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화 〉1화. (2/83)



〈 2화 〉1화.

[스켈레톤 나이트여! 데스나이트여!  네빌의 이름으로 일어나라!]

머리를 울리는 외침.
그 외침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막힌 숨이 트이는  같은 감각이 가슴을 채웠다.

그 순간, 눈도 뜨이며 앞이 보였다.
컴컴한 어둠이 걷히며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백색과 적색으로 이뤄진 2개의 달빛과  달빛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밤하늘이었다.


반짝이는 은하수를 배경으로 두고  있는 거대한  개의 달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기다란 은하수의 주인처럼 밤하늘에서 가장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고개를 아래로 내리자 아름다운 별빛 아래에는 드넓고 까만 들판이 보였다.

알차게 들어찬 완만한 대지에서는불꽃이 솟더니 뼈다귀 같은 것이 흩날리며 밤하늘처럼 까만 연기가 피어올랐다.


전쟁터의 포탄이 날아온 것처럼 뭔가가 폭발하고  터지며 불이 치솟았다.

나는 진귀한 광경을 멍하니 보았다.

펑! 펑! 펑!

요란한 소리가 울리며 귀가 아팠다.

폭음이었다.


가까운 곳에서 가스라도 폭발한 것 같은 폭음이울리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졌다.


무의식적으로 자세를 낮추고 귀를 막았다.
고막이 찢길 것 같은 기분 나쁜 폭음이 조금은 줄어들길 바랐건만,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계속 머리를 때렸다.


이명이 온 것처럼 귀가 먹먹해졌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내가 지금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 조금도 감을 잡을  없는 그때.


“악을 처단하라!”
“신의 이름으로!”
“정의를 구현하라!”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라디오 채널을 맞춘 것처럼 지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들린 사람의 목소리였다. 그러나 처음 듣는 언어였다.

과거 주취 단속하면서 자기나라 방언을 쏟아내며 항의하던 외국인이 생각났다.
그만큼 생소한 언어였다.

이 생소한 언어로 된 소리는 곳곳에서 비명, 함성 그리고 절규로 바뀌어 퍼졌다.

분명 처음 듣는 언어 같은데 신기하게 머리에 번역기가 깔린 것처럼 여기저기서 울리는 말이 이해가됐다.

대체 이게 별안간 무슨 일이야.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확인했다.
이번엔 병장기가부딪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사람들이 지르는 온갖 함성과 비명들 사이사이에서 조폭이 파이프로 칼싸움이라도 하는 것 같은 요란한 쇳소리가 났다.
귀와 머리를 먹먹하게 만드는 요란벅적한 소리를 들으며 나는 가장  비명이 들린 곳을 보았다.


“아악! 내 팔!”
“살려줘! 죽고 싶지 않아!”

겁 먹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곳엔 처음 보는 사람들이 갑옷과 검, 망치, 방패로 무장하고 뭔가와 싸우는 것이보였다.

그들이 싸우고 있는 것은 살아 움직이는 해골바가지였다.
뼈로된 몸에 낡은 검과 방패 등으로 무장한 해골들이 사람들과 싸우고 있었다.


순간 무슨 장난이라도 치는 걸까 싶었다.
과학 시간에 나오는해골 모형을 가져다 놓고 인형극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살아 있는 사람들의 비명도, 해골 모형이 휘두르는 무기도 진짜였다.

[이 무슨….]

혼란스러움이 엄습했다.
낯선 세상, 낯선 사람, 낯선 전장.
번잡하고 복잡한 이 상황을 이해하려고 했으나 이해할 수 없었다.

[정신 차리자.]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참고 부랴부랴 고개를 돌렸다.

예전보다 삐걱대는 머리를 옆으로 돌리자 마찬가지로 갑옷과 냉병기로 무장한 병사들이 보였다.

각기 다른 색상의 갑옷과 깃발을 든 그들 역시 피부만 벗겨진 것처럼 생긴 징그러운 괴물과 해골 그리고 몸 곳곳이 찢겨 나간시체들을 상대로 치열한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B급 호러 영화의 주인공들 같았다.
뒤늦게 영화 세트장에라도 떨어진 건 아닐까?
같은 어설픈 생각과 현실부정이 머리를 뒤흔들었지만.


“끄아악!”
“화살이다! 방패를 들어라!”
“신관은 지원 마법을 펼쳐라!”
해골들이 뼈를 깎아 만든 화살을 쏘며 반격하자 병사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머리에 박힌 화살촉, 화살대를 타고 흐르는 붉은 피가 그것이 연출이 아님을 확실히 깨닫게 해주었다.

“신이여! 우리를 지켜주소서! 홀리 실드!
“신성한 빛이여! 우리를 구하소서! 홀리 라이트!”


