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화 〉3화. (4/83)



〈 4화 〉3화.

망가진 상점과 주점  세 블록을 지나 오른쪽으로 꺾자이제 갓 성인이 되었을 법한 청년이 골목에서 싸우는 것이 보였다.

상대는 나와 비슷한 장비를 갖춘 해골이었다.

해골은 높이든 검을 휘두르며 청년을 공격했다.

공격을 막는 청년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가득했지만, 물러서지 않고 맞섰다.

그는 양손으로 해골의 검을 쳐내고 두개골을 마구 내리쳤다.

깡! 깡!

망치로 쇠를 때리는 것처럼 딱딱한 소리가 울리더니 해골의 몸이 조금씩 뒤로 밀렸다. 하지만 그뿐이다.

일반인이면 뇌진탕에 빠질 정도의 타격이지만, 이미 죽은 해골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청년의 공격이 위협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았는지 그의 공격을맞으며  걸음씩 앞으로 내디뎌 청년을 압박했다.

청년은 검을 내리치며 필사적으로 외쳤다.

“앤디! 빨리 애들을 데리고 도망쳐!!”
“형!”

생존자가 더 있었다.

골목의 구석, 망가진 나무 칸막이 뒤.

7살에서 12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이 있었다.

아직 초등학생 정도밖에  되는 어린아이가 일곱 명.

이제 중학생이 된 것 같은 앤디라는 아이까지 합치면 여덟이나 되었다.

피와 먼지로 때가 잔뜩 묻은 아이들은 모두 겁에 질려 몸을 부들부들떨고 있었다.

꼬질꼬질한 모습도 그렇고,  안에서 도망자 생활을 오랫동안  것이 분명했다.

“빨리 도망쳐!”

청년이 다시 외쳤다.

하지만 아이들은달아나지 않았다.

막다른 골목이어서 옴짝달싹 못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엉엉 울기만 했다.

길이 없음을 안 청년은 절망에 빠졌다.

그는 울 것 같은 얼굴로 앤디라는 소년을 보았다.

방심하는 그때 해골이 방패를 휘둘렀다.

방패는 청년의 얼굴을 때렸고, 그는 방패에 맞아 쓰러졌다.

입술이 찢어져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형!”

청년이 피를 뱉는 것을 본 동생 앤디가 절규했다.

그는 허겁지겁 뛰쳐나와 쓰러진 형의 곁을 지켰다.

“으으…. 도망가라니까.”

“형! 형! 일어나! 형!”

위기에 처한 청년과 소년의 모습에 다른 아이들의 울음보가 터졌다.

“엄마아!”

“아빠아!”

검을 들며 다가오는 해골을 보고 겁에 질린 아이들이 부모를 찾으며 엉엉 울었다.

구석에서 쪼그려 앉아 무릎을 감싸 안고 어머니를 찾는 아이들,  가여운 모습을 보자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겹치는 같았다.

어머니를 잃고 울음을 터뜨리던 어린 내가 저 아이들의 틈에서 함께 울고 있는 것만 같았다.

[저 빌어먹을 놈들!]

나는 참지 못하고 검을 들었다. 그리고 청년과 그의 동생 앤디를 노리는 해골의 뒤로 달려가 검을 힘껏 휘둘렀다.

퍽!!

앤디를 노리고 검을 내리치려던 해골의 머리가 바로 옆에 건물 벽으로 날아가 부딪치며 바닥에 떨어졌다.

바닥으로 떨어진 해골바가지의 붉은 안광이 날 올려다보았다.

붉은 안광이 흔들렸다.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눈빛이었다.

나는 아직 움직이는 해골의 몸통을 보았다.

아무래도 머리를 떨어뜨리는 정도로는 죽지 않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나는 다리를 들어 바닥으로 떨어진 머리를 밟아 부쉈다.

머리가 깨지자 놈의 몸에서 검보라색 연기가 나오며 흩어졌다.

