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화 〉더하기 빼기
어쨌든 그렇게 뒷정리를 마치고 나서 현관문을 열어 세찬이를 맞이한다.
“다 끝내고 왔어?”
“그래. 공터로 유인해서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갈무리도 대충 끝냈고.”
“머리를 날렸다고? 아주 수고했어.”
그런 얼굴은 죽어있는 시체라도 보고싶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거미모양인 형태에다, 원래 사람같이 생긴 것이었던 게 변형 된 거라, 상당히 기괴한 모양새였으니까.
그렇게 말한 녀석이 제 뒤로 보이는 캐리어 2개를 엄지로 가리켰다.
저 안에 그 거미괴물의 시신이 들어가있으리라.
냄새로도 충분히 알 수 있고.
타락귀의 혈향은 그닥 좋지 않아서 별로 좋은 냄새는 아니지만.
집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했으나 불안하기 때문에 그냥 들어가지 않겠다고 세찬이는 말했다.
벌레는 다 내쫓았는데.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한숨을 쉬며 캐리어를 받아서 거실에 아무렇게나 던져둔 뒤에 기자를 어깨로 메고 밖으로 나왔다.
그땐 눈을 가린채로 당했던거라 제대로 된 자세인지는 알 수 없어서 세찬이가 나한테 했던거랑 좀 다르긴 하겠지만, 그때 말했던 업기법인가 어깨법인가 하는 그거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나라고해도 모르는 남자를 등에 업고 싶지는 않으니까.
왠지 기분 나쁘단 말이지.
……그럼 세찬이는 뭐냐고?
아니 뭐, 세찬이는 좀 익숙하니까 봐줄 만한 거지.
걔는 옛날에도 몸이 좀 약해서 자주 업고 다녔으니까, 내가.
요즘은 좀 달라지긴 했지만, 옛날에 세찬이는 되게 왜소했다.
근데 이놈은 뭐 예쁘다고 업어주겠냐.
첫 인상부터 비호감이었잖아, 얘는.
그래도 이 녀석도 병원에 한번 데려갈 필요가 있겠군.
죽지는 않은 것 같은데, 마비같은거에 걸린건지 계속 혼수상태다.
한야가 당한거랑 비슷한데 다른 느낌이다.
하지만 아직도 숨은 쉬고 있는 것 같으니까, 뭐 죽을거란 생각은 안 든다.
밖에서 기다리던 세찬이는 나만 나오자 이상하단 표정으로 말했다.
“한야는?”
세찬이가 묻는 말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죽었는지, 잠든건지 잘 모르겠어. 중독당했나봐.”
“독이 있었나.”
세찬이는 소름끼친다는 듯이 인상을 쓰면서 작게 몸을 떨었다.
그냥 벌레도 아니고 독벌레라, 세찬이가 아주 싫어할만한 것이다.
실제로 사람한테도 통하는걸 보니 상당한 독성인것 같고.
“집은 어떻게 됐지?”
“하아, 자세히 말해줘?”
“아냐. 그딴 반응을 보니 알것도 같다.”
내가 한숨을 크게 내뱉으면서 한탄처럼 말하자, 세찬인 자세히 묻지 않았다.
“다음부턴 창문 잘 닫아야겠다…….”
“넌 꼭 일이 터져야 행동을 바꾸지.”
“…….”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말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치만, 소 잃었다고 외양간 안 고치면 다음 소를 못 사는 걸.
어쨌든 고치는 게 중요한 거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라를 데리러 놀이터로 돌아가던 길에, 세찬의 다리에 뭐가 매달려 있는 게 보였다.
“야, 세찬아. 넌 그 다리 사이에 뭘 붙이고 다니는 거야?”
“내가 뭘 붙이고 다니……어?”
세찬이가 멈춰서 제 허벅지를 내려다보더니 기겁하며 펄쩍 뛰었다.
“이, 씨이팔! 벌레잖아!”
“아 깜짝야.”
세찬이의 폭발적인 목청이 터져나오며 내 고막을 세게 때린다.
성대도 근육이라는데, 이놈은 혹시 성대도 단련하나?
겨우 벌레 붙어있던 걸 가지고 이정도 소리를 지를 정도라니…. 잠깐, 저거 독 있는 거 아냐?
얼른 도망치려던 벌레를 달려가서 잡아보았지만, 그 즉시 벌레는 녹아내리듯이 사라져버렸다.