게다가 지팡이와 책을 든 사람들이 소리쳤다.
 순간 신비한 빛이 일어나 해골들이 쏜 화살이 막히고, 신비한 빛을 번쩍이더니 돌진하던 해골들이 가루로 변해 흩어졌다.

“겁먹지 마라! 우리에겐 성직자들이 있다!”
“두려워 말라! 한낱 망자일 뿐이다! 신께서 우리를 돌봐주시는 한 놈들은 우리를 이길수 없다!”
“기사들이여! 돌격하라! 적진을 돌파해 성녀를 구하고  땅을 구원하라!”
“악을 멸하라!”
“성녀를 위해!”

이어서 말에  기사들이 온몸에 질풍을 감은 채 돌격했다.


단순한 표현이 아니다.

정말로 질풍과도 같은 바람이 그들의 몸에 맺혀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해골들이 몸으로 부딪치며 막았지만, 기사들은 온몸을 휘감은 질풍으로 해골들을 꿋꿋이 분쇄하며 전진했다.

보병들은 기사들이 뚫은 길을 빠르게 따라붙으며 아직 움직이는 해골들과 사투를 벌였다.


검과 창, 방패만 부딪치지 않고, 주먹과 발차기까지 하고 있었다.

정말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감이 잡히지 않을 정도.

[대체 이게 다 뭐야….]


 전입한 신병이라도 된 기분.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가라! 망자들이여! 가서 나 네빌의 위대함을 보여라!!]

처음에 들렸던 목소리가다시금 귀와 머리를 울렸다.

무겁고 강한 네빌이라는 작자의 목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지자 기사들의 돌격에 밀리고 있던 해골들이 방패를 들었다.

방패를 들고 벽처럼 응집해 기병들을 막았다.


막지 못해 부서지는 해골도 있었지만, 두려움도 없는지 턱을 딱딱거리며 달려가 기병들의 돌진을 모두 막아냈다.


말들이 넘어지며 기사들이 추락하자 해골바가지들이 틈을 놓치지 않고 칼을 들었다.

병기를 든 해골들이 쓰러진 사람과 기사들을 난도질하며 아수라장이 벌어졌다.


“아악! 살려줘!”
“죽고 싶지 않아!”


피가 튀고 비명이 난무하는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


끔찍하기 짝이 없는 전장의 중심에서 나는 목소리의 주인공, 네빌이라는 작자를 찾았다.

그는 검은 로브를 입고 있었으며 로브에 달린 후드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의 차림새가 아니라 그가 서 있는 위치였다.

목소리의 주인공 네빌은 지상이 아닌 공중에 떠 있었다.


마치 영화나 만화처럼.

[맙소사.]

그는 풍선처럼 공중을 둥둥 떠다니며 찢어진 로브와 망토를 펄럭이자 지휘관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소리쳤다.


“흑마법사다! 사악한 흑마법사가 나타났다!”
“병사들은 투석기를 준비하라!”
“사제들은 성수와 신의 가호 전열의 기사들에게!궁수는 은화살로 놈을 공격해라!”
“마법사들은 네빌에게 공격 마법을 집중하라! 놈만 쓰러지면 이 싸움은 끝난다!”

멋들어진 갑옷과 커다란 검을 장비한 지휘관들이 각 부대에 명령을 하달했다.

곧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투석기가 발사되고, 사제들이 등대처럼 선명한 빛을 만들어 빛을 쏘았다.

궁수와 마법사들은 은화살과 온갖 위험하면서도 신묘한 마법을 만들어 쏘았다.
그렇다. 마법이다.
아까 빛을 만든 것도 그렇고, 그들은 마누라가 가끔 보던 판타지 영화 속 캐릭터들처럼 마법을 쓰는 것이 분명했다.


마법과 마법의 대결이라는 직접 보고도 믿기 힘든 경이로운 광경이 지금 내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마치 인간이 아닌 신들의 싸움을 보는 것만 같았다.

[생소한 언어, 이상한 해골, 전쟁. 그리고 마법…. 여긴 대체 뭐야? 내가 어디에 있는 거야?]


두려움이 엄습했다.
혹시 내가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모든 게 허상은 아닌지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
다시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지휘관이 외쳤다.


“발사!”


곧 하늘을 전부 덮을 듯 많은 수의 화살이 날아왔다.


은하수의별빛처럼 반짝이는 은화살이었는데, 마치 여름철 장대비처럼 억수 같이 쏟아졌다.

파파팍!

화살이 땅에 박히는 소리가 나며 옆에 있던 해골들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일부 해골들은 왼팔에 장비된 방패를 들어 막았지만, 대부분이 화살에 맞아서 온몸이 갈라지며 부서졌다.

