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1화 〉신입 사냥꾼 (61/101)



〈 61화 〉신입 사냥꾼

지하철을 타면서 우리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확실히 해명은 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럼에도 분위기가 마치 대체 둘이 무슨 사이야?하는 시선이 있었기에, 세찬이랑 평범하게 잡담이라도 나눌만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지하철의자에 앉자마자 자는척을했다.
눈뜬 상태로는 그런 어색한 침묵을 버텨낼 재간이 없었으니까.


누가 침묵은 금이라던데, 오늘 부자 된것같다.


걸음을 멈추자, 지혜가 떨떠름하게 묻는다.

"여기가…?"
"그래."

한샘교회.
언제봐도 참 작은 교회다.
밖에서 봤을때는.
어떤 원리인지 모르겠는데, 지하로 내려가면 상상도  수 없을 정도로 넓은 공간이 있었지만.
밖보다 안이 더 넓어! 하고 감탄이라도 해줘야할까 싶을 정도다.


언제봐도 놀라운 결계술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집도  기술을 쓰면 실버씨의 아파트같은 공간으로 탈바꿈 시킬수 있나?
그렇다면 탐이나는군.
원리는 그 저택에 쓰이던 결계랑 비슷한건가?
지혜가 그 허름한 교회를 가리키며 물었다.

"여기가 그 교회라고?"
"맞다니까."


지혜가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야 그렇긴하다, 겉만봐서는 믿을  있을리 없지.
세찬이가 아무렇지않게 들어가는걸 보고 나도 들어가려 했으나,

"아, 씨.  이러네."


보이지 않는 벽에 막혔다.
제기랄, 역시 교회라고할까. 흡혈귀 방어력 너무 높아.
저번에 한번 허락 받았던거 아니었나?

"…. 넌 잠시 기다리고 있어. 하루살이, 네가 호위해."
"알겠어, 오빠!"
"…그, 오빠라는 것좀…. 아니다."
"흐흐, 이제부턴 오빠 아니야?"

한세찬은 고개를 흔들며 알아서 부르라고 하고는 계단으로 사라졌다.
지혜도 나도, 멀뚱히 서있기 뭐해서 교회 앞에 그냥 앉았다.
오늘은 왠지 날씨가 별로인게 가져온 양산이 곧 우산이  것 같다.


"지혜야. 우산 챙겼어?"
"어, 언제나 핸드백에 넣고 다녀."


오, 꽤나 준비성이 철저하다.
어제 집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대체 무슨 준비성이지.

"그럼 한야는?"
"난 비 맞는거 좋아해."

그래, 비 좋아하기는 하더라.
저번에 병원에서 아이처럼 첨벙거리는걸 보면 그럴 법도 하다 느꼈다.
뭐, 하루살이는 하루살이대로 감기같은거 걸릴 걱정도 없을테니….

"흐음…."

젠장, 또 침묵이다.
이렇게 또 금을 쌓는건가.
자꾸 이러다보면 나는 가오나시가 될 지도 모른다.
이 거지같은 침묵을 또 느끼라고?
한동안 가슴속 금고에 침묵으로 생겨난 금을 저금하고 있을 때였다.

"맞다, 릴리."
"으응?"

아, 드디어 침묵이 끝난건가! 나는 한껏 고양된 억양으로 대답했다.
더이상  가슴속 금고에 금은 쌓이지 않겠군.


"너 휴대폰 번호가 뭐야?"
"나? 휴대폰?"

나는 조금 당황했다.
내가 쓰는 휴대폰은 김석주의 휴대폰이니까. 음, 이런걸 생각 못했다니.
나는 생각을 포기하고 그냥 내 휴대폰을 들고 흔들며 말했다.


"이쪽으로 전화하면 돼."
"…진심이야?"
"으응…."


나중에 다 설명할거니까. 일단은 이정도로 넘기자.
나는 급하게 말을 돌렸다.
말돌리는데는 날씨얘기나, 계절얘기등이 매우 좋지.


"이제 여름도 슬슬 가는구나."
"... 말돌리는거야?"

역시 눈치가 빠르네.
하지만 말을 돌리기 시작한 나에게 무슨 대답을 들을 수 없겠다고 느낀건지, 지혜는 한숨을 쉬고는 턱을 괴었다.


"그런데, 사냥꾼이란거. 내가 할 수 있을까."

지혜가 사냥꾼을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사실,  못할 확률이 더 높겠지.
하지만 아마 괜찮을거다.
내가 있고, 한세찬도 있다. 여차하면 아빠도 도움을 주겠지.

