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5화 〉교화? (95/101)



〈 95화 〉교화?

슬슬 정신이 돌아오고 았었다.
하지만 아직도 비몽사몽한게  덜 잔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이젠 일어나야지.
한숨 잤으니 담임목사의 미사도 끝났을거다.
나는 마치 눈꺼풀이 역기라도 되는  힘겹게 눈을 떴다.


눈을뜨니 내가 앉아있던 자리에서 뭔가를 읽고있던 한세찬이 보였다.
뭘 읽는거래.

"으응, 하아암, 어라. 나 언제 침대로?"
"깼냐? 내가 옮겼지."
"어…. 고마워…. 응?"

뭔가 품안에서 힘없이 발버둥치는것이 느껴진다.
베개나 이불인줄 알았는데.

"켁, 누나. 죽는줄 켈록, 알았어요…."
"이, 이라야. 네가 왜…?"
"누나가 껴안았잖아요!"
"내, 내가?"
"너 잠버릇 나쁜건 여전하더라."
"윽."


나는 곧장 몸을 돌려서 옆으로 몸을 돌렸고, 이라는  품에서 벗어나 한동안 숨을 골랐다.
내가 얼마나 세게 쥐어짰으면 얼굴이 다 새빨개.
그 모습이 어쩐지 안쓰럽기도 해서 미안함을 담아서 등을 문질러 주었다.
그러나 이라는 아예 내 손길을 피하고 만다.
이건 마음에 상처다.

하긴, 예전부터 여러모로 뒤척이면서 자긴 했지.
요즘엔 관에서 자니까 별로  그런지 모르겠는데,  언제나 잘때 자세와 깰때 자세가 달랐었다.

분명히 정자세로 잔것 같은데 일어나보면 이불도 걷어차고, 몸도 뒤집어져있고, 옷도 반쯤 올라가 있고 그랬던 것이다.

그래서 이게 이해가 안되는 상황은 아닌데, 그랬으면 깨우지!

"왜,  안깨웠어?"
"깨웠어. 네가  일어난거지."
"말도안돼. 내가 얼마나 예민한데."

내가 원해서 예민해진것은 아니지만, 어쨋든 그 예민함때문에 잠을 설치기까지 했었다.
깨우면 못 일어날리가 없는데?

"아주 세상 모르게 자던데."
"누나 코도 골았어요."
"나? 진짜로?"

코까지 골았다니!
진짜 말도안돼!
얼굴이 다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부끄러운지, 손을 들어 얼굴에 대보니까 거의 데일 것 같았다.
나는 혈류를 조작해 머리로 쏠리는 피를 좀 가라앉히려 노력하며 말했다.


"…심했어?"
"아니, 그건 아니고요. 엄청 짧게. 조금 골았어요."
"그, 그래? 그건 다행이네…."

코까지 골 정도로 피곤했나.
제길, 성경책을 베고 자는건 폐기다.
솔직히 지금 그리 상쾌한 기분도 아니고.
마치 전날에 5차까지 달린후에 1교시 수업을 들으러 가려는듯한 몸상태다.
여러가지로 무리야 이거.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대체 세찬이가 뭘 읽고 있는건지 궁금해서.


"넌 대체 뭘 읽고있는…."

녀석의 어깨 너머로  그것은, 이제는 내게 악마의 서적이 되어버린 그것이었다.

"켁, 너 설마 진짜로 하나님 믿으려는거냐! 야, 그건 농담이었어! 알잖아!"
"그냥 확인할 게 있어서 그래."
"뭘 확인 하는데?"
"그냥, 뭐 다른 부분이 있는건가 해서. 개신교와는 구성이 좀 다르네."
"그런거야?"


그런거 확인해서 뭐에다 쓰려는건지 모르겠는데, 이녀석 아닌척 해놓고는 성경책도 읽어본 적 있는 것 같다.
이쯤되면 그냥 기독교신자라고 봐도 무방한거 아냐? 요즘 교회 다닌다는 아줌씨들도 성경책 안읽어본 경우가 태반인데 말이지.

"아, 담임목사가 일어나면 찾아오라고 했는데. 일어나지."
"응. 그런데 나 몇시간이나 잔거야?"
"4시간정도?"
"어."


엄청많이잤네. 저녁시간 다 됐겠다.
나는 급하게  매무새를 정리하고 베일을 대충 머리에 얹은 다음에 거울로 내 모습을 살폈다.

"엇, 뭐지? 나 거울에 바로 보이네."
"지금 너는 VP측정기에도 걸리지 않을 정도야. 아마 흡혈귀 관련 능력은 봉인된거나 마찬가지일걸."
"호오…. 그래서 아까부터 이렇게 머리가 아팠던건가."


나는 머리에 쓴 베일 너머로 두통을 잡을듯이 지압을 했다.
뭐 별로 효과는 없는 것 같지만.

어째든 거울을 통해  내 모습은 과거 내가 상상했던 하얀 원피스를 입은 모습이랑 크게 다를게 없었다.
그러니까, 하얀 페인트를 뒤집어쓴 유령같았다.