마치 마른 가지처럼 힘없이 부서지며 검은 연기를 뿜고 사라졌다.

죽음.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해골들의 죽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파도타기를 하듯이 가장앞줄에 있는 해골부터 차례차례 쓰러지자 곧이어 내 차례도 다가왔다.

나는 머리를 가득 채우며 날아드는 화살의 위치를 확인했다. 그리고 반짝이는 화살촉이 정확히 시야에 들어온 순간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 그것을 막았다.


다행히 화살은 제대로 막았다.

허나 화살의 위력이 내 생각보다 강력해 왼팔에 있던 내 강철 방패를 뚫고 이마를 때렸다.

파직!

방패에 구멍이 뚫리는 소리와 함께 머리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통증이 일어나는 부위는 화살촉이 닿은이마다.


박힌 것이 아니라 살짝 닿았을 뿐인데도, 마치 담뱃불로 이마를 지지는  같은 불쾌하고도 후끈한 통증이 느껴졌다.

[망할!]

반사적으로 쓴소리를 뱉자 목에서 아니, 몸에서 동굴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너무 정신없어서 눈치채지 못했는데, 목소리가 이상했다.
평소의 내 목소리가 아니다.
고통도 그렇고, 왼손의 방패도 그렇고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 분명했다.

누가 지금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려줬으면 했다. 그러나 눈앞에서 바쁘게 전투를 펼치는 사람과 해골의 모습을 보니 질문을  여유도, 답을 받을 기회도 없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은화살이  번으로 그치지 않고 또다시 하늘을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반짝이며 아름답게 떨어지는 은화살들.
화살이 떨어질 때마다 해골들이 망가졌다.
깨지고 부서지며 쓰러진 해골들은 덜그럭덜그럭 수레가 굴러가는  같은 요란한 소리를 냈다.

[일단 살아야 한다!]


급한 대로 기존의 방패로 다시 화살을 막으면서 하늘을 살폈다.
맞은편의 진영 하늘에서 뭔가커다란 것이 오고 있었다.

바윗덩어리였다.


판타지와 중세 전쟁 영화에서 얼핏 보았던 투석기가 거대한 바윗덩어리를 날리고 있었다.

커다란 덩어리째로 날아오기도 하고, 작은 바위 여러 개가 공중에서 흩어져서 날아오기도 했는데  속도와 위력이 투석기라기보단 대포에  가까워 보였다.

쏟아진 바위는 마치 포탄처럼 뒤에 있던 거대한 괴물과 해골들을 깔아뭉개고 부쉈다.

바닥과 뼈가 부서지며 흙과 깨진 뼈가 먼지처럼 흩날렸다.

부패한 괴물들은 바위에 깔리며 알아듣기 힘든 소리로 울부짖었다.

그 모습을 보고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지옥…. 내가 지옥에 온 거구나.]


내가 지옥에 떨어졌다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나가떨어지는 해골들과 바위에 깔리는 거대 괴물을 보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승리는 인간에게 돌아가는 듯했다.


하지만 이게 착각이라는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일어나라! 일어나라! 일어나라! 나의 수족이여!!]

네빌이라는 자가 다시 소리쳤다.


약쟁이처럼 광기가 서린 그 기괴한 목소리에 망가지고 부서진 시체와 해골들 틈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바닥으로 보라색 빛과 이상한 방진의 빛이 올라오더니 순식간에 수천 아니, 수만에달하는 해골들과 시체들이 추가로 나타난 것이다.


거대한 괴물과 해골들의 공격으로 가슴에 검이 박혀 사망한 병사도 호러 영화에 나오는 좀비처럼 다시 일어났다.

부활한 병사는 가슴에 박힌 검을 뽑더니 조금 전까지 자신과 함께 해골들을 부수던 동료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부활한 동료가 공격을 가하자 병사들의 얼굴에 공포가 깃들었다.


“으아악!”
“저주다! 병사들이 흑마법사의 저주를 받아 괴물이 되었다!”
“도망쳐!”


그들은 금방 패닉에 빠지고 말았다.


함께 싸우던 전우가 죽은 것도 서러운데 좀비가 되어 살아나 자신을 공격하니 멘탈이 버티지 못한 것이다.


그들은 여러 의미로 정신을 놓은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나 진정한 공포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내리쬐던 달빛마저 가리며 하늘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

땅이 진동하며 거센 강풍이 몰아치더니 요란한 괴성이 하늘을 쩌렁쩌렁 울렸다.

 괴성의 주인공을 발견한 병사들이 다시 패닉에 빠졌다.
아니, 병사들만이 아니다.
이번에는 나도 패닉에 빠졌다.

