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화 〉5화. (6/83)



〈 6화 〉5화.


나는 바닥에 떨어진  한 자루를 들었다.

칼날의 이가 나가 볼품없는 검이었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을 터였다.

[다른 흑마법사의 수족 같지도 않은데, 혼자 이 많은 스켈레톤 나이트를 쓰러뜨리다니. 정말 흥미로운 놈이구나. 심지어 정신지배를 받지 않는 걸로 모자라서 그 누구의 마력 공급도 없이 독자적인 행동할 수 있다니. 아주 재밌어.]

그는 한 손으로 턱을 괴고, 다른 한 손으로는 팔을 받치더니  몸을 요모조모 훑어보았다.

빈틈 가득한 그 모습에 나는 검을 들고 네빌의 머리를 보았다.


아까 뼈로 된 용을 부리고, 멋있는 연설까지 했으니까.

이놈은 분명, 라스트 보스다.

차원이 다른 위험한 냄새가 풀풀 풍기지만, 이 해골만 부수면 뒤에 있는 애들을 구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손과 발이 먼저 움직였다.

나는 한 걸음 내딛음과 동시에 검을  손을 들어 네빌의 머리를 기습적으로 내리쳤다.

지금의 내가 낼 수 있는 최고의움직임이었다.

검은 오차 없이 네빌의 머리통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잡았다!’

나는 그렇게 확신하며 움켜쥔 검에 힘을 더했다. 하지만 검이 네빌의 머리를 때리려는 순간 문제가 생겼다.

파지직-!


[뭣?!]

내리친 검이 마치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힌 것처럼 네빌의 두개골 앞 30센티 위에서 멈추었다.


게다가 고압전선이라도 건드린 것처럼 스파크를 튀기며 검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납득하기 힘든 현상에 나는 스파크가 튀기는 지점을 자세히 보았다.

오각형으로 구성된 불투명한 장벽이 검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보였다.

SF영화에서나 보았던 보호막 같은 것이 그를 지키고 있었다.


보호막이라니.


보호막이라니!


[이런 사기꾼 같은 새끼!]

억울한 마음에 한 손을 더해 양손으로 검을 쥐고 더욱 강력하게 짓눌렀다.

하지만 용수철이라도 누르는 것처럼 검을 쥔 손에 힘을 더하면 더할수록 더 강한 힘이  검을 밀어냈다.


이상한 현상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검을 쥔 손끝을 타고 전기가 흘렀다.


전기가 흐르는 건 좋다.


하지만 나는 뼈다귀다.


지금 뼈다귀란 말이다.

그런데 뼈만 남은 내 몸에 전류가 퍼져서 테이저 건을 맞은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으그그그그극-!]


딱! 딱! 딱! 딱!


팔을 타고 머리와 발끝까지 퍼지는 통증에 턱이 딱딱 부딪치며 울렸다.


감전으로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쥐가 내린 것처럼 빠다귀로 된 몸이 마비된 기분이었다.

[보호막이라니, 이건 반칙 아니냐!]

[황당한 놈. 마력 공급도 없이 움직이는 네가 더 반칙이다.]

[뭐?]


내 말에 답한 네빌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검을 밀어내는 힘이  배나 더 강력해지더니 들고 있던 검이 날아가 건물 벽에 박혔다.

“히익!”


“으앙!”


벽에 박힌 검을  애들이 비명을 질렀다.


다행이 날아간 검에 베이거나, 부딪쳐서 다친 아이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공격으로  힘으로는 네빌이라는 녀석을 이길 수 없음이 확실히 증명되었다.

기습도 소용없다.

뼈로 된 용을 부리고, 수만의 인간들을 한순간에 없애는 모습을 봤을 때도 느꼈지만, 이놈은 지금까지의 해골들과는 격이 다르다.

살아나갈가능성 제로였다.

[젠장….]

[평범한 스켈레톤 나이트가 아니구나. 망자여.  출신은 어디냐.]

[출신? 무슨 출신? 학교? 군대? 말하면 알아들을 순 있나?]


갑작스런 질문에 나는 바닥에 떨어진 다른 검을 주우며 되물었다.

흔히 양아치들이나 하는시간 끌기다.

