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7화.
나는 해골들과의 접전을 떠올리며 데스나이트의 머리를 노리고서 검을 내려쳤다.
이에 데스나이트 역시 들었던 검의 궤도를 틀어 가볍게 공격을 막았다.
깡!
데스나이트의 검에 내리친 검이 가볍게 막혔다.
미동도 않는 데스나이트의 팔을 보니 알 수 있다.
이 까만 해골바가지는 검을 다루는 솜씨도, 힘도 나보다 앞선다는 것을.
이것만 보면 승산이 전혀 없었지만, 그래도 나름 노림수가 있었다.
데스나이트는 오른손에 힘을 더해 그대로 날 밀어냈다.
검을 그었을 뿐인데, 차에 치인 것처럼 몸이 뒤로 밀리며 하늘을 날았다.
간신히 균형을 잡아 뼈다귀 언덕에 내려서니 데스나이트가 휘저었던 검을 똑바로 세웠다. 그리고 내 머리를 반으로가를 듯이 수직으로 내리쳤다.
나는 몸을 오른쪽으로 빼며 왼팔의 방패를 비스듬히 들었다.
데스나이트의 검과 방패가 맞닿자 부싯돌이라도 친 것처럼 방패에서 불꽃이 튀며 마찰음이 났다.
왼쪽 어깨와 팔을 누르는 데스나이트의 힘에 맞서지 않고, 최대한 충격을 덜 받도록 녀석의 검을 흘렸다.
복싱을 할 때 몸을 모아 타격을 흘리는 것과 비슷한 요령이었다.
다행이 데스나이트의 검은 내 의도대로 방패의 매끄러운 면을 따라 내려가 아래에 있던 망가진 해골의 뼈만 부쉈다.
[빈틈…은 아직 없구나!]
공격이 어긋났으니 틈을 보일 법도 한데 데스나이트는 붉은 안광을 번뜩이며 손목과 허리를 틀어 이번엔 아래에서 위로 검을 올려쳤다.
그 능숙한 공격에 방패의 아랫부분이 걸리면서 잘 잡고 있던 방패가 날아갔다.
[제길!]
몸의 균형이 흐트러지는 것이 느껴졌기에 황급히 땅을 박차 데스나이트의 왼쪽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데스나이트가 들었던 검을 역수로 쥐고서 내리찍는 것이 보였다.
무시무시한 기세에 얼른 녀석의 가랑이 사이로 몸을 날렸다.
쿵!
데스나이트의 두툼한 검이 바닥을 찍자 요란한 소리가 났다.
충격으로 지면까지 흔들릴 정도였다.
[여기다! 이 깜둥아!]
가까스로 공격을 피한 나는 검을 들어 데스나이트의 똥구멍을 쑤셨다.
사람이라면 펄쩍 뛸 공격이지만, 육신과 함께 쾌변의 행복마저 잃은 데스나이트는 그저 불쾌하다는 듯 쳐다볼 뿐이었다.
[소용없나.]
데스나이트가 바닥에 박았던 검을 뽑았다.
역시 이번에도 머리통이 박살 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는 모양이다.
‘머리, 머리를 노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다시금 데스나이트의 거대한 검이 날 압박해 왔다.
이번에도 막지 않고 땅을 굴러 피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면서 데스나이트의 왼쪽 무릎 뒤를 칼자루로 후려쳤다.
관절에 충격을 받은 데스나이트의 왼쪽 무릎이 굽혀졌다.
나는 그치지 않고, 몸을 틀면서 검을 휘둘러 데스나이트의 머리를 노렸다.
깡!
깡통을 차는 소리가 울리더니 데스나이트의 투구가 찌그러지며 날아갔다.
투구가 덜그럭거리며 바닥으로 떨어지자, 머리를 가격당한 데스나이트의 눈이 더욱 붉게 타올랐다.
아지랑이까지 피어오르는 붉은 안광의 위로 높이 든 녀석의 검이 보였다.
방금 공격을 성공한 참이었기에 피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어쩔 수 없이 한 손으로 검을 받쳐 막는 자세를 취했다.
