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화 〉11화. (12/83)



〈 12화 〉11화.

하멜 성이 흑마법사 네빌의 손에 떨어지고 벌써 3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르나르, 알고르, 일리오스, 볼그, 칼토르, 갈론, 아너스.

일곱 국가에서 파견한 수만의 병력을 물리치고 성녀를 봉인한 흑마법사 네빌은 대륙 전역의 적이 되었다.

패전 소식은 점점 더 부풀려져 그가 대륙을 수복하기 위해언데드 대군을 모으는 중이라는 소문이 퍼지게 되었다.


위험을 느낀 각국은 흑마법사 네빌의 악행을 더욱 크게 부풀리고 정의와 대의를 운운하며 다시 병사들과 기사들을 모으는 데에 혈안이 되었다. 그러나 각국의 수장들은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평범한 기사들과 병사들을 모아서는 흑마법사 네빌의 언데드 군을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흑마법사 네빌을 물리치고, 성녀를 탈환하기 위해선 평범한 인간을 초월한 국가의 상징이자 각국의 대표하는 영웅들이 나설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몬스터와 괴이들로부터 각국을 수호하는 영웅들은 나라를 지키는 보배나 마찬가지다.

함부로 움직였다가 되레 그들을 잃기라도 한다면, 그 손해는 다시 메울 수조차 없다.

때문에 각국의 수장들은 딜레마에 빠졌다.


수백  만에 다시 나타난 불사자(不死者)의 비밀을 노릴 것인가.

경쟁이 심한 불사자의 비밀은 포기하고 안전하게 영웅을 간직하고 있을 것인가.

지도자들의 욕심은 성녀에게 향했다.


그녀에게는 영원한 생명과 권력과 죽지 않는 힘의 비밀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원불멸의 삶.


탐욕에 찌든 모든 왕의 비원.

당연히 무리해서라도 얻고 싶을 수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지금은 상황이 좋지도 않았다.


조금이라도 손을 늦게 썼다가 네빌이 다른 국가에 먼저 당하기라도 한다면.


불사자의 비밀을 타국에 빼앗길 우려까지 있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은 동맹국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서로 돕고 있지만, 그들의 진짜 목적은 어디까지나 네빌의 죽음이 아닌 성녀 엘리아나의 확보.


불사자의 비밀이 목적이기 때문에 동맹국들의 움직임과 행동을 예의주시해야만 했다.


그만큼 새로운 군대와 영웅을 움직이는 것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모두가 눈치나 보는 그때.

과감하게 나선 국가가 있었다.

바로 르나르국이었다.

르나르국의 로나스 왕이 칠각보전까지 동원해 성녀 재탈환 노리고 있다는 소문이 퍼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들은 허울 좋은 정의감과 성녀 탈환이라는 거대한 타이틀에 속아 그들의 승전을 기원하고 있었지만, 르나르국을 제외한 나머지 여섯 국가는 애가 탔다.

불사자의 비밀을 품은 성녀를 로나스 왕에게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결국, 욕심을 이기지 못한 일리오스와 알고르 교국이 르나르국에 이어서 영웅들을 동원해 하멜 성을 공격하겠다며 천명했다.

수만의 병력이 하멜 성에서 전멸하고 고작 3개월 만에 다시금 전란이 불어 닥친 것이다.


이에 다른 국가도 가만있을  없었다.


불그, 칼토르, 갈론 왕국 순으로 각국의 영웅들을 파견해 성녀 재탈환을 진행하겠다는의지를 표출했다.


아너스 왕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가 이번엔 영웅들까지 동원해 참전의 뜻을 밝힌것이다.


일반 병사들로 모자라 영웅들까지 동원한다는 소식!


아너스 왕국의 로서 왕은 다른 누구보다도 애가 탔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아너스 왕국에서 성녀 재탈환 작전에 동원할  있는 영웅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너스 왕국이 공식적으로 보유한 영웅은 고작 셋이다.

