기가 산탄총처럼 사방으로 흩어지며 사각에게 뿜어졌다.
사각은 모래 장벽으로 내 검기를 막으려 했다. 그러나 검기는 모래마저 뚫고 놈의 몸을 베었다.
“이 빌어먹을 망자 놈이!”
몸 곳곳에 상처가 난 사각은 욕지거리를 뱉더니 모래 방패를 만든 채 달아났다.
모래를 흡수해 몸을 회복하는 것이 잘린 방패 사이로 언뜻언뜻 보였다.
베어도 금방 멀쩡해지는 것이 불사신 같았지만, 놈도무적은 아니다.
다칠 때마다 마력을 소모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지 않으면 저렇게 화내면서 달아나는 것이 말이 되지 않았다.
‘조금만 더 몰아붙이자!’
나는땅을 지그재그로 가르며 이동하는 사각을 쫓았다.
놈의 뿔이 상어의 지느러미처럼 지상에 튀어나온 채 이동했기 때문에 어디로 이동하는지 훤히 보였다.
[놓칠 것 같아!?]
다시 검을 휘둘러 사각의 뿔을 노렸다.
검기가 뻗어 나가자 놈이 갑자기 모래가 가장 많은 지점에서 치솟았다.
“가만두지 않겠다!”
모래를 일으키며 나온 사각이 분노하며 소리치더니 나선형으로 회전하는 모래 드릴을 만들었다.
리본을 빙글빙글 돌린 것처럼 생긴 모래 드릴이 내 검기를 쳐내며 역으로 밀고 들어왔다.
“죽어라! 데스나이트!”
바닥의 모래가 갈라지며 몸을 밀어냈다.
상당한 힘에검을 들어 막았다.
묵직한 검기를 만들어 버티자 충돌과 함께 그라인더로 쇠를 자르는 것 같은 소리가 나며 불꽃이 튀었다.
모래들이 불똥처럼 떨어져 바닥을 때렸다.
밀려오는 모래의 힘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불똥도 거세졌고, 몸도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밀리면 개죽음이다! 절대 밀리면 안 돼!’
나는 아내와 딸을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버텼다.
데스나이트의 칼자루를 부서져라 꽉 움켜쥔 채 마력을 쏟아부었다.
암흑오라는 8개의 촉수로 변형해 바닥에 꽂고 몸이 밀리지 않도록 버텼다. 그렇게 밀어내는 사각의 힘을 정면으로 받으며 오히려 앞으로나아가 검을 휘둘렀다.
[너나 죽어! 이 개새끼야!]
검을 힘껏 휘두르자 아까보다 더 강해진 검기가 방출되었다.
뿜어지듯이 나간 검기가 사각의 드릴을 자르더니 집채만 한 초승달 모양의 검기로 변해 지상에 있던 사각을 노렸다.
“빌어먹을!”
놀란 사각이 분기탱천했다.
‘잡았다!’
당황하는 사각의 태도에 나는 승리를 직감했다. 하지만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싶은 그 순간 방해가 들어왔다.
“결계를 펼쳐라!”
“사각님을 보호하라!”
“방(防)!”
사각을 노리고날아가던 거대한 초승달 검기의 앞으로 엄청난 수의 장벽이 나타났다.
주술사들의 결계였다.
신비한 힘이 담긴 주술사들의 결계는 몇 겹씩 뭉쳐 내 검기를 막았다.
검기가 강해서 결계 몇 장이 깨지며 사라지긴 했지만, 대부분은 그대로 남아 사각을 지켜주었다.
나는 사각을 지원한 자들을 보았다.
약 200명의 주술사가 파이로 대신이라는 작자와 함께 결계를 펼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릴때 잠깐 본 중국 영화 속 퇴마사처럼 소지와 약지는 쥐고 검지와 중지는 똑바로 세운 손모양을 앞으로 뻗으며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파르르 떨리는 손과 괴로워하는 몇몇 술사들을 보니 결계를 만드는데 상당한 힘이 필요해 보였다.
“잘했다! 파이로 대신!”
“우리가 지원하겠습니다! 술사들은 결계에 전념하고! 병사들은 언데드를맡는다! 검기를 쓸 수 있는 장수들과 의협지사들은 사각님과 함께 데스나이트와 일검을 친다! 반드시 놈들을 죽여라!”
파이로 대신이 다시 명령을 내렸다.
그가 검을 뽑아 무협지의 무사처럼 화려하게 휘둘렀다. 그러자 검 끝에서 붉은 검기가 날아왔다.
