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더하기 빼기
"어, 어때요?"
뭔가 심각하게 검사결과를 들여다보던 의사의 모습에 나는 뭔가 잘못됐나 싶어서 불안해졌다.
"흐음…."
"혹시 뭔가 잘못됐나요?"
내가 그렇게 묻자, 의사는 그제서야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하품을 하고 눈을 비비며 말했다.
"하아암, 별 이상은 없네. 음…."
"휴우…. 아, 다행이다. 저는 그렇게 심각해 보이시길래 뭔가 잘못 된 줄 알고…."
"이건 그냥 요즘 잠을 잘 못자서 그래. 병원을 여기로 잠깐 옮긴 후부터 일이 너무 많아서…. 어우, 졸려라."
뭐야, 그냥 피곤해서 그런 거였나.
"저 좀 헷갈리게 하지 마세요, 진짜!"
"미안, 미안. 후훗."
내가 한숨을 내쉬며 안심하는 모습을 보이자, 옅은 미소를 띄우며 가볍게 사과하는 의사의 모습이 어쩐지 나를 애로 보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
"우리 예쁜 릴리가 불안하다는데, 내가 조심해야지. 그렇게 세찬이가 걱정이야?"
"그런건…."
예쁜이라니, 그딴 말은 안해도 되잖아요.
당신이 미소녀 좋아하는건 잘 알지만….
뭐, 여동생에 대한 칭찬으로 받아들이자.
그리고 솔직히 걱정이긴하지, 그 지랄을 했는데도 세찬이가 잘못되면 내 의료행위는 개뻘짓이 될 거 아니야?
암, 그렇고 말고.
"전체적으로 괜찮아. 이정도면 피부괴사도 별로 심하지않고. 음, 꽤나 깔끔하게 독을 빼냈네. 흡혈귀만이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건가?"
"그, 좀 비슷하긴 하지요…."
나는 대충 얼버무렸다.
의사에겐 내가 한 짓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의사는 내가 흡혈귀만 쓸 수 있는 무슨 특수한 방법을 썼는 줄 알걸.
뭐, 비슷한건 맞지만.
흡혈귀란 애초에 피를 빠는 종족, 그러니 뭔가 빨아내는덴 피든 독이든 어느정도 통하는 부분이 있을 테니까 말이지.
아무튼 그런 느낌이 든다.
살아있는 사람의 피를 빨아본것은 처음이라 그런가.
내 몸에 흐르는 피가 아닌데도 어느정도 내 의지에 의해서 조종이 되는 감각이 드는 것이다.
아마 그런 마법적인 능력 같은게 흡혈귀들의 흡혈을 돕는 모양.
이 경우엔 그것이 피에 섞인 독을 빼내는데 도움이 되었고.
"그럼 세찬이는 이제 어떻게 되는거죠?"
"뭐, 적당히 요양좀 하면 나을것 같아. 나중에 지혜 좀 데려다 줄래? 그럼 좀 더 빨리 낫게 할 수 있을거야."
"좋아요. 내일쯤 데려올게요."
지혜의 가속이라면, 아마도 회복속도를 가속시킬수도 있겠지.
그런 세세한 컨트롤이 될진 모르겠지만.
그동안 틈날때마다 열심히 능력을 단련하던데, 그래서 그런것도 가능해진걸까.
내 마력식은 당최 어떻게 쓰는건지 전혀 모르겠던데.
역시 능력은 써봐야 아는걸까.
"그런데, 같이 데려온 그 남자는 대체 뭐야?"
"아. 그거요? 그냥 주운거에요."
의사는 내가 데려온 또 다른 남자, 박광식 기자에 대해 묻는 것이었다.
그 남자 역시 거미의 독에 당한 것 같아 보였으니까 말이다.
이것 저곳 상처도 많이 났고, 그리고 애초에 병원으로 데려오려고 했으니 데려왔을 뿐.
이것 저것 물어볼 것도 많고.
"이건…. 하아, 어디서 또 이상한걸 주워왔네."
"뭐가요?"