"몰라. 하지만 괜찮을거야."
"참, 뭘 믿고 그런소릴 하는거래."
"나."


나는 내 가슴 중앙을 툭툭, 하고 주먹으로 쳤다.
가슴이 많이 크지 않아서 좋은점이었다.
난 이 가슴께를 쳐서 울리는 감각을 좋아했으니까.


"흐음, 별로 믿음이 가진 않네."


지혜가 하는 말에는 어느정도는 나도 동의한다.
 모습은 그다지 믿음을 줄  있는 외형은 아니긴 하니까.
게다가 나는 그저 초인적인 힘과 이상한 능력같은걸 갖게된 평범한 사람이라고 할 수있기도 하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딱히 믿을만한 구석이 없구나.
음.
'어느정도 동의'에서 '열렬한 동의'로 스탠스를 바꿔야겠다.


"후우, 그런데  이상하다. 너를 보면 뭔가 익숙하다고 할까, 분명히 예전에 널 본적은 없는데, 본것같은 느낌이야."
"그래?"


나는 살짝 긴장을 했다.
설마, 눈치챈걸까?
차라리 잘됐어. 내 입으로 설명하기는 참 힘들었는데 말이야.

"그래. 묘하게 편해진 네 태도도 그렇고."

하긴, 말을 놓은 후부터는 거의 예전처럼 대하고 있으니까.
묘한 친근감이 지혜에게 기시감을 줬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뭐, 계속 이런 스탠스로 가면 되려나?

그때 드디어 한세찬이 계단을 다시 올라왔다.
녀석에게서 들려온 이야기는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녀석이 가지고온 물건도.


"….이걸 또 끼라고?"
"흡혈귀가 결계 넘어오려면 어쩔 수 없댄다."

지랄났네….


"야, 여기 진짜 이상한데 아니지?"
"…….."


지혜가 불안한 목소리로 내게 묻는다.
시발,  헬렌켈러가 될 시간이군.
나는 세찬이에게서 상자를 받아들였다.


---------------

도착했는지, 누군가  수갑을 풀어주었다.
눈가리개를 벗어보니, 풀어준건 지혜였던 모양이다.
난 가볍게 고맙다고 한마디 한뒤에, 세찬이에게 물었다.

"이거 매번 해야되는거야?"
"그런것 같다."


눈가리개, 귀마개, 재갈, 수갑을 전부 해제하여 상자에 다시 담는다.
이거 제대로 씻기는 하는거겠지?
 비위생적이라고 내가 병같은거에 걸리진 않겠지만, 재갈같은건 남이 썼으면 침같은거 묻었을텐데.
뭐, 알아서 잘 닦겠지 싶다….
그런데 이게 다 결계 우회를 위한 도구들이라니, 대체 왜 이런 모양이냐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이게  뭐하는 짓거린지.
앞으로 급한게 아니면 다시는 교회 안올거다.
그냥 교회도 원래 안갔지만.


지하의 작은 문을 열고 들어선 지혜의 입에서 감탄사가 나왔다.
나도 처음 봤을땐 상당히 놀랐었지.
근데 다들 볼때마다 반응이 비슷해서 재밌다.
나도 그랬고, 이라도 그랬고, 지혜도 그렇네.


펼쳐진 광경은 한국에 있을법한 건물이 아니었으니까.
심지어 지하에 있을 풍경도 아니고.
지하를 들어왔는데 하늘에 태양이 떠있고, 엄청난 크기의 뾰족뾰족한 고딕스타일의 대성당이 푸른 정원에 우뚝 서있는 모습은 보기에도 웅장했고, 훌륭해 보이니까.


해외여행이 필요 없을정도다.


"릴리야, 나 한국에 있는거 맞지?"


그러게, 한국이 맞긴한가?

"사실 나도 잘 몰라. 한국이겠지?"
"참 아는게 없네, 너도."
"윽."

그렇다. 사실 몇달이 지났는데도 내가 아는게 별로 없었다.
집에서 뒹굴, 병원에서 뒹굴, 어째든 수련, 이런것만 하다보니까.
내주변 사람들도 따로 물어보기 전에는 설명을 해주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고, 요즘엔 그다지 궁금증을 품기보다는 그런갑다 하고 넘기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거 진짜 태양이야?"
"그런것 같던데."

