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0화 〉신입 사냥꾼 (60/101)



〈 60화 〉신입 사냥꾼

실버의 집.
정말 웃기게도, 여기 인간이라곤 실버랑 지혜뿐이지만, 지혜는 안심한듯 보였다.
외형이라는게 참 중요하군. 여기 흡혈귀만 둘이고, 이라는 늑대인간인데.
지혜는 넓은 거실을 보고 조금 부럽다는 시선을 내게 보냈다.


"넓네…. 좋은데 사는구나?"
"글쎄…."


사실 나도 엊그제 들어왔는데.
그런데 그런거 치고는 상당히 잘 적응한 것같긴 하지만.

"일단은 여기가 내 방이야."
"음…. 혹시 이사왔니?"
"뭐가 없긴 하지."


가구라고는 분홍색 관 하나, 옷장하나가 전부. 옷장 이것도 그냥 방에 달려있던 붙박이장이다.
아마 드레스룸으로 만들어든 공간인듯 한데, 그동안 딱히 쓰지는 않았던 공간을 받은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대학교까지 갈 수 있겠어? 꽤 멀텐데."


여기서 버스타면 최소 1시간걸리려나. 1교시면 정말 빡셀텐데.
밤중에 불러낸 내가  말은 아니지만.


"상관 없어. 공강이라서. 그런데, 내가 대학교 얘기를 했던가?"
"하하…. 했을걸?"


시, 실수했다.
아직 대학교 얘기를 자세히 하진 않았었지.

"뭐어…. 그랬던가. 흠, 어째든. 고마워. 허락해줘서."
"아니, 내가 더 고맙지. 이시간에 병원으로 와줬으니까."


한밤중에 호출했다고 와주다니 말이다.


"하아…. 그건 명령이었잖아. 어쩔  없었어."
"아."

그렇지. 지혜는 패밀리어였구나.
내가 명령을 했으니 울며 겨자먹기로 왔었던거네.
으으윽, 너무 미안하다.


"순간 깜빡했네. ….혹시 화났어?"

얘가 화가 풀려야 내가 석주라고 말하기 쉬워진다.
대부분의 오해는 아마 이걸 말하면 대충 해결될 것 같은데.
어떻게 납득시키냐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내가 믿으라고 명령한다해서 진짜 마음속으로 믿을 수 있을것 같지도 않고.
믿음과 신뢰같은 감정은 패밀리어라고해도 마음대로 다룰  있는게 아니니까.


"그거보다,  네가 석주 휴대폰을 갖고있는건지 말해줘."

진지해진 지혜의 모습에 난 조금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를 해야하나? 지금은 괜찮을까?
내가 우물쭈물거리고있자, 송지혜가 내 표정을 보고는 경악하며 묻는다.


"설마, 진짜 죽은거 아니지? 그때 놀이공원에서…."

놀이공원에서 있었던 일도 이제 지혜는 알게 되었다.
뭐, 마력식까지 각성한 이상, 일반인은 아니게 되었으니까, 모든 설명을 들었으니.
그런데 그날 이후로 보이질 않는거니까 타당한 의심이기는 하다.


"그건 아냐. 그냥…. 지금은 좀 말해주기가 그렇다고 밖에…."
"혹시 많이 다친거야?"
"그것도 아니고."


다치지도 않았지.
모습이  많이 바뀌었을 뿐…. 아, 대체 어쩌지.
난 머릿속에서 어떤식으로 말해야 지혜가 덜 충격받고, 덜 오해하고, 덜 힘든 방식으로 내가 김석주였다는 사실을 알릴 수 있을까 머리를 세차게 돌렸으나, 뭐 이거다싶은 방법이 없었다.
내가 머리가 나쁜건가.
한숨자고 일어나서 생각해보자.
어쩌면 꿈에서 그런 방법이 뿅 하고 나올지도 모르지.
꿈을 요즘 전혀 안 꾸고 있지만 말이다.

전에 릴리스 시점의 기억을 꿈의 형태로 겪은적은 몇번 있었다.
그거 예전에 보니까 꿈이 아니라 주마등 같던데, 한번 시험삼아 목을 매달아볼까.

"나중에 다 말해줄게. 지금은 일단 쉬어."
"도대체…. 됐다, 나한테 뺏길까봐 그러니?"
"그런 쪽으론 전혀 관심 없어."
"흐으음…."

