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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화 〉전야제 (72/101)



〈 72화 〉전야제

"다녀왔어요."

아파트의 문을 열자마자, 유디라가 외쳤다.


"윽, 이게 무슨 냄새야! 똥밭에서 굴렀니?"
"아, 양념돼지갈비를 먹었네요. 죄송."


음, 그녀에겐 끔찍한 향기가 되었겠군.
유디라는 두 손가락으로 코를 쥐고선 나의 팔을 붙잡았다.

"빨리 씻어. 냄새가 장난 아니야."
"하하…."


난 유디라의 손에 이끌려 욕실로 던져지듯 들어가버렸다.
이거이거. 욕실에 갇혀버렸네.


그렇게 심한가? 싶어서 머리핀을 떼어본다.
좋은 생각은 아니었다.

"우욱!"


너, 넘어올뻔 했어.
으으음. 확실히 안좋네.
일단 머리핀은 냅둔 상태로 몸을 씻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후우…."


올라올뻔 한 위장의 내용물을 억누르며 심호흡을 한다.
얼마짜리 고긴데, 아깝게시리.
그러고보니 언젠가 같은 도구를 만들어서 유디라에게도 권해볼까.
진짜 맛있는데….

"꼼꼼히 씻어!"
"네, 네."

유디라의 당부를 받아넘기고, 옷을 벗었다.
옷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보니, 역시 고깃집같은델 가서 그런가, 냄새가 많이 배어있기는 했다.
이건 바로 빨아야겠는데.

욕조에 물을 받으면서 흐르는 물로 몸을 씻어낸다.
그러고보면, 이게  4주만에 물에 몸을 담그는건가?
물이 받아진 욕조에 몸을 담그고 한숨을 내쉬던 때였다.


벌컥.

"뭐, 뭐야?"

아, 제길,  잠그는걸 잊었다.

난 본능적으로 몸을 가리고 들어온 변태가 누군지 즉시 확인했다.
그건 유디라였다.
어쩐지 마스크를 낀채고, 그녀 역시 완전히 벌거벗은 상태였다는게 특징점이랄까.


"뭐에요! 나가!"
"네가 냄새를 못 맡는것 같아서 씻는걸 도와주러 왔는데."
"안 도와줘도 돼요!"

왜 다들 내가 목욕하는걸 가만히 두질 못하지?
의사, 지혜, 유디라 다 그랬어.
뭐지? 내 몸은 공공재인가?

"왜 다들 내 목욕을  시켜줘서 안달이죠?"
"글쎄, 왠지 여동생 같은 느낌이 들어서?"
"여,여동생이라니요, 오히려 따지고보면 저는 흡혈귀의 어머니인데."
"그렇게치면  효도하는게 되겠지?"


그런가…?
아니 이제 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


"말이 그렇단 얘기죠, 제가 무슨 어머니에요!"

나는 그렇게 외친후 욕조에 몸을 코까지 푹 담갔다.
그러자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뜨며 내가 욕조에 몸을 담근 모습을 보더니 한숨을 쉰다.
그 태도에 내가  잘못한건가 싶어진다.

"머리카락을 그대로 물에 담그면 어떡하니? 비위생적이잖아. 머릿결에도 좋지 않고."
"어…. 그래요? 비위생적인가요? 머릿결은 어차피 재생하니까 상관 없다고 생각했는데…."
"머릿결재생에도 피를 쓰잖아. 그런데다 피를 낭비하는거야? 그럴거면  피 나한테 줘. 대신 내가 매일 머릿결 관리 해줄게."
"싫어요!"


나한테 손해밖에 없잖아!
매일 목욕시중을 받는것도, 피를 빨리는것도, 둘다 심적으로 신적으로 손해였다.


"그래? 그럼 어쩔  없지."
"… 순순히 물러나시네요."
"그야, 강제로 하는건 세련되지 못하잖아. 특히 이런건 상호 합의하에 하는거고."
"음…. 그렇…죠?"


유디라 입에서 저런말이 나올 줄이야....


뭐지, 진짜로 생각보다 상식이 있는 여자였다.
내 생리혈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고는 진짜 미친년인줄 알았는데, 그냥 정말로 허락받기 쉬울것 같아서 물어봤던건가?