지혜의 질문에 확실히 답해주기 위해 살짝 지붕의 그늘에서 손을 뻗어 햇빛에 내밀었다.
손등에 빛이 닿으니 살짝 붉어지며 따가움이 느껴져서 바로 뺐다.
역시 이건 진짜 태양인건가.

"적어도 효과정도는 태양이 맞네."
"그렇구나…?"

지혜는 오묘한 표정으로 나를 흘겨보았다.
또 내가  잘못했나, 저 표정의 의미는 대체 뭐란 말이냐.

"너 정말로 흡혈귀가 맞는거야?"
"윽."

나는 시선을 정원으로 돌렸다.
아, 외부 정원은 그냥 평범한 꽃인듯 하다. 다행히도.
실내정원은 마약밭이었지만 말이다.

복도를 좀 걷고 있으니, 익숙한 모습의 여사제가 우리를 반겼다.


"오셨군요. 이쪽이 새로운 사냥꾼이신가요?"
"아직 사냥꾼은 아닙니다. 일단은 이름부터 감추려고 왔어요."
"그렇군요. 세례식은 이쪽입니다."


와, 세례식.
진짜 교회같은 이벤트네.
나는 지혜와 세찬이를 따라가려다가 여사제가 저지해서 멈췄다.

"죄송합니다만, 귀하는 조금 기다려 주시겠어요?"
"네?"
"아무리 귀하라고해도, 흡혈귀가 봐서는 안되는 거니까요. 신성력에 영향을 줄수도, 받을수도 있구요."
"아, 알겠습니다. 그런거라면…."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잠시 여기 앉아계시면 마실것을 내 드리겠습니다."
"네."

나는 그녀가 안내해준 탁자에 얌전히 앉았다.
앉아서 창밖을 보니까 나비가 날아다니는게 보인다.
노랑나비인가? 이런곳에도 나비가 있구나.
나가서 잡아보고싶다.
지금이라면 잠자리채 없이도 잡을만 할것 같은데.


그리고 벌같은것도 좀 보인다.
세찬이는 저기 던져주면 기겁을 하겠네.
걔는 벌레같은거 좀 싫어하니까.


풀에 매달린 달팽이나 애벌레같은것들도 보인다.
이제는 조그만 것들인데도 잘 보이네.
어릴땐 그렇게 산속을 뒤져도 안보이던 것들인데 말이다.
그런걸 보고있으니 갑자기 재밌어졌다.


그렇게 정원을 바라보고 있으니, 한야가 묻는다.

"뭘 그렇게 봐?"
"곤충들."
"곤충? 의외네. 꽃을 보는줄 알았는데."

꽃은 원래 별로 관심이 없었다.
내가 남자여서 그런가, 움직이는 물체쪽이  신경이 갔으니까.
옛날에 뇌과학자들이 그런말을 하는걸 본적이 있었다.
남성과 여성의 뇌는 다르다라고.
남성은 동적인 사물을 포착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여성은 정적인 상태를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던가?

근데 그럼 지금 여자가  나의 뇌는 어떤 상태인거지.
정적인걸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나진걸까?
그리고 여성들은 또 표정같은걸 더 잘 읽을  있다던데,  아직도 남들 표정을 제대로 모르겠는걸보면 아직 남성적인 부분이 많은걸까?
이건 그냥 내가 눈치가 없어서 그런건가.

"릴리는 곤충 좋아해?"
"아니, 그냥 잡는걸 좋아했지."
"흐으음, 그렇구나. 취향  별나네. 남자애같아."

나는 그렇겠지,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몸이 변했대도 내가 이전에 해왔던 행동이나 습관들은 변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23년간 해왔던것들이 몸 변한다고 갑자기 사라지고 그러진 않겠지.
그런생각을 하다보니, 난 한야는 집에서 대체  하는지 궁금해졌다.

"한야, 집에선 보통 뭘 해?"
"음, 오늘은 지정해준 사냥이 없어서 집에서 내 일기만 보고 있었어. 엄청 많은 일이 있었더라. 아마 네가 부르지 않았으면 다 읽으려고 했을걸."
"그렇구나…."


자기일기 읽는것도 독서라면, 꽤나 고상한 취미를 가진 셈이다.
게다가 사냥꾼의 일기라니.
거의 수필 모음집 아니야?

매일 일기를 쓴다고했으니, 10년간 쌓인 일기만 읽어도 시간이 잘 갈것같기는 하다.
언제 한번 보고싶긴하네, 남의 일기 보는건 실례가 될 수도 있으니 허락은 받아야겠지만.

