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화 〉2화. (3/83)



〈 3화 〉2화.

자신을 경배하는 망자들을 본 흑마법사 네빌은 만족한 듯 공중에서 사라졌다.

마치 텔레비전의 전원이 꺼진 것처럼 빛과 함께 그의 모습이 홀연히 없어졌다.

그가 사라지자 최전방에 있던 수만의 해골들이 붉은 안광을 잃고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뼛조각으로 돌아간 해골들은 언제 살아 움직였냐는 듯이 아무렇게나 어질러진 채 다시 움직이지 않았다.

멀쩡한 것은 방패와 검처럼 제대로  무기를 든 해골.

불길해 보이는 검붉은 빛으로 이뤄진 말을  해골.

그리고 덩치가 큰 괴물들과 다섯 마리의 용뿐이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망령계의 귀공자쯤  보이는 못생긴 놈들만 사라지지 않고 남는 것 같았다.

남아 있던 망령들은 언덕의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언덕의 위에는 거대한 산맥과 산맥을 등지고서 세워진 넓은 성이 있었다.

뾰족한 첨탑이 세워진 성의 전체적인 외견은 마누라가 좋아한 옛날 서양 판타지 영화에서 봤던 것들과 비슷했다.

차이가 있다면 이미 한 차례 전쟁을 치른 것인지 건물들이 모두 심각하게 망가져 있다는 것 정도였다.

 면은 완전히 무너져 구멍이 뚫려 있었고, 망루와 첨탑은 거대한바윗덩어리에 부딪혀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마치 유령의 성 같네.]

성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꼴이 폐허나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곳곳이 찢어지고 또 부러진 망자에게는 어울리는 보금자리 같았다.

망자들이 무기를 질질 끌며 망가진 성문으로 걸어갔다.

날개가 있는 거대한 뼈다귀 용들은 날아서, 날개가 없는 괴물과 해골들은 뚜벅이처럼 도개교를 지나 육로로 성 안에 들어갔다.

이동하면서 멍청한 해골들이 해자에 빠지는 등 자잘한 사고가 있었지만, 나름대로 오와 열을 맞춰서 이동했다.

성으로 향하지 않는 것은 내가 유일했다.

[나도 가야 하나?]

나는 고개를 숙여 손과 방패를 뚫고 나온 은화살을 보았다.

방패를 감은 손에는 백골이 있다.

그렇다, 나도 해골이었다.

처음 정신이 들었을 때, 주위에 해골들밖에 없는 것을 보고 짐작하고 있었다.

다른 병사들을 마구 공격하던 해골들이 나는 공격하지 않고 지나쳤으니 나도 그들의 일원임이 분명했다.

[역시 진짜 지옥일까? 아냐. 사람들이 있었으니 지옥은 아니고,그냥 다른 세계 같은 게 분명해. 혹시 나도 트럭에 치인 건가?]

옛날에 체포한 학생 중에 판타지에 심취한 학생이 있었다.

다른 세상에 가겠다며 트럭에 뛰어든 사건이었는데, 그 학생은 트럭에 치이는 게 이세계 국룰이다! 같은 소리를 하면서 8차선 도로를 질주했다.

그 미친 일탈에 도로교통이 마비되는 등 소란이 일어서 이세계가 어쩌니저쩌니하는  취조하면서 주워들은 경험이 있었다.

솔직히 듣기는 했지만, 내용 자체는 잘 몰랐다.

판타지라는 것에 대한 이해력이 다소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해한 내용을 간추려 요약하면 인생의 황금기를 맞기 위해 전생 트럭에 치이면 아무튼 내세에서 여러모로킹왕짱인 몸으로 부활하고 내세에서는 꽃길만 걷는다는 이야기였다.

[근데  왜 해골이지?]

불합리한 의문에 나는 잘 움직이는 손을 두고 배와 다리, 발등을 확인했다.

갈비뼈, 골반 그리고 허벅지와 다리의 뼈가차례로 보였다.

뼈로 된 신체를 지키고 있는 것은 가슴 부근에 채워진 구멍 뚫린 조잡한 갑옷과 왼팔의 방패 그리고 오른손에 껌처럼 딱 붙어 있는 검이 전부였다.

