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신입 사냥꾼
"수녀님, 정말 감사했습니다."
상처를 치료받은 사냥꾼이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난 빈혈과 피로감으로 어질거리느라 괜찮다고 말하며 손을 젓는것밖에 하지 못했다.
젠장, 오해를 풀어야 하는데.
아니, 오해를 풀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다시 볼 사이도 아닐 것 같고.
흡혈귀란걸 알아채는 것보단 근력강화계열 마력식을 쓰는 교회측 사냥꾼이라는 오해가 낫기도 하지.
설명하기도 귀찮아.
그래서 나는 대충 수녀가 되기로 했다.
"입원은 안하나요?"
"네. 입원비까지 낼 돈은 없어서요. 치료를 받았으니 괜찮을겁니다. 할당량채우려면 조금 남기도 했구요."
그런가, 입원비가 원래 비싼가?
난 할당량이라던가, 입원비라던가 신경써본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뭐, 이건 내 케이스가 이상한거겠지?
"그럼 몸 조심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안녕히."
이름모를 사냥꾼씨, 안녕.
이름을 모른다.
원래라면 이상한 일이다.
으레 사람들은 자기를 소개할때 이름을 말하는 법이니까.
그러나 사냥꾼 끼리는 서로 이름을 교환하는 경우가 드물다.
아주 친한 경우나, 믿을 수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근데 세찬이는 걍 유명해서 다 알고 있는 모양이다.
그만큼 고오급 기술을 사용한 인식저해를 이름에 걸어놨으니 괜찮다곤 하지만.
그냥 별명 깔쌈한거 하나 만들지. 이름에 많이 집착하네.
목수가 싫으면뭐, 말뚝박이, 못박이. 이런거 하든가.
흠, 더 구린가.
나는 그 사냥꾼을 배웅하고는 다시 비척비척 병실로 돌아와 누웠다.
병실에 관짝 하나 갖다놓을까.
아니, 그랬다간 너무 병원신세를 질 것 같다.
그리고 병원에 관 갖다놨다가는 정말 관으로 쓰일것 같기도 하고.
나는 진짜 병약한것도 아니면서 왜이렇게 자꾸 병원에 처박히는거지.
"근데 너, 그렇게 안보였는데 꽤나…. 터프하더라."
지혜가 내게 말했다.
"내가 좀 그래."
"풉. 의기양양하기는."
"그런데 이제 좀 괜찮아? 아까까지는 엄청 떨던데."
지혜의 입장에선 처음으로 사냥꾼이 정확히 뭘 하는 족속들인지 알게 된것이나 다름없다.
음, 지혜도 나름 멘탈이 세구나. 금방 이랗게 회복하는걸 보면 말이야.
"푸흡, 네 허당짓이 꽤 웃겨서, 아까까지 있었던 일은 괜찮아졌어."
지혜는 상쾌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그러니까 괴물을 아무렇지 않게 주먹으로 터트린 내가, 봉고차를 뒤에서 밀다가 탈진해서는, 수혈을 받고, 간지럼따위에 굴복해서 엉망진창 당하는 꼴을 보고 괜찮아졌다는 말이었다.
그건 내가 생각해도 좀 현실감이 많이 떨어질 것 같네.
"괜찮아졌음 됐지 뭐…."
난 뒷통수를 긁으며 머쓱하게 웃었다.
"그런데 그 수녀복 언제까지 입을거야?"
"응? 아, 이거. 아마 집에 갈때까진 입을것 같은데. 옷이 없으니까."
"흐음."
"왜 그래?"
지혜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누군가가 보면 지랄할것 같아서."
"그런가."
말할것도없이 이건 민석이 얘기다.
그 덕후는 코스프레도 상당히 좋아하니까 말이야.
알비노 수녀라면 비현실적인게, 딱 애니메이션 캐릭터다.
거기다 흡혈귀 속성이래. 참나.
우효~를 외쳐댈 녀석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근데 너, 애들 앞에서도 이럴게 반말 할거야?"
그런 문제가?
으음, 이제와서 23살이라고 이야기하기는 이상하다.
지혜는 이제 패밀리어가 되어버리며 마력식까지 각성했으니, 이런 사실을 알게 되어버린 것이고.
이제와선 지혜가 계약을 풀어달래도 풀어주기 애매해졌다.
"몰라. 근데 걔들은 나 20살로 알고 있으니까…. 존대하지 않을까?"
"그래?"
"왜?"
"그럼 이제 '지혜야' 말고 뒤에 언니도 붙여야지. 안그래?"
"윽."
그거 맘에 담아두고 있었니.
언니는 내 필살기같은건데.
필살기를 자주쓰면 그건 필살기가 아니게 된다.
그동안 괜스레 부끄럽고 기분이 나빠져서 '언니'라는 호칭을 의식적으로 피해왔었거늘.
"하아, 알겠어. '지혜언니'. 됐어?"
"그래. 만족스럽네."
지혜가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다.
"어, 이제 가는거야?"
"그래야지. 내일은 대학교 가야할거 아니야."