"그리고 오늘 무슨 일이 있으면 일기도 쓰겠지?"
"으음."


생각해보니 집에서 보통 뭘 하느냐는 내 질문이 틀린거였다.
뭘 하다가 나왔냐고 물어봐야하는 거였나.
그러네.


내가 생각하는걸 보고있던 한야가 주위를 둘러보다가, 뭔가를 찾았는지 소리를 냈다.

"어?"
"뭘 찾았어?"

그녀가 나를 지나쳐 뒤로 걸어갔다.
곧 무슨 백색 덮개 같은걸 보며 내게 미소를 건넨다.

"릴리 너, 미성년자는 아니지?"
"그래, 꼬맹이 아니야."

너까지 날 꼬맹이로 보는거냐, 한야.
너도 19살이라며.
따지고보면 내가 한야보다 나이가 많다.

"그렇지? 그럼 술도 마시겠네?"
"물론 술도 좋아하지."

그런데 왜 이 얘기를.
설마?


"오늘 우리는 운이 좋네. 어제 성찬식을 했나본데? 이건 포도주를 덮어놓은거야!"

그녀는 의기양양하게 덮개를 열어젖혔다.
그러자 2~3병 정도 되는 포도주와, 조그만 와인잔이 덮어진채로 놓여져 있었다.

"으음, 그거 마셔도 되는거 맞아?"


긴가민가한데.
괜히 큰일 나는거 아니야?

"괜찮아. 보통 성찬식 후에 남은 음식이나 포도주는 사냥꾼한테 대접하기도 하니까. 그리고 성찬식에 쓰는 음식은 품질도 좋지. 이거 꽤나 비싼거일걸? 맛도 좋을게 분명해."
"그, 그래?"

비싼와인이라….
그건 흥미가 돋는데.
평생 동안 싸구려 맥주나 소주만 줄창 마시고, 와인같은건 전에 세찬이랑 병원에서 마셔본게 끝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제대로된 와인을 종이컵이 아니라 유리잔에 마실 수 있는 기회가 오다니, 이건 말그대로 신이 내린 기회였다.
여기가 교회라는 점과, 이 와인이 성찬식에 쓰인 와인이라는 점에서.
교회 안온다고 했던  취소.
성찬식 하면 와야지.


"자, 마시자."

어느새 한야는 정말 능숙하게 와인을 잔에 따라내서는 내게 건넸다.
한두번 마셔본 솜씨가 아닌데. 19살 맞나?

"왜 그렇게 익숙한거야?"
"후후…. 비밀이야."


꽤나 많이 훔쳐마셔본 모양이다.
후후….개구쟁이구만.
나는 한야가 건넨 와인잔을 받아들였다.
코를 대고 향을 조금 맡아보니, 달짝한 향이 포도향과 함께 기분좋게 코를 간질인다.
이건 확실히 비싼 느낌이다.

"이제 우린 공범이야."

그녀가 자신의 와인잔을 내밀었다.


"흐흐, 좋아."


이런 공범이라면 얼마든지.
나도 와인잔을 내밀고 가볍게 잔을 부딪쳐 건배를 한다.

-짠


"이거 진짜 맛있는데?"

-------------

"야, 릴리야.  취했니?"


내가 취한다고?
말도안돼.
흡혈귀가 된 후로 취하고싶어서 소주를 뒤지게 퍼마셔도 전부 분해시키는 바람에 취할수도 없는  몸이?
아마 취할 수 있었으면 이따구로 변하고나서 마신 술병으로 다보탑을 쌓을수도 있었을걸?

"아…니…  안취해써….어?"

응?
뭐야,  혓바닥이 맘대로 안움직이지.

"아아니이…나아 지금…치했나?"
"어, 취한거같은데."

어떻게?
와! 내가 취했어!
개쩔어.

"오와아!! 나 치했다아아아!!"
"으악! 야, 쉿! 조용히해, 릴리!"
"그게에 머 대수라고! 내가 취했는데!"


나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 세상이 흔들리잖아, 진짜 취했나봐.


"크크큭, 내가…! 취했다…!!"
"어쩌지… 애가 고장난것 같은데."
"다아아 들리거등?"


내가 취했어도 들릴건 다 들린다.
신체능력이 저하된건 아니란 말이지.
그냥 조금 어지러울뿐이지.
오오.
이 중심잡는 감각.
너무 오랜만이야.
나는 양산을 지팡이처럼 짚어서 중심을 잡아본다.
이거 재밌네.