지혜는 못믿겠다는듯 눈을 흘겼다.
뭘 뺏겨 뺏기긴.
최소한 '릴리'랑 김석주는 절대 이어질 수가 없는 인연이다.
갑자기 나르시시즘에 눈뜨지 않는이상 말이다.
몇주정도는 내가 그런 성향을 갖고있는게 아닐까 싶었는데, 요즘엔 또 별 느낌 안드는거 보면 자기애는 아닌것같고.
뭐지, 여자의 몸에 익숙해진다는게 좀 무서운데.


"알겠어. 걔한테 뭔일 없는건 확실해?"

사실  일이 있긴해.

나는 고개를 대충 끄덕여주고는 옷을 벗으려다가, 지혜 앞에서는 어떤 거리감이 맞는지 순간 고민되었다.
벗어도 되는건가.
남자끼리는 집에서 걍 벗고 그러는데.
유디라를 보면 그것도 뭔가 괜찮을것같지만  사람…아니, 흡혈귀의 상식은 뭔가 믿을만한 구석이 없었다.


"릴리야. 오늘도 월광욕 안해?"
"안한다니까요."


이걸봐라.
또 속옷차림으로 선글라스를 쓰고 거실을 활보하고있다.
그 모습을 본 송지혜가 내 귀에 대고 속닥였다.

"저사람 왜 저러는거야? 노출증이야?"
"지혜야. 다 들릴걸."


흡혈귀는 귀도 예민하거든.

"달빛에 몸을 지지는거야. 왜, 인간들도 가끔 몸 태우고 그러잖아?"
"어…. 그거참, 신기한 일이네요."

지혜는 머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디라는 결국 혼자서 베란다로 향했다.

"적응이 안되네."
"하하."


뭐, 그럴수밖에 없겠지.
지혜한테는 모든게 새로울 테니까.
사실 나도 매일이 새로운데 지혜는 얼마나 그렇겠어.
갑자기 패밀리어니, 흡혈귀니, 사냥꾼이니, 마력식이니.
혼란 그 자체다.
그리고 나는 그 혼란의 중심에 서있다.

"오늘은 너무 힘들어. 그냥 잠이나 잘래. 그런데 설마 이게 네 침대야?"
"그러게…."


남한테 보여주긴 조금 부끄럽군.
거기다 분홍색이라니 말이다.


"뭐, 흡혈귀니까…."
"…."


묘한 표정으로 내 잠자리를 보는 지혜.
뭐,  표정은 나도 관을 처음 봤을 때 지어본 표정이었다.
진짜 묘하지, 이런게 세상에 존재한다는게.
하지만 나도 며칠전까지는 침대에서 잤어.
근데 진짜로 편한걸 어떻게해?
여기서 자라면 계속 잘 수도 있을 지경이다.

그리고 속옷차림으로 베란다에서 달빛으로 몸을 지지는 흡혈귀도 있는데, 좀 귀여운 관에서 자는 흡혈귀정도면 양반이지.
그 색이나 디자인이 내 취향이라는 말은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객관적으로 봤을  귀엽다는 말이다.


지혜도 스스로 대충 납득했는지 더이상 관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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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관 속에서 우렁차게 울리는 굿모닝송을 끄며 눈을 떴다.


휴대폰 알람으로 일어난게 얼마만이냐.

매일 아침에 들리는 새소리나 매미소리가 나를 강제로 일으켰는데, 알람소리로 일어나다니.
어쩌면 언제나 느끼던  피로감의 원인은 매일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서 그런것이었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자고 일어났는데 상쾌한 기분.


관뚜껑을 열고 기지개를 펴며 일어났더니, 이미 지혜가 먼저 일어나서는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늘은 지혜와 함께 '교회'를 가는 날이었으니까.


공강이라는 얘기를 듣고는 사냥꾼으로써 최소한의 조치를 취해야 할  같다고 세찬이에게 문자를 보냈더니, 그럼 교회에서 이름숨기기부터 하는편이 좋을 것 같다고 했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9시에 만나는 거잖아?"
"뭐야, 아직 자는중이었어?"


지혜가 머리를 뒤로 완전히 묶고는 뭔가 얼굴에 펴바르는 중이었다.
아아, 저것이 화장이란 말인가.
그런데 대체 화장품이 어디서 났나.

"이건 집에서 챙겨온거. 이거는 저기 흡혈귀언니한테 빌렸어."
"글쿠나."


어쩐지 뭔가 꾸미고 온 느낌이기는 했다.
핸드백에 여러가지 화장품이 들어있는 모양새였다.
병원오면서 뭐하러 꾸미고 온지 모르겠네.

