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화 〉인연
사칵, 사칵.
나는 나물을 대접에 담아서 조심스럽게 무친다. 음, 조미료는 그대로 있네.
그것은 세찬이가 그동안 전혀 요리라 할것을 하지 않았다는 증거이도 하다.
그만큼 좆같은 것들만 먹었을거란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러니 오늘 아침 정도는 내가 힘좀 발휘해야겠지, 나물같은것도 종류별로 잘 먹어야 몸에 좋다.
뭐 세찬이가 병약하진 않다지만, 그동안 마약과 담배로 절여져있을 몸속의 상황은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아침에 먹을걸 한창 만들고 있었더니, 세찬이가 제 방에서 비척비척 걸어나왔다.
"일어났어?"
"그래…."
"씨끄러웠나? 나름 조용히 한다고 했는데."
"별로, 그냥 일어난거야."
녀석은 어제 내가 선물한 잠옷을 입은 상태였다.
혹시 몰라서 제일 큰걸로 주문했는데도 타이트하지 않을까 걱정이었는데, 나름 잘 맞는 듯하다.
잠옷치고는 좀 딱 맞는? 그런 느낌이긴 하지만, 작은것은 아니라서 괜찮아 보인다.
"그런데 너무 새벽 아닌가."
"그, 뭐시냐. 잠이 잘 안와서."
그런 영상을 봐서 그런가…. 잠이 안왔다.
끊을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고할까, 내게 그런 동영상 시청의 끝은 보통 끝내는 방법이 루틴처럼 정해져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뭐.
지금의 몸은 어쩐지 그런 감각을 느끼긴 힘들었다.
내 손가락 넣는것도 뭔가 남자일적의 감각때문에 요도에 뭘 넣는 것 같은 느낌이라 좀 무서운데다 징그럽고, 그렇다고 겉부분을 꼬물딱거려봐도 쾌감같은것보단 내가 지금 뭐하는건가 싶은 자괴감이 더 강했으니까.
게다가 흡혈귀라서 그런가, 딱히 성욕도 생기지 않다보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있다.
음, 성욕보단 흡혈충동이 우선되는 몸이라서 그런가. 항상 흡혈충동에 시달리는 중이라서 성욕은 비교적 희미한 것 같다.
배고파 죽겠는데 야한거 생각 안나는 거랑 비슷하달까.
그리고 만약 그런거에 익숙해졌다가 나중에 남자로 돌아가면 어떡해….
아직 나는 내가 다시 남자로 돌아갈거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고.
내 가랭이 사이엔 판도라의 상자가 달려있는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온갖 좆같은 것들이 이미 세상에 풀려나갔으나, 그렇다고 완전히 열면 희망마저 날아가 사라지는 뭐 그런…? 시발, 비유좀 봐라. 참 좆같네.
그리고 아무래도 더 있다간 정말 밤 새도록 그런걸 보면서 그런생각이나 할 것 같아서 멈추고 다른 행동을 하는것이다.
애초에 밤에는 그렇게 피로하지 않기도 하고, 그냥 잠을 설친김에 아예 잠을 포기해버리기로 했다.
"그래도 넌 잘 자더만."
"뭐, 요샌 잘 잔다."
평소 불면증때문에 제대로 잠을 못자던 녀석이다.
잠옷이 편했는지, 약을 끊어서 그런건지 세상 모르고 자는꼴은 처음 보는거라 신기했다.
애초에 저정도로 풀어진 모습도 오랜만에 보는 듯하다.
좋은 변화였다.
녀석이 뒷목을 만지작거리며 다가오기에, 자리에 앉기전에 내가 말했다.
"일단 몸부터 씻고 와."
"그래."
녀석은 하품을 한바탕 하면서 화장실로 걸어갔다.
밥 먹으면 바로 나갈 생각이니까 말이다.
난 한시라도 빨리 교회에서 그 도구를 만들고 싶었고, 그러기위해선 빠른 외출준비가 필수적이니까.