각각 일검, 이검, 삼검이라는 이름을 가진 영웅들로 개개인이 괴이들을 막아낼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진 존재들이었다.


이들을 사용할 수는 있지만, 매년 가을 수확제마다 밀어닥치는 괴이들의 문제를 막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아너스 왕국에 2명 이상의 영웅이 상주해야 했다.


왕국의 치안과 백성의 안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이검과 삼검을 남겨두어야 했다.

아직 일검이 남아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일검은 쓸 수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하필이면 이 귀중한 시국에 반역이라니!”

아너스 왕국의 가장 강한 영웅 일검은 현재 반역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1개월전, 왕국을 지킬 평생의 맹세를 저버리고 갑자기 아너스 왕국의 반역자들을 도와 왕국을 떠난 것이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행방조차도 묘연한 상태였다.


유일하게 일검이 아너스 왕국을 떠난 이유를 아는 로서 왕은 한숨을 쉬며 턱을 감싸 쥐었다.

“감정 없는 쓰레기 놈! 그깟 후손이 뭐라고, 감히 나를 거역하다니!”

일검이 떠난 이유.

그것은 바로 일검의 후손 때문이었다.


일검의 먼 후손이 반역자가 되었고, 반역자가  제 가문의 여식을 지키기 위해 왕명을 거부하고 함께 반역을 일으킨 채 사라진 것이다.


감정없는 로봇 같던 일검이 갑자기 애착을 가지게  것은 아너스 왕국 건국 이래 전대미문의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새로운 영웅이 필요하다. 하루빨리 새로운 사검이 만들어져야 할 텐데….”


로서 왕은 은밀히 진행 중인 영웅 제조 작업을 떠올리며 발을 동동 굴렀다.


아너스 왕국의 영웅은 마법사들이 창조한 인조인간이다.


인간의 몸에 마법을 온갖 강화마법을 때려 박고 방부제를 쳐서 늙지 않는 몸으로 만든다.

지독한 고통이 가해지는 과정이어서  과정에서 영웅들은 감정을 잃고 왕의 명령에만 움직이는 꼭두각시로 변한다.


강한 힘을 지니고 있지만, 제작에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아너스 왕국의 영웅이 추가되는 속도는 매우 더뎠다.

이번에 완성되는 사검만 해도 로서 왕이 어릴 적부터 제작을 시작해 인제야 완성에 가까워지고 있을 정도.

제작이 매우 느린 편이지만, 로서 왕은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자신의 대에서 영웅이 추가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매우 고무적인 성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근에는 불사자의 비밀을 품은 성녀의 존재도 드러났다.

최강의 영웅 사검만 완성되면 기회는 있다고 생각했다.

“이 기회를 놓칠 순 없다. 하루빨리 사검이 완성되어야만 한다.”

로서 왕은 애타는 심정을 억지로 잠재웠다.


사검만 완성되면 그는 즉각 성녀를 탈환할 작정이었다. 그리고 직접 불사자의 힘을 얻어 아너스 왕국 건국 이래 최초의 불사왕이 될 계획이었다.

자신을 배신한 반역자들과 일검까지 제 손으로 모조리 단죄해 보호를 받는 왕이 아닌 직접 힘을 휘두르는 왕이 될 계획이었다.

“네빌이여, 부디  위해 당하지 말고 최대한 오래 버티도록 하라.”

로서 왕은 백마법사 시절의 네빌을 떠올리더니 그 어느 때보다도 그의 승리를 마음속으로 간절히기원했다.

같은 시각.


로서 왕이 그토록 원망하는 반역자들은 하멜 숲에서 고초를 겪고 있었다.



하멜 숲.


이곳은 괄목할 만만 성장을 이룬 초대형 나무가 우거진 숲이다.


어지간한 왕국의 영토보다 몇 배는 넓으며 아마존처럼 고온다습한 환경에 맹독을 지닌 풀과 생명체가 잔뜩 도사리고 있다.

