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화 〉4화. (5/83)



〈 5화 〉4화.

[엘리아나.]


크고 작은 얼음으로 가득 찬 방안.

이제는 뼈만 남은 네빌은 낮은 목소리로 누군가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다.


방의 중심에서 울린 그의 목소리는 냉기가 가시지 않은 거대한 얼음 속의 한 여인에게 향해 있었다.

뼈다귀 밖에 남지 않은 앙상한 그와 달리 얼음 속에 갇힌 여인은 온전한 인간의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고운 피부, 뚜렷한 이목구비의 미인으로 이름은 그의 말대로 엘리아나였다.

얼음 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옷과 머리카락은 마치 물에 빠진 것처럼 하늘거리며 얼음 속에서둥둥 떠다녔다.

네빌은 얼음 속의 엘리아나를 애타게 바라보았다.

해골인데도 그 모습에서 진한 애정이 묻어나는 듯했다.

그는 얼음의 코앞에 섰다.

그때 얼음의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온 동그란 거품이 여인의 몸을 툭툭 건드렸다.

여인의 몸이 얼음 속에서 조금 흔들렸다.

긴 머리카락이 그녀의 꾹 감긴 왼쪽 눈을 가렸다.

[엘리아나….]


거품으로 그녀의 몸이 움직이자 네빌이 귀신에 홀린 것처럼그녀를불렀다.

마치 깨어나길 간절히기대하는 목소리였으나, 아무리 간절하게 불러도 그녀는 일어나지 않았다.


[엘리아나…. 미안하오.]

헛된 기대임을 안 그는 자신의 목소리가 얼음 속에 갇힌 엘리아나에게 닿지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의 대답을 갈구하며 차가운 얼음에 손을 대었다.

치지직-!

[큭!]

네빌의 손과 얼음이 닿자 스파크가 튀었다.


번개처럼 요란한 스파크에 그는 자신의 손을 보았다.

손에서는 검은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뼈가 강산에 닿은 것처럼 조금씩 부식되고 있었다.

[엘리아나.]

네빌은 슬픈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부르더니 통증을 견뎠다. 그리곤 더욱 힘을 주어 얼음 속으로 자신의 팔을 쑥 밀어 넣었다.

단단한 고체라 생각했던 얼음 속으로 그의 손이 들어갔다.


마치 모로 세워진 호수에 손을 넣는 것만같은 모습.

물속으로 끌려가듯이 유영한 그의 손이 서서히 엘리아나에게 향했다.


네빌은 얼음 속으로 손목을 넘어 팔꿈치까지 집어넣었다.


깊이 넣으면 넣을수록 그의 몸에서는 정전기가 튀며 연기가 올라왔다.


통증 또한 그저 닿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심해졌다.


마치 멀쩡한 팔을 불로 지지는  같은 고통이 그를 괴롭혔다.

[크윽-!]


그는 신음하면서도 팔을 거두지 않았다.

그와 얼음이닿으며 일어난 스파크가 번갯불처럼 사방을 불태웠다.

네빌은 용암에 손을 넣는 것처럼 괴로웠지만, 집념과 정신력으로 고통을 견뎌내더니 억지로 엘리아나의 얼굴을 가린 머리카락을 옮겨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으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용을 써도 그녀의 얼굴까지는 손이 닿지 않았다.

팔도 팔꿈치 이상 넣을  없었다.

[조금만 더…. 제발. 조금만 더….]


네빌은 통증을 억지로 참으며 다시 힘을 주었다.


하지만 같은 극을 밀어내는 자석처럼 그가 엘리아나를 잡으려고 하면 할수록  강한 힘이 그를 밀어냈다.


결국, 반발력을 이기지 못한 채 네빌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크으으윽!]


튕겨 나온 네빌이 엄습하는 통증에 신음했다.

그는 얼음 안에 갇힌 엘리아나와 표면에 비치는 자신의 흉측한 해골 얼굴을 보며 무릎을 꿇은  흐느꼈다.


[엘리아나. 그대를 구하지 못한 나를 용서해주오. 그대를 이렇게 만든 세상을 용서치 못하는 날 이해해주오.]

해골이라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분명 깊은 슬픔에 잠겨있었다.