모래를 가르며 날아오는 검기에 갑옷을 입은 그의 부하들과 각기 다른 복장의 검사들도 검을 바닥에 내리쳐 검기를 쏘았다.
하나도 아니고 수십, 수백이나 되는 날카로운 검기가 땅을 가르며 쏟아졌다.
[다구리라니. 비겁한 새끼들!]
동시다발적으로 날아드는 검기에 나는 땅을 박차고 공중으로 솟으려 했다.하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망할!]
늪에 빠진 것처럼 몸이 아래로 점점 가라앉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각의 짓이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날아오는 검기들을 막기 위해 검을 들어 바닥으로 내리쳤다.
마력을 잔뜩 싣고 휘두르자 바닥이 통째로 갈라지더니 검은색을 띤 내 검기들이 바닥을 부수며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모래 치솟으며 안개처럼 주위를 가득 채웠다.
서로 다른 빛을 띤 검기들은 짙은 모래 안갯속에서 맞부딪치며 번갯불과 날카로운 충격파를 일으켰다.
요란한 충격파가 사방에서 연거푸 터지자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흔들렸다.
“크악!”
“으악!”
땅이 흔들리면서 공격받은 장수들이 비명을 질렀다.
검기에 몸을 베인 이들의 비명이었다.
나도 검기를 완전히 막지 못해 몸이 긁히고 베였다.
갑옷이 찢어지고 몸 곳곳에서 칼로 벤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해골이 아니라 인간이었다면 과다출혈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몸 곳곳에서 고통이 일어났다.
입고 있던 허름한 갑옷과 망토가깨지고, 찢겼으며 몸은 어느새 골반까지 잠겨 가라앉았다.
“지금이다!”
내가 밀리는 것을 확인한 사각이 다시 두더지처럼 땅을 파고 들어가더니 내 뒤에서 튀어나왔다.
“잡았다. 지옥으로 돌아가라! 망령!”
사각은 그리 외치며 드릴처럼 회전하는 모래 송곳을 내 얼굴을 노리고 찔렀다.
그렇게 그의 송곳이 머리를 뚫으려는 순간.
한줄기 섬광이 날아와 모래 먼지를 모두 걷어내며 사각의 두 팔을 잘라냈다.
“큭!”
팔이 잘린 사각이 몸을 다시 모래처럼 만들어 물러나더니 섬광이 날아온 곳을 보았다.
그곳엔 일검이 있었다.
상반신을 노출한 패션에 은빛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신비로운 모습이었지만, 온몸에 피가 덕지덕지 묻어 괴이해 보이기도 했다.
피 때문에 꼴은 말이 아니었지만, 아직 멀쩡한 것인지 바람처럼 움직이며 주술사들부터 노렸다.
레이저 같은 그의 검기가 주술사들의 결계에 구멍을 뚫고 술사들의 몸을 관통했다.
어깨와 가슴을 관통당한 주술사들이 쓰러졌다.
“반격해라!”
파이로 대신의 명령을 받은 주술사들이 손을 뻗어 반격했다.
부적을 꺼낸 그들은 짐승과 도형의 형태를 띤 얼음과 번개 같은 것을 만들어 발사했다.
주술사들의 날카로운 반격에 일검은 그 공격을 피하고 막으며 내 옆으로 이동했다.
“벌써 포위망을 뚫고 오다니! 백치가 되었어도 영웅은 영웅이로구나!”
아무래도 파이로 대신이 그 난전 속에서 일검을 상대하기 위한 병력을 나누어 보낸 모양.
나는 밉상 일검의 도움에 감사하며 검으로 보내던 마력을 망토로 옮겼다. 그리고 이번엔 날개를 연상하며 암흑오라를 펼쳤다.
등 뒤에 날개가 생기며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촉수로 땅을 짚고 움직일 수 있어서 날개도 되나 싶었는데, 역시 암흑오라는 내가 상상하는 형태로 변형할 수 있었다. 다만, 촉수보다 마력 소모가 심했다.
‘마력이 다 떨어지기 전에! 저 개새끼부터 끝장낸다!’
공중에서 검을 들고 기습적으로 휘둘렀다.
거대한 반원형 검기가 바닥을 부수며사각의 몸을 베었다.
“크윽!”
하반신이 통째로 잘린 사각이 뒤로 날아가 쓰러졌다.
그 근처에 있던 르나르국의 장수들도 공격에 휩쓸려 바닥을 나 뒹굴었다.
[저 사각이란 놈은 내가 맡는다. 너는 다른 놈들을 맡아라!]