내 내세는 해골이라니….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는데, 조금 슬펐다.

[아무튼, 나도 아까 그 사람들이랑 싸우기 위해 나타난 거겠지?]

그리 추측하며 나는 고개를 돌렸다.

검으로 바닥을 끌며 이동하고 있는 수만의 해골들과  아래 머리에 화살이 박혀 쓰러져 있는 해골을 보았다.

죽은(?) 해골을 보자 문득 이마에서 느껴졌던 고통이 떠올랐다.

호기심이 생겼다.

나는 검을 쥔 오른손의 검지를 들어 방패를 뚫고 나온 화살촉을 건드려 보았다.

사아아아.

[큭! 더럽게 아프네!]

살짝 닿았을 뿐인데도 손끝을 담뱃불로 지지는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화살의 촉에 닿은 뼈에서는 보라색이 섞인 검은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작지만,납땜한 것처럼 손끝의 뼈마디가 녹아 있었다.

[혹시 일반 검에 베여도 이렇게 아픈 걸까?]

다시 호기심이 일었다.

시험 삼아 오른손의 검으로 뼈만 남은 왼손 손바닥뼈를 그어보았다. 그러나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날카로운 강철에 베여도 뼈에 흠집만 생길 뿐,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아무렇지 않은  보니까. 이마와 손끝에서 느껴졌던  통증은 역시 화살촉 때문인 거겠지?]

분명, 지휘관이 은화살을 쏘라고 했다.

아마도 은이 내 약점이리라. 아니, 나만의 약점이 아니라 이런 뼈다귀들의 약점일 것이다.

이 점은 뼈가 은에반응해 녹아내리는 것만 봐도 명확하다.

[은이 독을 흡수한다던 거랑 비슷한가? 미친. 아무리 그래도 사람 뼈가 은에 닿으면 녹는다니? 듣도 보도 못한 현상이네. 국과수 검시관들이 들으면 감식계의 패러다임이 바뀌겠어.]

자조하며 은화살을 버렸다.

예전에 은은 독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다고 배웠다. 그리고 부정한 독이나 안 좋은 것은 은으로 막는다는 종교적인 이야기도들었었다.

아마도 이미 죽어버린 내 몸은 독과 같아서 은에 이런 반응이 일어나는 것이리라.

[그러고 보니 기회가 어쩌고 했었지. 부활은 시켜주겠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내 몫이라는 식으로 말했던  같은데.]

성안으로 이동하는 망자들의 행렬을 보면서 천천히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분명, 어머니를 죽인 연쇄 살인마의 동태를 파악하고, 동료와 함께 추격하던 중이었다.

숨어있던 범인이 둔기를 휘두르면서 동료가 뒤통수를 맞고 쓰러졌다.

뒤이어 내가 범인과 격투를 벌이다 녀석이 소매에 숨겨놓은 칼에 배와 가슴을 수차례 찔려 쓰러졌다.

기분 좋게 패다가 불의의 기습을 당한 것인데, 내심 기회가 있을  그냥 총으로 쏴버리지 않은 게 후회스러웠다.

아무튼, 칼에 찔려서 도망친 범인을 더 쫓지 못하고 죽음만 기다리던 그때 천사인지 악마인지 모를 이상한 생명체가 나타났다.

문득 그것과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살고 싶으냐는 질문과 그렇다고 한  대답.

그놈이 극락왕생이 어쩌고저쩌고하면서 기회를 준 것과 가족에게 돌아가는 것은 스스로 하라던 마지막 말이 기억났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저승사자 같은 거였을지도 모르겠네. 아니면 이 모든 게 지독한 악몽이거나.]

 괴이한 괴물을 저승사자로 단정하며 나는 손을 쥐었다 폈다.

 모든  꿈이고, 내가 늦잠을 자는 것이면 좋겠지만.

은화살의 통증 탓에 이 모든 게 진짜라는 확신이 생겼다.

꿈이 아니다.

집으로 돌아갈 방법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이럴 때가 아니지.]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잡생각을 지웠다. 그리고 다시 상황을 정리했다.

