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뒷수습
유디라가 나에게 우유한병을 건넸다.나는 무슨 250ml짜리 조그만 종이곽을 생각하고 있어서 놀랐는데, 또 마시기시작하니 입도 안떼고 1리터가 넘는 그걸 원샷때려버리는 나에게 더 놀랐다.
나도 어지간히도 목이 말랐나보군.
확실히 음료수같은건 진짜 잘 넘기는 몸이 되었다.
"감사합니다. 확실히 이제 좀 낫네요."
"그치? 우유도 효과 있다니까."
유디라가 씨익 웃는다.
시체랑 인간들 널부러진데서 짓기엔 퍽 어울리지 않는 표정이었다.
뭐, 흡혈귀는 다들 이상하니까. 나도 충분히 이상하고.
나는 우유병을 대충 구겨서 쓰래기통에 던졌다.
오, 이번엔 넣었네. 점점 몸이 익숙해지는건가.
생각해보면 꽤 됐지. 이 상태가 된지 말이야.
자꾸 물리저해 강도가 바뀌다보니 적응하기 힘든 감도 있는데, 이제 어느정도 할만하다.
언젠가 물리저해 없이도 생활 할 수 있게 되려나.
하지만 나는 내가 하는 모든 행동에 힘조절을 신경써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 매일매일 너무 스트레스 받을것 같은데.
이빨 닦다가도 칫솔 부러뜨리는걸 걱정해야 하는 삶? 윽. 스트레스.
그런데 사자인형탈 알바생은… 저기 누워있군.
다행히 죽지는 않은 모양이다. 부상자들의 라인에 누워있다.
저 사람은 그냥 알바생처럼 보였었는데.
혹시 저 사람도 정신간섭을 당했었던걸까?
그래서 흡혈귀가 우리가 뭔가 할 거란걸 미리 알았던거려나.
"어휴, 이런게 견습임무라고? 랭크시스템 문제 있는거 아냐?"
"그래요. 큰일이었겠네, 이거. 누가 완수한거에요?"
시체더미를 넘어오는 두명의 인물이 보였다.
하나는 남자, 하나는 여자였다.
남자는 정장에 지팡일 들고 있었고, 체형은 약간 세찬이 과라고 할까. 헬창의 느낌이 났다. 인상은 더 순해 보이지만.
여자쪽도 정장차림새의 긴 생머리. 거기에 안경을 착용한 지적인 느낌의 여성이었다.
나는 이게 그 특이사항인가 해서 경계를 조금 시작했다.
"아, 뉴페이스로군. 견습인가?"
"누구시죠?"
내가 이라를 살짝 무릎에서 내려두고 일어서자, 남녀중에 남자가 말했다.
"미안, 소개도 없이 들떠버렸네. 이 바닥이란게 원래 고이는 경향이 조금 있어서 신입은 잘 들어오지 않거든. 특히 너같은 귀여운 어린애는."
"윽."
귀여운 어린애 아닙니다. 왜 다들 날 어린애로 보는거지? 난 내가 앳되더라도 충분히 성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애취급하면 처음에 이 몸을 야하다고 생각한 내가 소아성애자가 되는거잖아.
쓰벌.
내가 속으로 뭘 생각하든지 상관없는 그들은 웃으며 유디라에게 시선을 돌렸다.
"오오, 이게 누구야. 유디라! 아직도 안죽었네."
"아, 오랜만. 너야말로 살아있네. 이게 몇년만이지?"
"구체적인 날짜는 이야기하지 말기로 하죠, 우리."
여자가 끼어들었다.
음, 나이를 추측할 수 있는 질문이 차단되어버렸군.
유디라와 아는 사이인가.
남자가 손을 내밀며 입을 열었다.
"당신 참 오래도 살아있네."
"당연히, 그년을 내 손으로 죽이기 전엔 죽을 수 없지."
유디라는 가볍게 인사하며 악수를 받았다.
흐음. 정말 친한가봐.
나는 조금 경계를 풀었다.
"그렇군. 이 사건은 그럼 실버의 솜씬가? 아, 실버 그사람 아직 안죽었지?"
"멀쩡해. 아니, 멀쩡하지는 않나? 어째든 이거는 목수랑 거기 그 사냥꾼 솜씨지. 우리는 지원."
"호오? '목수'? 별일이네. 은퇴한줄 알았는데. 불러주겠어? 그와 얘기하고싶은데."
"뭐, 안될거 있겠나. 릴리? 데려와줄래?"
유디라는 그렇게 말하곤 미소지었다.
음, 그래. 내가 남는것보다야 낫겠지.
내가 남으면 어색해서 못 견딜걸.