예상대로 데스나이트의 검이 떨어졌다.
쾅!
폭발이라도 일어난 것 같은 충격이 느껴졌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지금의 공격으로 잡고 있던 검에 금이 갔다.
데스나이트가 힘을 주면 줄수록 점점 검이 깨지기 시작했다.
[망할! 이래서 체급별로 싸워야 하는 건데!!]
심각한 힘의 차이를 원망하며 나는 다시 오른쪽으로 몸을 날렸다.
지탱하는 힘이 부족해지자 들고 있던 검이 완전히 망가졌고, 덕분에 왼팔이 함께 잘려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나는 바닥을 구르며 바닥에 떨어진 왼팔과 부러진 검을 보았다.
떨어진 왼팔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잘리긴 했지만, 움직일 수는 있는 모양이다.
느낌이 팔을 주워 다시 관절에 끼워 넣으면 될 것 같다. 하지만 떨어진 팔 앞에는 데스나이트가 서 있었다.
놈은 투구만 잃었을 뿐, 아직 멀쩡한 상태.
반면, 나는 방패와 검으로 모자라 왼팔마저 날아간 상태다.
몸이 뼈다귀가 아니었다면 이미 죽은 것이니 마찬가지였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망가진 검을 버리고 스켈레톤 나이트 중 하나의 것으로 추정되는 오각형 방패를 들었다.
끝이 쐐기처럼 뾰족한 녀석이었다.
[역시 일반 스켈레톤 나이트보다 조금 강할 뿐. 데스나이트의 상대는 안 되는 건가? 한심한 놈! 애들을 살리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 그 각오가 거짓이 아니라면 실력을 보여라!]
왼팔이 날아간 내 모습에 네빌이 소리쳤다.
그가 아래턱을 움직이는 동안 데스나이트의 움직임도 멈추었다.
그 틈에 나는 몸을 일으켜 다시 언덕 위로 올라가 외쳤다.
[안 그래도 그럴 참이다!]
한 손으로 방패를 들고 어깨를 풀었다.
데스나이트가 다시 내게 집중하며 검을 들었다.
나는 놈이 내리치는 타이밍에 맞춰서 그 공격을 피했다.
복싱을 할 때처럼 자세를 잡고 옆으로 움직여 피했다.
몇 번의 공격이 더 이어졌지만, 마찬가지로 간격을 절묘하게 조절해서 피했다.
[복싱이라던 무술인가? 흥미롭군.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저렇게 날렵하게 움직일 수 있다니.]
곧 데스나이트가 큰 동작을 취했다.
검을 높이 들고 정면으로 내리치면서 휘두르는 자세였다.
움직임이 큰 동작이었기에 얼른 안으로 파고 들어갔다. 그리고 아까처럼 다시 놈의무릎을 때렸다.
제대로 때렸으나 데스나이트는 멀쩡히 날 보더니 다시 칼을 휘둘러 공격했다.
나는 다시 바닥을 굴러 물러났다.
싸움을 지켜보던 네빌은그새를 참지 못하고 다시 말을 걸었다.
[어떤가? 두영. 지금이라도 인간들을 포기하고 내 밑으로 들어오는 건? 지금이라도 인간들을 죽인다면 특별히 기회를 주겠다.]
[죽으면 죽었지. 그런 짓 못한다니까!]
[고집이 아주 쇠심줄이구나.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가족이 걱정되지도 않는 건가?]
[가족에게 필요한 건 지금의 나지, 너처럼 흉측한 괴물이 아니야!]
[괴물? 건방진 놈. 흥미가 생겨 마지막 기회를 주려고 했더니…. 됐다! 네놈의 사지를 분해한 후에 연구해주마! 데스나이트 놈의 머리만 빼고 모조리 부숴라! 아이들도 살려두지 마라!]
네빌의 지시에 데스나이트가 눈을 번뜩였다. 그리곤 다시 검을높이 들어 내리쳤다.
나는 오른팔의 방패를 꽉 쥐고서 데스나이트를 향해 달려갔다.