"와아…."
휴학을 안할생각인가봐….
정말 대단한 멘탈이다.
"잘가."
"지혜언니, 해야지."
이 계집애가, 자꾸 귀찮게 하네!
"…. 그냥 빨리가."
"에휴, 알겠어. 아, 맞다. 한야씨좀 빌릴게. 아무래도 불안해서."
"그래. 얘기하고 같이 가."
지혜는 이번엔 봐준다는 표정을 하며 내게 손을 흔들고 병실을 나갔다.
나중에 훈련할때보자.
눈물 쏙 빠지게 해주지.
옆에서 엄청 약올려줘야겠다.
근데 오는 사람이 내가 아는 사람이라니, 대체 누굴까.
나는 뒤로 누워서 배꼽에 양 손을 얹고 천장을 보았다.
정말이지, 존나게 익숙한 천장이다.
이제 천장무늬만 봐도 내 병실을 알 수 있을 지경이다.
그렇게 잠시 멍하니 있었더니, 수혈이 끝났다.
나는 대충 링거의 바늘을 뽑아내고 찔린곳을 살짝 핥았다.
혓바닥으로 한번 쓸기전에 이미 주사구멍정도는 막혀버린다.
근데 이거 주사바늘에 묻은것도 좀 아까운데…. 조금 궁금하기도 하고…. 조금은 괜찮겠지?
아빠도 이정도는 용서해줄거다.
링거바늘에 입을대고 쪽쪽 빨았다.
으, 맛있어. 내 피랑은 다르게 약간 감칠맛이나는 단맛이다.
조금 아쉽긴하네….
너무 양이 적어서 아쉽긴하지만, 어째든 궁금증은 해결됐다.
이런 맛이구나, 사람의 피라는건?
맛도 알았으니 이제 진짜 더는 생각하지 말아야지.
나는 링거걸이를 끌면서 의사가 있는 진료실로 걸어갔다.
"수혈 끝났어요. 감사합니다."
"어, 그래? 갖다줘서 고마워. 이제 좀 괜찮아?"
"덕분에요. 이제 쌩쌩해요."
나는 어깨를 움직이고, 허리를 돌리고, 팔을 돌려봤다.
몇번 뚜둑 하는 소리가 나긴 했지만 금방 부드럽게 움직인다.
완벽해. 이상 무!
"의사, 지금 샤워실 써도 되죠?"
"아, 맘대로 해."
의사가 링거걸이에서 빈 수혈팩을 분리해 하얀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린다.
그런데 의사의 표정이 어딘가 음침해보인다.
"들어오면 화내요."
"그래, 지금은 물리저해도 없으니까 나같은 비전투 인원은 덤빌 생각 말아야지. 그런데 그때 알려준대로 꼼꼼히 씻고있는거 맞아?"
"그때…."
순간 처음으로 의사가 나를 씻겨줄때의 기억을 상기해낸 나는 척추를 따라 약한 전류가 흐르듯이 소름이 돋는것이 느껴졌다.
에윽, 그 감각은 간지럼따위완 비교가 안되는 거였지.
"피, 필요 없어요! 그런 걱정! 제가 애도 아니고!"
"그 몸에 대해서는 애보다 못하지않나?"
"그…건 그런데!"
난 도망치듯 진료실을 뛰쳐나왔다.
"뭐하냐, 그렇게 급하게."
"어, 세찬아."
녀석은 이미 목욕을 한건지,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털고 있었다.
내 자취방보다 뜨거운물도 잘 나오고, 당장 비맞고 땀흘렸으니 역시 병원 샤워실을 쓰는게 맞지.
그런데 저렇게 탈탈탈 하면 다 마르는거, 좀 부럽다.
난 머리 말리려면 왠종일 붙들고 있어야 하는데.
"수혈 끝났으니까 목욕하러가려고."
"그래. 맞다, 그거 목욕끝나면 연구자한테 가봐. 찾더라."
"알겠어. 땡큐."
나는 경쾌한 발걸음으로 샤워실로 향했다.
근데 수녀복은 어떻게 벗지. 흠, 대충 머리부터 빼면 되겠지.
난 머리부터 하나씩 풀어내듯이 벗었다.
생각보다 벗는건 어렵지 않았다.
냄새는…. 조금 나긴 하네. 그야 30분동안 차 밀다가 탈진까지 했는데, 땀냄새가 안나면 이상하지.
오랜만에 섬세한 탈의를 마친 나는 곧장 샤워를 시작했다.
"하아…."
따뜻한 물을 맞으니까 마냥 기분이 좋아진다.
욕조에 몸을 담그는것 만큼은 아니지만, 꿉꿉하고 약간 서늘한 날씨에 노출되었다가 따뜻한 물을 몸에 흘리면 기분이 좋아지는건 어떤 생물이나 다 그럴것이다.
나는 언제나 목욕을 하면서 하루 일과를 회상하는걸 좋아했다.