나는 연쇄살인범의 손에 죽었고, 이상한 저승사자가 날 살렸다. 그런데 제대로 살린 것은 아니고 뼈만 남긴 채 살렸다.

사기 당한 심정이지만,  모든 게 꿈이 아니라 현실이고 이곳이지구가 아닌 또 다른 세상이라면 지구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게 우주선이든, 아까 마법사 네빌이 사용한 신비한 힘이든.

뭐든 이용해서 집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나는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두 개의 달이 보였다.

이것만 봐도 일단 내가 있는 한국이 아님이 명약관화하다.

벌써부터 암담해졌다.

[진짜 우주선이라도 찾아야 하나?]

평소라면 우스갯소리로 넘길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고 막막했다.

당장 하늘에  있는 달을 보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무기력해지고 우울증에 빠질 정도.

하지만 그래도.

[집에 가야지. 어떻게든.]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내와 딸의 모습이 떠올라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집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야 했다.

[포기하면 그대로 끝이다. 맨땅에 헤딩하는 게 처음도 아니고. 기합을 넣고 가자. 분명, 무슨 방법이 있을 거야.그래. 분명히!]

이렇게 단서도 없이 처음부터 막막한 상황은 미제 사건을 수사하면서 몇 번이나 겪었다.

 정도 고난과 절망감은 내게 있어 대수로운 것이 아니다.

그래. 그럴 것이다.

그렇게 불안을 달래며 약해지는 마음을 다잡고 정신을 차렸다.

[일단 정보부터 수집하자.]

잡다한 것이라도 좋다.

우선은 이곳이 어떤 곳이고, 어떤 세상인지에대한 정보를 수집할 필요가 있다.

식어가는 피와 썩은 시체들을 뒤로하고, 나는 망자들을 따라서 성안으로 이동했다.

저벅저벅 뒷산을 오르듯이 망자들을 따라 성으로 이동하자 웅장한 성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엄청나군.]

한참을 올라 도착한 성채는 크고 웅장했다.

고대 유적을 눈앞에 둔 것처럼 경이로움이 느껴질 정도였다.

비록 내부는 엉망진창이지만.

[여기도 시체가 있네.]

갑옷과 검을 들고 죽은 병사의 시체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고, 곳곳에 마른 피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썩은 시체를 파먹는 쥐새끼 같은 생명체와 기이하게 생긴 벌레가 들끓었다.

보기역할 정도였다.

[끔찍하군. 냄새도 심하겠어.]

후각이 사라진 덕분에 시체 냄새는 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정도 부패라면 끔찍한 악취가 날 것이 분명했다.

[피가 씻기지 않은 걸 보면 비가 내린 것 같진 않고, 부패 상태도 전투 후 일주일 정도가 지났겠어. 그럼, 일주일 전부터 전투가 있었던 건가? 지독하구나.]

시체의 상태와 피를 확인하곤 무리를 지어 걸어가는 해골들이 보였다.

똑같은 장비를 착용한 해골들이었는데, 이제 보니 놈들의 무장은 목이 잘려 죽은 병사들의 것과 똑같았다.

성밖에 있는 병사들과는 다른데, 성 안에 있는 병사들과는 비슷했다.

[그러고 보니 죽었던 사람들도 살려냈지.]

아까 죽은 사람을 시체와 뼈다귀로 되살리던 것과 성녀를 구출하러 왔다던 인간들의 말이 기억났다.

네빌이라는 흑마법사가 이 성에서 무슨 짓을 했고, 시체를 되살려 성을 되찾으러 온 사람들을 물리쳤다는 추측이 가능했다.

[죽은 사람을 뼈다귀로 되살리는 기술이 존재하는 건가? 죽어도 죽은  아니라니. 대체 어떻게 되먹은 세상인지 모르겠네.]

잘은 모르겠지만, 여기서 죽은 이들은 네빌의 부하가 되어 조종당하거나 저런 몰골이 되어서 서서히 썩어 문드러지는 운명이리라.

나는 들고 있던 검과 방패를 빼서 바닥에 버리고 머리 없는 병사의 시체에서 방패와 검을 빼냈다.

아무래도 기존에 장비하고 있던 물건들의 상태가 좋지 않은 편이다.