데스나이트가 검을 휘두른 검을 자세를 낮춰 간신히 피한 후 다시 바닥을 굴러 데스나이트의 가랑이 사이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녀석의 왼쪽 무릎 뼈마디를 노리고서 방패의 끝으로 강하게 후려쳤다.
퍽!
같은 자리를 세 번이나 쳐서일까?
데스나이트의 무릎 뼈에 금이 가더니 그 무릎이 바닥에 닿았다.
[호오? 스켈레톤 나이트 따위의 공격에 데스나이트가 무릎을 꿇다니.]
역정을 내던 네빌이 조금 감탄했다.
나는 데스나이트가 일어나기 전에 같은 자리를 더 강하게 후려쳤다.
파직!
무릎의 마디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위험을 느끼기라도 했는지 데스나이트가 한쪽 무릎을 꿇은 자세로 검을 휘둘렀다.
골반을 노리고 다가오는 검에 나는 얼른 땅을 박차 피했다. 그리고 데스나이트의 아래턱을 방패의 뾰족한 부분으로 올려쳤다.
소싯적 자주 사용한 어퍼컷이었다.
팍!
강력한 어퍼컷에 턱관절이 깨지며 데스나이트의 아래턱이 바닥에 떨어졌다.
아래턱을 잃은 데스나이트는 화가 잔뜩 났는지내 머리를 노리고서 왼손을 뻗었다.
머리를 잡으려는 녀석의 손에 자세를 낮춰 고개를 옆으로 움직였다.
가까스로 놈의 손이 빗나갔다.
나는 그치지 않고 이번엔 놈의 왼팔 팔꿈치 관절을 향해 방패를 휘둘렀다.
깡! 깡!
쇠말뚝을 내리치는 것 같았지만, 멈추지 않고 복싱 스텝을 밟으며 데스나이트의 관절들을 끈질기게 공략했다.
분노한 데스나이트는 더 적극적으로 공격했다.
큰 검이 붕붕 소리를 내며 날 노렸다.
나는 오른팔을 바짝 붙인 채로 아슬아슬하게 그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놈의 움직임을 잘 관찰한 후방패의 뾰족한 끝으로 데스나이트의 관절들을 야금야금 타격했다.
빠각!!
데스나이트의 왼쪽 무릎 관절이 엉뚱한 방향으로 꺾이며 벽으로 날아갔다.
관절이 망가진 데스나이트는 일어서지도 앉지도 못한 어정쩡한 자세로 자신의 무릎을 보았다.
그 사이 나는 다시 녀석의 등 뒤로 이동했다.
화가 난 데스나이트는 망가진 왼쪽 무릎을 몸의 중심으로 삼고서 등 뒤로 검을 휘둘렀다.
[역시 이번에도 똑같구나.]
내가 데스나이트보다 뛰어나다고 기대하고 있는 한 가지.
그것은 바로 학습능력이었다.
나도 마누라한테 생활비 계산을 못 한다고 멍청하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 편이지만, 망자들은 멍청함의 레벨이 달랐다.
스켈레톤 나이트들과 싸울 때부터 느낀 것이지만, 이놈의 망자들은 학습 능력이 없다.
똑같은 패턴만 보였다.
상대가 자신의 가랑이로 피하고 엉덩이를 찌르면 보통 사람들은 엉덩이의 안전을 위해 이를 사전에 막거나 거리를 벌리는 등 더 나은 회피 및 공격 방법을 찾을 것이다.
하지만 데스나이트 같은 망자들은 통증을 느끼지도 않고, 생각도 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공격을 당해도 아프지 않으면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는다.
그저 이전처럼 똑같이 움직인다.
통하지 않는 공격이라 속단하고 같은 방식으로 더 빨리 움직이면서 싸우려고 한다.
마치 오락실 게임기 패턴처럼 말이다.
처음에는 데스나이트의 솜씨가 날카로워서 위협적으로 느꼈지만, 패턴이 파악된 지금은 어떻게 움직일지 예상할 수 있어 피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렇지.그렇게 움직여야지!]
