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0화 〉뒷수습 (50/101)



〈 50화 〉뒷수습

나는 병실침대에 앉은채 이라를 쓰다듬으며 앉아있었다.
이라가 늑대에서 인간아이로 변하는 모습을  그녀는 이런 판타지스러운 상황을 어느정도 빋아들이게 되었다.

비록 그 과정에서 좀 과도한 행동장애가 펼쳐지기는 했으나, 그정도는 내가 처음 변했을때에 비하면 상당히 얌전한 편에 속해있었다.
음.
나는 사지결박상태로 고래고래 되는대로 말을 내뱉다가 허벅지 양쪽에 구멍도나고, 세찬이 면상도 작살내보고, 참 많이도 날뛰었는데,
지혜는 겨우 소리좀 지르고 삿대질하면서 이거 몰래카메라냐고 발악한 정도였다는 소리다.

나랑 지혜의 상황을 따져보면 지혜쪽이 극단적으로 얌전한 경우이기는 하다.
성별도 그대로고, 외형도 그대로고, 종족도 그대로에, 흡혈귀 뒤져라를 외치며 다짜고짜 못질해댈 친구놈도 없다.
다른 사람들도  입장이었으면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테니까.


결국 진정시키곤 천천히 여러사람 미치게하는 달의 세계에 대한 대략적인 세계관 설명을 마치자, 지혜는 반신반의하며 과잉행동을 멈추었다.

납득을 한건지, 포기를 한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원래 무슨 비밀요원같은걸로 생각했던 모양인데, 어째든 비밀요원이든 흡혈귀 사냥꾼이든 둘다 조금 비현실적인 부분은 있잖아.
흡혈귀 사냥꾼이 훨씬 비현실적이고 비과학적이며 비상식적인 부분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어차피 둘다 하는건 비슷한것 같은데.

그리고 이라는 딱히 흡혈귀도 아닌데.
이라같은 귀여운 꼬마를 보고 삿대질이라니. 너무한거 아니냐.

의사가 손가락을 두개 펼쳤다.

"두가지 방법이 있어. 하나는 네 몸에 각성한 마력식을 지우고 평범한 삶으로 되돌아가는것, 또 하나는 네 마력식을 활용해 사냥꾼을 시작하는것."


"예? 마력식을 지워요?"


이 멍청한 질문은 내가 한거였다.
아니, 나도 그런게 있는줄 몰랐는데?
마력식을 지운다니?


지혜랑 나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시야가 흐려서  파악은  하겠지만 지혜는 '얘는 이걸 왜 모르지' 하는 표정인것같다면, 나는 '왜 내가 이걸 몰랐지'하는 표정이랄까.
아무튼 나는 다시 고개를 의사쪽으로 돌리고 원망스럽게 말했다.

"왜 저한테는 안 말해줬어요."
"네 경우는  다르지. 애초에 마력식의 패턴도 불명확하고, 선천적인데다가, 지울수 있는 종류의 마력식인지도 모르는걸. 지운다고 되돌아갈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말이지."
"……."


그렇다고 아예 말을 안해주는건 좀 그렇지 않나.
지혜가 나를 한번 보고나서 말한다.

"그…꼭 사냥꾼이란걸 해야돼요?"
"네 한몸 혼자서 흡혈귀로부터 지킬 수 있다면 안해도 되지."

마력식.
이건 축복이자 저주였다.
마법적인 능력이 인간의 육체에 깃드는 것이지만, 결국 그것이 흡혈귀의 타겟이 되도록 만든다.
그래서 마력식이 발현한 인간은, 결국엔 사냥꾼으로 등록을 하게되는 것이다.
최소한 흡혈귀들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서.

단지 귀에 십자가모양 증표를 끼우는것만으로도 어중간한 흡혈귀는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마력식을 노리고 공격해올수도 있긴 하지만, 그때는 사냥꾼들이 반드시 사냥을 시작하게 될테니까.


그래선지 일단 사냥꾼으로 등록해놓고선 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이렇게보면  널널한것 같은데, 막상 그렇지는 않다고한다.
일반 사냥꾼들은 할당량이 있다는 모양이라서.
흐음…. 그러고보니 나는 할당량같은거 얘기 없었는데.
그건 내가 이미 흡혈귀라서 가라칠 방법따위 넘쳐나기 때문이 아닐까.
게다가 나는 아빠가 뒤도 봐주고 있고 말이다.


일련의 설명을 다 들은 지혜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분위기를 봐선 딱히 사냥꾼을 할것 같지는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할때즈음이었다.