아침부터 교회갈 준비라니, 마침 오늘이 일요일이기도 하네.
이 무슨 독실한 기독교인들인가 싶지만, 둘다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사실이 웃기다.
나도 진작에 씻어서 요리에 방해되지 않게 머리를 뒤로 묶어놓았다.
옷도 외출복을 입은채로 앞치마를 둘러둔채다.
요리래봤자 나물에 참기름과 소금으로 간단하게 간하고, 계란을 올리브유 두른 후라이팬에 까넣어서 계란후라이를 만드는 정도지만.
나물요리만 만들면 너무 사찰음식 같을까봐 계란후라이로 덮겠다는 심산이었다.
사둔 고기가 있고 나는 상관 없지만, 요즘 세찬이가 기름지고 짠 도시락이나 라면을 너무 많이 먹어댄통에 소화기관이 상당히 무리를 하고 있었을거다. 그런 놈 밥상에 기름기의 끝판왕인 삼겹살을 아침부터 올릴순 없잖아.
"흐음…. 다 됐다."
녀석도 나도 계란은 반숙을 좋아하니까 너무 오래 익히면 안된다.
적당히 익었겠다 싶어서 접시에 재빠르게 올려두고, 남은 기름에는 베이컨을 조금 튀겼다.
생각해보면 베이컨도 기름이 쩔긴 하지만, 삼겹살보단 얇고 양도 적으니 적당히 몇개만 구워놓으면 반찬의 바리에이션이 다양해지잖아.
밥 먹는 양이 늘어났으나 허기는 들지 않으므로, 몇 안되는 반찬으로 배를 채우고 싶지는 않다는 내 욕심이기도하다.
꽤 많이 먹는데 한가지 반찬만 계속 먹으면 질리기도 하고.
밥솥에 한가득 밥을 지었으나, 이것은 한끼만에 사라질것이었다.
대부분 내 뱃속으로 말이지만.
피는 조금만 마셔도 금방 충동이 나아지던데, 음식으로 그 충동을 채우기위해선 정말 끝도없이 처먹어야한다.
비효율적이지만 어쩔수 없지.
"어지간히도 급한가보군."
"급하지, 오늘 핀 못만들면 내 식생활이 좆되는데."
목욕을 마치고 나온 한세찬이 허리에 수건을 감싸고 물기 묻은 머리를 다른 수건으로 털며 나왔다.
녀석의 맨몸을 보니까 괜히 어제 봤던 바니걸 영상들이 떠올라서 시선을 돌렸다.
처음엔 녀석의 취향이 어떤것인지 조금 확인하고 놀려줄 심산이었으나, 어느순간부터 집중해서 보고 있던 나를 발견했다.
게다가 무서운것은 그 남자배우들보다 컸다는 사실이다.
하긴, 놈은 몸집이 있으니까…?
어째든 그 사실을 확인하니 녀석이 큰거지 내가 작은게 아니었다는걸 새삼 깨달아서 자존감이 조금 차올랐다.
근데 내가 왜 남자의 그것 크기에 신경을 쓰고있는거지?
있었다가 없어진 거라서 그런가?
난 생각을 흐트리기위해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뒤로 묶어놓은 머리카락이 흔들리며 등을 간지럽히는게 느껴진다.
"뭐하냐?"
"아니, 암것도."
내가 갑자기 고개를 도리도리거리는 모습을본 세찬이가 뭐하는거냐며 물었으나, 뭐 입밖으로 낼만한 잡생각은 아니어서 그냥 얼버무렸다.
몇달전, 서로 남자일적엔 제 생식기가 보이든 말든 별 신경은 쓰지 않았는데, 역시 내가 아무리 남자였던 친구라지만 대놓고 보이는덴 거부감이 드는 모양이었다.
이건 저번에도 그랬으니 그건 괜찮다. 이해할수 있는 부분인데.
수건을 두장이나쓰다니, 빨랫감 늘리기의 선수….
미리 옷을 챙겨서 들어갔으면 괜찮았잖아?