"그렇게 상식있으신 분이 백화점에선 왜 그랬어요."
"아, 그거 말이야? 그건 너정도 되니까 그런거라도 물어본거지. 당연히 아무한테나 그런 말 하고 다니진 않아. 실제로 어차피 너한텐 버리는 피이기도 하고."
"……."


합리적인이유이기는 하다.
실제로 어차피 버려지는 것이긴 하니까….
뭐지, 약간 음식물 남은걸 잔반처리한다는 감성인데.


"됐으니 이리 와, 머리부터 다시 감자."
"……."


솔직히 말해서, 그녀가 미덥지는 못하다.
하지만 내가 잘못했단 느낌이 드는것도 사실이라, 조금 고민이 된다.
남의 집에서 욕조쓰는데 비위생적인 일을 한거라고 말을 들으니까 죄책감이 든달까.
나는 마지못해 슬쩍, 몸을 일으켰다.
머리가 등에 쩌억 달라붙으며 딸려 올라온다.
이거 비위생적인 거였구나.

"그런데 이 머리핀은  안뺐어?"
"앗, 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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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 으…."
"정말 미안, 그거까지 아티팩트일줄은 몰랐어."
"됐어요…."

유디라가 머리핀을 뗀 즉시, 몰려오는 구토감에 입을 손으로 막고는 유디라의 손에서 머리핀을 빼앗았다.
난 머리핀을 양손으로 쥐고는 이마에 붙이고 심호흡을 하고서 목욕의자에 앉아있고, 유디라는 미안하다고 하면서 내 머리를 부드럽게 감겨주고 있었다.
근데 무슨 머리를 3번째 감고 있다.


무슨 샴푸, 트리트먼트, 린스. 하나씩  써보는 중이다.
이거 진짜로 다 쓰는거구나.
 근데 한번 샴푸로 감는것도 귀찮아 죽겠는데, 이걸 매일 한다고 생각하면…..


"트리트먼트는 그렇게 많이 할 필요가 없고, 10일에 한번쯤 해주면 머릿결 재생에 소모되는 피를 아낄 수 있어."
"네에."
"그리고 린스는 코팅을 해줘. 머릿결 손상을 막아주니까, 이것도  소모를 아낄 수 있어."
"그렇군요."

그녀는 흡혈박탈로 인해서 피 공급량이 물리적으로 제한되니, 최대한 소모를 줄이는 방향으로 생활 습관이 바뀌어버린  하다.
흡혈귀가 뭐 이렇게 꾸미는거냐 싶었는데, 이면에 그런 사정이 있을줄이야.


머리감기가 끝나고 머리핀을 끼워놓는다.
뱃속도 진정되어서 이제 괜찮아졌다.
샤워 타올을 문질러 거품을 내고 몸을 씻고 있으니, 유디라도 들어온김에 씻는 모양이다.

난 그녀는 씻으라고 놔두고, 올려진 머리로 욕조에 들어갔다.
뭔가 이상한 느낌, 머리카락이 욕조에 들어가지 않으니, 몸을 움직일때마다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듯한 감각이 안들어서 편하기는 하다.
머릿결 같은건 잘모르겠고.

그런데 마스크에 물이 젖으니까 그냥 셀프 물고문인것 같은데, 절대 벗지는 않네.


"근데  마스크는 안벗나요?"
"이거? 향수 묻혀온거야. 네 냄새가 좀 심해서."
"……."

그런가, 으음.


목욕을 끝낸 뒤에도, 유디라는 탈취제를 가져와서 내게 연신 뿌려댔다.
그렇게 심한가.
앞으론 고깃집 갔다가 바로 들어오면 안될것 같다.
머리핀을 빼고 냄새를 맡아보니까 이제 별로 냄새는 안난다고 생각하는데.

페브리즈로 수분보충을 하는 느낌이었다.
유디라는 그 후에도 화장실에까지 페브리즈를 뿌려대서 그냥 내가 화장실 청소를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 고무장갑이랑 솔이랑 락스를 사왔다.
바닥을 한참 문지르고 있었는데, 문이 빼꼼 열리고 대형견의 주둥이가 문틈으로 들어와서 킁킁댄다.
락스 냄새는 처음 맡는거니까 신기한걸까.


"이라야, 들어오지마. 락스 칠해놨어."
"워우엉,워옹-"

이라가 요상한 소리를 냈다.
무슨 말을 하고싶은지는 모르겠는데 귀엽다.