“마룡이다!마룡이 부활했다!”
“오오! 신이시여! 부디 우리를 버리지 마소서!!”
[마룡?]

하늘에 커다란 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머리 위로 드리워진 그림자의 주인공이었다.
살점이 사라진 채 뼈만 남은 용들이었다.

덩치가 어찌나 큰지 마치 거대한 빌딩에 날개와 팔다리가 붙은 채로 살아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한 놈만 해도 무시무시했는데, 이런 괴물들이 무려 다섯이나 나타났다.


[맙소사….]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다섯 마리의 용을 보았다.

적은 양의 살점만 남은 부패한 용들.

두개골과 갈비뼈만 남은 눈과 가슴에는 녹색의 빛이 별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다섯이나 되는 용들은 뼈로  날개를 펼친 채 자신의 존재를 과시했다. 그러자 용들의 머리맡에 둥둥 떠 있던 네빌이 외쳤다.


[분노하라! 절규하라! 원망하라! 육신이 남은 것들을 모조리 짓밟아라!]

그의 명령에용들의 가슴에서불꽃이 일어났다.


용광로처럼 솟구친 용들의 불꽃은 놈들의 긴 목을 타고서 올라가 주둥이의 앞에서 뭉쳤다.

둥글게 타오르는 녹색 불꽃에 병사들은 겁에 질렸다.

“브, 브레스!”
“브레스다! 후, 후퇴! 후퇴하라!”
“어서 빨리 도망쳐!!”


충격에 빠진 지휘관을 두고 전열에 있던병사들이 허겁지겁 달아났다.


그들이 등을 보이며 도망치자 다섯 마리의 용이 악어처럼 주둥이를 쩍 벌리더니 입안에 뭉친 녹색 불꽃을 고질라마냥 길게 내뿜었다.

마치 거대한 화염방사기로 불을 뿜듯이 녹색 불꽃이 밤하늘로 다섯 개의 궤적을 그리며 날아갔다.


불길한 화염이 달아나는 병사들을 휘저었다.
“으아아악!”
“살려줘!!”
“신이시여!”

땅이 갈라지며 그들의 신체가불타고 녹아내렸다.


작열하는 대지 위에는 죽어가는 병사들의 비명이 구슬프게 퍼졌다.


아직 전투를 벌이고 있던 수만 명의 전사가 용이 내뿜은 화염에 휩쓸려 한순간에 산 채로 불타고 또 녹아내렸다.

터무니 없이끔찍한 광경.


뼛가루조차 녹아 사라지는 처참한 죽음에 나는 머리가 아팠다.


[지랄 맞은…. 대체 이게  뭐야.]

사람들이 녹아내리는 끔찍한 광경에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피아 구분 없이 언덕 아래에서 녹색의 불에 노출된 모든 존재의 신체가 녹아내렸다.


덩치 큰 괴물과 해골, 후방의 병사와 전방의 병사들까지.

모두 다섯 마리의 용이 쏟아내는 브레스에 녹아 뒤섞였다.

끔찍한 광경이었다.

[땅까지 녹이다니….]

화력이 얼마나 강했는지 드넓은 대지 또한 용암처럼 녹아서 흘러내릴 정도였다.


불길이 지나간 자리로 하얀 연기만이 솟아올랐다.
그들이 모두 녹고 대지가 오염되기까지 한순간이었다.
정말 찰나의 순간에 시끄럽던 전장이 정리되었다.

“히익!”
“도망쳐! 모두 도망쳐!”

가까스로 불을 피해 생존한 소수의 병사가 소리쳤다.
그들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달아나기 시작했다.
도망치는 사람들의 모습에 네빌이 다시 외쳤다.

[돌아가 전해라!  흑마법사 네빌이 죽음으로부터 돌아왔음을! 새로운 암흑이 도래했음을! 떨어라! 공포에 떨어라! 죽음에 도전한 자신의 어리석음과  찾아갈 종말의 공포에 절망하고 후회해라! 내가! 너희를 벌하러 갈 것이다! 크하하하!]

스스로를 암흑이자 죽음이라 칭한 네빌이 미친놈처럼 웃었다.

그의 웃음소리는 솟아오른 연기를 밀치며  멀리까지 퍼졌다.


웃음소리가 쑥대밭이  대지와 언덕을 모두 채우자 살아남은 사람들이 모습을 감췄다.


그렇게 전투가 끝나고 부서지지 않은 해골들과 괴물들이 무기를 높이 들었다.

그리곤 사이비 교주를 찬양하는 광신도들처럼 아래턱을 덜덜 떨며 환호했다.


[이게 대체 뭐야….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나는 승리에 젖어 있는 흑마법사 네빌을 응시했다.
고생길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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