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블러드 카니발
유령의 집이라.
귀신따위 무서워할 나이도 아니고, 귀신보다는 솔직히 흡혈귀라던가, 그때 본 슬라임촉수 흡혈귀가 훨씬 두렵고 무서운 존재다.
현재 나는 도민석, 이라와 함께 최후방을 걷고있었다. 다른 녀석들은 세찬이가 붙었다.
"이거 생각보다 무섭네."
도민석이 조금 소름이 끼친다는 듯 말하며 손전등을 여기저기 비춰댔다.
으스스한 소음과 현실감넘치는 소품들은 확실히 뭔가 공포를 자극하는것 같다.
손전등도 공포자극을 위해서인지 빛이 그리 강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는 손전등을 꺼도 너무 환하게보였기에 그다지 무서울 이유가 없었….
"왜 그렇게 떨어요? 누나."
"어? 내가 떤다니, 무슨소리야, 이라야."
"손에 땀도 나는데요."
"…."
제기랄.
이라녀석, 정말로 눈치는 빨라.
그래. 솔직히말하자면, 무섭다.
여기저기 눈일이나 창자처럼 생긴걸 걸어놨고, 뭔가 질척해보이는 액체로 데코레이션을 해둔게, 마치 에이샤의 괴물을 연상시켜서 무섭다고!
그 괴물딱지 몸속이 저런 느낌이었단 말이야!
사람머리통을 창대에 매달아 걸어놓은것 등은 봐도 별로 무섭지 않아서 왠만한 공포물은 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나도 몰랐지만, 저택의 그 사건은 나한테 조금 트라우마가 된 모양이었다.
으으,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더라?
다시 생각하니 쪽팔린데.
내가 핸드백 속의 소이탄을 만지작거리며 마음의 안식을 찾던중, 도민석이 나에게 말해왔다.
"릴리, 혹시 말 놔도 될까요?"
"아, 마음대로…."
도민석은 원래 친하지 않으면 모든 사람에게 존댓말을 하는 사람이다. 그 상대가 놀이터에서만난 6살 꼬맹이라고해도 말이지.
그래서 세찬이한테도 존댓말을 하는걸지도 모른다.
아니 근데 세찬이는 와꾸만보면 확실히 늙어보이긴 해. 무섭고. 존댓말이 나오겠지. 세찬이가 있던 고등학교 1학년때는 민석이랑 그리 안친했으니까.
"이라라고 했죠, 그쪽도 괜찮아요?"
"네, 형. 괜찮아요."
"고마워. 릴리, 그리고 이라야."
"….."
진짜 이라한테도 존댓말을 했군. 그게 도민석이긴한데.
"그나저나, 얘들아. 우리 망한것 같은데? 길을 못 찾겠어."
뭐랬지, 좀비 컨테이너 메이즈? 메이즈가 미로라는 뜻이니, 길을 좀 꼬아서 만들었나보다.
그런데 우리가 맨 뒤에 있어서 그런지 일행을 놓친것같다.
이게 다 개쫄보처럼 느릿느릿 하나하나 다 놀라던 도민석 탓이지.
뭐, 오히려 잘된것이다. 때를봐서 최면어플을 사용할 수 있을테니.
"누나, 무서운거죠. 발걸음이 느려요."
"…."
이라가 오늘따라 눈치가 빠르면서 없네.
이 당돌한녀석.…
그래도 갑툭튀마다 놀라서 벌벌떤건 내가 아니라 도민석이다.
나는 그냥 좀비분장을 한 직원따위야 별로 무섭지 않았다. 인기척 정도는 다 느껴지니까 적당히 놀라는척만 했다.
무서운건 분위기였지,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라는 오히려 뭐가 튀어나오면 깔깔대서 놀래키러 나온 직원을 당황시켰다.
잠시 후, 민석이가 이라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라는 무서운걸 되게 좋아하는구나…?"
"아뇨, 저 무서운거 싫어하는데요?"
"그래? 그런데 되게 괜찮아보이는데?"
"이건 가짜같아서 괜찮아요!"
"… 난 꽤나 실감난다고 생각하는데…."
민석이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다시 앞장섰다.
이라는 저택에서 시체무더기를 보고 두려움을 느낀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괜찮은걸까?
생각해보니 이거 이라한테는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을 뻔했다. 내 배려가 부족했던거군.
그런데 가짜같다는게 무슨 뜻인지는 알것 같아.
피가 널부러져있는데도 코에서 단내가 느껴지지 않으니까 이건 가짜라는 연상이 된다.
