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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화 〉꿈? (69/101)



〈 69화 〉꿈?

"그래서 아까 그 약속인가 뭔가는 무슨 얘긴데?"
"아, 아냐. 그냥 꿈꾼거야."
"꿈이라고?"
"으응…."

나를 의심스럽게 흘겨보는 지혜의 눈길에  그저 시선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미안. 언젠가, 꼭 말해줄게. 진짜로.
슬슬 내가 쫄려서 못살겠다.


그나저나, 4주만에 깨어난 내  상태는 솔직히말해서 그렇게  차이는 없을것 같았다.
뭐, 가만 냅둬도 알아서 재생하는 신체인걸.


그렇게 더웠던 날씨가 이제 가을이라는것마냥 서늘해졌다는게 4주라는 시간이 지났음을 실감시킨다.
그래도 신체검사는 필요한 일이라며, 신체검사를 당했다.
뭐, 혹시모를 몸에 이상이 있을수도 있다고하니까.

확실히 몸에 힘이  안들어가고 그런 상태기는 하다.
아마 4주동안 실제로 움직이지는 않아서 그런거겠지.
조금 움직임이 어색하다고할까.
아무래도 이건 물리저해 때문인것같다.
꿈속에선 물리저해 없이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고, 그래서 머릿속에서 물리저해로 저하된 운동량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여긴 물리법칙의 세계. 내가 무의식적으로 계산하던 신체감각의 괴리를 쉽사리 감을 잡지 못하는  같다.


"신의 이름으로 나에게 가해진 제약을 해제하노니, 나는 어둠속에서도 빛을 바라는자라."

그러자 힘이 돌아서 몸을 움직여보고는 깨달았다.
힘조절이 전혀 안되고 있다는 것을.
목욕하기위해 단추를 풀다가 맨위의 단추 하나를 완전히 으스러트려버렸으니까.

"에휴, 이걸 어떻게 조절하냐…."

힘이 더 강해진것같다.
아니, 대체 왜.
릴리스는 대체 어떻게 생활했던걸까.
뭐, 흡혈귀는 따로 자신의 힘을 자가봉인하는 비법이라도 있는건가 싶다.


나는 뒷통수를 조금 긁다가 도로 물리저해를 걸었다.


뭐 조금 어색한정도야, 이렇게 변하고나서 한번 겪어본 일이기도하고 금방 적응되겠지 싶었다.




나는 목욕을 하고 환자복을 갈아입은뒤에 신체검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의사나 연구자가 아니라, 지혜가 내 신체검사를 돕고 있었다.


"왜 니가 내 검사를 하는거야."
"나 그냥 여기서 일하려고. 훈련 좀 받아보니까 난 사냥꾼 못하겠더라."


그런데 여기서 일하려면 전문적 의학지식이 있어야하는거 아닌가 싶은데 어떻게 잘 받아준 모양이다. 4주만에 채용이라니.
아니면 뭐, 다른 이유가 있나?

"그래, 그렇구나. 여긴 뭐 힘든거 없어?"
"할만한것 같아. 나 여기서 4주나 있었는데, 사람 오는걸 많이 못봤어."
"아무도 안와?"
"몇명 오기는 했는데, 내가 상대하지는 않았지."
"그래?"

그럼 꿀직장이네.

검사도 사실 그렇게 어려울건 없었다.
몸은 제대로 움직이는지, 체중이나 키, 신체에 무슨 이상이 생겼는지, 시력이나 청력엔 별 문제가 없는지, 뭐 그런검사였다.
이런 검사는 내가 4주동안 누워있는동안에  해본 모양이다.

그런데 혈압은뭐, 내가 지금 흡혈귀인데  필요가 있나 싶다. 내몸의 혈관에 흐르는 피는 전부 조종이 가능하니까.
이말은, 고혈압도 저혈압도 얼마든지 의사적으로 조종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의미가 없다는거고.

그리고 왠지 지금은 잔보다 더욱 세세한 혈류 운용도 가능해진것같다.
이게 능력이 강화된다는 느낌인가.


지혜가 수치들을 기록하며 내게 말했다.

"뭐, 다른 이상은 없지?"
"몸에 좀 힘이 없는거 말고는? 괜찮아."
"그럼 뭐, 그렇게 써둘게…. 이제 연구자한테 가봐."

나는 옷 매무새를 다듬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의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안심하는 한편으로 지혜에게 묻는다.


"그런데 의사는 어디갔어?"
"출장이라던데."
"휴우."

오히려 다행이다, 그 변태의사가 이런 검사 했으면 내가 또 무슨 희롱을 당했을지.
이 몸이 내 여동생의 몸이란걸 알았으니 좀 소중히 다뤄졌으면 한다.
그동안 릴리스거라고 존나 막썼는데….
아차, 릴리스는 또 엄마라고 했나?
아씨 개복잡해.
아무튼 이제 몸을 좀 소중히 다뤄야   같다는 생각을 했다는 얘기다.
앞으로 내가 얼마나 소중히 다룰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사실 잘 안될것 같긴 해.