"흐음…. 그럼 마력식을 지우면 어떻게되는데요?"
"개인마다 마력식의 적합도에 따라 다르지만 수명이 좀 깎일거야. 보통 25년정도 깎이면 잘 지워졌다고 말해."
"에……."
"허어."

25년이  지워진 편이라니, 평균수명이 요즘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한 80살 정도를 기대수명으로 봤을때, 55살까지 살 수 있다는 얘기다.
그정도면 조금 뼈아프긴 하지만, 사냥꾼을 하면서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괜찮을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되면…. 혹시 그…. 어떻게 되는건데요?"

지혜가 얼굴을 만지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근데 뭐가 어떻게 된다는 말이지? 주어가 없으니 뭔 소린지 모르겠다.
하지만 의사는 당연히 그런 질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는듯 말했다.


"흠, 그래. 당연히 궁금하겠지. 음…. 깎인 수명만큼 노화가 좀 빨리 진행된다고 할까? 세포가 좀 더 빨리 늙게 될거야. 그렇게  더 빨리 늙어죽는거지."
"아아…."


노화가 빠르게 진행될거란 얘기를 듣자, 지혜가 얼굴을 감싸쥐었다.
으음, 그러면 솔직히 고민이 될법도 하다.
20대 초반의 탱탱한 육체를 지닌 지혜가 마력식이랑 기억을 지우고 대학생활로 돌아간다고하면, 지혜는 갑자기 가속된 노화로 영문도 모른채 늘어난 주름살을 보고 충격에 빠질지도 모른다.

남자라면 몰라도, 여자라면 상당히 문제가 되지 않을까 싶긴 하다.


"그건 절대 안돼요. 아직 애인도 못 사귀어 봤는데."


하긴, 또래보다 확연히 빠르게 늙어버린 외모로 애인을 사귀기는 쉽지 않을거다.
여자외모는 또 그리 오래 안간다고 하기도 하고.
남자의 매력은 늙어서도 드러날 수 있지만, 여자는 무조건 젊은게 장땡이라던가.
모르겠다. 하긴, 실버씨를 보면  미중년 스타일도 나름의 멋이 있긴 하더라.

그런데 애인이 그렇게까지 대수인가….
나도 여친 사귀고 싶다고 생각이 들던때가 있으니까  그렇다고 치자.
지혜는 조금 말을 쉬고는 힘없이 말했다.


"그리고 김석주도 여기에 연관된거 아니에요? 혹시 걔도 사냥꾼인가요?"
"뭐, 그렇다고 볼순 있지…."

세찬이가 나를 조금 흘겨보며 말끝을 흐렸다.
나도 세찬이를 흘겨보면서 '더이상 말하지 말아달라'는 무언의 제스쳐를 보냈다.
내가 지혜랑 목욕만 안했어도 지금 밝혔을지도 모르겠는데….
일단 오늘은 아니었다.
게다가 이런 말을 하루에 다 쏟아냈다간 지혜의 머릿속이 펑하고 터져버릴지도 모른다.
안그래도
좀 나중에 기억이 흐릿해질때즈음 하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그럼 일단 사냥꾼 할래요. 등록만이라도. 일단 좀 하다가 못하겠으면 관두는건 상관 없나요?"
"그러도록해. 그때는 좀 강제적인 방식으로 뇌에 제약을 걸게될거야. 그러니 빨리 정해줄수록 너한테도, 우리한테도 좋겠지?"
"알겠어요."

그렇게 지혜는 조금 억지로 납득하는듯 했다.


---------


"그래서 릴리는 언제부터 사냥꾼이 된거야?"
"글쎄. 한 두달 됐나."

나는 간장마늘치킨을 집어먹으며 대답했다.
후…. 역시 치킨은 간장마늘…
유디라는 불쌍해. 이런것도 못 먹고….

"두달? 너도 얼마 안됐구나. 그럼 김석주는?"
"……."

나는 그 질문은 의도적으로 무시하며 다른 조각을 찾았다.
아. 만져보니까 이건 가슴살이네, 세찬이나 먹으라지.
걔는 가슴살 좋아하니까. 헬창이라 그런가. 아니, 걔가 딱히 헬스를 하는건 아니네.
그렇게 생겨먹긴 했는데말이야.


"정말 김석주에 대한건 하나도  안해주네."
"지금은 비밀이야."
"알겠어. 나중엔 얘기해준다는 거겠지. 그렇지?"

지혜가 조금 뾰루퉁하게 말하며 치킨을 야금거린다.