어떻게보면 신비롭다고 느낄수도 있겠는데, 눈과 초크에 매달린 루비만 빨갛고 모든 부분이 하얀색이라서 어쩐지 오싹했다.
밤에 누가 보면 소리를 지르겠네.

 



"아으. 이거 하얀색밖에 없다니?"
"오늘같은 날엔 하얀색이랜다. 예식을 맞춰야지."
"흐으읍."


예식이라, 지는 아무런 예식도 차리지 않은 주제에. 나만 옷을 골라입어야하는게 불공평해. 결정했다.
 내가 무조건 옷입히기 시킬거야.
아빠 선물 고르러 갔을때 보자구.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세찬이는 곧장 문을 열고선 앞을 향했다.

"중간에 사제랑 만나면 귀찮아지니까, 딱 붙어서 쫓아와. 꼬마는 그냥 여기 있고."
"응, 알겠어."
"네, 형."

난 세찬이의 말대로 뒤로 바짝 쫓아가 옷자락을 잡았다.
너무 피곤하기도 하고, 머리도 아파서  눈이라도 감고 있으려는 생각이었다.


"뭐야?"
"딱 붙어서 오라며?"
"아니, 왜 옷자락을 붙잡는거냐고."
"나 피곤하고 머리 아파서 눈좀 감고 있으려고. 아니다, 세찬아. 그냥 나 업어주면 안돼?"
"뭐 그딴…. 하아, 그래. 업혀라."
"아싸!"


나는 곧바로 녀석의 옷자락을 놓고 팔을 올려 녀석의 어깨를 붙잡자, 알아서 몸을 낮추며 올라가기 쉽게 허리를 숙여주는 세찬이였다.
한두번 업어준 솜씨가 아닌걸, 이녀석.
하지만 나는 한두번 업혀본 솜씨이므로, 조금 힘겹게 녀석의 등으로 올라탔다.
막상 올라타고나니 저가 알아서 몸을 들썩이며  받쳐들어준다.

"으아아. 머리아파."
"아, 좀 참아라."


그 과정에서 머리가 울려서 뽀개지는줄 알았지만.
어째든 몸은 제대로 받쳐준다.
그리고 걸음걸이를 신경쓰는지 전혀 흔들림이 없이 구름처럼 둥실 떠있는 느낌이 든다.
승차감 죽이네.

내심 녀석의 신묘한 보법에 감탄하며 눈을 감았더니 정말로 내가 움직이고 있는게 맞나 싶을정도다.
이정도면 또 잠깐 졸겠는데.


듬직하게 커서는.
그래서 이럴때 보면 형 같다.
어릴땐 내 동생 같았는데.


"세찬이형이 최고야."
"형은 무슨, 때려쳐라."
"어? 그럼 오빠쪽이 좋아?"
"그건 더 싫어!"
"푸흡."

녀석은 정말로 싫다는듯이 몸을 떨었다.
표정을  수는 없는게 아쉽다, 분명히 재미있는 표정을 지었을텐데.
두통과 웃음이 동시에 느껴져서 나는 세찬의 등에 업혀 미간을 찌푸린채 숨죽여 킥킥댔다.

난 언제나 녀석이 내 동생같은 친구로 남을 줄 알았는데, 언제 이렇게 되어버렸나 싶다.
가랑비에 옷 젖는줄 모르고 사람은 변한다.
사람이 변하니 관계도 변한다.
그런 의미에서 변화는 자연스러운걸까?

나의 경우엔 가랑비 수준으로 변화한게 아니라 열대우림에서 들이닥치는 스콜 수준으로 갑작스레 변해버리긴 했지만 말이지.
아니, 스콜따위가 아니라 태풍이다.
남아있는게 없잖아.


"에휴우…."
"한숨 쉬지마라. 간지러우니까."
"흡, 에휴우우우우---!"
"뒤져, 진짜로."
"악! 미안!"


세찬이가 내 장난에 대응해 제자리에서 가볍게 위아래로 흔드니 골이 울리는통에 곧바로 항복하고 말았다.
하여튼, 주어진 정보를 정말 잘 써먹는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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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분실했단 말이지?"
"네. 슬프지만요."


몇번 제대로 써보지도 못했는데 잃어버린것이 너무 슬프다.
정말로 눈물이 나올것만 같아.
나는 베일을 벗어서 조물딱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다시 만들려면 얼마나 걸리나요…? 오늘 안엔 가능한가요?"
"음, 다행히 만드는 법은 알고 있으니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거다. 조정작업까지 다해서 2시간이면 충분하고도 남겠지. 문제는 재료가 부족하다는 건데…."
"재료요? 그게 뭔데요?"
"흡혈귀의 눈물이다."
"아. 그래요? 뭘 고민해요. 제가 지금 당장 뽑아드릴게요."

나는 눈꺼풀을 들어올려서 꾸욱꾸욱 눈동자를 눌렀다. 바로 흐르는 눈물, 자. 흡혈귀의 눈물이란게 이렇게 얻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세찬이가 질린표정으로 날 안쓰럽게 바라보는 것이다.
아니 왜?

