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화 〉더하기 빼기
우리는 건물에서 아예 도망쳐서 가까운 놀이터에서 벌레를 잡아줄 구원투수, 한야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찬이가 이상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나 들으라고 하는 말 같다.
"타락귀가 집 안에 들어온것은 저 미끼로 어떻게든 우회했다쳐도, 결계는 대체 어떻게 된거지? 문이라도 열어둔게 아니고서야…."
"아."
그러고보니 문.
"청소하면서 환기하려고 창문 열어놨던거 까먹었다."
내 말에 세찬이가 한숨을 쉬면서 이마를 짚고는 질렸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범인이 너야?"
"모, 몰랐다고…."
시선이 엄청 싸늘해.
창문을 열어놓기는 했지만 그 창문 위로 암막커튼쳐놔서 몰랐단 말이야.
내가 알았으면 창문 닫고 나왔겠지.
아니, 아무리 그래도 겨우 창문 열어둔거 치고는 벌레가 너무 큰게 들어왔는데.
그런데 모기나 파리도 아니고 거미라니….
아니, 흡혈귀니까 모기 비슷한걸까.
"근데 너 아직도 벌레가 무섭냐?"
"그러는 너는, 눈이 왜 무서워?"
"음…. 글쎄…."
모든 창문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크고 작은 눈동자. 색깔도 제멋대로에 동공 크기도 아무렇게나.
규칙이라곤 전혀 없는 그 것은, 일종의 환 공포증을 유발할 정도였다.
그래서 어디에 2개를 초과해서 달려있는 눈을 보면 곧바로 그 촉수괴물의 뱃속이 연상되어버리는 것이었다.
끈적하고 미끈거리는 촉수가 온몸에 감겨서 신체부위를 먹히는 고통이, 마치 끝말잇기를 하듯이 기억의 실타래에서 이어져 나온다.
눈 많이 달린거 보면 소름이 끼쳐. 거기 조금 더 있었으면 아예 건물채로 날려버렸을거야.
"…그건 PTSD같은건가."
"음, 그건가?"
나는 그냥 흑역사 비슷한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때 고통따위에 굴복해서 차라리 죽거나 기절하는편이 낫겠다고 일순간이나마 생각해버린터라, 자꾸 그걸 생각하면 내가 왜 그랬지 하고 과잉행동을 하게 되는것에 가까웠으니까.
학창시절에 부끄러운 일을 생각해서 이불을 발로 차는 것과 비슷한 감각으로다가.
옆에서 보기엔 패닉상태에 빠지는거랑 별 다를건 없어보이기는 하겠다.
아무튼 그래서 저놈이랑 싸우라면 당장이라도 흔적도 없이 분쇄해버리겠지만, 저긴
우리집이잖아.
사실 월세니까 진짜 내 집은 아니지만.
그런데 내가 건물을 무너트려버리면 건물주는 뭐라고 할까. 아니, 건물주가 날 보면 뭐라고 생각할지부터가 문제군.
"넌 무슨 방법 없어?"
"몰라. 다 불질러버리고 싶은 마음밖에 안들어. 우리집만 아니었어도 굉장히 효과적일텐데."
"음, 동감이야."
그렇게 잠시 놀이터의 땅을 나뭇가지로 긁으면서 강아지 상태인 이라에게 나뭇가지를 던져주면 물어올까 같은 잡생각으로 집안 꼬라지를 잠시 잊으려할때, 한야가 도착했다.
"안녕, 오랜만이야 사형. 음, 네가 릴리구나! 한눈에 알아보겠네."
"그래. 한밤중에 불러내서 미안하네."
"괜찮아! 우린 친구인거잖아? 그럼 오는게 당연하지."
한야는 왠 누더기같은 검은색 가죽 코트를 입은채였다.
저런게 대체 어디서 난거래.
집에 저런게 있었나.
세찬이가 한야에게 다가가 가볍게 손을 들어 인사했다.
"그래, 잘 왔다. 인화성물질은 안 가져왔지?"
"어? 안되는거였어?"
"여기 우리집이야."
"아."
그녀는 뒤로 묶은 머리카락 아래로 뒷목을 문질렀다.
아무래도 얘도 다 태워버릴 생각으로 온것 같은데, 세찬이가 저지해서 다행이라고 할까.
그 말을 들은 한야는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결계는 어떻게 됐어?"
"그런것도 없어. 그러니 일단 밖으로 유인해야될거야."