모기, 파리, 진드기, 거머리, 땅벌 등 인간에게 위협적인 벌레들 외에도 남부에서 올라온 죽음을 부르는 괴이와 식인을 하는 각종 야생동물과 야만적인 원시종족 그리고 몬스터가 잔뜩 있었다.

인간이 들어가면 열에 아홉은 죽어서 나오는 극한의 환경을 지니고 있는 탓에 가까운 주민들에겐 출입이 금지된 금단의 땅이자 저주받은 숲으로 통했다.


과거 하멜 성에서는 돌이키지 못할 죄를 지은 범죄자들이 도망치기 위해서 신세를 비관한 교도들이 사고를 가장한 자살을 위해서 찾는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지금 하멜 숲에 인간이 들어와 있었다.


무장한 기사와 병사들이 식욕과 욕심에 눈이 멀어 쫓아오는 야만 몬스터들을 피해 달아나고 있었다.

“막아라!”


“어떻게든 버텨라!”


“쿠워어어!”


기사와 병사들은 먹이와 무기를 노리고 쫓아오는 오크, 트롤, 오우거들에게 쫓기며 달아나고 있었다. 그리고 놈들의 뒤에는 몬스터들을 지배하고 있는 촉수 타입의 괴이가 있었다.


까만 바탕에 덤불처럼 촉수가 이리저리 튀어나온 괴이였는데, 놈은 뒤처지는 병사들을끝이 뾰족한 촉수로 꿰어 그들의 생기와 영혼을 흡수하며 포식하고 있었다.

오크를 비롯한다른 원시 몬스터들은 투박한 돌도끼와 거대한 통나무 둔기를 휘두르며 인간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하고 있었는데, 검과 방패 창과 활로 무장한 인간들은 덩치도 크고 야만적인 몬스터들을 쉬이 당해내지 못하고 달아나기 바빴다.

“달아나라! 어서! 으악!”

지휘를 하던 기사가 오우거가 던진 통나무에 치여 피를 토하며 사망했다.

“조금만 더 힘내라! 조금만 더 달리면 된다!”


지휘관이 죽자 다른 기사가 그를 대신했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전체 숫자는 인간과 몬스터 양측 모두 별반 차이가 없었지만, 체력과 체급에서 심각한 전투력 차이가 존재했다.


홈그라운드라서 쌩쌩한 몬스터들과 달리 인간들은 고온다습한 환경과 기나긴 도피 생활로 지칠 대로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긴 여행의 증거로 몸 곳곳에는 더러운 때가 잔뜩 묻어 있었으며, 장시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탓에 눈두덩이는 시커멓게 부어 있었다.

쉴 새 없이 이어진 강행군으로 체력까지 고갈되어 호흡도 거칠어진 상태.

심각한 피로감으로 검과 방패를 든 기사와 병사들은 평소라면 충분히 피하고 막을 수 있는 공격에도 픽픽 쓰러졌다.

“끄아악!”

쫓아온 오크에게 붙잡힌 기사가 쓰러져 비명을 질렀다.

그는 오우거의 발에 머리가 짓밟힌 채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살려줘! 누가 좀 살려줘!”

죽어가는 기사의 옆에서 오크에게 붙잡힌 병사가 소리쳤다.

손을 뻗고 도움을 구하는 동료를 뒤로하고 병사들은 허겁지겁 달아났다.


“방어 진형! 방어 진형을 갖춰라!”


“어서 도망쳐! 여긴 지옥이야!”

지휘를 하던 기사들도 하나둘씩 쓰러졌다.


그들이 쓰러지자 창과 활을 들고 저항하던 병사들이 무기까지 버리고 달아났다.

오크들은 그들이 버린 무기를 주워 던지며 달아나는 병사들을 공격했다.