다시 검을 휘두르는 데스나이트의 행동에 나는 녀석의 오른팔 팔꿈치를 후려쳤다.
방패의 끝과 팔꿈치의 관절이 맞닿자 무릎처럼 팔꿈치 관절도 부서지며 검을 잡은 데스나이트의 손이 아래로 떨어졌다.
데스나이트의 검과 팔목이덜그럭거리는 것을 본 네빌이 턱을 딱딱 떨었다.
[재밌군. 재밌어!]
네빌이 기뻐하며 소리쳤다.
나는 아직쓰러지지 않은 데스나이트에 집중했다.
남은 건, 모든 관절을 끊고 머리통을 부수는 것뿐.
끝이 머지않았다.
[해체 작업 간다! 깜둥아!]
나는 차분하게 놈의 왼팔 팔꿈치와 오른쪽 무릎을 공략했다.
데스나이트는 끈질기게 저항했다.
싸움이 더 이어지고 뾰족했던 방패가 마모되어 더 못 쓰게 될 즈음.
데스나이트의 양팔과 양다리가 모두 끊어졌다.
데스나이트는 바닥에 엉덩이를 댄 채 덜그럭거렸다.
그 모습이 꼭 뒤집어진 거북이 같았다.
팔 다리 관절이 끊어진 데스나이트는 제대로 설 수 없었고, 일어나다 넘어지는 것만 반복했다.
“이, 이겼다!”
“해골 아저씨가 이겼어!”
뒤쪽에서 승리를 확신한 청년과 앤디가 외쳤다.
희망을 찾은 듯 목소리가 밝았다.
[녀석들. 좀 더 일찍 응원해 주지.]
나는 새로운 방패를 들어 데스나이트의 얼굴을 보았다.
아래턱이 날아간 데스나이트는 침묵한 채 날 응시했고, 나는 녀석의 머리통을 노리고서 다시 방패를 내리쳤다.
강철처럼 튼튼한 두개골을 몇 번씩 반복해서 내리쳤다.
워낙 튼튼한 탓에 흠집도 가지 않았다. 하지만 바위도 같은 자리, 같은 지점에서 똑같은 물방울을 계속 맞으면 구멍이 뚫리는 법!
체력도 무한이겠다.
멈추지 않고 계속 데스나이트의 두개골을 내리쳤다.
때린데 또 때리는 작업을 계속하자 데스나이트의 머리에 조금씩 금이 갔다.
금이 간 후에는 쉬웠다.
금이 간 부분을 반복해서 때리자 유리처럼 균열이 점점 더 심해지더니금세 두개골이 깨졌다.
머리가 깨지면서 까만 연기가 올라와 사방에 퍼졌다.
[끝났다! 내가 이겼다! 내가 이겼어!]
승리에 기뻐하는 그때였다.
깨진 머리에서 나온 까만 아지랑이가 갑자기 내 몸을 휘감았다.
아지랑이가 몸을 휘감자 몸이 공중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뭐, 뭐야?]
누가 목을 잡은 것처럼 몸이 저절로 떠오라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공중에서 발버둥치며 검은 아지랑이를 보았다.
아지랑이들이 회오리처럼 휘몰아치더니 내 눈과 입 등, 빈자리를 채우며 뼛속으로 스며들었다.
몸에 테이프를 붙이는 것 같은 이상한 감각에 놀라 하나 남은 팔을움직이며 저항했다. 하지만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무섭고 기묘한 감각이 가슴에서 퍼졌다.
제어할 수 없는 감각에 나는 네빌을 보았다.
[너, 너 이 새끼! 약속이 틀리잖아!!]
그가 또 이상한 마법을 부리는 것이 분명했다.
네빌은 아무런 말도 하지않았다.
그저 턱을 괸 채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한참 후 검은 회오리에 휘감기며 시야가 흐려지자 그가 아래턱을 움직였다.
[나…. 아ㄴㅣㄴ…ㄷㅔ….]