"푸하하하!  그상태로 말 하려고 하는거야?"
"우어어웅,워어웅."
"기다려봐. 이따가 쓰다듬어줄테니까 나가서 기다리고 있어."


그러자 마지못한 이라가 끼잉,끼잉거리며 몇바퀴 돌다가 화장실 밖으로 나간다.
나는 다시 화장실 타일을 쓱싹대며 청소했다.
음, 흰색 머리카락이 이렇게 많이 있다니.
실버것도 있겠지만, 내것도 있다.
이 길고 흰 머리카락이 내거라니. 이젠 조금 익숙해지긴 했어도, 신기하고 가끔 낯설다.

내 나이 23에 벌써 머리가 하얗게 되어버릴줄은 상상도 못했으니까, 기묘한 느낌.
그런데 이런 머리색이 된데는 뭔가 이유라도 있는걸까?
혹시 은발 적안이 릴리스의 특징인가?

"아 맞다, 그림 빼놨어야 했는데."

난 화장실청소를 잠시 제쳐두고, 세탁실로 뛰어갔다.
세탁실엔 실버가 그림이 그려진 종이를 가만히 보면서 서있었다.
표정은, 솔직히 좋아 보이지는 않다.

"실버?"
"아, 릴리양. 이 그림은 어디서 난거죠?"
"한야, 그러니까 하루살이네 집에 있었어요. 한야는 기억하지 못하더라구요."
"흠, 그렇군요."
"누군지 아시겠어요?"
"아, 알죠. 수없이 많이 죽인 얼굴이니 말입니다.."
"…예?"

숨을 삼켰다.
할 말을 고른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그게 무슨 말이죠?"
"이건 클론, 보스의 아내분을 복제한 것일 겁니다."
"복…제요?"

무슨 양도 아니고, 사람을 복제해?
무슨 목적으로?

"오라클의 시설엔 그런 클론이 아주 많았었습니다. 아무래도 그녀에게 릴리스가 깃들었으니, 뭔가 특별한게 있지 않겠냐는 생각으로 실험을 한 것이었겠지요. 결과적으론 뭔가를 알아내기전에 릴리스가 오라클에게 자신을 위탁하면서 그 영문모를 실험은 더이상 하지 않게 되었지만, 그러는동안 정말 수없이 많은 클론을 죽였죠. 역시 릴리스 베이스의 클론이라서 그런지 꽤나 강했고요. 그래서 오라클에겐  오랫동안 시달려왔습니다."

실버는 그림을 천천히 접는다.

"그후 보스께서는 아내의 사진을 전부 태워버렸습니다. 그분 역시 아내의 모습을 한 클론을 많이도 죽였으니…… 괴로우셨던게 아닐까요."


그리고 그림을 내게 돌려주며 말을 이었다.


"아마 이 그림을 보시면 그렇게 좋아하실것 같진 않군요."
"아…. 그런, 가요."

그런 사정이 있었을 줄이야, 아빠에게도 상처라는게 있었구나.
대체 이 모습이 되어버린 아들에게 무슨 생각이 드셨을까.
혹시 내게 이름을 물어보고 바로 믿어주신데는, 그런 상처가 큰 역할을 했던것이 아닐까.
모습이 변했더래도 나를 믿고싶어서.
그래서 아직도 나를 '딸'이 아닌, '아들'이라고 불러주시는걸까.

"그래도 한번쯤은 보여주시는게 좋겠군요. 이젠 그분께서 아내분을 기억할만한 물건이 거의 없으니까 말이죠."
"네, 그래야죠."


나는 그림을 받아 품에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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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야, 아까는 뭐라고 그런거야?"
"누나 청소 도와드린다고 하려고 했는데… 말이 잘 안 나왔어요…."
"얘가,  그런 기특한 생각을 다 했어."


그야 개의 성대와 구강구조로 사람말을 할 수 있을리가 없잖아.
그때  늑대인간 폼이라면 몰라도.


"그러고보니  늑대인간으로 한번 된적 있지 않았어? 그때는  잘 하던데 말이야."
"예? 제, 제가요?"
"응, 너 교회에 있을때 그랬지않아?"
"모, 모르겠는데요. 기억이 안나서…."
"그래?"