유디라도 화장을 하는건가?
그런거 치고는 거울이 좀 부족한것 같은데. 집에 화장대도 없는걸.
그래서 지혜는 조그만 손거울을 보면서 화장을 하는 중이었다.
유디라는 아침엔 잘텐데, 관짝 문 열고 물어본걸까.
상당히 담이 좋은 타입이구나.

그런데 왜 하는걸까, 나는 솔직히 하든 안하든 차이를  느끼겠는데. 지혜는 쌩얼도 나름 성숙한 느낌의 예쁜 얼굴이었다.

"안해도 예쁘지않나."
"이 기집애가, 못하는말이 없네."

말은 저렇게해도 얼굴엔 미소가 좀 번지려는걸 참는 모양새였다.

"악몽은 안꿨어?"
"덕분에. 고마워."


내가 고마움을 들을만한 위치인가. 따지고보면 지혜가 바닥에 토한것도  책임이었는데.
흐음…. 얘한텐 계속 미안할 일만 생기네.
진짜 잘해줘야겠다.
그래야 좋은 분위기에서 얘기를 하지.

'그동안 속여서 미안했다. 내가 사실 김석주야.'
…라고하면 대체 뭐라고 대답이 들어올까.


'뭐, 그럴줄 알고 있었어.'라든가.
'뭐라고? 그동안 날 속인거야?'라든가.
'미친, 변태새끼.' 윽, 이건 좀 아프네.
상상하니까 버틸수가 없었다.

"시간없으니까 너도 빨리 준비해."
"응? 아직 한시간 반이나 남았는데."

목욕하는데 좀 걸리긴하지만, 간단히 씻을거니까 넉넉하게 40분을 목욕에 쓴다치고, 옷 입는데 대충 10분이라하면 40분이나 남는데.
뭐, 일어났으니 나갈 준비를 하려고는 했지만, 시간이 없는건 아니지 않나?


"알았어. 일단 씻고 오지 뭐…."
"그래. 얼른 씻어."


난 속옷과 입을 옷을 미리 꺼내서 목욕탕 앞에 가져다놓았다.
후딱 씻어야하니까 일단 머리만 감고 끝내야겠다.
밤에 씻은지 얼마 안되기도 했고, 땀도 안났으니까.


그렇게 후딱 씻으니까 30분도  안걸린, 27분만에 씻을 수 있었다.
머리가 길어서 감고 씻고 짜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어우 귀찮아.

"뭐야… 벌써 끝났어?"
"응. 왜?"

 순식간에 외출 준비를 마쳤다.
첫 외출 준비에 비하면 굉장한 속도다.
씻고 옷입고 챙길거 챙기고, 선크림정도만 바르면 끝이다.

"와, 정말 어처구니가 없네."


지혜는 날 보며 감탄했다.
아니, 감탄이 아닌가.
어째든 탄성을 내뱉었다.


"이게 준비 끝이라고? 뭐…. 이렇게 나가도 될것 같기는 하지만…. 이게?"
"나갈 수 있으면 됐지. 뭐."


나는 언제나와 같은 느낌의 의상.
긴소매의 풍성한 흰색 블라우스에 검은  바지를 입었다.
검은색과 흰색은 뇌를 비우고 골라도 색배합을 안해도 되어서 편하다.
여성잡지에서 배운거지.
패션까지 공부하다니, 점점 여성스러움이 늘어가는것 같아서 무서울 정도야.

여기서 양산과 핸드백만 챙기면 완료다.

"뭐, 머리도 안만지고?"
"머리? 아, 묶으면 좋으려나?"

난 지금 언제나처럼 긴 앞머리를 대충 귀 뒤로 넘겨서 뒤로 늘어트린 머리다.
뭐, 아무리 더위가 가셨대도 아직 밖은 더우니까 뒤로 좀 묶으면 좋을지도?

"그게 아니라, 고데기 같은거 말이야."
"고데기?"


고데기가 뭔지는 알고있지만, 그거 어떻게 쓰는건지는 모른다.
써야하는지도 모르겠고.

"에휴, 이리와봐."
"으, 응."

왜 여자애들은 다 내 머리를 못 만져줘서 안달일까….
만지면 느낌이 부드러워서 재밌기는 하지만.
나도 평소 버릇처럼 만지고 있고.


"이리 앉아."
"넵."


나는 지혜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근데 여기 고데기 없지않아?"
"고데기가 없을땐, 이렇게 헤어드라이기를 써서 하면 돼."