마구 날아간 무기에 맞은 병사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비명이 난무했고, 인간 측의 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당장 몰살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하지만 인간 측은 아직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그들이 아직도 버틸 수 있는 이유는 영웅의 존재였다.

얼굴과  전체를 가린 은빛의 갑옷을 입은 영웅.


검 한 자루를 들고 몬스터들과 괴이를 동시에 상대 중인 아너스 왕국 영웅 중의 영웅 일검!

그가 병사들과 기사들의 몫까지 감당하고 있었기에 아직 버티고 있었다.

그는 성게처럼 수십 개의 가시를 지닌 괴이와 싸우고 있었다.


괴이가 가시와 촉수로 기사들과 병사들을 공격할라치면 순식간에 그 앞에 나타나 촉수들을 잘라내고 괴이를 튕겨냈다.


은발 머리를 깃발처럼 펄럭이며 필사적으로 항전하는 영웅 일검의 활약 덕분에 단숨에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인간 측이 아직 전멸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이었다.

“일검님이 시간을 벌어주실 것이다! 그 사이에 빨리 아가씨를 데리고 도망쳐라!!”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 외쳤다.

그의 외침에 기사들이 덜그럭거리는 갑옷 소리를 내며 바퀴가 망가진 마차에서 아가씨를 찾았다.


“아가씨! 도망쳐야 합니다!”


방패로 날아오는 돌도끼를 막으며 기사들이 여인을 찾았다.

고운 피부 아름다운 금발이 잘 어울리는 미녀의 정체는 아너스 왕국 제2공작 일로드 프라이드의  일리나 프라이드였다.

“하지만 일검님이!”

일리나는 혼자 도망갈수 없다는 듯 괴이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는 일검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다.

바로 그때였다.


“전열이 무너졌다! 도망치십시오!”

“어서 돌아나십시오!”

가장 후미에 있던 기사와 병사들이 쓰러지면서 오우거와 트롤들이 망가진 마차까지 밀고 들어왔다.

인간보다 덩치도  놈들이 나무 몽둥이와 통나무를 마구 휘두르며 공격하자 병사와 기사들이 우후죽순으로 나가떨어졌다.


영웅인 일검조차 머리가 둘 달린 오우거의 통나무에 맞아 멀리까지 날아가 쓰러졌다.

오우거의 괴력이 담긴 그 일격에 그의 몸을 감싼 갑옷들이 깨지며 유리조각처럼 흩어졌다.

충격을 완전히 감당하지 못한 일검의 몸은 거목을 부수고  저편으로 떨어졌다.

그가 나무와 바닥을 부수며 나뒹굴자 괴이가 쓰러진 일검을 향해 움직였다.

“일검님!!”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일검의 모습에일리나가 애타는 목소리로 그를 걱정했다.

“아가씨! 서두르셔야 합니다!!”

자꾸만주춤대는 그녀의 행동에 기사가 강제로 그녀를 잡아끌더니 쌀포대를 지듯이 어깨에 들쳐메고 달리기 시작했다.


기사의 어깨에 업힌 일리나는 이미 죽은 기사와 병사들을 보았다.


비참한 모습으로 죽어가는 기사와 병사들.

몬스터들이 그들을 잔혹하게 도살하며 포식하고 있었다.

‘나 때문에…. 나 때문에  사람들이….’

참담함한 현장에 그녀는 속으로 자신의 무력함을 나무라며 끝없는 자책에 빠졌다.

“내가 로서 왕의 손을 거부하지만 않았어도, 하멜 성으로 도망치자고만 하지 않았어도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그녀는 후회의 눈물을 보였다.

로서 왕을 거부하지만 않았더라면 가문이 멀쩡했을 것이다.

자신이 희생했더라면 아버지도 식솔들, 기사와 병사들도 모두 멀쩡했을 것이다.

이런 참극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나 때문에. 미안해요. 정말.”


일리나가 참지 못하고 우는 그때였다.

