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전야제
아빠는 전화는 받았으나, 전화를 건 사람은 말이 없다
그게 더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마치 공포영화 도입부같은 느낌이 들었달까, 괜히 불안해진다.
아빠는 세찬이에게 연락을 했고,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나도 따랐고.
아빠가 타고온 자동차는 내가 처음보는 종류의 봉고차였다.
골목길에 딱 대져있으면 슬금슬금 피해가게 생긴 그런 봉고차.
게다가 썬탠도 아주 진하게 되어있고 말야.
"실버나 유디라는?"
"일단은 준비시켜두긴 했다. 병원이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하고 판단할 거야."
"알았어."
나는 곧장 보조석에 탑승했고, 아빠도 운전석으로 들어왔다.
"안전벨트 꽉매라. 튕겨져 나갈수도 있어."
"응?"
말 안해도 매려고는 했는데 말이지.
내 안전벨트에서 찰칵, 하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미친듯이 진동하는 차체, 굉음이라고 해도 좋을 배기음이 울렸다.
"으,으아! 뭐야?"
거의 중력가속도를 느낄수 있는 정도의 순간가속력.
나는 손잡이를 붙잡은채 눈을 감아버렸다.
이거 물리적으로 가능한건가?
콰르릉, 콰르릉.
엔진이 마치 자기를 죽여달라고 외치는것도 같다.
"이, 이러다 사고나! 아빠! 누구 하나 칠거같아!"
"괜찮다. 아빠는 절대 사고 안내."
"으, 으으!!"
사고를 어떻게 안내! 속도가 이지랄인데!
트럭운전도 이렇게 하시나?
5분은 지났나, 병원엔 금방 도착했다.
도로에 쭈욱 생겨난 스키드마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고무 탄 냄새를 퍼트린다.
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온건지도 모르겠다.
중간에 슬쩍 눈을 떠봤는데, 존나 말도 안되는 속도가 코너링까지 유지되면서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질주를 유지했으니까.
내가 했던 레이싱게임에서도 그런식으로 운전이 가능했다면 핵이라고 외치며 신고버튼을 눌러댔을거였다.
그런데 여긴 현실이잖아.
누구한테 핵 신고를 보내야해…? 신?
신님, 현실 버그 좃망이에요. 운영좀 똑바로 하십쇼.
생각해보니 제가 이렇게 변한것도 일종의 버그 아닙니까?
"우웨에엑…!"
그나저나 세찬이도 그렇고, 운전이 왜이렇게 다들 난폭한거야…!
나는 근처 아무 나무나 붙잡고 속을 게워내고 있다.
나 원래 멀미같은거 없었는데.
흡혈귀도 멀미를 하는건가.
"으으, 아직도 어질어질거려."
"급하니까 어쩔 수 없었다."
"먼저 도착하셨네요."
저기서 라이더재킷을 입은 한세찬이 헬멧을 벗어 오토바이 핸들에 걸어둔채 걸어왔다.
아빠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단 병원으로 가자며 앞장섰다.
세찬이가 내옆으로 다가와 묻는다.
"넌 자다가 불려왔냐?"
"아, 비슷해. 좀 급하게 온거긴 하지."
슬리퍼에 하늘색 잠옷에 분홍 가디건 하나 걸쳐입은 내 꼴은 녀석이 보면 확실히 그런 느낌이겠지.
세찬이가 헛바람을 내뱉으며 말한다.
"허, 이제 잠옷도 입나봐."
"뭐, 불만이냐? 너 혹시 내가 속옷만 입고 다니는걸 즐긴거야?"
"지랄은."
"악!"
주먹으로 머리를 때리다니!
흡혈귀라서 맨손으로 때린건 별로 안 아플텐데….무슨 기술적으로 때린건지 좀 아프다.
머리를 감싸쥐고 얼굴을 찡그린채로 한동안 걷다보니 곧 병원의 모습이 보인다.
아니, 정확히는 모습이 보였다는게 아니다.
"어…."
머리를 쥐고있던 손이 자연스레 내려간다.
병원은 불타고있었다.
내가 본것은 거기서 퍼져나오는 불빛이었다.
생각보다 충격이 대단했다.
미우나 고우나 상당히 신세진 시설이 아닌가.
이렇게 변하고 나서 일상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자주 드나들던 제2의 집같은 곳이었다.
그곳이 지금 불타고 있었다.
연구자는? 의사는? 와인트리는?