"알겠어요."
내가 끄덕이며 일어나자, 여자가 나에게 말했다.
"긴장 풀어요. 뭐, 이런 상황에서야 당연히 긴장을 하긴 하겠지만."
"아하하. 그런가요."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뒤통수를 긁었다.
뭐 딱히 시체나 상황때문에 긴장한것은 아니었다. 그냥 저 두 사람이 경계대상이었을 뿐.
아무래도 내가 견습사냥꾼의 증표를 달고 있기 때문에 사냥꾼으로 알아봐주는것은 다행이긴 했다.
흡혈귀라는걸 공공연히떠들어대고 싶지는 않으니까.
입다물고 있으면 VP측정이라도 당하지 않으면 모르겠지?
그걸 알고선 유디라는 나를 보낸걸까.
이라는 나를 쫄래쫄래 따라왔다.
이제는 대형견 정도로 작아진것이, 상당히 진정되어보였다.
그렇지만 사람으로 돌려놓지는 못할것 같다. 옷이 다 찢어져버려서….
"세찬아, 누가 왔는데?"
"아, 드디어 왔나보네."
허리를 숙인채 VP측정기를 대보고 맥박을 짚어보고하면서 여러모로 분류작업을 하던 세찬의 모습은 마치 추수하는 아낙네를 연상케했다.
미친, 저렇게생긴 아낙네라니.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군.
허리를 펴고 등을 치던 세찬이는 안내하라며 내 앞을 가리켰다.
"그런데 누구야? 그 두사람?"
"장의사."
"아하."
장의사라.
시발, 오늘 장의사는 계탔네.
이렇게 시체가 많다니.
"장의사가 정확히 뭘하는데?"
"정보통제, 희생자처리, 시설복구…. 뭐 뒷정리같은걸 하는거지. 다행인건 그다지 시설피해가 없었다는 점이라고 할까."
"허."
시계탑이 무너진것은 그다지 큰 피해가 아닌가. 하긴, 여기 놀이기구 하나가 최소 몇백억은 할것같은데. 그걸 부숴먹지 않은건 매우 다행이다. 으으.
"그나저나, 이건 어떻게될지 모르겠네. 저 흡혈귀가 이 난장판을 수습할정도로 돈이 될 것 같지는 않은데."
세찬이는 시선을 세상 모르게 마약에 취해 자고있는 흡혈귀를 향했다.
저놈 저거 내피 마시더니 좀 젊어진것같은 느낌도 든다. 화나네.
내 피같은 피…. 아니, 피니까 피가 맞는데….
뭐래는거냐.
무심결에 나는 생각나는대로 말해버렸다.
"그런데 저놈, 내피를 꽤나 마셨는데, 의외로 비싸게 쳐줄수도 있는거 아닐까?"
"뭐?"
"그렇잖아. 자세히보니까 좀 젊어진것 같기도하고."
내말을 들은 한세찬이 조금 고민하는 듯 한 표정을 지었다.
"……."
"데려올까?"
"그래. 한번 검사는 해보자."
녀석도 뭔가 느끼는바가 있는지 내게 동의해왔다.
그래, 먹지도 못할놈이니 돈이라도 많이 받아야지.
난 녀석의 목덜미를 붙잡고 질질 끌면서 세찬이에게 붙었다.
가까이서 보니까 확실히 주름살이좀 펴졌다고하나. 피부도 좋아졌다.
내 피에는 주름개선과 피부보습효과도 있는걸까?
"이거봐. 젊어졌다니까? 이거 내피 마셔서 그런게 분명해."
"그렇군…. 잠깐 나와봐."
나는 그 흡혈귀를 내려놓고 몇걸음 떨어졌다.
세찬이가 대자, 미친듯이 진동하는 측정기. 나를 측정할때랑 비슷한 반응이다.
"유레카…. 이건뭐, 거의 연금술이잖아."
"이놈 팔면 얼마나 받을까?"
웃기는 얘기지만, 나는 이제 인륜을 포기했다.
아니 인륜도 아니지, 흡혈귀는 인간을 잡아먹는 놈들이고, 지금 이 흡혈귀때문에 몇명이 죽었는지 세고있는 와중인데.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이게 죄책감이 느껴지질 않는다.
"어쩌면 여길 다 고치고 남을정도…. 유가족들 위로금까지 빵빵하게 챙겨줄 수 있겠는데."
"어떻길래?"
"이 흡혈귀는 이제 VP만 보면거의 가주급이야. 보아하니 거부반응도 없는것 같고, 과흡혈 현상의 징조도 보이지 않는데."
세찬의 말에 난 살짝 놀랐다.