난 복잡한 머리를 꾸욱 꾸욱 누르며 연구자의 시설로 이동했다.

피를 조금 빼고, CT를 찍고.
그런 잡다한것들까지 전부 끝내니 드디어  침대에 누울 수 있었다.
비틀비틀 침대로 다가가 자빠진채로 엎드려있으니 곧 문이 열리고 한세찬이 들어왔다.

"왔구만."
"그래. 근데 뭐하냐."
"음, 올라가기 힘들어서."
"참내."


몸에 이상은 없는것 같은데, 왜 힘들지.
세찬이는 어이가 없다면서도 날 침대로 들어올려서 똑바로 눕혔다.


"고마워."

녀석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몸을 뒤로했다.
접촉을 최소화하는 행위였다.
평소에도 서로 필요하지 않은 신체 접촉은 삼가는 편이었고, 나도 아무생각 없이 넘길테지만, 지금은 어쩐지 그게 좀 어색했다.
대체 얘는 아직도 여자의 몸에 익숙해지지 않은건가? 아니면 릴리스의 몸에 거부감을 느끼는걸까? 아니면 내가 남자인 친구였기 때문에?
아마 셋 다일지도 모른다.
참 복잡한 심경이겠군.

"너 11년전에 우리가 시골에 있었을때 기억해?"
"그때?"


한세찬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아마, 기억하기는 할텐데."
"그때 흡혈귀들이  너네집 들어온것도 기억하고?"
"흡혈귀…. 기억하지, 물론."

녀석은 그때를 회상하듯이 눈을 감았다.
그때의 2층 서재를 떠올리고 있겠지.

"그때  피때문에 이끌린 흡혈귀들을 유인하려고 혼자 방을 나갔었던것 같은데, 맞아?"


그때 생각해보면, 내 피는 흡혈귀들도 인정한 맛집이었다.
아마도 절반은 릴리스의 환생체가 될 몸이었으니 그랬던거 아닐런지.


"맞다. 그러고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불나방같은 짓 하는건 바뀌지 않았군."
"그러네."

나랑 세찬이는 잠깐 킥킥댔다.
정신세계에서 본 그것은 확실히 실제 사건이었나보네, 세찬이도 기억하는걸 보면.
그럼 아마 거기서 날 구해주신 아빠의 모습도 현실이었다는 얘기다.


"근데 넌 기억 안지워진거야?"
"지웠었지. 그동안 흡혈귀랑 치고받다보니 기억이 난거야. 관련된 경험을 자주 하게되면 결국 기억이  수밖에 없어."
"그래?"

몰랐네.


"난 어째서 기억을 못했던걸까."
"계기가 없었겠지. 그동안 그렇게 사냥을 많이 한것도 아니고."
"흠…."

그런가, 나 사냥횟수는 얼마 안되나?
이런 사냥을 대체 몇번씩하는거야, 얘는?

"맞다, 아빠는 언제 오신대? 물어볼게 너무 많은데 "
"연락 했으니 아마 이틀정도 후에 오실거다."
"아빠는 계속 외국에 계시나?"
"그렇겠지."
"150억이 그렇게 큰돈인가? 아니, 큰돈인건 맞는데…. 왜 아직도 은퇴를 안하시지."


솔직히 몇놈 잡아보니까 150억이면 금방 될줄알았다.
아빠도 되게 가볍게 말씀하셨고.
그런데 뭐지? 왜 아직도 안 돌아오시는 것이지?
은퇴할 생각이 없으신가?

"겨우 150억? 아아, 단위는 말을 안해주셨나보네."

한세찬은 알겠다는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거 달러야."
"앗."


달러라고?
음, 대충 1달러를 1000원으로만 계산해도….

15조.
맞나?
순간 계산이 틀렸나 해서 몇번씩 생각해봐도 역시 답은 변하지 않는다.


"할말이 없게 만드네."
"그러니 지금은 바쁘시겠지."
"그렇네."


도대체가.

빚쟁이 아버지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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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나는 내가 꿈속에서 겪었던 일들과, 릴리스에 대한 사실, 그리고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세찬이에게 설명했다.
녀석도 어느정도 악마사냥꾼에게 이야기를 들었기에 사정은 잘 알고 있었으니, 설명하기는 쉬웠다.
아직 우리 엄마에 대한 얘기는 안했지만.
그건 아빠한테 먼저 물어봐야할 것 같았달까.


 환자복을 벗고 적당히 세찬이가 가져온 옷을 대충 걸쳐입었다.
이것도 이라가 골라준건가, 평범한 느낌의 하얀 스웨터, 분홍색 가디건, 청바지가 있었다.
 





이정도면뭐, 양호하네.
초커가 조금 시선을 묘하게 뺏는 기분이긴한데, 이건 뭘 입든 시선을 빼앗는다.