눈물 없이 오열하던 네빌은 소매의 옷이 저절로 수복될 즘에야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는 얼음 속에서 잠든 엘리아나를 보며 저린 팔을 쥐락펴락했다.

몸에서 나오던 연기가 완전히 사라진 것을 깨달은 그는 엘리아나를 두고 성 밖을 보았다.


마력의 끊김을 느낀 것이다.

[스켈레톤 나이트의 반응이 사라지고 있군. 침입자인가?]

그의 몸에는 수만에 달하는 망자들이 세포처럼 연결돼 있었다.

집중하면 그들의 시야를 공유할 수 있을뿐만 아니라 직접 조종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렇기에 자신에게 연결된 망자들의 연결이 끊어지는것도 느낄 수도 있었다.


연결이 끊어졌다는 것은 자신이 일으켜 세운 스켈레톤, 좀비, 구울등의 망자가 활동을 멈추었다는 의미.


망자들이 저절로 활동을 멈출 일은 없으니 누군가 강제로 활동을 멈추게 한 것이 분명했다.

요컨대, 성내의 생존자나 침입자가 있다는 뜻이었다.

[라이프 센서.]

생존자라면 망자들이 해결할 것이지만, 침입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자신의 복수를 방해하려는 자가 있다는 뜻이니 직접 처단해야 했다.

침입자는 용서할  없는 네빌은 화풀이도 할 겸, 마법을 사용해 침입자의 정체를 확인했다.


그의 눈앞에서 마법진이 나타나더니 성의 내부를 비추었다.


 전체로 생명체에 대한 탐지 마법을 펼친 것이었다.


네빌은 생각보다 많은 생명반응에 놀라면서도 침착하게 대상의 범위를 조절했다.


쥐와 고양이 같은 야생동물은 거르고, 탐지 대상을 인간으로 좁혔다. 그러자 많았던 반응이 9개로 줄어들었다.

[역시 침입자인가.]


많은 수였기에 네빌은 침입자가 들어왔다고 생각했다.

그는 얼른 망자들의 시야를 공유해 침입자를 확인했다.

침입자를 확인한 그는 당황했다.

[아니군. 생존자인가.]

 청년과 청년의 품에 안긴 여덟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는 어린아이들이 자신을 암살하기 위해 찾아온 침입자라고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들의 능력으로는 가장 약한 스켈레톤조차 버겁기 때문이다.


[그렇담. 대체 누가 스켈레톤들을 이렇게 부수고 있는 거지?]

네빌은 다시 마법을 사용해 망자들의 시야를 확인했다.

곧이어 그의 앞으로 스켈레톤 나이트와 전투를 벌이고 있는 또 다른 스켈레톤 나이트의 모습이 잡혔다.


[응?!]


시야를 확인한 그는 깜짝 놀랐다.

스켈레톤 나이트와 스켈레톤 나이트가 싸우고 있었다.

똑같은 놈들끼리 싸우고 있는 것이다.

이를 본 네빌은 당황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다른 스켈레톤 나이트의 시야로 다시 확인했다.

시야가 바뀌었음에도 똑같은 장면이 보였다.

분명, 화면 속에는 스켈레톤 나이트 하나가 다수의 스켈레톤 나이트들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어째서 스켈레톤 나이트가? 혹시 생존자 중에 나와 같은 흑마법사가 있는 것인가?]


기본적으로 모든 스켈레톤은 흑마법사들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소환수다.

즉, 스켈레톤끼리 싸우고 있다는 것은 성내에 자신에게 대적하는 흑마법사가 있다는 의미다.

[하나뿐이지만, 상대도 확실히 스켈레톤 나이트를 부리고 있군. 여럿을 상대하는 것을 보니 성능은 저쪽이 더 우수한  같고.]

그는 상대 스켈레톤 나이트의 활약을 지켜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일반 스켈레톤들과 달리 스켈레톤 나이트는 생전의 전투기술과 지혜를 어느 정도 지니고 있으며, 완력과 내구력은 어지간한 전사에 버금갈 정도는 된다. 그래서 평범한 스켈레톤 소환 마법 중에서는나름 알아주는 흑마법으로 통한다.