"그딴걸 재료로 쓸 수 있겠냐."
"엑,  안돼?"
"목수의 말대로다. 흡혈귀가 '마음으로'흘린 눈물이어야만 마법적 효과가 있지."
"마음으로요? 아니, 당신들은 대체 그런걸 어떻게 얻는건데요?"
"다 방법이 있단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걸 뽑아내는 공장 대부분이 습격으로 문을 닫는 바람에 공급이 부족해."
"공장?"


나는 어쩐지 으슬으슬해지는 단어선택에 소름이 돋으려고 했다.
공장이라, 난 단어에서 어렵지않게 상상할 수가 있었다.
그, 예전에 병원 지하실에서 아무렇게나 해부된채 마약같은걸 끊임없이 주사당하던 와인트리의 모습.

그런게 여럿 비치되어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아닐까?
내가 흡혈귀 눈물공장에 가본적은 없는데 아마도 크게 다를것 같지는 않다.
어쩌면 더 끔찍할수도 있고….
상상력이 부족해서 더 끔찍한건 상상이 안가는걸.

"…나한텐 그러지 않을거지?"
"뭘? 해주길 원해?"
"아, 아니야."
"됐어, 어차피 릴리스의 정신을 주무를만한 도구나 약물은 세상에 없을걸."
"그래?"


그럼 괜히 쫄았네.
음.
그럼 순수하게 내가 직접 울어야 한다는 말이잖아.
마음으로 울어야한다라, 그것도 잘만하면 가능할 것 같은데.
음, 가장 슬펐던 기억을 떠올려보자.
나는 눈을 감고서 최대한 슬픈 기억을 떠올려보려고 했다. 그런데 내가 아무리 감수성이 좋아졌다고해도, 상상만으로 울음을 터트릴 정도의 경지에 오르지 못했기에 쉽지가 않다.
그렇게 한동안 상상력을 끌어모으기 위해 기합까지 내뱉던 도중.

"흐으윽."
"똥싸냐?"
"푸흐, 아. 방해하지 마!"


세찬이의 방해에 맥이 탁 풀려버린다.
뭐야, 몰입 할랑말랑했는데.

"그러지말고, 차라리 슬픈 소설같은걸 보는게 어떻겠나?"
"소설이요? 으음, 책은   읽어서…."

아까 성경을 읽으면서 오늘치 독서 할당량은 전부 채운것 같았다.
글자같은거 또 눈에 넣다간 소설읽다가 울기는 커녕 자고 말겠지.
애초에, 글자를 보고 뭔가 자세하게 상상하는 능력이 내겐 탑재되어있지가 않다.


"아, 시벌. 이럴줄 알았으면 저번에 니가 그 귀신들린 연기봤을때 눈물 좀 모아둘걸."
"흠, 한번 더 해?"
"내가 다신 그런거 하지말라고하지 않았어?"

내가 인상을 쓰면서 녀석을 노려보았더니 세찬이는 곧장 두 손바닥을 들어 항복한다는듯이 들고선 말했다.

"뭐, 진짜로 할거였다면 물어보지도 않았어."
"그럼 진짜 죽어."

주먹을 들어올리며 흔들어보이자 씁쓸하게 웃는 한세찬이었다.
비록 앙증맞게 작은 손이지만, 실제로 여러번 녀석을 실수로, 또는 고의로 조패면서 이곳 저곳을 작살내기도 했던 손이다.

지금도 그 흔적은 녀석의 은색으로 빛나는 어금니가 증명하니까, 경계할 수밖에 없겠지.
잠시 딴 소리를 하고 있을때, 목사가 박수를 치며 말했다.


"어, 그럼 영화는 어떠냐?"
"영화라…."


슬픈영화는 본적이 없는데.
애초에 영화를 자주 보러 가지도 않았고, 음.
가끔 지혜나 민석이랑 액션영화나 공포영화를 보기는 했지만, 슬픈영화는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집에선 TV를 자주 보지도 않았으니까, 영화같은거  시간도 없었고.

"내가 그런걸로  수 있을까?"


내가 조금 의문을 담아서 말하자, 세찬이가 말했다.

"존나 당연하지. 너 존나 잘 울잖아."
"아니, 씁."

나는 반박을 하려고 했다가, 떠오르는 기억들에 입을 다물게 되었다.

생각해보니까 그렇긴하네.
며칠전에도 울었잖아.
4주간 자다가 깨었을때도 왠지 모르게 울고 있었고, 변한 첫날도 질질 짜면서 발버둥쳤었고…. 어, 울었던걸 나열하려면 좀 많은것같다.


뭐야,  왜이렇게 잘 울어.


흡혈귀가 되기전엔 진짜 잘 안 울었던거같은데, 이상하다….
그냥 울 일이 없었던건가?


"나 의외로 수도꼭지인거 아니야?"

틀면 흐르는 수도꼭지 말이다.

"그거 '의외'라는 말을 붙일 필요가 있나."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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