"흐히히히히."
"야. 릴리. 어디가?"
"오! 나비다."


나비 하이.
나는 양산을 펼치고 정원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느리게 날아서 날 피할수 있겠어?
슉, 두손가락만으로 나는 노란나비를 낚아채려했다.
그런데 내 손이 제대로  나가서 잡는건 못했다.
윽, 쉽지않네.
경로는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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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와! 어디로 가는거야?"
"나비!"


기다려봐, 나비 한마리만 잡고 돌아갈테니까.
여러번의 시도를 했지만, 검지와 중지사이에 나비의 날개를 끼우는데는 실패했다.
그래서 작전을 바꾼다, 검지를 내밀고 나비가 앉을때까지 기다리기로.

"안 앉네."


젠장, 취하니까 나비도 못잡다니.
술이 웬수로군.

"정원 망치지말고 돌아와, 릴리."
"알겟서."

한야가 내 손을 붙잡아줘서 다시 정원을 벗어나 와인을 마시던 탁자로 돌아왔다.
의자에 앉은 내가 할 말은 하나였다.


"한잔더!"
"안돼, 더 마시면 내가 감당 못할것같애."
"한잔 더!!"
"으으…안돼."


한야는 따여진 와인병을 들고 제 등뒤로 숨겼다.
안 줄생각인가봐.
아, 더 마시면 진짜로 취할  있을것 같은데.
제대로 취하는건 진짜 오랜만이란 말이야.
지금 아니면 언제 취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점점 한야에게 다가갔다.

"안돼…?"
"응, 안돼."
"진짜, 한잔도 안돼?"
"으윽, 안돼."

후우, 내가 이런짓까지 하게  줄은 몰랐네.
나는 한야의 등 뒤로 손을 뻗으며 눈을 올려뜨고 말했다.


"…언니…진짜안대?"
"크윽, 그, 그래도 안돼!"
"빈틈!"
"앗!"

낚였구나, 한야.
이 포도주는 이제 내것이 되었다.
내가 무려 언니까지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군.
정말 힘든 상대였다.


 바로 병채로 들이켰다.
남자는 원샷이지.

--------------


"으윽, 으"


으엑, 이거 재갈이야?
이게왜 물려있지?


"깼냐? 진짜 가지가지한다."
"엉…?"


대체 무슨일이 있었던거지?
내가 왜 침대에 포박되어있는거야.
한세찬 저놈이 설마?

"으읍,으읍으읏!"

네가 발버둥치자, 녀석이 재갈을 풀어주었다.
난 팔딱거리면서 외쳤다.


"뭐야, 한세찬 네가 드디어 내게 손을 대는구나!"
"뭔 개같은 소리냐. 누가 손을대?"
"나,날 묶어놓고! 뭘  생각이야! 변태! 치한! 사디스트! 첫날 밤에도 날 그냥 취향대로 해본거지?"

내가 고함치자 세찬이가 미구 당황하면서 그런거 아니라고 지혜한테 변명하다가 내 머리를 은못으로 후려쳤다.

"아악! 존나아파!"
"정신차리라고 한대 때렸다.  취해서 한거 기억 안나냐?"
"뭐? 내가 취했다고?"

아니 내가 어떻게 취해, 소주를 그렇게 마셔도 취하지 않았는걸.
그것도 빨간병으로 마셨는데 금방 술기운이 사라져서 '아 시발 이젠 취하지도 않네' 하고 억울했었다.

"흐음, 기억이 안나십니까? 귀하께서는 성찬식에 쓰인 포도주를 마시고 상당히 취했었습니다."
"제가요?"

와, 그거 도수가 존나 쎘나보구나.
하고 생각을 하고있었는데, 내 표정이 멍청해보였는지 여사제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모르셨겠지만, 성찬식에 쓰이는 포도주는 특수한 처리를 합니다. 떡과 포도주는 예수의 몸을 상징하기 때문이죠. 그중 포도주는 예수의 피에 해당하는 성찬입니다."
"예수의…피요…?"
"물론 실제로 예수의 피로 만들지는 않습니다만, 기독교적으로 그런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지요."


와, 그럼  예수의 피 마시고 취한 흡혈귀네.
미쳤다.
이거는 진짜로 가슴이 웅장해진다.


"성찬식에 쓰인 포도주가 흡혈귀에게 이런 효과가 있는지는 미처 몰랐군요. 앞으로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예?"


대체 내가 무슨짓을 했는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석주야. 일어났니?"
"엑."


이 목소리는 지혜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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