흩어진 연기가 내 주변을 맴돌더니 이내 사라졌다.

예상대로 머리가 깨진 해골의 몸은 더 움직이지 않았다.

역시 전쟁터에서 본대로 해골들은 머리가 부서지면 못 움직이는 구조인  같았다.

[괜찮니?]

나는 청년과 그의 동생을 위협하던 해골의 몸이 완전히 무너지는 것을 확인한 후 아직 쓰러져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 말했다. 그러자 청년이 다시 검을 쥐며 소리쳤다.

“내가 시간을 벌 테니까. 다들 도망쳐!”

아무래도 똑같은 해골의 얼굴을 하고 있어서 날 경계하는 모양이다.

“어서 도망치라고!”

그는 바닥에 누운 채로 검을 겨누며 소리쳤다.

그 행동에 나는 해칠 의도가 없다는 것을 전하기위해 들고 있던 검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투항하는 범죄자처럼 손바닥을 보여주었다.

“어?”

“아, 안 싸울 건가 봐.”

바닥에 검을 놓는 내 모습에 청년과 소년은 당황하며  올려다보았다.

[안심해라. 너희를 공격할 생각 없으니까.]
“스켈레톤이 말을…?”

나도 모르게 이쪽 세상의 언어가 나왔다.

상대와 대화를 하려고 하면 반사적으로 이쪽의 언어가 나오는 모양이었다.

분명, 한국어로 말한 것 같은데 조금 신기했다.

[아,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음음! 자. 어서 일어나. 다른 해골바가지들이 오기 전에 도망쳐야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조용히 그리고 진중하게 말했다.

“거짓말! 해골은 우리 아빠랑 엄마를 죽였어!”

“믿으면 안 돼!”

“해골은 나빠!”

뒤에 있던 애들이 소리쳤다.

울먹이고 두려워하면서도 청년과 앤디라는 소년이 속지 않게 도와주려는 것 같았다.

이에 청년과 소년의 경계심도 깊어졌다.

나는 앞에 있는 청년과 소년을 보았다. 그리고 그들과 눈높이를 맞추며 말했다.

[날 믿기 힘들다는 거 나도 안다. 책임감 갖고 애들을 지키느라 많이 힘들었지?]

“…….”

[무섭고 두려울 텐데도  싸웠다. 정말 대단해. 용감했어. 하지만 이 아저씨는  적이 아니란다. 아저씨는 저 해골들과 조금 달라.]

“뭐가 다르죠?”

[…이 꼴이 되기 전에는 나쁜 놈들잡는 사람이었거든.]

“나쁜 놈들을? 치안대원이나 경비대였나요?”

[그래. 나는 너희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안단다. 그래서 너희를 지켜주고 싶어.너희가 다치지 않고 이 성을 무사히 나갈 있도록 말이다. 그러니까. 한 번만  아저씨 말을 믿어주지 않겠니?]

차분하게 청년과 소년부터 설득했다.

진심이 전해진 것일까?

청년과 그의 동생 앤디가 눈을 마주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경계심이 완전히 사라진  같진 않지만, 지금은 이걸로 충분했다.

[그래.가자. 내가 도와주마.]

두 사람은 나무 칸막이 뒤에 숨어 있던 아이들의 곁으로 다가갔다.

겁에 질린 아이들을 다시 설득한 둘은  아이들을 데리고 골목을 나와 함께 달아났다.

뜀박질을 하며 달려가는 아이들을 쫓아서 나도 달렸다.

이 애들을 지켜줘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우리는 열심히 도망쳤다.

도망치고  도망쳤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미 망자들의 포위망이 완성된 상황이었다.

달아나는 골목골목마다 뼈다귀들이 나타나 무기를 휘둘렀다.

그때마다 내가 대신 놈들의 머리를 부쉈지만, 계속 달아나는 것이 점점 힘에 부쳤다.

애들도 지치고 있고, 나타나는 뼈다귀의 빈도와 숫자도 점점 늘어나고 있어서였다.