이런 부분에선 준비성이 떨어지는군.
아니, 어차피 빨래는 쟤가 할텐데 왜 내가 걱정이람.
나는 교회에 들렀다가 다시 실버네 아파트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지혜가 계속해서 내 위치를 찍어보고 있다는게 확실해졌으므로.
괜히 이상한 오해 만들기도 싫었고, 귀찮고 어렵고 복잡한 설명을 하는건 더욱 싫었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엔, 내가 김석주라는게 들키는 것 이니까. 그건 정말 싫은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여성인 지인에게 그걸 들키는건 감당하기가 어렵다.
세찬이가 옷을 입으려 제 방에 들어갔다.
물방울이 툭툭 떨어지는게, 머리가 전보다 꽤나 길어져서 물기를 머금어 떨구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자른지 두달이 훨씬 넘었으니, 짧았던 옆머리도 어느새 지저분하게 자라서 좀 이상해보였다.
그런 세찬이의 머리가 상당히 구데기? 벌레? 아무튼 안좋아보였으므로 말했다.
"슬슬 너도 머리한번 더 잘라야겠는데, 이번엔 나랑 같이 가."
"뭐…. 하아. 그러던지."
저번처럼 지혼자 갔다가 무슨 군대 입대하는것마냥 짧게 잘라내는 꼴은 봐줄수가 없었다. 아니, 머리 자르랬지 머리 없애라고 한건 아니었다고.
내가 갑갑해 보인다고 했다고 그냥 싹 조져버린게 분명하다.
그때 그나마 윗 머리까지 쭉 밀어버리지 않은건 미용사의 최후의 양심이었을터다.
이 새끼가 진짜 삭발을 하면 길가던 꼬마가 바지에 오줌을 지리고 도망갈 면상이 되었을 테니까….
"맞다, 돈도 있는데 이사를 가는게 어때?"
"이사?"
"왜, 지금 집은 솔직히 별로긴 하잖아. 보일러도 구리고, 좁기도하고…."
욕조도 없고, 조망권도 구리고, 근처에 아는사람들이 산다는것도 문제다.
"흐음, 그 돈. 나는 장비 사는데 쓰면 끝인데."
"장비를 산다고?"
"그때사용한 그 폭발말뚝도 보충을 해야하고, 사냥도구같은것도 구매해야하고, 나는 장비살 돈도 빠듯해."
"아…."
그런것도 말뚝이라고 부르는건가?
뭐, 찔러넣는다는 점이선 말뚝이나 검이나 송곳이나 못이나 다를게 없긴 하지.
나는 뭐, 피를 소모하긴 하지만 이렇다 할 소모성 장비는 쓰는게 없으니 몰랐으나, 녀석은 사냥을 하면 정말 여러가지로 소모를 해가며 싸우는 식이었다.
그동안 쓰던 것을 보면 그렇게 싼 장비는 아닌듯 해 보이기도 했고. 은색 폭발을 일으키는 말뚝이라니, 얼마짜리냐 도대체.
그런걸 물쓰듯이 써댔으니.
"그래…? 그럼 좀 더 벌어야되겠네."
당분간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할 것 같다.
그런생각을 하면서 밥상을 차리고 있었더니, 이라가 눈을 비비며 걸어나왔다.
내가 남자일적 입었던 커다란 티셔츠를 입은 모습은 역시나 귀여움이 배어있다.
녀석도 나같은 인외종족이니 실제로 가련하거나 뭐 유약하다거나 그런 생물은 아니지만, 그냥 보기엔 보호욕을 자극한다.
실제로 첫 만남에선 보호를 하기도 했고.
당장에라도 머리를 쓰다듬고 싶을 정도였다.
"좋은아침이에요. 누나."
"그래, 이라야 일어났구나?"
그런데 방금 일어났는데 이라가 인간상태라니?
뭔가 이상함을 느낀나는 앞치마에 손에 묻은 기름을 닦아내며 말했다.