그런데 나는 아직 흡혈귀보다는 사람처럼 생각하고있어서 그런지, 가짜로 보려고해도 잘 안보인다.
아니, 자라보고 놀란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미쳐버리겠네 진짜로.
그나저나, 도민석이 앞장서서 걷는걸 보니 우리 셋중에 가장 쫄보가 보호자랍시고 선봉을 선다는게 웃기긴하다.
척봐도 억지로 걸어간다는 느낌인데.
오히려 이라가 더 용감하고 씩씩하다.
사실 이런경우, 팔을 들어 엑스자를 만들고 포기한다고 말하면 직원이 출구로 안내해준다는 설명이 있었으나, 우리는 그 설명을 들으며 '설마 포기하는 쫄보는 없겠지?'하고 은근히 승부욕을 내비쳤으니, 도민석이 포기할리가 없었다.
다른놈은 몰라도 도민석과 유선민은 앙숙 비슷한거라서, 맨날 승부를 걸고, 승패를 가리는 것을 즐겼으니까.
오죽하면 급식 빨리처먹는 걸로도 내기를 했다.
근데 지금 그런거 하면 내가 이기겠네.
나는 그런 옛날 생각을 하니까 괜히 웃음이 나왔다.
"큭큭…"
"릴리야, 정신차려. 너까지 왜그래?"
내가 갑자기 웃으니까 도민석이 걱정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설마 내가 너무 무서운나머지 정신을 놓아버린줄 알았나.
"푸흡, 아니…. 그냥 웃긴생각이 나서그래요."
"웃긴생각? 그거 지금 나한테도 말해주면 안될까?"
"… 안돼요."
민석이가 어지간히도 무섭나보구나.
난 에이샤의 괴물이 연상되는 눈깔과 촉수와 끈적이는 저 이상한것(?)만 없으면 눈도 깜짝 안할 자신 있는데, 왜이렇게 많냐.
뭐, 그걸 일일이 다 치우면 여기가 깨끗해질것 같기는 하지만….
"어휴, 여긴 또 어디로 가야되냐…."
도민석이 또 갈림길에 신음하며 말했다.
주위엔 아무것도, 아무도 없었다.
그걸 깨닫자 문득 고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래키는 직원은 없는건가 해서 주변을 둘러보니까 아무도 없었다.
좋아. 드디어 타이밍이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최면어플을 슬쩍 꺼낸다.
일행과 따로 한명만 떨어진 지금이 최면을 걸기엔 최적의 상황이었으니까.
"저기, 민석? 이것좀 봐봐요."
"음? 뭐…."
-끼우우웅!!
고주파음이 들리고, 화면이 번쩍하더니 도민석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 됐나?"
"……."
"여보세요? 들려요?"
"들…립니다."
"어… 오늘팬티 무슨색?"
"파란…"
됐다!
세찬이가 말한 대로네!
최면상태가되면 멍한표정이되고, 묻는말에 무의식적으로 대답하게 된다고 했으니까, 확실히 됐다.
"누나, 왜 그런게 궁금한거에요?"
"응? 아니, 세찬이가 그랬잖아. 제정신이면 대답해주지 않을만한거 물어보면 쉽다고."
"…."
이라가 날 저런 눈으로 보다니, 마음에 상처가 될것같아….
이라의 시선을 애써 의식하지않고 도민석에게 세찬이가 석주로 인식하는데 느껴지는 위화감을 억누르는 암시와, 사진과 관련한 발상등을 몇시간정도 차단하는 암시를 걸었다.
"이렇게 하면 되는건가."
어플에 세찬이가 미리 짜놓은 코드대로 그냥 실행만하면 되는거라서 별거 없었다.
고주파음이 조금 바뀌고 화면의 기하학적인, 그리고 몽환적이고 불규칙적인 패턴나열이 조금더 복잡해진다.
한세찬이 꽤나 유능해서 놀라운데.
이런것도 다룰줄 알고.
게다가 가만보면 연기자도 꽤나 잘하는것 같았다.
잠시후 어플에서 띵!소리가 나며 종료되었는데, 그게 무슨 전자레인지 조리가 끝날때 나는 소리같아서 조금 김샜다.
딱, 딱!
난 민석이의 눈앞에서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초점없이 흐릿했던 도민석의 눈동자가 움직이기 시작하고는, 주변을 황급히 살핀다.
"정신이 드세요?"
"음? 아아…? 뭐야…. 여긴 어디…."