소리가 묻히며 검은 회오리가 몸을 완전히 감쌌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빛 하나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나는 그렇게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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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나이트의 몸에서 나온 검은 아지랑이가 회오리가 되어 두영의 몸을 감쌌다.
회오리가 된아지랑이의 정체는 데스나이트의 영혼이자, 네빌이 데스나이트에게 육체를 만들어주면서 사용한 마력 그 자체였다.
즉, 망자가 몸을 움직일 수 있도록 해주는 일종의 동력원, 에너지인 셈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에너지가 지금 두영의 몸으로 모두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너, 너 이 새끼! 약속이 틀리잖아!!]
에너지를 빨아들이면서 네빌을 원망하는 두영.
그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현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네빌은 억울하다는 듯 짧게 한마디 했다.
[나 아닌데.]
그는 결백했다.
지금 두영에게 일어나고 있는 현상은 그가 의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애초에 네빌은 데스나이트의 관절이 다 끊긴 것을 보고 그의 패배를 직감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자신의 위엄을 지키면서 약속대로 자비를 베풀어 줄 수 있을 것인가? 에 대한 고민만 하고 있었다.
지금 두영이 겪는 현상에 대해서는 조금도 아는 바가 없었다.
그래서 언데드 박사이자 전문가인 네빌도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곧 데스나이트의 영혼과 마력을 모두 빨아들인 두영의 몸이 바닥에 떨어졌다.
바닥에 떨어진 두영의 몸은 기존의 스켈레톤 나이트의 모습이 아니었다.
하얗던 뼈다귀가 데스나이트처럼 까만색으로 바뀌었다.
머리에는 여섯 개의 작은 뿔이 뾰족탑처럼 달린 왕관 비슷한 투구를 쓰고 있었다.
망토, 신발, 갑옷 등의 장비도 갖추고 있었으며, 무기는 커다란 검이었다.
[데스나이트가 됐군.]
자신이 처치한 데스나이트의 영혼과 마력을 흡수하더니 그와 똑같은 모습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다른 스켈레톤 나이트보다 조금 강하다 싶더라니, 설마하니 망자의 영혼과 마력을 흡수하는 능력이 있을 줄이야. 그렇게 많은 스켈레톤 나이트와 싸우고도 부서지지 않는 건 바로 이 능력 탓인가?]
독자적인 행동과 정신지배의 면역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처치한 망자의 영혼과 마력까지 흡수하는 힘까지 밝혀진 것이다.
놀라운 발견이었다.
하지만 대륙의 역사상 이런 능력을 가진 망자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검의 저주로 악명과 위명을 동시에 떨친 흑기사 리치몬드도 이런 능력을 지녔었지. 흑마법사가 소환한 망자와 괴이의 힘을 흡수하면서 강해졌다는 일화…. 그저 낡은 옛날이야기라고만 생각했는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다니 흥미롭군.]
네빌은 데스나이트가 되어버린 두영을 보며 턱을 감싸 쥐더니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잠깐, 그렇다면 내가 계속 망자를 생산하고, 그걸 이 녀석이 계속 처치한다면…. 이 녀석 끝도 없이 강해질 수 있다는 의미인가?]
두영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가 궁금해진 것이다.
[어쩌면, 전설로만 내려온 헬나이트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크흐흐흐!]
언데드는 딱히 정해진 계급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그 강함의 척도는 세워져 있었다.
그중에서 스켈레톤 같은 망령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는 헬나이트다.
데스나이트의 경지를 초월하면 오로지 파괴만을 생각하는 데몰리션 나이트가 되고 그 단계를 다시 초월하면 악심(惡心)밖에 남지 않은 이블 나이트가 된다.
그리고 이블 나이트의 단계마저 초월하면궁극의 스켈레톤 헬 나이트가 된다.
지옥에서 돌아온 흑기사라 불려 헬 나이트라고 불렸다.
[반대로 이놈을 연구하면 나 또한 진화가 가능할지도 몰라. 그렇다면 지금보다 더 강해지겠지.]
네빌이 두영을 보며 말했다.
진화는 스켈레톤 나이트만 있는 게 아니라 스켈레톤 메이지에게도 있다.