지혜는 빗을 들고 내 앞머리리에 뜨거운 바람을 보내며 빗으로 살살 쓸었다.
뭔가 신기한 감각이다.
그러고보니 이런 비슷한거 미용실에서도 해주긴 했었네.
느낌이 자연스러운걸 보면 꽤나 잘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작업이 20분정도 지속되는지라 조금 졸아버릴뻔 했으나, 관에서 푹 자서 그런지 참아낼 수 있었다.


"됐다. 한번 봐."
"……끝이야?"


지혜가 손거울을 내게 내밀었다.
거울속에 비치도록 인식저해를 거두고 본 내 모습은,
긴 머리칼을  뒤로 넘기지않고, 자연스럽게 볼륨을주며 양 옆으로 내려 귀를 가리는 롱 웨이브 헤어스타일로 탈바꿈해 있었다.


어른스러워진 느낌이네.
왠지 키도 커졌을  같은 느낌이다.
내 마음속의 공식은 '어른 = 키가 큼' 이니까.
아무래도 내가 꼬맹이라고 듣고다니는데는 그 헤어스타일이 한몫을 했던건가?
흐음….

"괜찮네…."
"그렇지?"


지혜는 내친김에 화장까지 해보자고 했으나, 나는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화장은  아니지.
겨우 한세찬 만나서 교회가는건데 그럴 필요가 있어?


-------------




우리는 지하철에서 보기로 했다.
실버씨가 차로 태워다 줄 수도 있기는 하지만, 그러기엔 실버씨는 유디라를 감시하는 역할도 하기때문에 유디라와 떨어질 수는 없었고, 교회는 당연히 흡혈귀 출입금지(나는 예외로 취급해주지만)의 구역이니까 실버씨는 할일도 없이 밖에서 유디라랑 차안에서 있어야한다.

실버씨는 괜찮다고 호위를 하겠다 했지만, 나는 이라도 원래는 출입금지를 당했던 사실이 떠올라서 이라도 두고 가기로 했으니 이라나 좀 봐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한세찬과 하루살이, 나, 송지혜가 모이기로 한 것이다.

나와 지혜는 지하철역 안에서 햇빛을 피하며 앉아있었다.
오, 드디어 떴다. 이 요망한.
나는 드디어 폰게임에서 원하던 캐릭터가 나와서 기분이 좋아졌다.
만족스런 웃음을 지으며 휴대폰에서 눈을 떼고, 지혜를 바라보니까 뭔가 이상한걸 본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윽, 씹덕겜을 밖에서 한다는건 이런 시선을 감내해야 한다는 말인가.
접어야하나….

"뭐가 이상해?"
"으응? 아. 별건 아닌데, 뭐랄까."


한숨을 한번 내쉰 지혜가 말했다.


"니가 그런거 하는게 신기해서."
"그래?"


그런가, 미소녀게임하는 미소녀는 이상한건가.
그거랑 이거는 다른거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차원이 다르잖아, 차원이.
얘는 2D고, 나는 3D. 이런 종류의 차원이 다르다.


"사실 그것보단 이게 더 이상해. 너랑 내가 이렇게 꾸미고 나왔는데 아무도 시선을 안주네. 좀 자존심 상하는데."
"아하, 그거?"


그게 이상하다면야 설명할 수 있다.

"내가 우리한테 인식저해를 걸어놨거든. 우린 지금 사진에도 안찍혀."
"뭐?"
"거울에도 안비치고."


나는 근처 통유리를 가리켰다.
우리가 앉은 의자엔 아무도 앉아있지 않은 모습이 비쳐보인다.


"으, 이거 좀 오싹한데."
"그래?"


내 모습이 거울에 비치지 않는 것을 처음 알았을  어땠던가.
좀 많이 당황스럽기는 했다.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몸이라서 무섭지 않았던건가?
저런 반응이 보통인가?

지혜가 자꾸 내 휴대폰을 보는게 신경쓰여서 게임을 꺼버렸다.


"흐으음…."


볼게 사라져서 심심해진건지, 흐음 하는 소리를 내는 지혜.
너도 휴대폰 있잖아.  자꾸 내걸 봐.
곰곰히 생각하는 듯한 표정의 지혜를 뒤로하고 기자와 와인트리의 위치나 확인했다.

기자는 이제 위치가 바뀌긴 했는데, 신경쓸정도로 가까운 위치는 아니었고, 와인트리는 여전히 병원에 처박혀있었다.
별로 신경쓸 녀석들은 없군.
지혜는 뭐, 내 옆에 있고 말이다.