조금 튀었는데 따갑네.
뭐, 그냥 냅두면 낫겠지.
"근데 왜 지금 인간상태니? 오늘은 딱히 만져주지 않았잖아?"
"어젯밤이 보름달이었거든요. 그 덕분에 일시적으로 제 격이 높아져서 그런것 같아요."
"어? 그래? 다행…. 아니, 그렇구나."
그럼 앞으로도 녀석을 쓰다듬어도 된다는 말이었다.
다행인 일이다. 이라의 털감촉은 이제 내겐 필수적인 일상에 속하는 감각이었으니까….
이게 진짜 애니멀테라피지. 힐링되는 감촉.
어느새 나는 이라의 정수리에 내 손바닥을 비비고 있는 것이었다.
세찬이가 밥상에 앉아 자신의 몫이 될 밥그릇을 쥐고 말했다.
"그러고보니 어젯밤이 보름달이었나?"
"그랬나보네."
"넌 뭔가 변화가 느껴지지 않았어?"
"글쎄? 애초에 난 보름달이 뜬줄도 몰랐어. 내 방엔 창문도 없잖아."
세찬이네 방에는 창문이 있어서 아마도 보름달의 빛을 쬘 수 있었던거 아닐까.
그러고보면 보름달도 흡혈귀와 큰 연관이 있는 현상이었을것이다.
뭐 그런걸로 흡혈귀적인 이벤트를 겪어본적은 없지만 말이다.
왜냐면 참 좆같게도, 그날이랑 보름달이랑 겹쳐서 보름달이 뜨는날에 외출을 자제했으니 달뜬걸 볼 일이 없었다.
"보름달이 뜨면 나한테도 뭔가 일어나는거야?"
"그건 잘 모르겠다. 보통의 흡혈귀는 격이 높아지며 일시적으로 힘이 강력해지는 현상이 있지만…. 너는 이미 다른 흡혈귀랑은 격이 다르잖아?"
이미 내 격은 다른 흡혈귀와는 한단계 다른 상태.
모든 흡혈귀의 어머니이니 뭐시기니 하는 거창한 흡혈귀의 개념체의 환생이다.
보름달을 본다고해서 더이상 높아질 격이 있는진 모르겠군.
하지만 그런 말이 있잖아?
"천외천……."
하늘위에 하늘이 있다는 뜻.
내 위에도 더 높은 격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 아닌가?
"헛소린 됐고, 밥이나 먹지."
"넹."
내가 밥솥을 통째로 가져와 자리에 앉자, 이라 역시 자기에게 주어진 밥그릇을 들고 자리에 앉아 숟가락을 들었다.
그러나 이라는 감금생활에서 흡혈귀의 피를 먹는 생활을 오랫동안 해왔고, 평소 뭘 먹을때에도 개 상태로 먹는 적이 많았기 때문에 오히려 도구를 써서 뭔가를 먹는데 익숙하지 않았고, 그래서 많이 흘렸다.
"이라야, 숟가락은 이렇게 쥐어야지."
"녬!"
"먹을건 다 삼키고 말해야지."
"…네!"
대답은 정말 잘해.
그래도 흘린 음식들이 아깝기도 해서 녀석이 흘린 밥풀이나 반찬들은 다 내입으로 가져갔다.
"……응? 왜?"
"… 넌 무슨 엄마냐?"
"야, 그 말은 금지어라고 했잖아."
안그래도 어머니라는 말에 요즘 스트레스 받고있는데, 엄마냐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나쁘다.
게다가 내 엄마는 실제로 본적도 없는데.
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질색하자, 녀석이 곤란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 그랬지."
왜 기분나쁘게 웃는지 모르겠군.
나는 밥솥에서 크게 한숟갈씩 떠서 입안에 넣고 우물거리고 있었다.
"야 근데 이거 베이컨이 좀 매콤? 하네. 신기하다."
"매콤하다고?"
"응. 매콤한 맛으로 산건가? 나름 화끈해서 맛있네."