고로, 성을 침입한흑마법사는 완전 초짜는 아니고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놈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상하군. 근처에 다른 흑마법사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는데….]

탐지 마법을 펼친네빌은 근처에 마법사가 없음을 확인했다.

그는 현존하는 흑마법사들 중 가장 강력한 흑마법사.

흑마법사로 전향하기 전에도 7서클 마스터에 올랐던 하멜 성 유일의 영웅이자, 최고위 궁정 마법사였다.


인간이 마법으로 오를 수 있는 최고 경지에 올랐던 존재였기에 리치가 된 지금 그의 센서를 피해 갈 흑마법사는존재하지 않았다.


만약, 그게 가능했다면 지금쯤 그가 도리어 기습을 당했어야 정상이었다.


[그럼, 저놈은 대체 뭐지? 거기다  움직임은 하멜의 검술이 아닌  같은데….]


네빌은 자신의 스켈레톤 나이트들과 싸우고 있는 스켈레톤 나이트를 보며 의문을 품었다.


평범한 스켈레톤 나이트와 다를  없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놈의 움직임은 평범하지 않았다. 그리고  범상치 않은 움직임으로 벌써 스물이 넘는 자신의 스켈레톤 나이트를 쓰러뜨리고 있었다.


특별한 지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직 홀로 묵묵히 스켈레톤 나이트들을 해치우고 있었다.

아무리 생전에 실력이 좋은 기사였다고 하더라도 같이 스켈레톤 나이트끼리 이런 현격한 차이라니?


해박한 마법 지식을 가진 네빌은 상황을 좀처럼 납득할수 없었다.


[재밌군. 아무래도 직접 확인해 봐야겠어.]


호기심이 생긴 그는 마법을 사용해 스켈레톤 나이트들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으로 이동했다.

#


때리고, 또 때리는 작업을 기계처럼 반복했다.

진짜 몸이었으면 지금쯤 지쳐서 쓰러지고도 남았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뼈밖에 안 남은 몸이 오히려 지금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지치지 않으니 몸이 망가지지 않는 한 몇 번이고 싸울  있는 것이다.

[비켜!]

달려드는 해골의 검을 잔뜩 쌓인 방패 중 하나로 막고, 주먹으로 척추를 뽑아서 쓰러뜨렸다.


뼈가 어긋나 무너지면 해골을 발로 짓밟아 깨부순 후 다음 녀석을 다시 상대했다.


어느새 점점  능숙해지고있었다.

게다가.


[점점  쉬워지고 있어.]


몸을 쓰는  점점 쉬워지고 있었다.

뭐랄까, 확연히 눈에 띄는 건 아닌데 점점 강해지는 기분이었다.

펀치도 몸을 움직이는 속도도.

점점 더 빠르고 강해지고 있었다.

덕분에 자신감도 붙어서 더 과감한 움직임도 펼칠 수 있었다.

[근육이 붙은것도 아닌데 내가  강해질 리는 없고, 혹시 노하우가 생겨서 쉽게 느껴지는 건가? 어느 쪽인지 몰라도 이대로라면 애들을 구할 수도 있겠어!]

두 놈이 추가로 다가왔다.


나는 가장 앞에 놈이 휘두른 검을 피하고 그 팔목을 잡고 바깥다리를 걸어 그 옆에 놈에게 메쳤다.


한 번에 많은 해골이 몰릴 땐 이렇게 메치기로 해골 하나를 던져서 다른 해골들을 쓰러뜨리면 시간을 벌 수 있다.

기본적으로엎어치기를 해도 메치기를 해도 해골들은 다시 일어나지만, 움직임이 둔한 편인데다가 검을 휘두르는 것 외에 대단한 기술이없어서 이렇게 시간을 벌면서 1:1로 상대하면 위협적이지 않다.


게다가 이놈들은 숫자가 많으면서 여럿이서 협력하며 싸우지도 않는다.


이 좁은 골목이라면 혼자서 몇 놈이라도 상대할  있었다.

[저리 꺼져라!]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해골의 머리를 또 다른 해골의 머리로 내리쳤다.


 개의 해골이 깨지자 발목을 잡고 있던 해골과 머리 없이 돌아다니던 해골이 달그락달그락 소리를 내며 평범한 뼛조각으로 돌아갔다.