들키지 않고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밖으로 나가는 건 어렵겠구나. 숨을 곳은 없니?]

“안 그래도 은신처로 도망치고 있어요. 하지만 놈들이….”

[알았다. 놈들의 수가 적으면 내가 길을 뚫을 테니까. 반드시 가야 하는 길이 있으면 알려다오!]

“일단, 저쪽이요!”

알려주는대로 달려가자 뒤에서 괴물이 나왔다.

“크워어어!!”
“으아앙!”

아이들을 발견한 괴물은 괴성을 질렀다.

외모만큼이나 추악한 괴물의 괴성에 아이들은 겁을 먹으며 달아났다.

괴물이 팔을 뻗으며 아이들을 잡으려고 했지만, 나는 칼을 휘둘러 괴물의 팔을 잘랐다.

무섭게 생긴 것과 다르게 생각보다 몸이 튼튼하지 못해서 놈의 팔이 두부처럼 잘렸다.

[계속 가!]

“얘들아! 이쪽!”

다시 이동하자 이번엔 새로운 골목에서 해골들이 나왔다.

공포의 집 알바처럼 사방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온 해골들은 굶주린 이리떼처럼 조직적으로 거리를좁히더니 아이들을 위협했다.

“이런!”

“형! 앞에 스켈레톤 있어!”

“오, 오른쪽으로!”

“오른쪽에도 있어!”

[내가 막는다! 얘들아! 어서 가!]

나는 애들이 도망칠 시간을 벌기 위해 괴물을 뿌리치고 해골들에게 달려가 몸을 날렸다.

몸으로 놈들을 넘어뜨린 후에는 위에 올라타 방패로 놈들의 머리를 때려서 부쉈다.

망치처럼 방패를 내려쳐 머리를 부수는데도 해골들은 저항하지 않았다.

괴물도 그렇고 아무래도 같은 망자라서 적이라고 인식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 덕분에 반격을 받을 걱정도 없었다.

해골의 수가 조금 많아도 놈들을 처리하는 게 가능했다.

[숨이 안 차는 건 불행 중 다행이네.]

이미 죽은 몸이라서 숨이 차거나 체력이 떨어지는 일도 없었다.

시간만 충분하면 이 자리의 모든 해골을 처리할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입구까지만 간다면 탈출할 수 있을지도.]

달아나는 애들을 보며 희망을 품는 그때였다.

이번엔 좀비들이 나타났다.

[칫! 계속 가!]

나는 얼른 달려가 좀비들을 공격했다.

방패로 밀어내고, 검으로 머리와 몸을 베어버리자 느린 좀비들이 우후죽순으로 쓰러졌다. 하지만 반격을 하지 않는 것은 딱 여기까지였다.

좀비들의 뒤에서 나타난 해골이 갑자기 내게 검을 휘둘렀다.

방패를 들어 반사적으로 공격을 막은 나는 강한 힘에 밀려 바닥을 구른 후에야 일어났다.

충분히 물러난 후, 날 공격한 해골을 보았다.

새롭게 몰려든 해골들이 검과 방패를 든 채 자세를 잡았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내가 스파이라는 것을 눈치챈 모양이다.

[제길! 머리도 텅텅  것들이! 인간처럼 머리 쓰지 말라고!]

해골들은 정확히 내 머리를 노리고서 검을 휘둘렀다.

명백한 적대 행위에 이전처럼 해골들을 쉽게 쓰러뜨리기가 어려워졌다.

나는 하는 없이 방패로 해골의 공격을 막으며 물러났다.

근육이라곤  씻고 찾아봐도 없는 놈들이지만, 검을 휘두르는 힘과 짓누르는  그리고 밀치는 힘은 충분히 있기 때문에 무작정 공격해선 놈들을 뿌리칠 수 없다.

놈들이 생각하지 못하고 반응하지 못하는 곳을 노려야 했다.

[예를 들면 이렇게!]