"이 녀석도 마력식이 있어."
"뭐요?"
"몰랐구나?"
마력식, 마력식이라?
그거 원래 그렇게 흔해?
왜 내 주변에 갑자기 마력식이 생기는 사람이 많지.
"마력식이란거 원래 그렇게 흔해요?"
"아니, 그렇진 않아. 그래서 이상하단 말이야. 네 주변에 벌써 신규 마력식 사용자가 둘이나 있는걸."
신규 마력식 사용자가 둘이라.
그 말에 나는 바로 느낌이 왔다.
흔하지 않은데 두명이나 내 주변에 생겨났고, 그 둘 다 내가 연관되어 있다.
이거, 역시 내 탓인가?
내가 뭔가 마력식을 각성시키는 트리거 역할을 한 게 아닐까?
그렇다면 뭘로? 대체 어떤 계기로 마력식을 각성시키는 것이란 말인가.
일단 전혀 연관성이 없는 두명 사이에, 눈에 가장띄는 공통점은 하나다.
둘다 나의 패밀리어라는 것.
혹시 패밀리어 계약에 그런 부가기능이 있는건가?
아니면 그냥 내가 특별한건지?
나중에 유디라한테 물어봐야겠다.
"그럼 그 녀석은 어떻게 할거야? 믿을 만 한 녀석이야?"
"음, 믿을 만 한가에 대해선 단언할 순 있겠네요. 네."
"평가가 꽤 좋네? 어떻게 단언하지?"
"그녀석, 제 패밀리어니까요."
"아."
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역시 패밀리어에 대해선 사냥꾼만큼은 아는 터라, 그 기자가 내게 절대 거역할 수 없음을 아주 잘 알고 있으니.
어차피 패밀리어의 형태로 묶여있는 녀석이다.
뭘 할 수가 없을테고, 마력식이 있다면 쓸만한 인력이 될 수도 있다. 아마도.
내가 많이 미안한 지혜랑은 다르게, 이 녀석은 좀 마음을 독하게 먹기만 하면 뭐든 시킬 수 있는 녀석이 아닌가?
"세찬이랑 상담좀 해보고 결정하죠."
"그래, 그게 좋겠네. 너는 좀 충동적인 느낌이 있으니까 말야."
"그정도는…."
요즘 좀 충동위주로 움직인다는 느낌은 받지만, 나름대로 충분한 생각을 거치고 근거를 가지고 행동한다고 생각한다.
그 근거가 충분한지, 부족한지를 아직 가늠하지 못할 뿐이지.
아, 그게 충동적인건가.
아, 몰라!
난 뒷머리를 조금 신경질적으로 벅 벅 긁은 뒤에 의사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선 밖으로 나왔다.
세찬이가 있는 병실을 찾아가 문 앞에서 조그맣게 말했다.
"세찬아, 거, 거긴 좀 어때?"
"……. 덕분에 큰 일은 없다."
"다, 다행이네…."
아씨, 왜 자꾸 말이 더듬어지는지 모르겠다.
자꾸 아까 일이 떠올라서, 정신이 이상해져버릴 것 같아.
차라리 계단 말고 화장실 같이 밀폐된 공간으로 데려가서 할걸.
그럈으면 괜히 들키는 바람에 피를 마시지도 않았을테고.
이걸 생각하면 난 충동적인게 맞는 것 같다.
일이 끝나고 나서야 또 후회를 하는구나.
시즌 몇호째 고쳐지는 외양간인지 모르겠다.
이정도면 새로운 소를 받은 생각이 없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드, 들어가도 돼?"
"맘대로 해."
세찬이는 심드렁한 목소리였다.
내가 한 짓 따위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느낌이라서 조금 안심이 된다.
그치, 그거 의료행위였다니까?
내가 무슨 죄를 지었어.
게다가 생각해보니까 내가 부끄러워 할 게 아닌 것이다.
그리고 부끄러울거면 세찬이가 부끄러워야지.
안그런가?
나한테 빨리면서 그, 아주 '흥분'을 다 하셨잖아.