눈시울이 붉게 물든 그녀의 눈에 오크 한 마리가 들어왔다.

놈은 도끼를 힘껏 던졌고, 놈이 던진 도끼는 그녀를 업고 달리던 기사의 다리를 때렸다.


“크악!”

무릎 뒤를 맞은 기사는 앞으로 고꾸라지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녀 역시 그와 함께 더러운 진흙이 가득한 자리를 굴렀다.

겨우 정신을 차린 그녀는 질척한 진흙을 딛고 일어나며 점점 가까워지는 오크를 보았다.


“아가씨를 구해라!”


일리나가 쓰러지자 나이가 많은 기사가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뒤에서 몬스터를 상대하고있던 기사들이 그녀를 구하기 위해 방향을 바꾸어 다시 몬스터들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아가씨 어서 도망치십시오!”

“하지만….”


“이대로 다른 이의 죽음을 헛되게 해선 안 됩니다! 반드시 살아주십시오!”


“그렇습니다! 아가씨! 여긴 우리가 막고 있겠습니다!”

“꼭 살아남으셔서 주인님의 원통함을 풀어주십시오!”

죽음을 각오한 노기사가방패로 오크의 공격을 막으며 외치자 그의 희생정신에 고무된 다른 기사들도 덩달아 죽음을 각오했다.

충성스럽기 짝이 없는 그들의 헌신에 진흙을뒤집어쓴 일리나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죄송해요…. 정말 미안해요! 다들 죄송해요!”

그녀는 기사들과 병사들의 희생과헌신에 눈물을 보이며 다시 일어나 달아나기 시작했다.


“꼭 살아남으십시오. 아가씨.”


늙은 기사는 멀어지는 그녀를 뒤로하고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벌기 위해 필사적으로 몬스터들을 향해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남은 기사들의 수에 비해 몬스터들의 수는 너무많았고, 곧 그의 머리 위로 거대한 통나무가 떨어졌다.


그가 먼저 통나무에 깔리면서 모든 기사와 병사들이 처참한 죽음을 맞았다.


이제 남은 것은 일리나 뿐이었다.

홀로 남은 그녀는 자신을 위해 희생한 기사와 병사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 숲을 탈출하고자 했다.

자신이 죽으면 기사와 병사들의 희생이 허사가 되기에.


그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살아남고자 했다.


달려가던 그녀의 시야가 자꾸만 흐려졌다.

참으려 했지만, 자꾸만 눈물이 나와 앞을 가렸기 때문이다.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진흙이 묻은 소매로 닦으며 필사적으로 달리고 또 달렸다.


필사적이었지만 거리는 점점 좁혀졌다.

곱게 자란 공작가 아가씨인 그녀가 이런 밀림에서 오크를 따돌릴 정도의 체력을 지녔을 리 없었다.


“꺅!”

얼마 달리지 않아 그녀는 한계에 봉착했고, 체력이 극한까지 떨어진 일리나는 발에 걸린 잔가지조차 꺾지 못한 채 흙탕물이 가득한 물웅덩이에 쓰러지고 말았다.

흙과 진흙으로 엉망이 된 몸을 간신히 일으킨 그녀는 숨을 헐떡이더니 점점 가까워지는 몬스터들을 보았다.


괴물들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녀는 최후를 직감했다.


이제는 도망칠 힘도, 그녀를 지켜줄 사람도 없다.

“죄송해요. 모두. 정말 미안해요.”


자신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떠올리던 그녀는눈을 감았다.

오크가 던진 도끼가 그녀의 머리를 노리고 핑그르르 날아갔다. 그리고 도끼가 그녀의 머리를 강타하려던 바로  순간.


[이크!]

중저음의 목소리와 함께 쇠와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나더니 오크가 던진 도끼가 바닥에 떨어졌다.


기이한 소리를 들은 여인은 울먹이는 눈으로자신의 앞에 나타난 인영을 보았다.


그곳엔 데스나이트 두영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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