분명히 그정도로 쎈놈은 아니었는데.
이런데에 숨어있는꼴만 봐도 그렇고 말이다.
"쯧, 살아있는 가주급이라니. 녀석도 곱게 죽을 순 없겠네."
"어떻게 되는건데?"
"한달정도 이리저리 해부당하다가 죽이거나 연명만 시키겠지. 꽤나 희귀한 샘플이니까."
이 말엔 좀 더 놀랐다.
생각해보니 나도 이 흡혈귀랑 별로 다를건 없었다. 들킨다면 말이지.
으윽, 무조건 숨긴다.
"왜, 걱정되나?"
"그래. 나도 일단은 흡혈귀인거잖아?"
"하긴, 넌 원래부터 그런거 숨기는거 드럽게 못했지."
"윽."
맞는말이다. 사실 나는 비밀을 그렇게 잘 숨기는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왠만해선 그냥 비밀을 먼저 말해버리는 성격이지.
안그래도 요즘들어 비밀이 너무 많아져서 머리가 터질것 같은지라, 실수하면 돌이킬 수 없는 사람들 앞에 서고 싶지는 않다.
특히 그 비밀들이 자꾸 나를 여성스럽게 행동하도록 제약한단말이지.
누가그랬던가, 비밀은 여자를 여자답게 만든다고?
시발, 틀린말 하나 없다.
"그럼 따라오지마. 그러고보니 송지혜? 걔한테 가보는게 좋겠네. 실버한테 결계 이어달라고 그래. B-2타입. 아마 기억하고 있을걸."
"알았어. 그런데 다른 애들은?"
"걔들은 이미 기억 지우고 버스태워 보냈는데. 확인해보니 별로 기억하는 것도 없어서 가장 먼저 보냈지. 아마 가다가 일어날거다."
"허."
하긴, 이런곳에 오래 놔두면 불안하긴 해.
그래서 부상자들이나 사망자만 모아두고 멀쩡한 사람들은 따로 기억을 지우는 중이었다.
아마 지금 온 그 사람들이 기억을 지운 사람들은 집으로 돌려보내거나 하려나.
난 질질 끌던 흡혈귀를 대충 던져버리고 후다닥 돌아갔다.
이라도 졸졸따라오는데, 강아지랑 산책나온 기분이라 좀 이상했다.
자꾸 바닥에 정렬시켜둔 시체가 눈에 밟혀서 뭔가 내가 이런 기분을 느껴도 되는건가 싶고….
우엑 모르겠다. 왜 자꾸 신경쓰이지. 아니, 신경쓰이는게 정상인건 맞는데.
"실버, 지혜는 어때요? 괜찮은가요?"
"아, 릴리양. 음…. 그닥 좋은 상태라곤 볼 수 없지만, 세찬님이 조치를 해뒀으니 악화되지는 않을겁니다. 병원에가면 아마 괜찮아지겠죠."
"휴, 그런가요."
일단 내가 갈긴 숄더태클로 죽지는 않을거라는 얘기를 들으니 그나마 마음이 편해졌다.
아무리 인간의 죽음같은거에 무감각해졌다고해도 역시 원래 알던 사람이 죽는다는건 슬플 것 같았다.
게다가 그 원인이 나 때문에 죽는거면 말이야….
"결계를 열어드릴까요?"
"네. 그래주실래요? B-2타입이라고 그랬던거같은데."
"알고있습니다. 잠시."
실버가 품속에서 볼펜을 꺼내 허공에 뭔가를 그리고 있었다.
뭔가 금방 끝날것 같지가 않아서 뭐라도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는게 하나도 없으니 원.
"그런데 그 얘기 진짜에요? 패밀리어 계약을 끊지 않고 흡혈귀가 죽으면 패밀리어도 죽는다는 이야기?"
"그렇습니다. 패밀리어라는건 주인이 된 흡혈귀에 종속된다는 이야기니까 말입니다."
"…. 끔찍하네요."
이거, 그냥 노예제도의 부활이 아닌가.
그것도 더 악랄한 노예제도다.
노예들은 주인이 죽으면 최소한 자유를 얻는데.
패밀리어는 그냥 같이 죽어야된다고?
"자, 들어가시죠."
"에휴, 그래야겠죠. 감사합니다."
나는 한숨이 나왔다.
조심스레 결계로 들어간 나는 지혜의 상태를 확인했다.
지혜가 괴로운듯이 힘든 숨을 내뱉고있는것을 보니까 속이 쓰리다.
앞으론 뭘 하든간에 여러번 확인을 하고 손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들게한다….
지혜가 몸을 떨며 신음했다.
"으윽…."