"그런데  흡혈귀라면서?"
"그렇지, 일단은."
"그런데 피는 안 마시는거야?"
"사람피는 안 마시기로 약속했어."


내가 흡혈귀라는 사실은 어쩔 수 없이 밝힌 사실중 하나였다.
그도 그럴게, 이제 지혜는 내 패밀리어니까.
와, 패밀리어.
계약을 통해 정신적으로 이어진 관계.
정신적으로 이어졌다고는 하나, 일반적으로 인간의 정신력과 흡혈귀의 정신력은 애초에 격이 달라서 그냥 일방적인 관계라고한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유효하게 써먹을 수 있을까?
지혜가 닭다리를 들고 있는것 같길래, 나는 때를 놓치지 않고 명령했다.

"지혜야. 닭다리좀 나한테줄래?"
"…쳇, 그래. 먹어라 먹어. 치사하게."
"히히, 고마워!"
"……."


지혜는 조금 어이없어했다.
하지만 이거  재밌는데?
누구를 맘대로 시켜먹을 수 있다는건  즐거운 행위였다.


"지혜야, 손좀 씻고서 어깨좀 주물러줄래?"
"뭐, 뭘 치킨 먹다말고 이런걸 시키고있어!"


그러면서 지혜는 내 어깨를 주물러주었다.
딱히 어깨가 뭉치는체질도 아닌데다 별로 어깨를 인간정도의 완력으로 주무른다고 뭐 시원한 감각이 느껴지지도 않지만, 그냥 지혜한테 약간의 굴욕감을 주기위해 내린 명령이었다.


이러고있다 보면 확실히 위험한 취향에 눈을 떠버릴것만 같다.
크흠, 그래도 너무 심한걸 시킬 생각은 없다.
강력한 정신간섭으로 의지박탈상태에 놓인게 아니라면, 피계약자의 극렬한 거부반응이 피계약자 자신을 망가트릴  있다.
…. 라고 하던데, 그러니까 너무 심한걸 시키면 지혜가 망가져버리니까 조심하라는 얘기같다.
사람을 장난감처럼 말하는게 조금 그렇긴한데, 어차피 딱히 심한걸 명령할것도 아니고, 지혜가 나와의 연결을 끊으려고 하지도 않아서 곤란하기 때문에 이정도로 귀찮게 하는건 필요한 행위였다.

"그러면 계약 끊자니까?"
"싫어. 이거 계약 맺고있으면 일단 네가 어디있는지는  알수 있단 말이야."

이런식이다.
병상에서 혼자서 일어난 지혜가 누구의 도움도 없이 바로 내가 목욕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던것은 이런 부가기능 때문이었다.
말그대로 정신으로 이어진 관계이기 때문에, 서로가 어디에 있는지 조금 생각하면 바로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어딨는지 알아서 뭐하게?"
"너, 지금은 이러니저러니해도…. 결국 석주랑 친한거 아니야! 그럼 또 서로 만나기도 할거고! 이익, 난 너한테 김석주 안 뺐길거야."

주물 주물.
그렇게 말하면서도 지혜는 계속  어깨를 주물거렸다.
…….
그런 생각이었던건가.
조금 죄책감이 드네.
순간 내가  김석주니까 그렇게 마음고생 말라고 말할뻔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조금만 더 참으면 기회가 오겠지.
일단은 치킨이나 먹는게 좋을 것 같았다.

"……그만 주물러도 돼. 그냥 치킨 먹자."
"아하하하! 재밌네, 너희 둘. 원래 그렇게 친해?"

호탕한 웃음소리.
같이 치킨을 먹는 인원중엔 하루살이, 한야도 있었다.
애초에  치킨은 이 여자가 들고온거다.
이런 산골자기에 각종 마법적 결계까지 둘러쳐져있는 병원에 배달이 될리가 없잖아?
그래서 나는 한야에게 연락해서 마늘간장치킨을 배달해달라고 의뢰했다.
내돈으로 사는거니까 메뉴는  마늘간장이다. 싫으면 자기 돈내고 사먹어!
정확히는 세찬이 통장속에 내 돈이었지만.

유디라는 따로 후라이드치킨을 한마리 시켜줬고, 실버는 기름진 음식은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총기나 손질하겠다며 유디라와 함께 다른방으로 가버렸다.


"그러고보니 흡혈귀라며, 마늘을 아무렇지 않게 먹네? 저쪽 방에 흡혈귀는 마늘냄새도 못 맡는것 같던데."
"후후, 이거 보여? 이게 그걸 가능하게하는 도구지."