“……이거, 피잖아?”
설마 이것도 고유능력같은건가.
아니면 거미녀석의 신체 일부분이라던가, 분신같은 것인 모양이다.
그럼 100% 독이 있을 것 같은데.
“언제부터 매달려있었지?”
“전혀 못 느꼈어?”
“벌레 기어다니는 감각은 너무 익숙한거라…. 다른데는 없냐?”
세찬이가 제자리에서 한바퀴 빙글 돌았다.
다른곳에 벌레는 없는 것 같은데.
“없는데, 근데 방금 뭐라고? 벌레 기어다니는 감각이 익숙해?”
“…….”
세찬이가 대답을 회피하듯 고개를 돌렸다.
벌레 기어다니는 감각….
그러고보니 녀석이 하던 마약성 약물중에 그런 부작용을 가진 녀석도 있었던 것 같다.
그걸보면 아무래도 금단증세가 아직 완전히 끝난 건 아닌 모양이다.
음……. 그래도 금단증세가 있다는 건 정말 약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지?
장하다, 우리 세찬.
벌레는 엄청 싫어하는데 그런 감각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약에 다시 손대지 않았다니.
이 형은 감동을 크게 받았다.
그래, 이참에 완전히 약 끊고 새 사람 되자.
“설마 물린 건 아니지?”
“몰라, 씹.... 조금 따갑긴 한데.”
“그럼 물린 거 아냐? 빨리 바지 내려봐. 좀 보자.”
“미쳤냐? 여기서?”
세찬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며 당황한듯이 말했다.
뭐, 밖에서 바지 벗어보라고 하면 보통 이런 반응이 돌아오긴 하겠지.
“뭘 부끄러워하고 그래, 인식저해 둘렀으니까 괜찮아. 너도 나한테는 더한 것도 시켜봤으면서.”
“내가 뭘 시켰던가?”
세찬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
“대낮에 땀으로 속 비치는 환자복에 개목걸이채우고 활보시켰잖아..”
“그땐 어쩔 수 없었고. 그런데 그따구로 말하니까 내가 되게 변태 같다?”
“아니었어? 그때도 만약 누가 봤으면 완전히 변태라고 낙인찍혔을 걸?”
“누가 본다고.”
내가 씨익 웃으며 고개를 갸웃거리자, 세찬이가 질린 듯이 표정을 썩혔다.
뭐, 그땐 네가 날 김석주가 아니라 릴리스라고 생각했으니까, 아예 이해 못할 행동은 아니었지만서도.
그렇다고해도 여자애를 그런 차림으로 돌아다니게 한다는 게 너무하네.
너, 혹시 다른 여자들 한테도 그러냐? 아니지?
그리고 그거 다 벗는 것도 아니고 바지만 살짝 내리는 건데.
게다가, 의료행위가 아닌가?
그렇게 시시덕거리고 있을 때, 세찬이가 갑자기 휘청했다.
나는 바로 메고있던 기자를 내팽개쳐버리고 달려가 부축했는데, 이제보니 다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게 보인다.
녀석이 휘청거리기 전만해도 그냥 장난삼아서 한 말이었는데, 아무래도 진짜 확인을 해봐야 할 것 같았다.
왜냐면 실제로 독충에 물린 사람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한야가 자신의 목숨을 써서 증명했다.
“야., 내일이면 다시 살아나는 한야랑 달리 넌 죽으면 그대로 죽어.”
그걸 생각하니 웃음기가 갑자기 싹 가셨다.
그러고보니 목숨이 걸린거였잖아.
나는 근처에 앉힐만한 곳을 찾다가 불 꺼진 상가건물의 낮은 계단에 앉혔다.
그리고 내팽개쳐버린 기자를 끌고 와서 대충 옆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어쩐지 이 기자는 죽지 않을 거란 확신이라고 할지, 감이라고 할지, 그런 것이 느껴졌는데, 세찬이는 그런 걸 읽어낼 수가 없어서 자꾸만 불안해지는 중이다.
정말 죽는 거 아닌가 모를 정도로.
“얼른, 다리도 풀렸으면서 왜 그래? 너 그러다가 죽을지도 몰라. 빨리 안 벗으면 내가 강제로 벗긴다.”
“아. 시발….”
세찬이가 수치심에 물든 표정으로 벨트를 풀었다.
팬티는 녀석이 자주 입던 회색 브리프였는데…. 아. 이게 중요한건 아니지.