"정신이 들어?"
"흐으…."
"…아닌가."
도로 기절한것 같다.
으음…. 하긴, 지금 깨어나면 뭐라고 설명할지 너무 까마득하다.
그냥 달려오다가 부딫혔네 데헷 정도로는 넘어갈수 없을것 같은데.
"흐음…."
나는 손수건을 꺼내서 지혜의 땀을 닦아주었다.
따지고보면 언젠가 일어날 일이기는 했지만, 얘들이 놀이공원에 오기전에 미리 흡혈귀를 치워놨으면 어땠을까.
문제는 얘네들이 개강전에 가자는 이야기를 나한테 너무 늦게 했다는 사실이다.
개강이 이제 일주일도 안남았었으니까.
그나저나 점점 지혜의 낯빛이 나빠지는걸 보니 걱정된다.
기억같은것도 지워야할텐데. 내 숄더태클에 당한 부분부터… 어디까지 지워야하지?
이런 고민을 하고 있었더니, 지혜가 정말로 눈을 떴다.
"…."
"진짜로 정신이 들…."
내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지혜가 상체를 일으키며 다짜고짜 칼을 휘둘러왔으니까.
대체 저런건 언제 숨겨둔거야?
"정신차려! 송지혜!"
"……."
나를 공격하는 지혜의 눈에는 초점이 풀려있었다.
설마 광견병인가?
자기 패밀리어한테는 전부 심어둔거냐?
나는 지혜의 나이프를 든 손을 붙잡아 바닥으로 몰아세웠다.
그러자 충격으로 손에서 나이프를 놓치는 그녀.
이번엔 극도로 집중한 힘조절로 뼈를 부러트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지혜가 나를 투닥거리며 공격해왔지만, 별로 아프진 않다.
"캬아악!"
"윽!"
난 팔을 내밀어 물리지 않으려고 지혜의 목을 약하게 압박했다.
내딴엔 약한거지만, 더 힘을 주면 목뼈가 부러질지도 모르겠다.
으으, 나에게 물리저해를 켜야하나?
이빨을 딱 딱 부딫히며 다가온 얼굴을 보니 좀 무섭긴하다.
얘가 내가 알던 송지혜라고?
"실버, 들려요? 지혜의 상태가 이상해요!"
-이런. 일단 나오십시오. 바로 재우겠습니다!
나는 재빨리 몸을 일으켜 결계에서 도망쳐나왔고, 실버는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 지혜의 미간에 쏴버렸다.
거의 서부영화에 나올만한 속사였다.
그러자 다트형 총알이 미간에 박힌 지혜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려한다.
나는 그런 지혜를 앞으로 쓰러지지 않게 받친다.
가슴에 박히놓은 침도 그렇고, 머리에 다트도 그렇고…. 앞으로쓰러지면 안될것 같아서.
제기랄.
"지혜양도 패밀리어니 정신간섭으로 정상처럼 보이도록 해놓은 모양이군요."
"… 방법이 없을까요?"
"지금은…. 일단 안정을 취해야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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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데려왔다고?"
"네. 뭐 방법 없을까요?"
"하아, 아니. 변종을 나더러 어쩌라고…. 흠…."
내가 지혜를 데려온곳은 내가 평소에 꽤나 신세를 졌던 병원.
아무래도 일반병원엔 데려가봤자 무슨 방법이 없을것 같았기 때문이다.
변종바이러스. 기존에 만들어둔 백신도 없다.
그러면 차라리 사냥꾼의 오컬트적 시술같은게 더 신빙성 있지.
오컬트 같은걸 믿다니, 남들이 보면 미친놈소리 듣기 딱 좋겠다.
하지만 어쩌겠어, 진짜 오컬트 비슷한게 세상에 있는걸.
일단 지혜는 내가 부숴버린 갈비뼈와 다친 부위를 치료하고 침대에 묶어서 진정제와 영양제를 투여하는 중이다.
의사는 눈을 감고 골똘히 생각하다가 말을 골랐다.
"으음… 일단 광견병 베이스라고 했으니…. 정확히 어떤지는 검사를 해봐야겠지만, 보통 증상 발병후 2주정도 지나면 대부분 죽어."
"2주요…."
나는 지혜의 시한부 선고에 눈앞이 아찔해졌다.
"……."
의사가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잡았다.
"하지만 지금은 연구자도 없어서 나혼자 감당하기는 조금 버거운데. 이거 쉽지 않겠는걸. 나는 외과전문의란 말이지."
"꼭 살려주시면 안될까요. 선생님? 지혜 말고도 22명정도가 더 있어요."
사망자 13명, 부상자 55명, 그중에 감염자 23명.