 튼튼해 보이는 것으로 갈아끼고 싶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전혀 모르니 더 좋은 무기를 챙기는  좋을  같았다.

한 손에는 검을 다른  손에는 방패를 든  나는 망자들을 따라서 이동했다. 그리고 중앙을 지나 성안 깊숙이 들어갔다.

망자들을 따라가면 갈수록 병사들의 시체는 줄어들었지만, 끔찍하게도 이번엔 노인, 여자, 아이들의 시체들이 나타났다.

이번엔 그리 오래된 시체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더 보기 힘들 정도였는데, 그 숫자가 걸음을 떼면 뗄수록 늘어났다.

[네빌이라는 놈은 나쁜 놈이 분명하겠군.]

검에 찔려 사망한 아이, 갓난아기를 껴안은  아기와 함께 불에 타 죽은 것으로 보이는 여성 외에도 온몸에 화살이 박혀 죽은노인과 괴물에게 뜯어 먹히기라도  것인지 신체 일부가 통째로 거칠게 찢긴 시체까지.

지옥을 방불케 하는 끔찍한 광경이 계속해서 눈앞에 나타났다.

특히, 병사들이 아닌 어린이로 보이는 시체를  때면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었다.

[개새끼! 최소한의 자비도 없는 씹새끼로구나!]

나는  건물 앞에 쓰러져 있는 엄마와 아이의 시신을 보며 네빌을 욕했다.

검에 찔려 죽은 시신이었다.

그 시신을 보자 연쇄 살인마에게 살해당한 어머니의 모습이 겹쳤다.

나도 모르게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뭣 때문에 이런 짓을 벌이는지 알지 못하지만, 흑마법사 네빌에 대한 적개심은 깊어졌다.

척! 척!

또 다른 망자들의 행렬이 나타났다.

말을  기사 같은 해골이 선두에서 다른 해골들을 이끌고 있었다.

불규칙한 벽돌로 된 도로 중심에  기사가 검을 높이 들고 허공에 긋자 뒤따르던 해골들이 움직였다.

해골들은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보초를 서듯이 건물과 골목 사이사이에 배치되어 쥐나 고양이 등 살아남은 생명체의 활동이 보일 때마다 쫓아가 무차별적으로 공격했다.

쫓던 생명체가 죽거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망자들의 공격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살아 있는 것만 보면 저렇게 쫓아가서 죽이는 건가? 정말 고약한 놈들이군.]

사람으로도 부족해 쥐와 고양이 등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잡아 죽이다니.

생명체 그 자체를 혐오하는 것이 분명했다.

이런 망자의 지독함에 구역질이  것 같았다.

[한 대만 때려볼까?]

해골들의 뒤통수를 한  때려주고 싶어졌다.

하지만 공격당한 해골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랐기에 꾹 참고 성안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모았다.

네빌의 위치는 어디인지, 어디에 어떤 괴물이 있는지.

여기가 어떤 곳인지 확인하는 것에 집중했다.

수색은 동이 틀 무렵까지 계속되었고, 아침 해가 밝자 성안으로 햇살이 비추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던, 성안의 끔찍한 참상이 햇볕을 받아  모습을 완연히 드러냈다.

더욱 선명해진 참혹함에 나는 눈을 감을 수 없는 현실을 원망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외면하면서 피와 시체들을 피해 걷는 그때였다.

챙! 챙! 챙!

“어서 도망쳐!!”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나더니 생존자로 추정되는 목소리가 들렸다.

분명 살아 있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모두죽고 없으리라고 생각했는데, 검이 맞부딪치는 소리로 보아 아직 살아있는 사람이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마찬가지로 생존자의 기척을 파악한 해골들이 붉은 안광을 번뜩이더니 검과 방패를 들고서 기계처럼 이동하기 시작했다.

[저 해골들이 생존자를 발견하면 절대 살아남을 수 없겠지.]

누군지 모르지만, 그래도 같은 인간인 생존자를 죽도록 내버려둘 순 없었다.

[도와주자.]

나는 결심하고 느린 걸음으로 이동하는 해골들을 지나쳐 쇳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향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