옷 매무새를 가다듬고는 병실문을 열자, 세찬이가 묘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왜?"
"아니, 왠지 태도가 좀 변한것 같아서."
"그래?"

평소 집에 있을땐 아무렇게나 옷을 벗고, 아무렇게나 돌아다니곤 했으니,  갈아입는다고 딱히 세찬이를 밖으로 내보낼 필요성을 느끼진 못했었다.
뭐, 녀석도 날 별로 이성으로 보는게 아니라서 상관 없었고.


하지만 지금은 세찬이를 일부러 내보내놓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야 그럴게, 이 몸이 릴리스가 아니라 내 여동생의 몸이란걸 깨달았더니  시선이 변했달까, 왠지 그런거 있잖아.
내가 여기서 막 거리낌없이 벗고 돌아다니면, 어쩐지 여동생한테 몹쓸 짓 하는 느낌이 든달까….


그냥 어쩐지 그랬다.
걔도 여자인데, 지금은  몸이라고 막 보여주는건 싫겠지.
그녀가 내 행동을 지켜보고 있는것은 아니긴 하지만 말이다.

"그냥 적응하쇼."

녀석의 등을 툭툭 쳐주고는, 정신을 집중해 지혜의 위치를 찾았다.
지혜는, 뭐야. 왜 지하실에 있지?
와인트리는 또  아직도 지하실에 있는거야.
둘이 같이 뭘 하나?

난 궁금증을 안고 어색하게 걸음을 걷다가, 계단에서는 몸이 똑바로 움직여주지 않아서 휘청휘청댔다.
이 개같은 몸땡이, 아. 동생아 너한테 한말은 아니야. 듣고있지?
못 듣겠지만.
내가 그러고있는걸 본 세찬이가 조금 답답했는지 조금 짜증을 섞어서 말했다.

"뭐하냐."
"야, 푸흡, 이거 나 몸이 적응이 안되는데? 존나 너무 오래 잤나보다."


아,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으니까 헛웃음이 나온다.
내가 헛웃음을 흘리며 그렇게 말하자, 세찬이 역시 어이없다는 듯, 나처럼 헛웃음을 뱉으며 말했다.


"허허, 가지가지 하는구나 진짜로. 목발 챙기지그래?"
"그정도는 아니야. 그냥 잠깐 나좀 잡아줘."
"하아. 됐어, 업혀라."
"오, 감사!"
"대신, 저번처럼 귓가에 바람 불면 그대로 바닥에 꽂을거니까 알아서 하시고."
"크흠, 알았어."

살벌한놈.
난 녀석에게 업히고는 등짝을 탁탁 치면서 출발을 외쳤다.


"내가 말이냐."
"달려, 로취!"
"로취는 또 뭐야."


녀석의 등은 업히기엔 상당히 편했다.

그리고 지하실 문앞에 도착하자 나는 녀석을 멈추게한뒤에 내렸다.
 지혜한테 이상한 오해를 받고싶지 않으니까.
맨날 오해받고 푸는것도 귀찮아, 이제.

아니, 제대로 풀기는 하는건지 모르겠지만.

"여어! 송지혜씨. 여기서 뭘 하시나요?"
"너구나, 그런데 그 말투는  뭐야? 자꾸 아저씨같이."
"신경쓰지마, 그래서 지금 뭘하는거야?"
"아, 이거."

지혜는 뭔가 커다란 캡슐같은 것에다가 두손을 댄채 앉아있었다.
캡슐은 무슨 호스같은게 매달려있었고 말이다.

"내 마력식이 가속이라고 했잖아, 그래서 그걸로 사냥꾼 말고 뭐 할 수 있는거 없냐고 하니까 알려주시더라고."
"거기다 손대고 있는걸?"
"이건 능력 쓰고있는거야. 수련도 된다고하고, 할당량으로 쳐주겠대. 뭔지는  모르겠지만서도."
"그래?"


지혜는 이제 가속능력을 어느정도 다룰 수 있는 모양이었다.
뭐, 좋은 일이지. 자기능력을 잘 다룰  있어야 무슨 일이 생겨도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는건 당연한 사실.
그리고 지혜의 가속능력은 상처나 그런 거에도 빠르게 시간을 가속해 회복속도역시 극도로 강화할 수 있었으니, 어쩌면 병원에 정말 잘 어울린다고 말할수도 있겠다.

따라서 지금 지혜가 하는 훈련은 상당히 도움이  것이다.


"그런데 그거 언제까지 해야하는거야?"
"이거? 아무때나 시간 남으면 하라고 하셨거든. 언제까지 하란 말은 없었어."
"그래? 그럼 이제 집에가자. 바래다줄게."
"그래, 뭐. 나도 슬슬 돌아가볼까 생각하고 있었어."

지혜가 캡슐에서 손을 떼고 내게 다가왔다.
지혜의 해맑은 표정을 보니, 캡슐에 뭐가 들었는지는 얘기하지 않는편이 좋을 것 같았다.


와인트리…. 너도 나름대로 도움이 되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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