이전에도 몇번 보기야 했지만, 그렇게 커진건 진짜 처음봤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한 다음에 문을 열었다.
"후우, 그럼 들어간다."
-끼익
컨테이너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바로 보이는 병실 침대 위에는, 세찬이가 다리를 천장에 고정한 천조각에 걸쳐올려서 조금 높이 들은채로 누워있었다.
나는 의자를 가져와 대충 앉았다.
잡담이나 좀 떨면서 시간을 죽일까 해서.
자주 다치는것이 요즘 여간 걱정되는게 아니다.
그, 내가 이렇게 되기전엔 입원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는데, 왠지 나때문에 자꾸 얘가 다치는 것 같아서 뭔가 미안하다.
"아프진 않아?"
"별로. 마취때문에 아픈건 없어."
"마취 받았어?"
"아니. 그냥 독 효과인것 같던데. 그냥 감각이 좀 희미해."
하긴, 휘청거리긴 하더라.
그래서 결국 내가 또 업어주고 말았지.
기자는 이라가 짊어지고 걸었다.
이라는 조그만데도 힘이 좋아서 성인 남성을 메는 정도는 쉬운 일이라고 했다.
내가볼때는 좀 허세같았지만.
늑대 폼이었으면 모를까, 인간 폼으론 좀 불편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문제없다고 주장하는 모습이 퍽 귀여웠다.
생각해보니 둘다 제 몸보다 큰 것을 메고 걸었구나 싶다.
뭐, 세찬이가 기자보다야 두배정도는 더 커 보이긴 했지만.
손도크고, 몸도크고, 심지어 근육때문에 가슴도 크다.
인정하기는 애매한 사실이지만 아마 지금의 나보다 클거라고 생각해.
이건 내가 다 작기 때문이다.
시발.
"그런데말야, 너 뭐 먹고 키가 그렇게 커진거야? 중학교 이후로 갑자기 엄청 크지 않았어? 한번 들어나 보자."
나는 녀석이 뭘 해서 커졌는지 궁금했다.
혹시 잘 하면 지금 내 키를 키울수도 있을 것 같아서.
대답은, 별로 내 맘에 들진 않았지만.
"성장호르몬 맞으면서 존나 운동했는데."
"…이, 약쟁이가!"
어쩐지 갑자기 존나 크더라!
억울해! 나도 크고싶었는데!
사실은 얘가 나보다 커졌을때 내심 부러웠다.
그런데 그게 성장호르몬 때문이었다고?
나는 손가락질을 하면서 외쳤다.
"반칙이다, 반칙! 너 어쩐지 어느순간 갑자기 존나 빨리 크더라!"
"성장호르몬을 맞더라도 최종적으로 키를 정하는 절대적인 요인은 유전이야."
"이익! 닥쳐!"
그래, 우리 아빠는 키 안크시다.
177정도로, 꽤 큰 편이시긴 했지만, 소싯적엔 그보단 많이 작으셨으니까.
이제는 적당히 큰 편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세찬이 급은 아니다.
185 센티엔 그런 마력이 있었다. 뭔가 압도적인.
거기에 덩치까지 있으니, 비교를 당하면 방법이 없다.
집에갈까….
아차, 너무 잡담만 떨었나.
나는 헛기침을 조금 한 다음, 표정을 정리했다.
조금 진지한 이야기를 할 생각이니까.
"그 기자 말인데, 마력식이 있대."
"뭐라고? 우연 치곤 조금 공교롭지 않나? 저번에 봤을땐 그녀석…. 마력식 같은건 전혀 없었잖아?"
세찬이는 말을 끝마치고 잠시 생각을 하는 듯 하더니, 곧바로 말을 이었다.
"아. 지혜도, 그 기자도, 둘다 네 패밀리어가 된 이후에 마력식이 각성한 것 같은데."
"그치? 나도 그런 것 같단 말이지. 혹시 내 패밀리어 계약이 그런 효과가 있는걸지도 모르겠어."
"가능성은 충분하네. 확실히 하기 위해선 한두번 더 실험해 볼 필요가 있겠지만…. 그럴 필요는 없겠지."