나는 먼저 한 마리의 뚝배기를 깨부수고 처리한 해골의 방패를 팔뚝째로 뽑아 다가오는 놈들의 발밑에 던졌다.

방패를 밟은 해골은 균형을 잡지 못한 채 주춤하며 미끄러졌다.

가장 앞에 놈이 쓰러지자 그 뒤를 따르던 놈들도 도미노처럼 바닥에 넘어졌다.

갈비뼈가 서로 얽혀서 버둥대는 해골을 뒤로하고 나는 다시 애들을 쫓아 이동했다.

“이쪽으로!”
“형! 여기도 있어!”
“이쪽…. 젠장. 여기에도!”

이대로  달아나면 좋으련만 도망치던 청년이 몇 번이나 길을 바꿨다.

도망을 치면 칠수록 출몰하는 해골들의 숫자가 점점 더 많이늘어난 탓이다.

그때마다 나는 몸을 던져서 애들을 구했다. 하지만 내가 상대할 수 있는 해골의 수는 정도에 불과했다.

다섯 이상은 힘에서 밀려 상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간신히 뿌리치고 도망치는 것이 고작이었다.

죽이지 않는 해골이 늘어나며 우리는 점점 궁지에 몰렸다.

[은신처까지는 아직 멀었어?]

“그, 그게….”

청년은 막다른 골목 앞에서입을 다물었다.

아무래도 방향감을 잃어 막다른 골목에 들어온 것 같았다.

하기사, 무리도 아니다.

지리에 아무리 밝아도 이곳은 적진의 중심.

포위망을 좁혀온 순간부터 해골들을 뿌리치지 않는 이상 탈출은 불가능하다.

“형….”

“오빠….”

붉은 안광을 한 망자들이 점점 가까워지자 겁에 질린 아이들이 청년에게 바짝 붙었다,

“괜찮아. 괜찮아. 내가 지켜줄게.”

청년은 침착하게 아이들을 다독여 주었다.

하나둘씩 늘어나는 해골의 숫자에 나는 다시 검을들고 망자들을 보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막다른 골목은 간격이 좁아서 덩치가 큰 괴물들은 들어올 수 없다.

기껏해야 해골 2~3마리가 나란히 서서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이기 때문에 멍청한 해골들이라면 몇 놈이라도 상대할 수 있다.

숫자가 너무 많고, 도망갈 곳이 없어서 절망적인 상황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지만, 시간은 벌 수 있으리라.

[위험하니까, 이 방패 뒤에 숨어 있어라.]

이대로 곱게 죽어줄 마음도 없었기에 나는 왼손에 들고 있던 커다란 방패를 청년에게 주었다.

방패가 있으니 해골들이 화살을 쏴도 구석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으면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남은 건, 내가 망자들을 막아내는 것뿐이다.

“오빠. 우리 이제 죽는 거야?”

“…….”

한 소녀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상황이 절망적이라는 것을 아는 청년은 아무런 말도 해주지 못했다.

그는 방패 뒤에서 몸을 숨기며 겁에 질린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나 죽기 싫어. 형.”

“엄마. 보고 싶어….”

검을 질질 끌며 다가오는 해골들을  아이들이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이미 죽은 가족을 찾으며 엉엉 우는 애들의 모습에 또다시 딸의 모습이 투영되었다.

그리운 딸아이의 모습이 떠오르자 손에 힘이 들어가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걱정하지 마라. 이 아저씨가 어떻게든 해 줄 테니까!]

나는 우는 아이들을 위로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옛 속담에 호랑이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다.

비록 이곳은 호랑이굴보다 훨씬 지독한 지옥이지만, 악으로 깡으로 버티면 불가능한 따위는없다.

[못 지나간다!  뼈다귀 새끼들아!!]

점점 다가오는 뼈다귀들을 향해 그렇게 외쳤다.

내 말을 이해한것인지, 뼈다귀들이 검을 들고서 달려왔다.

나는 사력을 다해해골바가지의 머리통으로 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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