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뒷수습
나는 별일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지혜의 침을 내 몸에 주사하는게 배덕적이라고 느꼈었다.
그래, 그런 쓸데없는 걱정이나 할 정도로 난 태평하게 생각했었던 것이다.
오산이었다.
"흐어어어엉!"
"씨끄러워! 니가 한다고 했다며!"
"그히안…!"
내가 우는소리를 내자, 세찬이가 나를 다그쳤다.
아니, 내가 하기로 하긴 했는데…!
아아 따가워! 간지러워! 침도 줄줄새고, 뭔가 삼키려고하면 가슴이 너무 아파! 왜 가슴이 아픈거지?
머리도 아프고, 몸도 부들부들 떨린다.
나 바이러스 너무 잘 받는데?
고통은 익숙한줄 알았는데, 모든 고통에 익숙한건 아닌 모양이다.
거기다 내가 발작할까봐 그때 묵혀둔 개목걸이까지 차니까 진짜 기분까지 개같다.
거기에 광견병까지 걸렸네!
왈왈! 씨발! 나는 미친개다!
"이라아아야아아ㅡ 냐 쥬거어어…"
나는 비닐을 씌운 커다란 고무통에 머리를 처박고 침을 흘려대고 있다.
옷은 이미 환자복으로 환복했고, 독방에 격리된 상태.
으에에… 뒤질거같애….
"흐이이이 얘니머얼 테라피이이…. 햐교 시퍼어…"
매일매일 쓰다듬던 이라의 북슬한 털이 없으니까 너무 견디기 힘들어….
하지만 이라는 개고… 병 이름이 광견병인데 어떻게 같이 있을수 있겠냐고….
그리고 내가 이러고 있는거 이라한테 보여주기도 싫다.
애는 좋은것만 보고 자라야지.
이미 안좋은걸 너무 많이 봐버렸지만….
"흐으으에에엑…."
"지치지도 않나…. 참나."
"으이믜 다 지쳐쎠어어…."
침을 삼킬수가 없다보니 다 통에 받고있는데, 내 침엔 바이러스가 가득한 상태라서 그냥 버릴수가 없단다. 게다가 혹시모를 탈수나 영양결핍으로 항체 생성이 안된다든가 할수도 있으니 무려 수혈까지 받고있었다.
아, 수혈은 너무 달다…. 몸에 활력이 돌…다가 침으로 다 빠져나가는기분.
미칠거같애.
정신나갈거같애ㅐㅐㅐ
세찬이는 방균복을 입고 수혈팩을 갈아주고는 내 침이 담긴 봉투를 회수해갔다.
비닐봉투에는 바이오해저드 표시가 박혀있다.
벌써 세봉지째.
내 몸에서 이렇게 많은 침이 나올수 있다는걸 처음 알았다.
아무리봐도 물리법칙에 위배되는거 아닐까.
비닐을 들고 나가려던 세찬이가 조금 걱정스런 어투로 내게 물었다.
"필요한건 없냐?"
"붸에에에에….."
그런데 딱히 뭐 생각나는것도 없고, 생각할 정신도 없었다.
그냥 무의미하게 성대를 울려가며 가슴부터 올라오는 통증을 쏟아내고 있을 뿐.
"….... 됐다. 필요하면 말해."
"웨에에에에….."
어… 어쩌지. 이제 슬슬 눈앞이 흐린데.
난 침통에 머리를 처박고 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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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슬부슬 눈을 떴다. 눈 뜨자마자 보인게 내 침 한바가지라니.
존나 끔찍하다.
"웩!"
구토감이 몰려와서 그대로 토했다.
뭐 먹었더라 내가? 아, 우유한통정도 뿐인가.
배고픔이 안느껴진다고 자꾸 끼니를 거르네. 으윽.
고체는 하나도 안먹어서 위액이랑 침이랑 우유만 섞여서 목젖을 때리며 분출됐다.
"크훽, 우웩!"
가슴이…! 존나 아파!
이거 바이러스 흡혈귀한테도 좀 치명적인거 아닌가?
나는 내 몸을 믿었는데, 이렇게 배신하는게 어딨어.
릴리스! 힘을 내라고!
빨리 회복해보이란 말이야!
애매하게 튼튼해서 정신을 잃지도 못하고 계속 아프기만 해야한다니. 흑흑.
병약 흡혈귀 미소녀가 되어버렷….
"아아, 졘쟝….걔가턔"
목이 마르다. 그런데 뭔가 마실수가 없다.
머리도 아프다.
그래도 어제보단 좀 나은것 같기도하고.
어제? 어제가 맞나?
시간감각이 없다.
눈감았다 떴으니까 어제겠지 뭐.
통에다 침을 흘리며 죽을소리를 내던중, 의사가 방균복을 입고 방에 들어왔다.
"좀 괜찮아졌니?"
"아이요…."
"……그래보이긴 하네."
"듸지꺼 가태요…."
"그래도 점점 나아지고 있기는 해. 조금만 더 힘내."
"웨엑, 웨에에엑!"
의사싫어! 병원도 싫어! 아픈것도 싫어!