뭔 남자새끼 팬티를 자세히 보고 있어 나는.
벌레에 물린 부위는 한눈에 봐도 여기라며 외치는 듯 했다.
물린 부위가 무슨 벌이라도 물린 것처럼 부어오르고, 구멍 난 피부에서 검게 변색된 피를 흘리는 중이었으니까.
“이건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하잖아! 대체 그 벌레는 왜 거기 붙어있었던거야?”
“제길, 다른 부위는 다 확인 했었는데. 하필 거긴 못 봤다.”
녀석이 내 호통에 변명하듯이 말했다.
벌레가 기어다니는 감각 정도야 금단증세로 익숙할테니 다 육안으로 확인 했다는 모양이다.
하긴, 아무리 그래도 가랭이 사이를 확인하는 경우는 많지 않겠지.
녀석은 근육때문인지 그다지 유연하진 않으니까.
게다가 만약 등 같은 데에 붙어있었다면 내가 바로 발견했을 텐데 하필이면 거기에 붙어있는 바람에 나도 뒤늦게서야 발견했고.
사타구니 안쪽, 정확히는 안쪽 허벅지 사이.
게다가 허벅지 안쪽은 실제로 대동맥이 지나는 부위라 위험하다.
내가 녀석의 허벅지 안쪽을 바라보며 마음을 굳히던 도중, 세찬이가 불안한 어투로 말했다.
“그런데 니가 보면 어쩔건데. 당장 방법이 있냐? 바로 병원으로 가야…….”
“……있긴 있지. 산에서 있던 일 기억나?”
“뭐? 야, 너 설마….”
내가 말하는 걸 아마 녀석이 기억한다면 떠올릴 수 있으리라.
딱히 마을에 친구가 없던 나의 취미생활이라고 할 것은, 보통 산에 곤충을 잡으러 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산을 자주 돌아다녔는데, 몇 번 정도 녀석을 데리고 산을 탄 적도 있었지.
그날은 언덕위에 나무에다 폐타이어를 끌고가서 내가 그네를 만들었다고 자랑하려던 날이었다.
존나 힘들었으니까.
반드시 자랑하리라고 마음먹었으니까.
싫다는 너를 거의 강제로 끌고 갔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세찬이가 뱀한테 물렸던 거야.
그땐 발목이었는데, 난 죄책감과 당혹감에, 당장 독을 빼내야된다고 생각해서 다짜고짜 발목에 입을 가져다 댔었다.
독을 뺀다고 피를 빨고, 뱉어 내고, 그렇게 몇 분 지랄을 해놓고 얼른 너를 업고 병원에 갔었는데.
다행히 독사가 아니라고 해서 너는 건강했지만, 나는 너희 부모님한테, 그리고 아빠한테 혼나서 한동안 시무룩하고 있었던 기억이 이어진다.
결말을 보면 꽤 슬프지만 즐거운 추억이긴 한데, 지금 상황에선 즐거움같은건 잘 모르겠고.
그리고 이번엔 진짜 안 빨면 죽을지도 모른다.
흡혈귀의 능력으로 만들어진 벌레가 인간에게 치명적이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
나는 눈을 꾹 감으면서 미간을 모았다.
아니 내가 왠만하면 불쾌한 표정을 짓고 싶진 않은데, 하필 부위가….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거기 입을 댔다간 남자로써 소중한 무언가가 깎여 나갈 것만 같아서.
다시 상기하지만, 허벅지 안쪽이다.
사타구니가 아니다.
이건 큰 차이다.
그러니까 그, 펠….
아무튼 그건 아닌 셈이다.
아닌 셈인 게 아니라 아니다.
결단코 아니다!
“으, 하필 여기냐….”
“그냥 하지마…. 내가 분명히 하지말라고 했다.”
“야, 안하면 너 죽는다니까? 가만히 좀 있어봐, 알아서 마음의 준비 중이니까.”
“…….”
그래, 이건 흡혈도 아니고, 성적인 의미도 없고, 의료행위다. 이를테면…. 그래. 인공호흡 같은 거지.
아니 근데, 미치겠네. 사태는 분명 심각한데, 저기서 피를 빼내려면 내가 녀석의 다리 사이에 머리를 집어넣어야 한다는 거잖아….
심호흡을 한다.
다시 표정을 굳히곤 세찬이 앞에 가서 선다.