아빠가 중얼거렸다.
"일단은 불부터 꺼야할 것 같네."
그리고 산속에서 불을 지르다니, 제정신인가?
담뱃불로도 산불이 나니까 조심하라고 하는데, 건물 하나를 태워버린다니?
그나저나, 대체 어떻게 불을 끈다는 얘긴지 모르겠다.
근처에 물도 없고, 비가 올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
기묘하게 손을 휘두르는 아빠의 입에서 나온것은 알수없는 발음, 알수없는 억양의 기묘한 울림.
그리고 알 수 없는일이 벌어졌다.
불이 꺼졌다.
꺼졌다기보다는 소멸했다는 표현이 어울리려나? 갑자기 불길이 사라져버렸다.
"뭐야?"
"불을 껐지."
"그건 아는데…."
나는 무슨 마술이라도 본것마냥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이정도면 마법이라는 말이 옳겠다.
세상에 저런 주문이 있으면 세상에 소방관이 왜 있어.
다 저러고 다니지.
아빠는 짧게 설명했다.
"이건 특별한 불이야. 축성받은 기름으로 붙인 성화. 그래서 이렇게 꺼트릴 수 있는거지."
"성화…?"
마음먹은대로 꺼버릴 수 있는 불이라니.
대체 왜 그런걸로 병원을 태우는 거야?
"사제군요. 그가 병원을 왜?"
"그들이 불을 놓는데는 한가지 이유밖에 없잖냐."
"흡혈귀 사냥…."
세찬이가 낮게 중얼거리자, 불탄 병원의 잔해에서 사람이 걸어나왔다.
"아, 안녕하십니까. 목수, 사신."
그렇게 말하며 걸어나온 인물은 사제복 위에 테크웨어를 덧입은 남성이었다.
깔끔하게 정리한 가르마에 꽤나 인상이 좋은 중년이다.
"그리고…. 그쪽 여성분은?"
그는 나를 바라보며 눈가를 가늘게 떴다.
대체 뭐라고 설명해야 하는걸까?
그냥 사냥꾼이라고 설명하면 되겠지, 내겐 사냥꾼의 증표도 있으니까.
아빠가 내가 말하려는걸 제지하고 입을 연다.
"이 아이는…."
아빠가 말을 이으려했지만, 끊어지고 말았다.
뒤이어 따라온 한 사냥꾼의 말 때문이었다.
낯이 익은 얼굴이다.
"사제님. 저분이 그때 저를 도와주셨던 그 수녀님이십니다."
"아, 전투수녀 셨습니까? 이거 오해를 할 뻔 했습니다. 외람되지만 조금 흡혈귀의 기척을 느껴버려서 경계를 했군요."
"……하하."
기감이 남다르다고 할까, 인간들중에 내가 흡혈귀라는걸 알아챈 사람은 없었는데.
적어도 릴리스의 얼굴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내가 흡혈귀라는걸 아무도 알지 못했다.
나는 평온을 가장하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젠장. 오지 말았어야 했나.
"혹시, 몇번대 소속인지 알 수 있을까요?"
"그런건 묻지 말지. 피차 소속도 다르지 않나? 그리고 이 녀석은 내 제자야."
"하하하. 그랬군요. 이거 실례를. 새로운 제자를 들이셨었군요."
아빠가 내게 이어지는 질문을 잘라내고 대화를 가져갔다.
"그리고 난 대체 왜 네가 '내 시설'에 불을 냈는지 알고 싶은데."
"그야, 흡혈귀들 때문이죠. 성화로 보호한겁니다."
"보호를 했다?"
아빠가 의문스런 억양으로 묻자, 사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최근 며칠간 다수의 흡혈귀에 의해 병원시설, 연구시설등의 파괴행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시설도 그런 표적이 된 듯하고 말이죠."
"그래서 굳이 내 병원에 찾아와서 성화를 질렀단 말인가."
"오해말아주세요. 전 그저 저희측 사냥꾼의 외상값 갚으러 왔다가 휘말린거니까 말이에요. 처음엔 저도 성화까지 쓸 생각은 없었습니다."
"휘말렸다?"
확실히, 주변에 쓰러진 나무라던가, 파여나간 흙, 긁힌 흔적같은게 난잡하게 이것 저곳에 흩뿌려져 있었다. 피 같은건 보이지 않았지만.
"그런것 치고는 시체가 하나도 보이질 않는군."