“발…목 잡지 마…라.”
일검이 말했다.
퉁명스러운 말투였지만 대꾸하는 것을 보면네빌이 그에게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이 분명했다.
분명, 일검에겐 안 좋을 일이겠지만, 그래도 벙어리일 때보다는 훨씬 나았다.
일검은 다시 르나르국 병사들을 향해 움직였다.
사냥에 나선 치타처럼 뛰쳐나간 그는 순식간에 수십 명의 병사 사이에 뛰어들어 검기를 난사하며 적들을 휩쓸었다.
그의 활약에 실력이 출중한 장수들이 나서서 일검을 상대했지만, 그는 장수들과의 정면대결을 피하고 병사들 사이로 이동하며 적의 전력을 야금야금 깎는 데 집중했다.
틈틈이 주술사들을 공격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영웅답게 실력 하나는 확실했다.
나는 검에 피를 묻히느라 바쁜 일검을 뒤로하고 사각을 향해 움직였다.
[저쪽은 일검에게 맡기기로 하고. 우리 끝장을 봐야지?]
“저급한 데스나이트 따위가!”
“사각님을 지원하라!”
다시 몸을 회복한 사각이 분노하며 모래를 일으켰다.
그 곁에서 파이로 대신들도 수백 명의 장수와 함께 우레 같은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비켜!]
암흑오라의 날개를 펄럭여 검기를 피했다. 그리고 매처럼 날개를 접은 채 아래로 움직여 장수들을 덮쳤다.
떨어지는 힘과 바닥에 떨어진 후 바닥을 박차며 만든 힘으로 앞을 막는 장수들을 단숨에 밀어내자 장수들의 뒤에 숨은 사각이 모래로 만든 짐승들을 일으키는 것이 보였다.
코뿔소의 몸에 전갈의 꼬리를 섞은 것처럼 생긴 모래 짐승이었다.
놈들은 장수들의 틈에 섞여 함께 돌격했다.
그 옆에서 장수들도 검기를 일으키며 발사했다.
[방해하지 마!]
나는 다시 검을 휘둘렀다.
수평으로 휘둘러 검기를 퍼트리고 장수들의 공격을 와해했다.
와해한 후에는 다시금 검을 휘둘러 땅을 베었다.
폭풍처럼 몰아친 검기에 땅이 갈라지고 또 무너지며 장수들과 모래 코뿔소들이 날아갔다.
“겁먹지 마라! 고작해야 데스나이트 하나다! 돌파해라!”
파이로 대신의 지시에 고급스러운 갑옷을 입은 장수들이 내가 흩뿌린 검기를 쳐내며 돌진했다.
무장만큼이나 실력도 한층 뛰어난 자들이었다.
그들은 순식간에 내 앞에 당도해 검을 휘둘렀다.
나는 검을 들어 장수들의 공격을 막았다.
검과 검이 충돌할 때마다 그동안 흡수한 기억들이 떠올랐다.
나는 그 기억에 의지해 몸을 움직이며 검술을 펼쳤다.
막으면서 베고, 베면서 적의 자세를 무너뜨렸다.
때론 성난 파도처럼 밀어붙여 적들의 중심을 무너뜨리고, 또 때론 살을 에는 삭풍처럼 휘몰아치며 적들을 휩쓸었다.
더 빠르고, 강해진 내 공격은 장수들도 쉬이 막을수 없었고, 실력 좋은장수들조차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졌다.
어지간한 장수들과 의협지사들은 내 상대가 되지 않았다. 다만, 그것도 수가 적을 때의 이야기였다.
그렇게 쓰러뜨렸는데도 더 많은 장수와의협지사들이 밀려왔다.
수가 점점 더 늘어나면서 수십 명을 동시에 상대하는 지경에 이르자 손발이 점점 더 어지러워졌다.
“삼중검!”
앞에 있던 세 장수가 내 머리를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검기를 쏘았는데, 날카로운 검기를 검으로 쳐내자 시간차를 두고 두 번째 검기가 날아왔다.
그것마저 쳐내니 이번엔 세 번째 검기가 날아와 같은 자리를 노렸다.
왼팔을 들어 그 공격까지 막자 이번엔 옆에서 장수들이 외쳤다.
“낙산검!”
“비상검!”
이번엔 아래와 위에서 공격이 들어왔다.
나는 아래의 공격부터 막고 자세를 낮춰 머리를 노린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재빨리 검을 둥글게 휘둘러 장수들을 밀어냈다.