녀석과 눈이 마주친다.
“…….”
“…….”
서로 표정을 살폈다.
나는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는 표정이었고, 너는 그냥 체념한 표정이었다.
공통적으로, 둘 다 조금 얼굴이 빨갰다.
내 얼굴은 내가 볼 수 없으나 느껴지는 피의 흐름이 얼굴에 상당히 몰려있음이, 화끈하게 올라온 열이 느껴진다.
아마 너 못지않게 새빨갛겠지.
시발, 나도 사실 이러고 싶진 않아.
“간다….”
내가 굳은 목소리로 말하자, 녀석은 아예 눈을 감아버리곤 크게 한숨을 쉬었다.
몸이 식은땀으로 축축한 것은 독 때문인가 심리적 요인인가, 나는 알 수가 없다.
나는 네 마음을 읽을 정도로 눈치도, 능력도 키우지 못했으니까.
모르겠다.
너도 싫긴 하겠지.
그야 예전에도 진짜 싫어했으니까 말이다.
그래 시바,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겠지, 염병.
한번 눈 딱 감고 독만 빨아내면 될 일이야.
뭐가 어려워?
허벅지 안쪽이랑 발목이다.
별로 다를 것도 없잖아.
나는 앉아있는 녀석의 다리를 살짝 벌리고 무릎을 꿇어 앉았다.
으.
자세 부터 싫고, 거부감이 느껴진다.
며칠 전에 봤던 야한 동영상속의 장면 같잖아.
아니, 남들이 보기엔 영락없이 그렇게 보이겠지.
절대 남한테 보여주고 싶은 장면이 아니야.
애초에 사람도 안 다니는 중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불안감에 둘러쳐놓은 인식저해를 몇 단계 더 높였다.
더욱 정신력이 크게 소모되는 듯 하지만 상관없다.
오히려 지금은 조금 제정신이 아닌 편이 나았다.
“쯥.”
“끄윽…….”
마침내 고개를 숙여서 입을 대고 빨아내자, 피와 함께 녀석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참아내는 느낌이었다.
그래, 나도 알아.
힘들겠지.
나도 알긴 아는데.
무시하려고 해도 자꾸 눈에 걸려.
좀 떨어져서 보는거랑 가까이서 보는거랑 감상이 다른것은 당연한게 아닐까?
마치 질량에 시선을 끌어내는 중력이 있는 것 같다.
아니, 미쳤나.
왜 시발, 시선이 가고 지랄이야.
넌 임마, 남자야! 김석주!
하도 주변에서 릴리, 릴리 불러대니까 자기가 진짜 릴리인줄 알고 있어.
그래도 어떻게든 무시하고 빨아낸 피를 고개를 돌려 뱉어냈다.
“퉷, 조, 좀만 참아.”
그래, 처음이 어려웠지 이미 내 자존심을 포기한 뒤인 두번째는 쉬웠다.
대체 이거 한번 빨아내는데 무슨 마음의 준비가 그렇게 힘들었는지 모를 정도로.
“쯥….”
두번째부턴 상당히 기계적인 반복이었다.
얼마나 기계적이었냐면, 녀석의 피 맛을 느끼면서 뭔가 이상한 맛이 섞여있는 지 찾아 낼 수 있을 정도였다.
확실히 첫 맛은 뭔가 쓰고 불쾌한 맛이 났는데.
빨아내다보니 점점 달콤함이 섞여나오는 것이, 자칫하면 삼켜버릴 것 같았다.
뭐, 내가 독 좀 들어간 피를 마신다고 죽진 않겠지.
난 내 몸 믿어, 릴리스도 믿고.
아마 내가 그냥 인간의 몸이었다면 결코 할 엄두는 못 냈을 거지만.
2차감염우려도 있고, 자칫 독이 내 입에 상처로 퍼진다면 내가 훅 갈테니까.
그치만 흡혈귀가 된 내게는 어떠한 생채기도 용납하지 않는 재생력과, 충치따위 하나 없이 깨끗한 치아와, 삼시세끼 밥 먹으면 30분안에 3분간 꼼꼼히 이를 닦는 내 생활습관이 있으니 아마 2차감염같은건 없겠지.
있다면 오히려 내가 억울하겠는 걸.
“퉷.”
행동이 기계적으로 변하니 '이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의료행위다' 하고 상기하게 된다.
세찬이는 좀 아닌 것 같긴한데, 뭐 어때.