"전혀 맵지 않은데?"
"그래?"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베이컨을 한조각 더 집었다.
밥을 먹지 않고 먹으니 더욱 매운데.
매운맛은 잘 먹을 수 있는줄 알았더니 그렇게까지 잘 먹는것도 아닌 모양이다. 세찬이는 정말로 맵지 않은것 같아 보이고….
살짝 땀이 나는것 같아서 물을 한모금 마신뒤에 혓바닥을 내밀고 있었더니 세찬이가 말했다.
"그렇게 맵나?"
"으, 좀 아린데. 넌 아무렇지 않다고?"
"아무렇지 않은게 아니라 그냥 맵지가 않아."
허세는! 매운거 잘먹는다고 허세를 부리는 게 분명하다.
나 역시 질수 없는지라, 혈류까지 돌려서 강제로 혓바닥을 회복시킨 후에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계란 후라이를 밥솥에 넣어서 한숟갈 크게 떴다.
"흡…. 뭐지? 왜 계란후라이가 맵냐…?"
"음….계란도 맵다고? 대체 그게 무슨…."
베이컨의 매운게 묻었나? 그렇다기엔 좀….
밥을 먹던 세찬이가 이상하단 표정으로 숟가락을 내려놓고 나의 표정을 살폈다.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닌지 확인하는 기색이었다.
"흐엑!! 물!"
근데 걔가 날 어떻게 보든진 내 알바가 아니고, 매워서 물을 들이키다가 안되자 싱크대에 물을 틀어서 혓바닥을 대고 신음하고 있었다.
아픔은 금새 씻겨나가질 않고 있었다. 다시 혈류를 돌릴까 싶었지만, 그랬다간 흡혈충동이 들것이 분명했다.
안그래도 요즘 강해진 충동때문에 참는게 조금씩 힘들어지는 터라 먹는 음식의 양도 늘고 있는데, 겨우 매운거 먹다가 혓바닥 아프다고 피를 낭비하기엔 내가 너무 바보같고 안쓰럽게 느껴진다.
"흐아, 뭐야, 계란이, 상했나아!"
녀석이 내 곁으로 다가오더니, 뭔가를 발견했는지 '허어'하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선 아까 내가 요리할때 사용한 올리브유가 들어있던 페트병을 가리키며 조금 어이가 없다는 듯한 억양으로 말했다.
"너, 여기 있던 기름 썼냐?"
"어? 어. 그거 올리브유 아냐?"
올리브유 냄새던데.
"이건 성유잖아. 나중에 부상 치료하는데 쓰려고 놔둔거였는데, 그걸 요리하는데 썼다니…."
"머어어?"
난 혓바닥을 내민채로 경악했다.
"스벌, 그 성유라는거 빨간약이야? 너무 아프잖아!"
"아니 당연히 흡혈귀한테만 그렇게 작용하지. 축복받은 기름이니까."
"머라그으?"
나는 얼탱이가 나가서 멍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난 무려 성유로 베이컨을 튀기고 계란후라이를 만든 병신같은 흡혈귀라는 이야기군.
"아니, 그런건 라벨을 붙여놓으란 말이야!"
"크큭, 푸흐흐흐, 하하하하하하!!!"
세찬이는 뭐가 그리 웃긴지 배를 부여잡고 웃었다.
나는 왠지 알고나니까 더 아파지는 것 같아서 웃을수가 없었다. 제기랄, 축복받은 기름이라니? 그딴걸 왜 부엌 찬장에 넣어둔건데? 난 무슨 누구한테 받은건줄 알았지.
어쩐지 기름 튄 손이 좀 아프더라니.
앞으로 난 페트병에 담긴 모든 액체를 의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처 욱지 마악!"
"으하, 하하학! 넌, 진짜…! 푸하하핫!"
"으이이익…!"
내가 아침부터 만들어놓은 밥상에 숟가락 올리는 처지에 감히 날 놀리다니.
개빡친다.
캡사이신을 내가 어디다 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