"답지않네. 매번
그런건 꼼꼼했으면서."
"그러게나 말이다…."
세찬이가 날카로운 표정으로 나를 흘겨보았기에, 나는 뜨끔해서는 몸을 굳혔다.
외출하면서 창문열어둔 내가 잘못이긴 하다….
결과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지만.
평소같았으면 이런 실수는 안했을텐데….
커튼때문에 가려져서 안보이는데 어떻게 알고 창문을 닫아.
흡혈귀라고 무슨 투시능력이 있는것도 아니고….
나는 그네에 앉아있던 이라에게
나뭇가지를 건네주고선 한야에게 말했다.
"그, 집안에 일단 엄청큰 흡혈귀가 하나 있거든. 그놈만 어떻게 치워줘. 나머진 내가 할 수 있어."
"그래? 알겠어. 그래도 세찬이는 벌레만 보면 발작하는건 안 바뀌었나보네."
"사람이 쉽게 변하나."
"그래? 너 분위기는 많이 변했는데. 세월이 많이 지났나봐?"
한야는 킥킥 웃으면서 말했다.
분위기, 분위기라…. 음, 변했나? 나는 잘 모르겠는데.
머리한지 얼마 안돼서 그런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한야가 기억하는 세찬이는 9년전의 모습일텐데 그러면 당연히 분위기정도야 변하겠지.
"그럼 일단 밖으로 쫓아내야 한다는 거지?"
"응."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한야가 알겠다며 말했다.
"다른 특이사항 없어?"
"걔 말고도 작은 벌레가 엄청 많이 있더라고. 음….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는데. 일단 그건 제쳐두고."
"음, 그건 나중에. 일단 큰놈부터. 오케이."
"그리고 안에 사람이 하나 있을거야."
"어? 그게 제일 중요한거 아니야?"
"음, 그런가?"
생각해보니까 그러네.
아무래도 나 도덕관념 망가진것 같은데?
왜 별거 없다고 생각했지?
그리고 세찬이가 옆에서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한야에게 말했다.
"괜찮아. 기억제거나 뒷처리같은건 네가 고민안해도 돼. 그 사람은 쟤가 알아서 할테니까."
"그래? 그럼 됐고."
"응? 아, 그쪽이었어?"
갑자기 혼란스러워진다.
도덕이 대체 뭘까.
사람 목숨이 대체 뭘까.
비정상 사이에 오래 있었기 때문인지 뭐가 문젠지조차 잘 모르겠다.
최소한 아는 사람만은 안 죽었으면 좋겠다, 라는게 현재 내 심정이다.
"그럼 들어가볼게. 사람만한 거미 형태에, 벌레들을 사역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정신계 쪽인가? 아니면 조작계?"
정신계? 그건 난데, 조작계는 또 뭐람. 무슨 게임캐릭터 속성같은건가.
"그건 잘 모르겠어. 아무튼 밖으로 내보내줘. 그럼 나는 집안을 수습할테니까…."
"그래, 알겠어."
한야를 데리고 현관문 앞까지 다시 되돌아간 나는 긴장으로 침이 넘어갔다.
이 문 너머에 그게 있단 말이지….
나한테 시선이 느껴지는것 같아서 소름이 다 끼친다.
일단은 한야가 녀석을 몰아내면 나는 집에 남은 벌레를 잡고, 기자를 깨워서 자초지종을 듣고, 집안 정리를 할 생각이다.
…대체 어떻게 정리해야할지 감도 안오지만.
"화이팅!"
"화이팅!"
내가 오른손 주먹을 들어 힘내라는 포즈를 취하자, 한야도 제 무기를 꺼내들고선 주먹을 쥐어보였다.
아무래도 좁은 우리 집에서 그 커다란 대낫을 휘두를 수는 없었기에 무슨 쇠파이프같은 물건만 들고 있었지만.
그나저나, 얼굴에 전혀 긴장감이란게 전혀 없다.
그런데
그녀가 하는 말은 듣기엔 꽤나 비장했다.
"혹시 내가 죽으면, 이것좀 맡아줘."
"응?"
한야가 현관문을 열기전에, 주머니에서 내게 무언가를 건넸다.
"이건?"
"오늘자 일기야. 이왕 맡아주는거 내가 죽으면 사인도 같이 써줬으면 해."
"어? 으,응."