"그래. 별로 필요는 없는 일이지."
일부러 실험할 필요는 없다.
더이상 패밀리어로 만들고 싶은 사람도 없을 뿐더러, 늘릴 예정도 의지도 없다.
안그래도 패밀리어 문제 때문에 머리가 아픈데, 가설을 확실히 한다는 시덥잖은 이유로 패밀리어를 늘리는건 절대 사양이다.
그리고 왠지 사람 인생 망치는 것 같고 말이야.
"그런데 그 기자는?"
"이 커튼 반대편에."
세찬이는 제 옆쪽의 커튼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공간을 나누기 힘든 사각형 컨테이너로 이루어진 임시병실이기에, 대충 커튼으로 사이를 나눠놓은 모양이다.
어쩐지 그 모습은 학교 양호실 같았다.
그래선지, 마치 세찬이를 양호실에 데려다 준 기분이 들어서 조금 유쾌해졌다.
학창시절로 돌아간 느낌?
아예 교복까지 입는다면 빼박이겠다.
근데, 어째서 상상은 여자교복을 입은 내 모습이 떠오르는거지?
왜일까, 교복은 별로 입어보고싶단 생각 없는데.
뭔가 무서운걸.
이런사소한 것에서부터 자꾸 여자 옷을 입은 모습으로 나를 상상하게 된다는게.
"이라는 자나?"
"아니. 그 관리자랑 노는 모양이던데. 설화 라고 했었나."
"그래?"
이라가 또래 친구가 생긴 것 같은 느낌이다.
외견상 또래인것은 맞지만, 산자와 죽은자가 친구가 될 수 있는건가 싶네.
악령은 아닌 모양이니까 뭐….
"설화랑도 나중에 얘기좀 해봐야겠는걸."
그렇게 중얼거리고 잠시후.
"으아아악!"
"뭐야?"
커튼 너머에서 넘어온 경악성에, 나와 세찬이는 깜짝 놀랐다.
대체 무슨 일이 생긴건가 싶어 커튼을 젖히자, 기자가 멍한 얼굴로 일어나서 숨을 몰아쉬며 몸을 일으킨 모습이 보였다.
"여긴……. 나는 죽은건가?"
"뭐야, 일어났네요."
"당신은…? 혹시 천사입니까? 여긴 천국인가요?"
"얼씨구. 미쳤네, 저거."
세찬이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고, 그 말을 들은 나는 상당히 부끄러웠으므로 정신 차리라고 딱밤을 후렸다.
빡!
쒯, 좀 쎘나.
소리가 좀 크네.
하지만 뭐, 그래봤자 딱밤이고.
이정도론 기절하지 않겠지.
물론 실제로 기절하지 않았고 말이다.
"크억!"
"조용히 하세요. 죽기 싫으면."
천사니 뭐니 한번만 더 지껄이면 진짜 천사 곁으로 보내줄 생각이다.
"네, 네엣…. 흐으……. 아픈걸 보니 꿈은 아닌것 같은데…."
"좀 혼란스럽긴 하겠죠."
왜냐면 녀석이 본 기억을 싹 날려버렸으니까.
그리고 그 기억은 대충 기절해 있던 것으로 쳐서 덮어버렸다.
기억을 새로 주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당히 혼란스러울테지.
사실 이런 식으로 기억을 마구잡이로 변형하거나 분리시키면 자칫하면 정신병이 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전부터 기절했던 간극이 길기 때문에 어떻게 뇌에서 그래도 기절한 상태였다고 받아들여지는 모양이었다.
다행인걸까.
"그럼 여긴 대체 어디죠?"
"뭐, 보면 아시다시피. 임시병원입니다."
임시로 사용중인 공간이고, 겉으로 보면 별로 병원 같지는 않긴 하지만, 아무튼 시설 자체는 병원의 그것이다.
뭐 의료기기도 있고 말이지.
의료기기는 사용을 위해서 설치해둔 거라기보단 옮겨놓은것을 잘 놔둔것에 가깝다만.