완전히 개인주의적인 패밀리다.
피로 이어진 사이는 아니지만. 아, 와인트리는 피로 이어져있나?
대체, 얼마나 내 피를 빨아댔길래 지 본질이 변한다는 말인가.
생각해보니 어이가 없네.
지가 피 빨아놓고 지멋대로 이름지어준다고 얼씨구나 받아먹는게 어이가 없었다.
진짜 너는 용서가 안돼.
 한방울까지 싹다 팔아버릴거야.
그렇게  드림하우스의 벽돌이 되는거지.
와인트리도 들으면 기뻐할 것이다.


아마도.

휴대폰의 진동이 울리고, 확인해보니 한세찬이었다.
뭐 얘말고 누가 전화하겠냐만은.


-어디야?
"지하철역. 3번으로 내려오면 바로 앉아있어."
-알겠다.

통화는 용건만 간단히.
나는 바로 끊고는 바닥에 양산을 짚고 일어났다.
저번에 놀이공원에서 잃어버린 양산이 길다란 타입의 장우산이었기 때문에 비슷한걸로 따로 하나 샀다.

조금 일어서서 기다리니 계단을 내려오는 한세찬과 한야가 보였다.

"왔어?"
"그래."

한세찬에겐 짧은 인사.


"한야, 오느라 힘든건 없었어? 나와줘서 고마워."
"뭘. 힘들것까지야, 그런거 없었어! 그런데 나랑 친했나?"
"응. 친했지."

한야에겐 힘든거 없냐고 물어보기.
근데 냉장고에 내가 한 말은 안 붙여놓은건가?
나중에 한번 집에 찾아가봐야겠네.

"맞다, 한세찬. 손 내밀어봐."
"손은 왜."

녀석은 의문을 표하면서도 내게 손을 내밀었다.
흐음.

"두손 다."
"…?"

떨떠름한 표정으로 두손을 내미는 녀석.
난 녀석의  손을 잡고 코에 가져가서 냄새를 맡았다.
이라정도의 후각은 없지만, 내 후각도 생물의 범주에선 상당한 편에 속한다.
흠, 이새끼 나 없다고  이상한거 피는거 아닌가 했는데, 아닌가?
손을 내려놓은 나는 그대로 까치발을 들어서 목덜미까지 냄새를 맡아봤다.
키가 작아져서 불편한점이지. 까치발을 들어야 한다니.
음, 담배냄새는 조금 나는데.
세찬이가 당황한  다급하게 묻는다.


"뭐해?"
"너 담배 피웠지."
"그래, 담배야. 담배. 이거."


한세찬이 꺼낸 담배갑은 확실히 시중에 파는 물건이었다.
근데 이것도 안돼지.
그냥 이참에 끊어야지하고 생각해.

 



"그냥 끊어라. 이건 압수야."
"뭐? 니가 뭔데?"
"뭐긴 짜샤, 네 하나뿐인 친구지."

맨날 같이 다니는데 담배냄새나면 나도 기분이 나쁘다.
안그래도 좋아진 후각때문에 자꾸 신경쓰였단 말이지.

벙찐 표정을 짓는 녀석의 담배를 압수해서 내 핸드백에 쑤셔넣고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런데 지혜가 내 어깨를 톡톡 치며 말했다.

"어…. 릴리?"
"응?"
"너 저, 한세찬?이랑 그런 사이야?"
"어? 그냥 친구사이지."
"으흠, 어. 그렇구나ㅡ. 알겠어."
"?"


 알겠다는걸까.
음….
아.

"'아직' 그런 게 아니라 앞으로도 친구사이일거야, 쭈욱!"
"으응, 괜찮아. 부끄러워할 필요 없잖아. 나도 내 얘기 다  마당에."


허.
진짜 어이가 없네.

"어이, 사형. 꽤 능력이 있어?"
"닥쳐, 한야."

근데 한야도 비슷한 생각을 한 모양이다.
팔꿈치로 툭툭 치는꼴이 상당한 건수를 잡았다는 표정이다.
세찬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대체 왜 그런짓을 한거냐."
"..….."

아니,  그냥 니가 집에 혼자만 있었으니까 그런거 했을까봐 걱정이….


시발. 너무 내 능력만 생각해서 나댔나.
오버해서 남자끼리도 안할짓을 했어.
후각이 좋아졌으니 써먹어야겠다는 생각밖에 안해서.

내가 순간 미쳤었나보다.
왜 이렇게 얼굴에 열이 나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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