아빠는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전투의 흔적은 보이지만 시체가 없는 것에 의문을 느낀 듯 하다.
"제가 거짓말을 해서 뭘 하겠습니까? 이건 갑자기 흡혈귀들이 도망쳐버려서 그렇습니다. 혹시 사신님이 온다는걸 알아차리고 도망친게 아닐까요?"
하긴, 아빠는 무슨 검은사신같은 괴상한 칭호를 달고있는 사냥꾼이다.
뜬다는 소식만 들려도 도망치는 존재인 것이다.
나는 조금 감명받은 시선으로 아빠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럴리가 있냐."
아닌것같다.
"뭐, 믿고 자시고 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시설은 멀쩡하니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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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된거로군."
병원의 내부는 사제의 말대로 멀쩡했다.
단, 부상자는 좀 있었지만.
"아하하, 미안해. 전화는 걸었는데, 너무 바빠서. 아까 전화 이후 지금까지 계속 수술중이었거든."
"하아, 그런거라면 다행이고요."
세찬이가 팔짱을 낀채로 한숨을 푹 쉬었다.
의사가 병원의 복도의자에 앉은채 벽을 기대 널브러지듯 누웠다.
나는 그런 의사에게 캔커피를 한잔 꺼내줬다.
"아, 고마워. 역시 미소녀가 있어야 힘이 난다니까."
남자놈들만 만지니까 힘이 쭉쭉 빠져, 라며 내가 건네준 캔커피를 가볍게 들어올리고 말하는 의사의 헛소리를 가볍게 무시하고 돌아가려다가 문득 전부터 궁금했던 사실이 떠올랐다.
"근데 전부터 궁금했던건데, 이거는 누가 채워넣는거에요?"
"아 그거? 관리자가 채우는거지 뭐."
"어…. 관리자요? 본적이 없는데?"
"생물은 아니야. 그냥 시스템같은 거라고 할까."
"시스템?"
의사는 캔커피를 따서 한입 마신뒤에 말했다.
"그런건 알지? 귀신들린 집 같은거."
"에?"
"가끔 귀신들린 집에선 알수없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잖아? 그런거야."
"에,에이, 세상에 귀신이 어딨어요~"
농담도 참.
귀신이라는게 세상에 존재할리가 없잖아?
나는 가볍게 웃어넘기려 했으나, 의사의 표정이 전혀 농담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진짜로?"
"릴리야, 흡혈귀도 있고, 마법도 있는 세상인데 귀신이라고 없겠니?"
"……."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내가 여태껏 귀신들린 병원에서 생활하고, 치료받고….
어쩐지 밤에 으스스하더라!
의식하니까 왠지 시선도 느껴지는것 같고, 한기도 느껴진다.
귀신한테 주먹질이 통하나?
"놔."
"ㅇ,야, 귀신은 어떻게 잡냐?"
어느새 나는 세찬이의 옷을 늘어져라 쥐어잡고 있었다.
내가 떨어질 생각을 않고 계속 옷자락을 쥐어잡고 있자, 강제로 떼어내고는 말했다.
"귀신을 뭐하러 잡아."
"너 귀신잡는 해병대라며."
해병대 나와서 잡는건 귀신이 아니라 흡혈귀네.
나는 다시 녀석의 옷자락을 쥐었다.
귀신 나오면 잡아줄 녀석이니까.
"진짜로 잡겠냐? 그런건 저쪽 분야겠지."
세찬이가 턱짓하는곳에는 사제가 있었다.
사제는 아빠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조금 분위기가 심각해보여서 저쪽으로 갈수가 없다.
녀석이 주변을 둘러보더니 내 귀에다 대고 작게 속삭였다.
"그리고 니가 귀신보다 더한 존재야."
"……."
그런가…?
나는 녀석의 말에 옷자락을 놓았다.
"시발, 자켓에 주름 생긴거 봐."
"크흠…."
녀석은 라이더 자켓에 내 악력으로 난 주름이 상당히 맘에 들지 않는 듯 했다.
음, 물리저해를 끼웠는데도 저렇게 자국이 날 정도로 세게 쥐었단 말인가.
그치만 귀신은 무섭잖아.
가끔 혼자 있을때 이상한 소리가 들리면 진짜 불안해진다고.
"좋을때야. 좋을때."
의사가 얼굴에 미소를 띄운채 캔커피를 삼켰다.
"으으…."
이제 진짜로 다신 병원 안올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