이걸 내가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지금은 물불 가릴 때가 아니다.


나는바닥에 떨어진 해골의 검 두 자루를 들었다.

네빌은 계속 여유를 부렸다.


[기억이 없는 건가? 아니면, 없는 척을 하는 건가? 네가 태어나고 자란 왕국과 삶에 대해서 묻는 것이다.]


[왕국?]

[그렇다.]

[미안하지만,  왕국 출신이 아니라…서!]


파지직-!


주운 검을 다시 녀석의 머리통을 향해 휘둘렀다. 하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장벽이 공격을 가로막았다.

전기도 흘러 몸도 저릿거렸으나 포기하지 않고 계속 팔을 검을 휘두르며 공격했다.

혹시 몰라서 목과 어깨 그리고 가슴을 노리고도 검을 찔렀다.


아쉽게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내게 고통을 안겨주고 싶거든, 성검이라도 들어라. 물론, 들  있을 때의 이야기이겠지만 말이야.]


[내 성검은 몸뚱이가 사라지면서 같이 잃어버려서 말이야! 지금은 그냥 이걸로 좀 쓰러져라!]


나는 다시 공격했다.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죽어줄 수도 없다.

혼자라면 모를까.

뒤에 애들이 보고 있지 않은가?

이미 죽은 몸이라고 해도 민중의 지팡이가 애들의 목숨을 쉽게 포기할 수는 없다.

죽을 때까지 발악하는 거다.

상대가 죽든, 내가 죽든 누가 죽을 때까지 계속 발버둥쳐야 한다.

그게 경찰 아니, 어른의 의무다.

[머리가 나쁜 망자로군.알려주기 싫다면, 내가 직접 확인하겠다.]

거리를 벌려 더 크게 검을 휘두르려는 그때 네빌이 시야에서 사라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내 앞에서 다시 나타났다.


 밖에서 갑자기 사라졌던 것처럼 갑자기 나타났기에미처 대응하지 못했다.


곧 뼈로 된 그의 검지가 내 이마에 닿았다.

[망자여. 네 삶을 보여라.]


보라색의 방진이 나타나며 몸이 떠올랐다. 그리고 누군가 비디오를  것처럼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품에 안겨 시험점수를 자랑하며 용돈을 부탁하던 기억과 운동회  50미터 달리기에서 절대 지지 말라며 응원을 하시던 어머니의 모습도 기억났다.


어머니와 함께 동물원에 갔던 기억.

함께 놀이동산에 갔던 기억.

그리고 살해당한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눈물이 나올 것 같은 정신적 고통에 손을 들어 네빌의 팔을 뿌리치려 했지만, 놈의 팔도 계속되는 주마등도 도저히 떨쳐낼 수 없었다.

부모를 잃은 슬픔에 오열하는 어린 내 모습이 지나고, 체육관에서 복싱하던 기억과 사건을 담당한 형사의 제안으로 경찰이 되기 위해 노력한기억들이 차례로 스쳤다.

처음으로 범인을 검거한 기쁨과 보람.

처음으로 동료를 먼저 떠나보낸 슬픔과 분노.


처음으로 마음을 터놓을 가족이 생겼을 때의 행복과 반드시 지켜주겠다던 딸과의 약속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 모든 기억의 마지막 종착역은….

어머니를 살해한 연쇄살인마의 잔인한 비웃음과 복수에 실패해 모든 것을 잃게 된 비참한 자신의 모습이었다.

[으아아악! 이 개새끼가!]


분노와 원망.

괴로운 복수심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이 고통스러운 기억을 떨치기 위해 나는 사력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내가 휘두른 검은 네빌의 장막에 막혀 부러질 뿐이었다.

검처럼 정신까지 부러질 것만 같았다.


칼에 찔린 것보다도 아픈 통증.

나는 이 지독한 통증을 떨쳐내기 위해 망가진 검을 휘두르고  휘둘렀다.

과오를 인정하지 못하고, 비참해 발악하는 내 모습이 점점 흐려져 갔다.

[과연, 그런 거였군.]

네빌은 마지막 기억까지 모두 읽더니 손을 거뒀다.

나는 바닥에 쓰러졌다.