집에가고싶다.
아, 밀크셰이크 마시고싶다. 존나 달달하게.
그런데 그생각을 하니까또 가슴이 저릿하게 아프다. 크윽.
참자, 지혜를 살리기 위해서야. 추억을 생각해.
'석주야, 이부분 모르겠는데. 가르쳐줄래? 커피 사줄게.'
'과제 다했어? 나좀 보여주면 안돼? 커피 사줄게.'
'같은조네? 회의는 저기 카페에서 하는거 어때? 커피 사줄게.'
등등.
"시뱔?"
나 무슨 커피탱크였냐?
다 커피사줄게로 귀결되네.
내가 그렇게 커피를 좋아했던가.
과제나 공부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카페인 섭취하려고 마신거지 별로 좋아서 마신건 아니었다.
게다가 딱히 커피를 좋아한다고 어필하지도 않았던거 같은데.
모르겠다, 더 생각을 못하겠어.
"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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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사실.
좃같은 일은 겹쳐서 벌어진다는 것이다.
머피의 법칙? 그보다 더한 뭔가가 있다.
"왜 오느을인뎨."
"……"
나는 침 바가지를 붙잡고 변기에 앉아있었다.
하, 대충 주기를 보니까 할때쯤 됐다고 생각은 했는데, 왜 오늘이냐?
진짜 레전드다. 시~팔~.
짜증나 미쳐버리겠네.
"진짜 괜찮니?"
"아이요."
"… 미안, 괜히 말했나."
"아이에요. 그양…."
뭐 방법이 없었으니 어쩔 수 없지.
흐음. 뭔가 해탈할것 같은데.
너무 강한 충격과 스트레스에 결국 뇌에서 이상을 일으킨걸까?
아니면 그냥 바이러스가 뇌를 침투해서 지랄을 싸놓는걸까?
제기랄, 변기에서 일어설 힘도 없다.
의사가 내게 생리대를 채워주고 휠체어에 옮긴다.
원래 엄청 수치스러울 일인데, 존나 아무런 감정이 안든다.
의사가 약간 이상한 표정으로 지껄인다.
"흐음. 이런 경험은 또 색다르…"
"댝쳐."
"후후후흐…."
머리끄댕이라도 붙잡고 싶었지만, 그냥 포기했다.
미친사람.
왜 내 주변엔 다 미친사람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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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째.
난 침대에 누운채로 의사와 세찬과 유디라의 축하를 받았다.
"축하해. 다 나았네. 항체도 추출했어. 이제 배양만 하면 돼."
"흐흐. 흐흐흐…."
나았다.
나았는데, 왜 이렇게 기쁘지가 않지?
나는 침대에 누운채 실성한듯이 웃고 있었다.
이라는 내가 만지지 않은지 꽤 지나서 계속 개가 되어있는 상태였다고 한다.
뭐 그렇겠지.
지금도 개인 상태다.
"이라, 이리와."
-컹.
한번 작게 짖고는 슬쩍 침대위로 뛰어올라오는 대형견.
나는 팔을 벌려서 녀석을 안았다.
하… 힐링이 된다.
이정도면 나 이라한테 중독된거같아.
나중에 큰 인형이라도 사야되나. 다키마쿠라처럼.
좋아. 집에가면 커다란 개 인형 하나 사야지.
그래. 인형은 안 무니까.
나는 품속에 이라를 껴안은채 눈을감고 이라의 털냄새를 맡았다.
흐음, 안씻은 개 냄새가 나.
쩔잖아.
요 며칠 내 침 냄새랑 위액냄새같은거만 맡아서 새로운 후각적인 자극이 썩 즐거웠다.
마음껏 이라의 등에 얼굴을 비비며 입을 열었다.
"진짜 죽는줄 알았어."
"뭐, 수고했다."
세찬이도 내 노고를 인정한다.
그래,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지.
이 몸이 그래도 사람을 살리는데 도움이 됐잖아.
나는 뿌듯함을 느낀다.
젠장.
그거라도 느껴야지, 안그러면 억울해서 뒤졌다.
나는 바이러스 자체는 다 나았다지만 후유증이 조금 있었다.
지금도 조금 느껴지는 가슴통증과, 아랫배의 불편함과, 살짝 어둡고 흐려진 시야를 얻었다.
와. 병약 미소녀.
결국 컨셉에 잡아먹혀버렸다.
미쳐버리겠네.
혈류를 돌려서 치유할 수도 있긴 하겠지만, 지금은 몸에 피 돌릴 힘도 없었다.
그리고 피를 너무 많이 잃기도 했고.
"하아…. 근데 눈이 잘 안보여요."
"일시적인거야. 며칠 지나면 나아지겠지. 수혈팩 꽂아줄까?"
"예. 그리고 물…아니, 우유도요."
그동안 목으로 아무것도 넘기질 못해서 마실게 너무 땡겼다.
유디라가 역시나 1.5리터짜리 병에 담긴 우유를 갖다주고, 나는 이라를 놓고 상체를 일으켜서 그걸 원샷했다.