"네버랜드 좀비 컨테이너 메이즈요. 잠깐 정신을 잃었나봐요."
"아, 아아… 그랬었나.
"저기로 가봐요. 이라가 앞장서겠대요."
사실 이라는 이미 길을 알고있는거나 마찬가지였다.
송지혜나 이채연이 뿌린 향수냄새를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난 그런거 신경도 안써서 몰랐는데, 그래도 여자애들이라고 뭔가 많이 바르는것같다.
"와. 이라야. 어떻게 그렇게 길을 잘 찾는거야?"
"그냥요!"
"그냥 신동이네 신동."
민석이가 엄지손가락을 들며 이라를 칭찬했다.
칭찬받은 이라는 쑥쓰럽다는 듯이 헤헤 웃었는데, 만약 꼬리가 있었다면 사정없이 흔들려대고 있을것 같았다.
으으, 집에가면 변신시켜서 꼬리도 만져봐야지. 그걸 안만져봤네.
그후로도 좀비분장을 한 직원이나, 크리쳐 분장을 한 직원들이 튀어나왔지만, 그때마다 도민석이 소리를 질러댄것 말고는 없었,
"……!"
"정신차려, 직원이야 직원!"
"누나, 자세히 봐요! 가짜에요 가짜!"
아, 뭐야.
가면이었구나.
"눈알공포증이라도 있는거야? 갑자기 왜 그래?"
"아니, 그…."
어… 얼굴에 눈알을 저렇게 달아놓으면 어떻게 하란거야, 진짜 존나 놀랐네.
실수로 핸드백에서 소이탄 안전클립은 제거했는데, 안전핀까지는 안뽑아서 다행이었다.
"그냥 옛날에 눈동자랑 관련된 안좋은 기억이 있어서 그래요."
"아 그래…? 그랬구나…. 음."
으으, 눈동자만보면 이제 소름이끼쳐.
그래선지 요즘은 가끔 사람눈도 잘 못 마주치겠다.
별로 주변인들에게 내색하고싶은 증상도 아니라서 나도 별로 신경쓰려고 하지 않지만 말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도민석이 날 뒤에서 끌어안고, 이라가 날 앞에서 끌어안은채였다.
뭐지 , 결계인가?
직원은 이미 도망친것같았다.
나는 상황이 파악되자 심호흡을 하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후우…. 이제 괜찮으니까 좀 놔줄래요?"
"아, 미안해."
"괜찮아요."
민석이가 내 몸에서 손을 떼자, 이라도 나에게서 떨어졌다.
난 걱정스러운 눈빛의 이라한테 진짜 괜찮다고 말하며 머리를 슥슥 문질렀다.
이거, 아무래도 이라 머리만 보면 이제 조건반사적으로 쓰다듬게 되어버렸다.
그리고 잠시후엔 핸드백 안의 소이탄에다 다시 안전클립을 달아두고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 왜그래요?"
탁탁, 치마를 쳐서 주름을 펴내는데, 민석이가 멍하니 자기손을 내려다보고 있었기에 조금 이상해보여서 녀석을 불렀다.
"어…어? 아무것도 아냐. 별 생각 안했어."
혹시 최면어플 후유증같은건가?
별로 후유증은 남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이상하다?
"뭔가 느낌이 이상해요?"
"아니, 아니야. 전혀. 오히려…."
"예?"
"아, 아니고. 내말은…. 어…. 진짜 아무것도 아냐."
"음…. 알겠어요."
왜 저러는거지.
그때 이라가 외쳤다.
"누나, 저기에요. 다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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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아, 상쾌한 공기.
사실 안 상쾌해. 밖은 역시 덥다.
하지만 심리적으로 상당히 좋은것은 맞았다.
하늘에서 내리쬐는 이 빛은 나에겐 거의 죽음의 레이저나 다름없지만, 그냥 태양빛을 보는게 좋았다.
다음부턴 귀신의집같은거 가자고 하지 말아야겠다.
도민석이 가장 마지막으로 나오며 외친다.
"깼다!"
"제일 늦었으면서, 웃기네."
"하지만! 깨긴했지."
"하지만! 늦었잖아."
선민이가 도민석의 말투를 따라하며 놀리자, 민석이 억울하단듯이 말했다.
"그런데 우리가 마지막이니까 어쩔 수 없잖아."
"그래도 너무 늦잖아. 우리가 얼마나 기다린줄 알아?"
선민이가 민석이를 놀리며 탓하고있을때, 세찬이가 슬쩍 이전에 저택에서 보여줬던 신묘한 무소음 보법을 펼쳐 내 옆으로 다가와 작게 말했다.