나는 그거 사망플래그인데,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여자는 사망플래그따위는 의미를 퇴색되게 만드는 인물이었다.
어차피 매일 죽고 매일 살아나잖아.
하루하루가 사망플래그이자 생존플래그다.
그래서 나는 대체 너한테 무슨 반응을 해야할지 모르겠어.
단지 난처할 뿐.
-벌컥!
-철컥!
문을 열자마자 들어간 한야가 진지한 눈빛으로 정면을 주시하면서 바로 문을 닫았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문이 열렸을때엔, 이전엔 맡아지지 않았던 혈향이 화하게 올라와 코끝을 자극한다.
내가 들어오지 않아서 미끼에 상처를 낸건가?
지능이 높은건지 낮은건지 헷갈리는걸.
본래 흡혈귀일때도 있었을텐데 말이지.
짐승에 비하면야 높은 지능이지만, 인간같이 사고하는 흡혈귀에 비하면 낮은 지능이지.
우당탕, 쿠당!
사각,사각,사각,사각.
타타타타타탁.
온갖 다채로운 음향효과가 문 너머로 들려온다.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것일까.
다 부시지만 않았으면 좋겠는데….
-콰창!
아니야, 아예 그냥 다 부숴.
다 새로 사지 뭐. 시벌거.
아예 이사까지 가버릴까 싶다.
아파트는 못 구하겠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더니, 안에서 한야가 다급하게 외쳤다.
"세찬아!"
"좋아, 잘했어!"
한야가 크게 세찬이를 부르고, 저 멀리서 세찬이가 잘했다며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집 밖에서야 그리 힘조절할 필요가 없을테니 금방 처리하겠지.
그런데 지금보니 한야가 세찬이를 오빠라고 부르지않네, 오늘은 그러기 싫은건가.
"릴리, 창문 밖으로 내보냈어. 이제 들어와."
"그래?"
문을 열고 들어간 집은 아주 개판이었다.
이것저것 박살나고 깨진 조각들, 여기저기 발발대며 돌아다니는 거미, 바퀴등 집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형태의 벌레들.
그리고 앉은채로 숨을 몰아쉬는 한야와, 바닥과 얼굴을 맞닿은채로 엎드려 누워서 핏물을 스며내는 박광식 기자.
그는 찢어진 상의로 보이는 옅은 상처들에서 피가 아주 조금씩 흘러내리고 있었다.
정말 잘 차려진 식사…. 라고 할 수 있겠다. 흡혈귀 입장에선.
그래서 일부러 죽지 않을 정도의 상처만 낸걸까?
아까 났던 소리는 아무래도 그 커다란 거미를 창문 밖으로 내보내며 났던 소리인 모양이다. 창문이 아예 완전히 틀도 안남고 박살이 나있었다.
끔찍하군. 저건 어떻게 고친대.
바닥엔 그릇조각이랑 부서진 집기들이 대충 널브러져있다. 뭔가 쏟아지기도 한 것같은데, 느껴지는 기운은 신성력인것 같다. 성수나 성유일까?
아마도 저거 때문에 집에서 나간거 같은데.
한야가 가져온 건가?
그나저나, 대충 바닥에 앉아서 벽에 등을 기댄채로 숨을 몰아쉬는 한야는 상태가 별로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표정은 웃고 있기는 했지만, 몸에 벌레가 기어다니는데 어떻게 기분이 좋을수가 있지.
취향 참 독특하네 싶다.
"괜찮아? 네 몸에 벌레가 묻는데."
"사실 별로 안 괜찮아. 이건 마비때문에 그래. 몸이 안 움직이네. 아무것도 안 느껴지고."
"뭐?"
"아무래도 벌레에 독이 있었나봐. 너도 조심해."
"독벌레?"
으앗, 시발!
나는 즉시 내 방 한 구석에 장식된 전기속성이 인챈트된 벌레사냥도구를 꺼내들었다.
세간에서는 그것을 전기파리채라고 부른다.
망설임따위 없이, 버튼을 눌러작동시키자 미친듯이 스파크가 튀기며 벌레들이 죽어나갔다.
바퀴벌레나 지네같은 딱딱한 놈들은 눌러잡고, 거미나 모기같은 날벌레는 튀겨잡고.
파브르도 기겁할 마경이 되어버린 우리집이었다.
"집에서 독벌레가 나온다니!"
집값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것같다.
잘못하면 우리가 손해배상까지 물지 않을까?