나는 머리핀을 자랑하듯 이마를 내밀었다.

"그게 그런거였단 말이지…. 그럼 목욕하면서도 끼고있던 그 귀걸이나 목걸이같은것도?"
"그것도 여러가지 도구야."
"흐음. 그런거였구나. 좀 이상하게 생각하긴 했어."
"뭐가?"
"릴리 너, 화장은 안하잖아. 그런데 귀걸이랑 목걸이같은건 되게 비싼거 끼고 다니는거 이상하지않아?"
"그… 그런가…."

생각해보니까 그렇긴 하네.
애초에 장신구같은걸 쓰는 사람이면 자신을 꾸미는데 신경을 쓰는 사람이니까, 당연히 화장같은것도 하겠지.
그런데 나는 장신구는 끼면서 화장은 전혀 하지 않으니까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하지만 그건 그냥 생각일 뿐이지.

다시 치킨조각을 주워먹기 시작한 지혜를 놔두고, 이라를 한번 내려다보았다.
 무릎위에서 와구와구 치킨을 주워먹는 이라는 귀엽긴하지만 걱정되기도 했다.

"이라야, 좀 천천히먹어라. 또 배탈날라."
"이거 너무 맛있어요……!"
"맞아 맛있긴해. 그지?"

사주는 보람이 있는 녀석이다.
손이 드러워서 머리를 쓰다듬어주지는 못하지만.


"그런데 저 아저씨는 누구야, 아까부터 너를 노려보고 있잖아."
"아, 한세찬이라고, 내 친구야."
"한세찬? 어디서 들어본것도 같은데."

같은 고등학교를 나오긴 했으니까 어디서 들어보긴 했을수도 있겠다.
그때랑 인상은 너무 달라져서 연상은 절대 안될테지만.
게다가 고1 중반때 자퇴한 녀석이라 누구한테 인상을 남기지도 못했을거고.
그리고 이건 딱히 말해줄 생각이 없었다.
아마 세찬이도 얘가 고등학교 동창인지는 알고 있을 거다.
애초에 놀이공원을 갔었으니까 알겠지.
그래서 나는 따로 사족을 붙이지 않고 나이만 간단하게 언급하기로 했다.


"23살이야. 저래보여도."
"미안하군. 늙어보여서."

빈말로 사과하는 세찬이를 보니 떠올라서 나는 아까 찾은 가슴살을 세찬의 치킨더미 위에 올려주면서 말했다.


"닭다리랑 교환하자."
"다 가져가라."
"히히, 고마워."

치킨 8마리.
다리가 16개.
이걸 내가 다 먹을 수 있는거 조금 행복하지 않아?
날개도 맛있어. 그런 날개도 16개.
흐흐흐….
 

16560660697631.jpg 



"진짜 친해보이네. 혹시 양다리니?"
"켁!"


양다리라니!
무슨 그런말도 안되는 소리를…!
순간 사레가 들려서 이라의 뒤통수에 분비물이 좀 튀었다.


"이, 이라야 괜찮아? 지혜야, 물티슈좀."
"뭐,뭐? 이것도 명령이야?"


지혜는 당황하며 물티슈를 건네줬다.
나는 당당해하며 물티슈를 받아들었고.

"싫으면 해제해."
"안한다고."
"흐음, 그래."


어디까지 가나 보자구.
나는 이라의 뒤통수에 묻은 이물질을 다 닦아주고, 닭다리를 먹었다.
이라의 머리 위에서 먹다가 또 흘릴까봐, 조금 허리를 앞으로 숙여서 치킨을 탐닉했다.


근데 이러고 있으니까 왠지 이라가 먹질 못하는 것 같다.
닿는게 신경쓰이는걸까?

그 모습을 바라보던 지혜가 나에게 삿대질을하며 소리쳤다.


"이,이제는 그 꼬맹이한테도 끼를 부리는거야? 이 여우같은 여자! 김석주도 그렇게 홀려냈지!"
"뭐, 뭔 소리야!"
"이거 선천적으로 완전 구미호야! 여기저기 다 꼬리를 쳐!"
"내, 내, 내가 언제!!"
"심지어 자각도 없어!"
"아하하하하! 너무 웃기다! 아하하!"

지혜는 나의 기묘한 거리감을 지적했고, 그런 모습을보며 하루살이는 자지러질듯 웃어제꼈다.
그치만 이라는 이렇게 달라붙어있지 않으면 개가 되어버린다고!
또 세찬이랑은 원래 친했고!
그래서 그런거지, 다른 의도는 없어!

당분간 지혜와의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질 모양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