또 나중에 놀려 댈 거리가 하나 생긴 셈 치면 된다.
그렇게 머리가 차갑게 되니 좀더 진지한 고민이 떠오른다.
적당히 녀석의 피 맛이 제대로 돌아오게 된 후엔 병원에 꼭 데려가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혹시 세찬이는 약을 끊어서 더 몸이 약해진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보기엔 더 건강해졌는데 말이야.
그럼 좀 약하더라도 지금이 훨씬 낫다.
계속 그렇게 살면 늙어서 관절 다 나가.
매번 그렇게 싸웠을 거라 생각하면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생각해보니 이 사건의 원인제공자는 결국 나다.
내가 창문을 열어 둔 바람에 이 사단을 냈다는 점에선 결국 자업자득인 셈이다.
물론, 거미새끼가 제일 잘못했지만.
“쯔읍.”
“…….”
“…….”
몇번이고 녀석의 피를 빨아내고, 뱉어내고 하다보니 이거 흡혈귀가 되어서는 피는 안 빨고 독이나 빨아내고 있다는 사실이 퍽 우습다.
하지만 이제 부끄럽지 않은 건 사실이라, 거침없이 피를 빨아내고 뱉고, 찰나의 순간 피를 음미하며 독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가늠한다.
몇번 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하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누나, 어디 있어요?”
“에퉷! 켁!”
“흡…!”
나는 가까스로 순간 피를 삼킬뻔한 피를 기침하듯 뱉어냈다.
세찬이 역시 야한 걸 보다가 갑자기 방문이 열린 것 마냥 숨을 들이켰고.
그 이유는, 놀이터에서 기다리던 이라가 우리를 찾아나선 것이다.
꽤나 시간이 지났으니까 말이지…. 녀석입장에선 뭔 일이 난 건가 걱정도 될 테고.
그런데 대체 어떻게 여길 찾았단 말인가?
나는 기겁하며 정신력을 다잡았다.
내 정신력이 끊기면 인식저해가 풀려버릴테고, 그랬다간 이 꼴이 이라한테 전부 보여져버리고 말테니까.
미쳐버리겠네.
“쮸으읍…”
빨리 빨아내고 끝내야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세찬이의 허벅지 안쪽으로 고개를 넣어서 피를 한껏 빨아내고 마침내 뱉으려할때,
나는 보고야 만것이다.
“…….”
그동안 녀석의 독을 빨아내야한다는 생각에 전혀 의식하지 못했는데, 시야끝에 걸린 또다른 남성의 시선이 말이다.
그 시선의 주인은 기자였다.
……다 본거구나…?
그렇게 잠깐의 방심에 구석을 파고든 박광식기자의 신체변화는 내게 상당한 충격을 주고 말았다.
얼만큼 놀랐냐면, 순간 나의 정신력이 흐트러질 정도로.
“어, 누나…! 앗!”
“흐끕….”
정신력이 흐트러지자, 인식저해가 흐트러진 틈으로 이라가 내 모습을 발견하고선 달려오다가 멈칫해버린다.
그 목소리에 놀란 나는 실수로 입안에 머금은 피를 뱉지 못하고 삼켜버렸고.
“아.”
뭐라도 말하고 싶은데, 도저히 뭐라고 말도 안 나온다.
그대로 세찬이를 올려다보았더니, 죽고 싶다는 표정이 죽자는 표정으로 바뀐 채로, 초점을 잃은 눈으로 이라를 보았다가, 나를 내려다보면서 눈이 맞았다.
그렇게 시선의 높낮이가 느껴지자, 내가 미뤄뒀던 수치심이 몰려온다.
분명 의료행위인데, 의료행위였을 뿐인데….
녀석이 내려다보는 내 모습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을 것 같아서.
차라리 다시 눈을 감아줬으면 좋겠다.
너까지 날 그렇게 보지 말아줘….
결국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인 것은 나였다.
그래서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얼굴을 가려주는 것은 차라리 고마운 일이었다.
내 첫 흡혈이 이딴식으로 이뤄질거란 생각은 전혀 못했다.
그토록 소중하게 간직해왔던 내 '첫 인간 흡혈’이 이딴 계기라니…….
“어떡하지? 나, 네 거 삼켜버렸는데….”
“야. 제발 부탁인데, 입 닥쳐.”
“저어어어는 아무것도 못 봤어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