이 벌레들이 다 어디로 숨어버리기 전에 모두 잡아야만해!
그렇게 분노를 토해내며 벌레를 죽이다가,
끝이 없을 것 같아서 뭔가 방법이 없을까 떠올렸다.
이건 정신계 능력으로 어떻게 안되려나?
사념같은거 쏘아보내면 다 내쫓을 수 있지 않을까?
솔직히, 아까 그 거미모양 타락귀도 하는걸 내가 못할 것 같지는 않았다.
뭔가 정신적으로 조종해서 데리고 다니는 부하같은게 아니었을까 싶었다.
나는 와인트리에게 하듯, 정신을 집중하여 사념을 쏘아냈다.
뭔가를 대상으로 쏘아보내는것이 아니라, 일종의 의지를 담은 파장을 퍼트린다는 것에 가까웠다.
"다 꺼져, 이 벌레들아! 여긴 내 집이야!"
"휘우, 박력있네."
내 의지를 담은 외침을 들은 한야가 휘파람을 불며 팔을 까딱거렸다.
아마 박수를 치고 싶은 모양인데, 제대로 몸이 움직여주질 않는 것 같다.
그런데 진짜로 벌레들은 내 사념을 느낀건지, 일제히 창문으로 제각각 자기가 움직일 수 있는 방식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나갔다.
-사각,사각,사각.
-사사사사삭.
-탁탁탁탁.
무슨 일종의 행진을 보는것도 같았다.
아나, 진작에 이럴걸. 그럼 벌레시체 안 치워도 됐을텐데.
"와아, 정말로…. 벌레들이 나가잖아…? 진짜 신기하다…."
"휴우. 다행히 통하는것 같네."
내가 한숨을 쉬며 나지않은 땀을 닦아내는 척을 하자, 한야가 힘없이 미소지었다.
그런데 점점 상태가 안좋아지는 것이, 단순한 마비가 아니었던 모양인데….
"아, 한야 괜찮아? 상태가 점점 나빠지는 것 같은데…."
"아, 미안. 릴리야. 나…. 아무래도…. 여기까진가봐…."
"뭐?"
"사인엔…. 독충에 의한…. 중독사 라고 써줘…."
한야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뜬다.
정말로 곧 죽을 사람처럼 점점 혈색도 창백해지고….
"진짜 죽는거야? 한야, 정신차려봐!"
"다음에 벌레 잡을땐…. 더…. 빈틈없고….두꺼운 옷을 입어야겠다…. 라고도…. 써주고…."
"어디 물렸어? 뭐에 물린거야?"
"……."
한야는 눈을 감은채로 고개를 떨궜다.
아마 죽었거나, 죽은거 비슷한 상태가 됐거나 둘중에 하난것 같다. 피부색이 굉장히 창백하다.
칫, 오늘의 한야는 여기서 종료인가?
"히이이, 돌겠네 진짜아…."
집도 개판인데 얘는 또 어디다 놔둬야하는거야….
그렇게 고민하고있자 똑똑, 현관문을 두들기는 소리.
그리고 곧 들려오는 목소리는 한세찬이었다.
"어이, 이쪽은 끝났는데. 그쪽은 어때."
"어? 어어, 잠시만, 기다려봐!"
나는 얼른 휴지를 한뭉텅 뽑아서 피와 벌레시체가 그득한 바닥을 싹 닦았다.
바로 휴지를 쓰레기봉투에 넣고선 후다닥 바닥을 쓸고, 유리조각이 묻어있을 걸레 역시 쓰레기봉투에 담는다.
잠든건지 죽은건지 잘 모르겠는 한야를 내 방에다 눕혀두고서, 자빠진 기자도 집에 있던 반창고나 붕대를 꺼내서 몸에 둘렀다. 최소한의 응급조치였다.
그런데 나도 꼴에 흡혈귀인지라, 피 냄새를 맡으면서 자제하는데엔 정말 극심한 정신력이 필요했다.
그냥 이 남자가 죽든말든 내버려두는게 어떨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흡혈은 안돼…. 그런데 왜 안됐더라?
아빠가 하지 말라고 해서?
왜 빨아선 안되지?
선악과 같은건가, 그냥 먹지 말아야해서 못 먹는.
아무튼 이 사람에겐 물어야 할 것도 있고, 죽으면 곤란하다.
일단 살려둬야겠지.
정말 귀찮게 하는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