깨진 머리통에서 검은 안개가 올라와  주위에서 흩어졌다.


다시 새로운 해골들이 다가와 검을 휘둘렀다.

놈들이 휘두르는 검  자루를 동시에 막고 발로 골반을 걷어차 한 놈을 넘어뜨렸다. 그러자 뒤에 있던 녀석들이 가득 쌓인 뼈다귀를 넘어오다가 차인 놈과 함께 섞인 채로 바닥에 쓰러졌다.

균형을 잃고 제풀에 쓰러져 허우적거리는 꼴이 그야말로 오합지졸이 따로 없었다.

[이길 수 있다. 이길 수 있어! 얘들아 기운 내라! 아저씨가 반드시 구해주마!]

“해골 아저씨….”

넘어진 녀석을 뒤로하고 남은 녀석 한 놈의 입에 주먹을 찔러넣었다.

목표는 입을벌린 채 다가오는 해골의 주둥이 속 목뼈였다.

손가락뼈를 해골의 목뼈의 마디 사이에 걸고 힘껏 당겼다. 그러자 해골의 두개골이 닭 모가지처럼  부러지더니 바닥으로 떨어졌다.

머리와의 연결이 끊긴 해골의 몸뚱이가다른 해골과 몸을 비비며 난리브루스를 추는 동안 몸에서 떨어진 해골의 두개골에 손을 넣고 눈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글러브처럼 잡았다.

놈들이 검을 써서 검을 쓰고 있지만, 사실 검보다는 주먹이 편하다.

애초에 현대인이라 검을 배운 적도 없을 뿐더러 이래 봬도 왕년에 신인왕전 은메달 출신이기 때문이다.

형사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은메달을 딴 경력이 있었던 덕분!


그래서 칼자루를 휘두르는 것보다 주먹을 휘두르는 것이  자신 있었다.

나는 검 대신 해골 글러브를 장착하고 다가오는 다음 해골의 턱주가리를 후려쳤다.


턱뼈를 잃은 해골의 머리가 시계처럼 돌아가 180도로 꺾였다.


방향감각을 상실한 놈이 다른 해골에 엉겨 붙는 동안, 뼈 무덤을 오르는 다음 타깃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이놈! 요놈! 저놈!]


퍽! 퍽! 퍽!


주먹에 낀 해골 글러브가 박살 날 때까지 계속해서 주먹을 휘둘렀다.

해골 글러브가 부서지면 새로운 녀석의 멱을 따서 글러브를 만들어 싸웠다.


발아래로 깨지고 부서진 해골들의 뼈다귀가 점점 쌓였다.

어느새 잔뜩 쌓인 뼈다귀의 무덤 위에 서서 주먹에  해골을 벽에 휘둘렀다.

망가진 두개골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머리 없이 서성이던 해골이 바닥에 쓰러졌다.

[계속 덤벼라. 이 해골바가지들아!]

계속해서 동료의 머리통이 박살 나버린 탓에 겁이라도 먹은 것일까?

밀물처럼 덤벼들던 해골들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나는 뭔가 달라졌음을 직감했다.

곧 해골들이 차렷 자세를 취했다.

똥꼬에 군기가 잔뜩 들어간 것이 묘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망자가  자를 위해 싸우다니. 흥미로운 녀석이군.]


머리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빌.

전쟁터에서 수많은 병사를 학살한 흑마법사 네빌의 목소리였다.


나는 얼른 고개를 들어 소리가 들려온 머리위를 보았다.


전장에선 로브의 후드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으나 지금은 후드를 벗어 얼굴을 완전히 드러내고 있었다.

로브를 입고 있다는 점만 빼면 지금까지 상대한 해골들과 생긴 건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풍기는 분위기가 달랐다.


하늘에서 서서히 내려오는 여유로움부터 내려다보는 시선까지.

지금까지 상대한  어떤 해골보다도 위험한 아우라 같은 것이 느껴졌다.


위험하다.

나는 절대 상대가 되지 않는다.

싸웠다간 뼈도 못 추린다.


맨주먹으로 양아치와 깡패들을 잡아온 오랜 감각이 그렇게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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