"크으…! 살겠다."
빈속에 우유를 퍼붓다니. 원래라면 안할 짓거리였다.
그런데 내 몸이 피를 원하는걸. 하지만 사람 피는 마시면 안되니까….
유디라는 조금 의아한듯 내게 물었다.
"수혈은 받으면서 왜 팩은 안마셔? 나같으면 팩을 마셨겠다."
"맛에 중독될까봐 무서워서요."
"흐음. 그건 그래. 중독성이 있지."
사람피는 시중에서 구하기도 힘들고, 보면 뭔가 다른 느낌이 든다.
마시면 확실히 돌이킬 수 없을 것 같다고 할까.
게다가 맛들리게 되면 왠지 가장가까운 사람한테 이빨 박아넣을것 같아서 두렵다.
아마 대상은 주로 한세찬이 되겠지.
나는 세찬의 팔뚝을 물고있는 나를 상상하다가, 순간 목에 이빨을 박아넣고 있는 나까지 연계로 상상하고 말았다.
시발, 이건 흡혈귀새끼 때문에 연상되어버렸잖아.
흡혈을 목을 물어서 하다니?
그것도 한세찬 목을?
이빨이 들어가긴 할까.
나는 머리를 거세게 흔들어 상념을 지웠다.
그딴 현실, 나는 감당할수가 없어.
나는 머리통이 울리는것 같아서 두손으로 머리를 감싸쥐었다.
"아, 머리아퍼."
"갑자기 머리를 흔들어대니까 그렇지. 발작이야?"
"비슷해."
세찬이는 사건의 원인을 참 잘 파악하는 친구였다.
쓸데없이 말이다.
"지혜는 어떨것 같아요? 나을까요?"
"응, 뭐. 어떻게든 될것같네. 수고했어, 릴리스. 아니면, 김석주쪽이 좋아?"
이제와서?
원래라면 김석주로 통일했겠지만, 이제 나도 이름따위가 뭔 상관이냐는 생각이 든다.
여기저기서 다 지 맘대로 부르는데.
"휴…. 마음대로 불러요. 이제 아무래도 상관 없어…."
"그럼 릴리라고 부를게. 그쪽이 더 귀여우니까."
"……."
이지선다에서 제3의 답을 찾아내는 능력을 가진 여자.
그것이 의사였다.
괜히 토 달 힘도 없어서, 그냥 무언으로 긍정했다.
"음, 그럼 나도 그럴래. 릴리스는 뭔가 딱딱하잖아?"
"… 그러세요. 하고싶은거 다 하세요."
유디라까지 대세에 편승한다. 그래, 우리 유디라 하고싶은거 다해.
나는 조금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래, 맘대로 부르라지.
"아차, 난 이제 바빠질것 같아서 먼저 가볼게. 일단 푹 쉬어."
"푹쉬고, 혹시 도움 필요하면 불러! 릴리!"
그 말을 끝으로 의사와 유디라는 같이 나가버렸다.
둘이 나가는걸 확인하자, 나는 세찬이로 보이는 인영을 응시하며 말했다.
"근데 너는 김석주라고 불러야돼."
"뭐? 갑자기 뭔소리야?"
"여기서 내가 김석주일때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너밖에 없잖아."
내 본질을 정확히 알아주는 녀석은 한세찬 뿐이었다.
인간 남성의 나와, 흡혈귀 여성의 나를 전부 하나로 이어주는 친구는 얘밖에 없으니까.
딱 이 몸으로 변하고 그 뒷수습을 이따구로 해놨으니 아마 누군가에게 밝히지도 못할것 같다.
그러면 지금의 김석주는 한세찬의 속에만 살아있을 수 있는거 아닐까?
아님말고.
그런데 세찬이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냐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뭐, 생리냐?"
"하씨, 근데 그것도 맞긴한데."
나는 어이가 없어져서 웃었다.
어딘가 망가진것같은 느낌이었지만, 난 그 느낌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몸을 뉘어 이라를 베고 이불을 덮었다.
폭신한 털 베게를 벤것같다.
눈을 깜빡일때마다 바로 졸음이 쏟아진다.
이 개목걸이탓인가, 내가 몸이 약해진 탓인가, 아니면 내가 흡혈귀가 된 탓인가, 생리를 하는 탓인가, 기분이 좋아진 탓인가, 아니면 안심을 해서 마음이 가벼워진 탓인가.
어쩌면 그 전부일지도 모르지.
"세찬아."
"또 뭐."
"나 불좀꺼줄래?"
나는 잘 보이지 않는 눈을 감아버리고 손가락을 들어 총을 쏘듯이 천장에 대고 까딱이며 퓨퓨 소리를 냈다.
내가 예전부터 쓰던 불 좀 빨리 끄라는 제스처였다.
"하, 참나."
-탁!
조금은 신경질적인 소리와 함께 눈꺼풀 너머로 들어오는 빛이 사라진걸 느끼자, 나는 그대로 잠들었다.
"자라, 김석주."
나는 잠들기전에 씨익 웃었다.
작게 말한다고 한거같은데, 다 들렸어 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