배운걸 떠올려보기도하고, 힘들었던 일을 생각하며 물처럼 흘려보내기도 하고, 즐거웠던 일을 생각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느쪽이냐면, 힘들었던 일을 흘려보내는 중이다.
나는 물을 맞으면서 벽에다 머리를 박고 중얼거린다.
"하아, 시발. 내가 왜 그랬지."
흘려보내는건 주로 술마시고 개지랄한 기억이다.
딴건몰라도, 대체 왜 홀라당 옷을 벗고는 복도를 질주했을까.
아무리 캐미솔과 드로워즈를 안에 입고 있었다고는 해도.
순간 우리집인줄 착각했던게 분명하다.
왜냐면, 세찬이랑은 보통 술을 집에서 마셨으니까.
취한상태인데 세찬이 면상이 보인다. = 집이다.
내 머릿속엔 약간 그런 공식이 있었나보다.
젠장, 원래는 그냥 취하면 잤다고… 술주정이라니….
"에효…."
이불의 내구도 손상사유가 이렇게 또 적립되었다.
아니, 이제 이불보단 관뚜껑을 걱정해야할 따름인가.
목욕이 끝나고나서, 나는 벗어둔 수녀복을 집어들었다.
나름 6만원짜리다. 아껴써야겠지.
그런데 이건 어떻게 입는거야?
벗을땐 대충 벗었는데 입는건 쉽지않네.
으, 속옷이 좀 찝찝하긴하다. 얼른 집에가서 또 목욕해야지.
"오랜만이구나."
이 기계음은….
"악마사냥꾼? 네, 오랜만이네요."
"그래, 너도 잘 지냈느냐."
눈을 살짝 가리는 붉은 단발머리, 심연을 보는듯한 검은 눈. 그녀의 앞에서면 언제나 꿰뚫리는 느낌이 든다.
검은 레깅스, 검은 티셔츠위에 붉은 후드집업을 대충 걸쳐입은 그녀가 예의 그 인공후두기를 목에 댄채로 내게 인사를 건넸다.
"요즘은 잘 지내고 있어요. 별 위험한 일도 없구요."
"다시 말하지만, 잘해주었다. 덕분에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구나."
"하하하…. 실마리요?"
-딱!
내가 조금 찝찝한 옷을 어색하게 만지작거리고 있자, 악마사냥꾼이 손가락을 튕긴다.
"엇."
갑자기 바람같은게 불더니 옷이 전부 마르고, 냄새도 사라진다.
이건 대체 무슨 마법이지?
"감사합니다."
"얼른 입거라. ■■■에게 가야하니."
"어…. 누구요?"
"그러니까…. '연구자' 말이다."
으음, 저 기묘한 발음. 정말 오랜만이다.
수녀복을 걸쳐입은 나를 본 그녀가 이상하단 표정으로 묻는다.
"신에게 몸을 봉헌한건가?"
"아뇨, 그냥 옷만 빌려입었어요."
"아무튼 좋지 않은 일이구나. 신성력이 흡혈귀에게 좋을리 없지."
"엥."
6만원짜리 수녀복에 신성력이 깃들어 있었다는 말인가?
어쩐지 조금 피곤해지는게 빠르긴 했다만.
그냥 차가 오지게 무거운줄 알았지뭐야.
6만원어치 신성력이 너무 강해.
그녀는 주머니에서 자그만 접이식 나이프를 꺼냈다.
버튼을 누르면 챡, 하는 소리와 함께 펼쳐지는 그런 나이프.
저걸로 뭘 하려나 싶어 조금 긴장했지만, 그녀의 나이프는 내 몸에 닿지도 않고 허공에 몇번 긋더니, 도로 접혀서 주머니로 들어갔다.
"뭐하신거에요?"
"아, 신성력을 제거했다."
"그래요?"
별 차이는 없어보이는데….
하고 생각했더니, 수녀복이 갑자기 잘려나갔다.
뭐야? 이거 6만원짜린데! 또 6만원을 태워?
"아앗! 내 6만원! 대체 뭘 한거에요?"
"진정하거라."
태연한 악마사냥꾼의 말에 이걸 보고 어떻게 진정하냐고 말하기위해 내 옷을 내려다본다.
"뭐에요, 이거!"
"으....."
치마단도 짧아지고 옆트임, 가슴트임이 생겨서 이래서야 수녀복이 아니라 그냥 드레스다. 코스프레나 다름이 없다.
"이제 갑갑하지는 않겠지."
"그렇긴….한데요."
기묘한 갑갑함이 사라지기는 했다.
그저 내가 부끄러워졌을 뿐이다.
수녀복은 노출이 아예 없어서 괜찮았는데, 이건 좀….
"마무리도 깔끔히 했으니 괜찮을거다. 그럼 이제 따라오너라."
"으윽…."
내주변 사람들은 다들 제멋대로야.
나는 시선을 내려 잘려진 단면을 만져보았는데, 그냥 잘라내고 끝낸게 아니라 정말 봉재선 처리까지 확실하게 되어있다.
나는 그게 너무 신기해서 계속 만지작거리고 만다.
이거 도대체 어떻게 한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