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Prologue
Prologue
처음에는 복수심이었다.
쓰레기 같은 연쇄살인마에게 홀어머니가 살해당한 후, 내 손으로 그놈을 직접 찾아 죽이고 싶은 마음에 형사라는 직업을 택하게 되었다.
자는 시간도 줄여가며 힘과 체력을 기르고, 밤낮 가릴 것 없이 뛰어다니며 비슷한 사건이 생길 때마다 범인을 잡는 데 혈안이 되었다.
폭행범, 강간범, 사기범, 조폭, 사이비 교주, 마약범, 금융사기, 인신매매, 납치, 금품갈취 등등 원수와는하등 관계없는 놈들도 그놈이라 생각하고 잡았다.
모든 범죄자가 다 그놈이라 생각하면 숨이 차지도, 힘이 풀리지도 않았다.
그때의 나는 제대로 미쳐있었다.
여러 개의 미제사건들을 암기하고 놈을 찾기 위해 인근 지역의 감시카메라를 수십, 수백 번이나 돌려봤다.
마치 놈을 찾기 위해서 반드시 풀어야 할 퍼즐처럼 나는 지역 내의 모든 범죄자를 외우고, 범죄자들을 잡는 데에만 집착했다.
어차피 잃을 것도 없는 인생, 그 괴물만 잡으면 내일이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돈도, 명예도, 사람도 그 어떤 것도 필요치 않다.
복수만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분명, 그랬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일까?
복수밖에 보이지 않았던 눈앞에 다른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사람들이었다.
범인을 잡아줘서 고맙다고 하는 사람들.
누명을 밝혀줘서 감사하다 하는 사람들.
가족, 친구, 연인을 되찾아 기뻐하는 사람들의 기뻐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복수에만 매달려 좁아졌던 시야가 다시 넓어지기 시작했다.
시야가 넓어지면서 새롭게 보인 것은 삶이었다.
내가 마땅히 누렸어야 할 인간다운 삶.
가족을 꾸리고, 이웃과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의 소명을 다하는 인간다운 인생이 보였다.
혼자서도 충분하다 생각했던 길에 하나둘 동반자가 생겼다.
내 모든 것을 받아 준 아내와 그 가족들.
투박하고 까칠하지만, 누구보다 속정 깊은 동료들.
출근길마다 인사를 나누게 된이웃들과 이제는 삶의 이유가 되어버린 어린 딸까지.
복수만 남아 다시는 볕 들 날 없다고 생각한 인생에 낙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간 느끼지 못한 즐거움이 매일매일 찾아왔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면 지치고 고되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날일수록 일이 끝나고 난 뒤에는 더 상쾌했다.
마음이 변했다.
칼처럼 날카로웠던 복수심은 무뎌졌고, 증오보다는 매일매일 찾아오는 소소한 행복에 빠졌다.
새로 생긴 행동을 지키기 위한 것이 어느새삶의 목적이 되었다.
언제가 8살의 어린 딸이 학교 숙제를 해야 한다며 내게 말했다.
“아빠! 아빠는 왜 형사가 된 거야?”
딸의 질문에 나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딸을 껴안으며 말했다.
“우리 세연를 지켜주려고?”
“진짜? 그러면, 나 위험하면 아빠가 구하러 와?”
“그럼. 당연하지! 세연이가 위험하면, 아빠가 슈퍼맨처럼 날아서 구하러 가지!”
“히히!”
딸을 껴안으며 나는 그렇게 자신 있게 말했다.
이 행복이 언제까지고 계속되리라 생각했기에 그렇게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내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
개일까? 아니면 양일까?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오니 이상한 괴물 같은 것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무슨 동물인지 모르겠다. 다만, 뒷짐을 진 채두 발로 서서 개구리처럼 모로 눕혀진 눈으로 날 내려다보는 이 정체불명의 괴물을 보니 어쩌면 가슴과 배에서 느껴지는 이 끔찍한 고통도가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믿지 않는 눈이로군.]
괴물이 말했다.
사람처럼 말하는 괴물이라니, 지독해도 괜찮으니 악몽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안간힘을 써도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이어서 입 밖으로 침인지, 피인지 모를 뜨거운 것이 나와 턱과 목을 타고 흘렀다.
틀렸다.
이젠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다.
이상한 것이 죽어가는 내 앞으로 다가와 물었다.
[생에 집착이 느껴지는 눈이로다. 죽음을 눈앞에 둔 인간이여. 다시 살고 싶은가?]
외모는 영락없는 악마인데, 질문은 천사 같았다.
어느쪽인지 몰라도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살고 싶다.
그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더라도 나는 살고 싶다.
이미 목소리가 나오지 않지만, 필사적으로 외쳤다.
이제야 행복이 뭔지를 다시 깨달았는데!
이제야 겨우 뭘 위해서 살아야 할지 깨달았는데!
다른 놈도 아니고, 부모를 죽인 개새끼의 손에 최후를 맞이하다니!
죽고 싶을 리가 없다!
뭘 당연한 걸 쳐 묻고 있는 거야!
목소리는나오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그렇게 소리쳤다.
살아날 수만 있다면,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내 영혼이라도 팔 수 있다!
내 모든 것을 걸 수 있다!
[영혼이라…. 그런 건 딱히 필요 없다. 대신 그렇게나 삶에 미련이 많다면 내가 기회를 줄까 싶은데. 어떻게 솔루션 한 번 받아볼 텐가?]
기회?
[널 부활시켜 주겠다. 기회가 닿으면 다시 가족을 만날 수도 있을 테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뭔들 못할까.
살려만 준다면 시키는 건 뭐든 하겠다.
[하지만 쉽지 않을 거다. 죽거나 타락할 수도 있고, 자칫하면 지옥으로 떨어져 영원토록 고통받을지도 모른다. 안락한 새 삶을 바란다면 지금 극락왕생하는 것이 최선이다. 정녕 부활을 바라는가?]
가족 외에 중요한 건 이제 남아 있지 않다.
가족에게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극락왕생 따윈 아무래도 좋다.
[…확고해서 좋군. 그렇다면 내 특별히 기회를 주도록 하지.]
녀석이 네 개밖에 없는 손가락을 내 얼굴로 뻗으며 말했다.
[약속대로 부활의 기회를 주겠다. 하지만 내가 줄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기회일 뿐. 이 기회를 거머쥐고 다시 가족에게 돌아가는 건 네 몫이다. 자신의 운명은 스스로 개척하거라.]
놈이 손가락으로 내 얼굴을 덮었다.
그 순간 심장이 멎고, 찢기는 고통이 느껴졌다.
머리로 죽음이 떠오르고, 모든 것이 흐려졌다.
시야까지 캄캄해지자 가슴에서 느껴지던 고통은 사라지고,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만 같은 기이한 느낌이 뇌리를 휘저었다.
그렇게 내 의지와 관계없이 의식은 어둠 저편으로 흩어졌다.
의식으 흐려지는 와중에도 나는 마음을 품었다.
가족을다시 만나야 한다고.
소소한 그 행복이.
일상이.
내 인생 최고의 보물이었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