이것이 총 피해인구수다.
하나의 흡혈귀가 일으킨 테러가 꽤나 끔찍한 결과를 불러왔다.
만약 우리가 없었으면 더 큰 피해가 있었겠지.
장의사측도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피해액 계산이 쉽지 않을 것 같다던가.
최소 몇백억은 들거라던데…. 가주급 하나가 몇백억이나 할까…?
일단 아버지께 넘기기위해서 흡혈귀는 병원 지하실에 감금해둔 상태다.
그렇다. 지하실.
감금하면 떠오르는 그곳.
그런데 그걸 감금이라고 하야하나, 구속? 아니, 거의 반즈음은 해부상태라고 봐야한다.
꽤나 살벌한 모양이라서 나는 등에 식은땀이 흘렀었다.
어…. 변한 첫날에 잘못 대답했으면 내가 그꼴이 됐겠지.
무서운 사람들…. 흡혈귀만큼 무서워….
"그렇게까지 부탁한다면야…. 알겠어. 일단 해볼만큼은 해볼게. 대신에."
"네?"
"흠, 나중에 내 부탁 하나 들어줘."
… 뭔가 불안한데.
대체 뭘 시키려고 나중으로 미룬단 말인가.
실실 웃는 저 녹색 눈을 뽑아버리고 싶다….
"이상한거 빼고요."
"이상한게 뭔데?"
"장난치지 마시고 진지하게 해주실래요?"
나는 조금 화를 냈다.
상황이 이런데 자꾸 장난이나 치다니.
그런 내 모습을 보자 의사도 '이크, 미소녀를 화나게 할 순 없지'라며 손을 들었다.
에휴, 여전히 이상한 사람이다.
지혜도 나름 미소녀인데. 지금은 화장이고 뭐고 번지고 난리나서
내가 깨끗히 다 닦아줬기 때문에 쌩얼이지만, 그래도 미인이긴하다.
특히 고등학생때랑 비교해서 많이 예뻐져서 대학교에선 인기도 많고 그런다.
대체 바이러스가 뭐라고….
"그런데 흡혈귀가 어떻게 바이러스를 만들 수 있는건가요?"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보통 그런 바이러스같은건 최첨단 기계식 설비가 있어야 만들 수 있는것 아닌가? 놀이공원을 다 뒤졌지만 그런게 있을법한 곳은 보이지 않았다.
"왜, 궁금해? 너도 바이러스 하나 만들어보려고?"
의사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손사래쳤다.
"무슨 말도 안되는소리를. 혹시 제가 도와드릴 수 있나 해서…."
"흐음~. 그렇네.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너, 생물전공 했었어?"
"아뇨, 전 공학계열이라…."
나는 전기과에 다니고있었으니까. 내 성적으로 장학금 받을 수 있는 학과중에 제일 취업 잘될것 같아서 선택한 전공이었다.
"그럼 자세히 설명하긴 그렇고…. 뭐, 자기 피의 세포를 변형시켜서 바이러스로 만들어내는 거라고 알고있어."
"그렇군요. 피라…."
그건 혈류제어의 연장선일까.
꽤나 고급 응용기술에 속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할 수 있는거지.
"만약 할 수 있다면 배양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대폭 줄일 수는 있겠네. 그럼 2주 안에 백신을 만들수도 있을것 같아."
"어… 유디라?"
나는 혹시 유디라가 할 수 있나 해서 물어봤다.
"나도 못해 그런거. 대체 피를 얼마나 써야하는지 감도 안오네. 난 피 쓰는거 싫어."
"어떻게해요. 그러면."
이대로 지혜가 죽어가는걸 보고있어야만 한단 말이야?
나는 가슴이 꽉 막혀서 털썩, 지혜의 옆에 앉았다.
그녀의 정신에는 패밀리어라는 사슬이, 몸에는 바이러스라는 사슬이 교차로 묶여있는 것과 같았다.
"제가 뭐 할 수 있는게 없을까요?"
"음…. 아. 조금 무식한 방법이 하나 떠올랐어."
"뭔데요?"
나는 뭔가 희망을 발견한것 같았다.
역시 의사라면 뭐라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니까!
나는 선망의 눈초리로 의사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의사는 조금 멋쩍은 표정으로 볼을 긁는다.
왜?
"네가 좀 고생해야 하긴 해."
"상관 없어요. 이대로 친구하나 영원히 잃는 것보단 낫죠."
"정말로?"
의사가 진지하게 되물었다.
나는 조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대체 뭐길래요?"
"네가 한번 걸려봐. 내생각엔 네 몸이 항체를 만들어낼 수 있을것 같은데?"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