[신기한 놈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설마하니 다른 세계의 망자일 줄이야. 이두영, 네놈은 아주 흥미로운 녀석이로군.]


나는 들고 있던 검을 놓고 네빌을 보았다.

그의 입에서 나온 내 이름.

나는 놈이 내게 무슨 짓을 했는지 직감했다.

[해골을 만들고, 용을 불러내는 것으로 모자라 이제는 남의 기억까지 훔쳐보는 거냐.]


[다른 세계의 망자라는 나도 처음이다. 그래서 재밌구나. 아주 흥미로워. 지구라는 세상도 한국이라는 나라도. 심지어 네 과거와 직업까지도 아주 흥미롭구나.]

[지랄 맞은 해골바가지 새끼….]

[관심이 생겼다. 지구의 망자 이두영. 네게 제안하지.]

[제안?]

네빌의 입에서 이상한 말이 나왔다.


제안이라니.


내 뼈다귀에 꿀이 발린 것도 아닐 텐데 이상한 말이었다. 하지만 들을 가치는 있었기에 나는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내 밑에서 나의복수를 위해 일해라. 그렇다면, 복수가 끝난 후. 너의 세계로 되돌려 보내주마.]


[뭐?]


내 세계로 되돌려 준다니?

그 말은 이 녀석은 날 다시 집으로 되돌려 보낼 능력이 있다는 뜻인가?

녀석의 말에 문득 네빌이 수만의 해골들을 일으키는 장면과 뼈로 된 용들을 부리는 장면이 스쳐 지났다.


그래. 가능하다.

이런 말도  되는 세상에서, 그런 말도  되는 일을 벌일 수 있다면!


해골이 된 날 집으로 되돌려 줄 방법 역시 알고 있을지도모른다.


이놈이라면, 네빌이라면!

우주선을 찾는 것보다 훨씬 확실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냉수라도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아내를 볼  있고, 딸도 다시 만날 수 있다.

그 상상만으로도 힘이 생기는 듯했다.


네빌이 다시 말했다.

[어떤가? 지금의 너라면 나쁘지 않은 조건이라고 생각되는데?]

손을 내미는 네빌의 모습에 죽기 전에 보았던 이상한 녀석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보이스피싱처럼 무작정 믿어선 안 된다.

그 이상한 괴물과는 절박해서 제대로 따지지 않고 거래했지만, 지금은 확실히 점검해야 한다.


믿을만한 증거가 필요했다.

[내가 그 말을 어떻게 믿지? 네가  이용하기만 하고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만들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어?]


[신뢰에 대한 문제인가. 황당하군. 이두영 너는 지금 찬밥 더운밥을 가릴 처지가 아닐 텐데?]

네빌의 주위로 검은 아우라가 나타났다.


누군가 심장에 칼을 대는 것만 같은 섬뜩한 공포가 몸을 짓눌렀다.

협박.

거부하면 죽이겠다는 협박이다.


[뼈다귀 몇 개를 쓰러뜨렸다고 네가 엄청난 존재라도 된다고 생각하나? 혹시 그렇게 착각하고 있다면, 텅  머리를 좀  잘 굴리기 바란다. 누가 우위에 있는지.]

거부할 권한은 애초부터 내게 없었다.


네빌은 반항할 수 없는 절대적인 위치의 강자.

한낱 해골에 불과한 내가 이길 수 있을 턱이 없다.

그의 제안을 거절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답은 정해져 있다.

죽거나, 굴종하거나.

[바, 받아들이겠다.]


나는 네빌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돌아가고 싶다.


집에 가서 아내와 딸을 지켜줘야 한다.

네빌이 말한 복수가 무엇인지, 얼마나 걸리는 것인지 몰라도, 집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나와야지. 그럼.  번째 명령을 내리겠다.]

“그래. 뭐든 시켜라.”

[이두영. 네놈에게 명한다. 집에 돌아가고 싶거든. 뒤에 있는 인간 아이들을 죽여라.]

[뭐?]

터무니 없는 명령.


[뭐?]


[저 인간들을 죽이라고 했다.]

다시 이어진 말에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처럼 머리가 멍해졌다.

나는 애들을 보았다.

아이들은 겁에 질린 얼굴로 내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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