원을 그리며 검을 휘두르자 장수들이 검을 세워 막으며 뒤로 밀려났다.
뒤로 밀린 그들은 자세를 낮췄다. 그러자 그들의 등을 밟고 다음 장수들이 공중에서 날아들었다.
날고 기는 장사도 다구리에는 장사 없는 법.
다시 쏟아지는 적들의 맹공에 사각과의 거리가 벌어졌다.
[빌어먹을 놈들! 좀 비키란 말이다!]
머리로 떨어지는 공격을 검으로 쳐낸 후 장수의 턱주가리를 칼자루로 후려치며 소리쳤다.
제대로 맞은 장수가 이빨이 깨진 채 뒤로 날아가 다른 장수들을 볼링핀처럼 쓰러뜨렸다.
간신히 시간을 벌었다 싶은 순간.
“쐐기 대형!”
이번엔 파이로 대신이 외쳤다.
앞열에 있던 장수들이 화살표 같은 진형을 갖췄다. 그리고 대형을 유지한 채 돌진하며 검을 휘둘렀다.
날카롭고 예리한 검술을 펼치며 거리를 좁히는장수들.
쉴 틈 없이 들이대는 그들의 공격에 나는 암흑오라를주위에 퍼트렸다.
옅은 안개처럼 퍼진검은 연기가 장수들에게 스며들자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한 이들은 넘어지며 뒷걸음질을 쳤고, 극복한 이들은 검기를 더욱더 강하게 일으키며 돌진했다.
돌진한 장수들이 벌처럼 검을 찔렀다.
머리, 다리, 가슴, 팔, 사타구니 등등 노리지 않는 부위가 없었다.
[두영! 그렇게 싸우다간 집에 못 돌아갈 것이다. 살고 싶으면 악마가 되어라.]
네빌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진각과 경각 그리고 또 다른 주술사 무리를 동시에 상대하며 내게 경고했다.
그 경고대로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머리를 노리는 장수의 공격을 막고 검을 휘둘러 그의 가슴을 단숨에 베었다.
가슴이 반으로 잘린 장수가 피를 토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한 명이 죽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음 사람이 달려와 날노렸다.
이제는 진짜 죽일 수밖에 없다.
내가 살기 위해서 죽이는 수밖에 없다.
‘살고 싶다.’
망자가 되면서 잃어버렸던 생존 욕구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검에서 새까만 검기가 치솟았다.
3미터 길이에 두께는 30센티가 넘는 검기가 나타나자 장수들도 긴장했다.
“조심해라!”
“사각님과 싸울 정도로 강한 놈이다!”
커다란 검기를 본 장수들은 위험을 느꼈는지공격을 멈추고 수세를 취했다.
나는 검에 더 많은 마력을 불어넣었다.
사실 언제든 강한 검기를발사해 장수들의 공격을 뿌리칠 수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앞을 막는 장수들을 하멜 숲에서 처리한 오우거나 트롤처럼 무참히 도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참았다.
겉은 해골바가지여도 속은 인간이었기에.
같은 인간의 목숨을 빼앗고 싶지 않았기에.
무의식적으로 참고 힘을 조절했다.
하지만 참으면 참을수록 장수들의 공격은 점점 더 조직적으로 변하고 더욱 집요해졌다.
네빌의 말대로 이제는 살기 위해서라도 악마가 되어야 했다.
검기를 일으킨 채 장수들을 보았다.
[빌어먹을놈. 이래서 아까 죄책감이 어쩌니저쩌니했던 거구나.]
문득 네빌이 했던 조언이 생각났다.
여기로 오기 전에 했던 조언이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거든 가족만 생각하라고.
죄책감의 멍에를 받아들이라며 늙은이 같은 조언을 했다.
그때는 무슨 헛소리인가 싶어서 무시했지만, 막상 칼을 잡고 크게 휘두를 때가 되니 그때 네빌이 한 말이 무엇인지 실감했다.
“죽어라! 더러운 망자 놈!”
내 망설임을 느꼈는지 장수들이 다시 돌진했다.
그들의 뒤에는 사각이 만들어낸 커다란모래 사자도 함께 돌진하고 있었다.
마치 해일처럼.
모래 사자 10마리가 장수들과 함께 돌진하고 있었다.
[그래. 까짓 거 악마가 돼주마.]
나는 검에 불어넣은 마력을 힘껏 휘둘렀다.
반원을 그리며 휘두른 검기가 역대급 크기로 변해 땅과 함께 장수들을 해일처럼 휩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