뭐, 기억이 안난다면 어쩔  없지, 마약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었을 테니까.
그럼 무의식적으로 해낸건가?


그나저나, 세찬이가 이건 보고 배워야돼.
걔는 맨날 치우는사람 따로있고, 어지르는사람 따로 있는것처럼 행동한단 말이지.
그러니까 평소에 내가 장난을 칠수밖에 없잖아.

난 지금 베란다의 썬베드에 앉아 무릎 위에 올려둔 이라의 머리를 빗는 중이다.
이제 이라의 머리카락이 거의 단발 수준으로 길러져서, 만지는 맛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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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길렀네?"
"네, 누나가 자르지 말래서 길렀어요."
"잘했어, 기특하네."

내가 시킨다고 지켜주는게 너무 귀엽지않아?
나한테도 이런 동생 있으면 좋겠다.
뭐, 여동생은 있었던 모양이지만.....
걔는 모르겠다. 별로 귀엽지는 않은거 같아.
내 얼굴이라 그런가....?
아니 잠깐, 이건 내 얼굴이 아니잖아.
정신차리자.


아무튼, 남자아이여도 머리칼은 참 부드러운걸.


근데 얘도 린스 하나?
정수리에 대고 냄새를 맡아보았지만, 린스 향은 안나.


"누, 누나?"
"아, 미안. 너도 린스 한건지 궁금해서."
"저는 물로만 씻는데요."

물로만 씻는데 이런 냄새가 난다고…?
말도 안돼.
뭐, 검색해보니까 개들은 목욕을 자주 시키면 안된다는 얘긴 들었지만….  늑대인간이잖아.


그러니까, 늑대여도 인간이란 얘기다.
근데 늑대인간이라 그런가? 솔직히 냄새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뭔가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이녀석 이거 혹시 페로몬인가."
"네?"
"으응, 암것도 아냐."

무서운 아이로다.
미래에 어떻게 자랄지 정말 장래가 기대되는구나.
그렇게 달빛을 바라보며 멍하니 이라를 쓰다듬고 있으니까 유디라가 베란다로 나왔다.


"이라야, 오늘도 누나랑 좋은거 할까?"
"예?"


좋은거?
대체  하길래?

"뭐기는, 당연히 월광욕이지."
"아. 그런거였군요, 난 또."

당신이 소아성애자인줄 알았잖아.
그런데 이라는 조금 우물쭈물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지?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대답을 하면 될텐데.


"……."
"이라야?"
"……."


얼굴이 점점 빨개지는것이, 열이 있는건가 싶어서 이마에 손을 대본다.

"너 열 나는거 같은데, 찬바람 쐬서 그런가? 얼른 들어가자."
"누, 누나 저…. 잠깐만요."
"응?"
"지금은 못 일어나겠어요……."

왜?
라는 질문을 하려다가, 순간적으로 녀석의 포즈를 깨달았다.
아차. 그러고보니 유디라는 지금 속옷차림이지.
너무 익숙해서 까먹었다.
이녀석도 결국 남자라는 것이겠지.
나는 어땠더라.

아빠 컴퓨터로 첫 야동을 보았을때나, 심야의 방송에서 야한 영화를 보았을때, 버스터미널 근처 모텔 주변에 널부러진 마사지권유 찌라시들을 보았을때.
나는 어땠던가.
지금 이라는 그런 상태일 것이다.

"유디라, 설마 4주동안?"
"어? 그치만 필요한 일이었잖아?  그동안 자고 있었으니까, 달의 기운 받으려면 월광욕이 최고지."
"그동안 당신도 옆에서 같이 했다는거에요?"
"그랬지?"
"당장 옷 입고 와요!"
"안돼,  이게 필수란 말이야."

유디라가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자, 난 이라를 공주님 안기로 안아들고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이불을 꺼낸뒤, 녀석을 덮어주고 잘 자라한번 말해준 뒤에 관뚜껑을 닫았다.
성교육의 필요성이 느껴지는걸.
주변에 이렇게 음란한 흡혈귀가 있잖아.
4주동안 대체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니, 좋았을까?
흠, 생각하기 어려운 문제군.
이라의 관점에 따라 다른 문제니까….


근데 난 왜 이제 유디라의 속옷차림을 봐도 아무런 느낌이 안들지.
그냥 이제 친누나 같아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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