스켈레톤 메이지는 리치로 진화할 수 있다.
평범한 리치를 뛰어넘으면 정신을 지배하는 마인드 리치가 되고, 다시 그 경지를 초월하면 기억을 먹고 망각을 만드는 오블리비언 리치가 된다.
오블리비언 리치까지 초월하면 불사의 상징인 이모탈 리치가된다.
[전설 속 괴물 헬나이트와 이모탈 리치의 재래. 이 당에 악몽을 가져오기에 충분하겠군.]
네빌은 오랜만에 지식욕이 끓는 것을 느꼈다.
그는 엘리아나의 존재도 잠시 잊은 채, 어떻게 하면 두영을 단시간 내에 효과적으로 헬나이트의 경지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지, 그리고 자신이 이모탈 리치가 될 수 있을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내가 가진 본 드래곤들까지 이용하면 데몰리션 나이트까지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아니야. 드래곤이 어디 흔한 것도 아니고. 그러기에는 조금 아깝지. 역시 데스나이트를 만들어서 마력을 높여주는 게 좋겠군. 마력을 흡수하는 비법을 밝혀내면 내가 놈을 죽여서 놈의 힘으로 강해지는 거지. 이것도 좋은 방법이겠군. 크흐흐! 하늘이 나 네빌의 복수를 돕는구나. 크하하하! 이것도 성녀의 은혜인가! 하하하!]
뜬 눈으로 고민하던 네빌은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은 골목 구석에 숨어 있는 아이들에게 닿았다.
[음? 아, 아직 있었군.]
청년이 가까스로 두려움을 숨기며 네빌에게 말했다.
“저, 저희를 죽이실 겁니까?”
이제야 아이들의 존재를 깨달은 네빌은 잠시 고민하더니 데스나이트가 된 두영을 보며 말했다.
[망자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저, 저희를 살려주시는 겁니까?”
네빌의 말이 믿기지 않는 듯 청년이 되묻자 네빌이 확실히 답해주었다.
[그래. 약속은 약속이니까. 살고싶거든. 하루빨리여기서 떠나라. 머지않아 쓰레기들이 쳐들어올 테니.]
말을 마친 네빌이 쓰러진 두영을 향해 손을 뻗었고, 두영의 몸이 검은 비눗방울에 갇힌 채 둥둥 떠올랐다. 그렇게 네빌과 두영이 떠나려는 그때였다.
“고, 고맙습니다! 해골 아저씨!”
아직 기절한 두영을 향해 한 아이가 외쳤다.
그것은 청년의 동생 앤디였다.
앤디의 말에 다른 아이들도 자극을 받았는지 기절한 두영에게 소리쳤다.
“고맙습니다! 해골 아저씨!”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해골 아저씨!”
“무례인 것 압니다! 하지만 두영님에게 고맙다고 전해주세요! 살려주셔서 고맙다고 정말 감사하다고 꼭 전해주세요!”
아이들에 이어 청년까지 같은 반응을 보였다.
마법으로 두영을 들고 있던 네빌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산 자의 존경을 받는 언데드라…. 크큭! 오늘 세계의 상식이 여럿 부서지는군.내게 재미를 안겨준 최소한의 배려다. 새로운 마을까지 망자들이 너희를 배웅해 줄 것이다. 추악한 놈들에게 죽임을 당하기 전에 어서 빨리 떠나라.]
아이들과 두영을 비웃은 네빌은 손가락을 튕기더니 데스나이트가 된 두영과 함께 사라졌다.
네빌이 사라지자 스켈레톤 나이트들을 제외한 모든 망자가 물러났다.
청년은 스켈레톤 나이트를 경계하면서도 동생 앤디와 아이들을 데리고서 성을 떠났다.
그들이 떠나는 동안 마주친 언데드 중 그 어떤 망자도 아이들을 공격하지 않는다. 오히려 호위까지 해주며 들짐승들로부터 그들을 지켜주었다.
전쟁이 끝나고 망가진 하멜 성에는 마침내 평화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