"으으, 머리가…. 너무 아파요…."
기자가 우는 소리를 내며 이마를 문지르는데, 꽤 커다란 혹이 나 있었다.
음, 확실히 아플것 같기는 하네…. 근데 뭐 내 알바는 아니고.
깨어났으니 나는 본래 묻고자 했던것을 물었다.
"대체 뭐 하다가 그런 괴물한테 잡힌거에요?"
박광식 기자는 제 이마를 계속 문질거리다가, 문득 떠오른듯이 말했다.
"아, 이제보니 당신…. 저희 본적이 있었죠? 역시 꿈이 아니었던 거죠?"
"꿈? 무슨 말을 하는 지 모르겠네요."
꿈같은 소리 하고 있네, 잠이 덜깬걸까.
아니면 내가 머리를 너무 세게 때렸나.
"제가 당신을 만나서, 뭔가 알아내려고 했던 것 같은데 말이에요, 그 뒤 기억이 전혀 없어서요. 분명히 한번 뵌 것으로 기억을 하는데도…."
"그건 사실이에요. 제가 기억을 지웠죠, 조금 강제적인 방법으로?"
내가 녀석에게 지시한 사항은 나에 대해 말하지 말것, 이런 일에 관심갖지 말것, 그동안 모은 모든 정보를 제거할것, 그리고 잊어버릴 것을 명령했다.
명령이 어떻게 진행된것인지는 나야 모르지만, 어째든 저 명령들이 전부 이루어지면서 잊어버린 기억들은 뭔가 괴상한 꿈을 꾼 것처럼 느껴진 모양이다.
"그래서 대체 뭣 때문에 그 거미 녀석이랑 엮였는지 설명을 좀 해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잠깐 머릿속을 정리할 시간을…."
머리를 부여잡고 침대보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려 내 얼굴을 살피던 기자가 돌연 움직임과 말을 멈췄다.
"……? 어이, 기자님?"
이상한 사람이네.
나는 기자 앞에 다가가서 손을 조금 흔들어보았는데, 이거 이렇게보니까 기절한것 같다. 조금 씩 몸이 뒤로 넘어가는 중이다.
지가 무슨 늑대인간 앞의 토끼라도 된 줄 아는건가.
대체 뭘 보고….
"엄마, 설화야. 너 왜 그러니?"
-…….
뒤를 돌아보니 거기엔 설화가 엉망진창의 머리칼을 정리도 안한채 텅빈 듯한 검은 눈을 드러내놓고서 떠있었다.
이렇게 보니 진짜 귀신이라는 느낌이 드네.
어린아이 모습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설화는 무해하다는걸 알아서 그런가, 난 별로 무섭진 않다만.
'숨. 바. 꼭. 질. 중'
"숨바꼭질 중이라고? 머리띠는 어쨌어?"
'아.'
설화는 깜빡했다는 듯이 어디선가 머리띠를 만들어내 제 머리에 씌우고는 머릿결을 정돈해 방금전에 우물에서 올라온 것 같던 귀신에서 깔끔하게 정리한 귀신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놀. 다. 가. 깜. 빡…. 미. 안.'
"뭐, 까먹을 수도 있지."
어차피 설화는 영체라서 나랑 이라가 아니면 보이지도 않을테니까 말이다.
보통 외견같은건 그다지 신경쓸 일이 없었겠지.
아마도 이라랑 놀다가 머리띠를 잠시 빼놓았다가 다시 차는걸 까먹은 모양이다.
아까 그런 모습을 갑자기 실물로 보게되면 솔직히 놀라긴 하겠다.
음? 근데 기자는 왜 기절한거지.
어차피 녀석한테는 안 보일 것 아닌가?
혹시 설화가 방금전에 뭔가 특수한 기술같은걸로 보이게 된걸까?
"세찬아, 넌 조금전에 얘 보였어?"
"누구? 그 관리자? 아니. 못 봤는데."
"그래?"
세찬이는 못 본것 같은데.
혹시 기자라서 눈썰미가 좋은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