어떻게 가능한거지? 저 몸뚱이로.
"암시는?"
"다 했어. 너는?"
"당연히."
와, 나와는 다르게 녀석은 혼자서 3명과 들어갔는데 그걸 전부 했단 말이야?
그건 또 대체 어떻게 한거래.
"흡혈귀는?"
아 맞다, 솔직히 쫄아서 까먹고있었다.
그런데 직원들중엔 흡혈귀가 없긴했는데…. 하긴, 흡혈귀가 왜 직원마냥 튀어나와서 사람을 놀래키겠냐. 당연히 없었겠지.
"…아마 없을걸….?"
"아마? 흡혈귀 찾느라 늦은게 아니었나? 그럼 '아마'가 왜 나오지?"
"……."
할말이 없었다.
사실 그냥 길을 잃었다는 가능성은 생각해주지 않는거냐?
해줄리가 없지. 젠장.
하지만 나도 그냥 길을 잃었다고는 굳이 말하고싶지 않았다.
그냥 흡혈귀때문에 그런걸로 해.
"없을거야…."
"…알겠다. 뭐, 그렇다면 그런거겠지. 별 일도 없었고."
별일이야, 내가 막판에 눈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가면에 놀라서 여기를 소이탄으로 불태워버릴뻔한거 빼고는 별일이 없었다.
음, 정말 별일 없었군.
"그럼 허탕이네. 그래도 암시를 걸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수확은 있군."
세찬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리곤 휴대폰을꺼내 빠르게 타자를 쳐내더니, 곧 답장이 둘아온것을 읽어내리곤 휴대폰을 다시 집어넣었다.
"실버쪽도 이상 없다는군. 6시까지는 이제 두시간정도 남았는데, 애초에 수색지역이 너무 넓어."
"음, 그렇긴 해. 대체 무슨수로 이렇게 잘 숨은거지?"
"이즈음되면 불안한데. 흡혈귀가 무슨 투명망토라도 쓰는거 아닌가 모르겠어."
"그런게 있어?"
"당연히 없지."
당연히 없는게 어딨어, 지금 나는 모든게 새롭구만.
애초에 이 최면 어플도 좀 신기하다. 사람 팬티색도 알아낼 수 있고.
…이거 진짜 엄한데쓰면 큰일나긴 하겠다.
세찬이는 무슨 성능구린 뉴럴라이저 정도로 말하는 듯 하지만.
잠시 기다리자, 깔끔히 정리된 수색의 내용과, 현위치상황, 그리고 이동경로를 표시한 자료가 내 휴대폰으로 전송되어왔다.
아까 세찬이랑 문자하더니, 자료같은거 보내는김에 나한테도 보낸 모양이다.
나는 사냥꾼도 아니고, 이런 자료에 익숙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글이나 표만 봐서는 잘 모르겠어서 수색지역을 보고 아직 안간 지역을 지도에 표시했다.
이러니까 보기 쉽네.
유디라와 실버는 동쪽을 맡아 이동하며 그쪽에 위치한 놀이공원에 속한 호텔을 찾아본다는 모양이다.
그런데 흡혈귀가 숙박시설을 이용할수가 있나?
걔들이 신분증이 어디있어서 호텔을 예약해?
아니, 신분증은 나만 없는건가.
나는 갑자기 뜬금없이 변한거라 뭐 어떻게 신분증을 발급해야할지도 모르겠고.
아직까진 별로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아. 이제 또 뭐탈까? 탈거 있나? 누구 지도 갖고있는사람 없어?"
민석이가 더 놀거리를 찾고자하는 일념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 지도는 지금 내가 들고있기는한데….
"뭐야. 지도가 있었네. 말을하지 그랬어."
"야, 이제 말 텄냐? 이제 존댓말 안하네?"
"응. 귀신의 집에서. 나름 위기를 넘어온 사이다 이거지."
내게 이제 존댓말을 하지 않는 민석을보고 선민이가 물었다.
저놈이 반말을 하는 경우는 상당히 시간이 지나서 친해져야만 하니까.
나는 새로운 관계를 어째든 호의적으로 만들었다는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기로했다. 언젠가 얘들한테 모든걸 밝힐날이 올까?
아니면 다시 내 몸으로 돌아갈수는 있을까?
그런데 위기는 민석이만 위기였지, 나는 그냥 트라우마때문에 힘들었을 뿐이고.
아니, 그게 위기인가.
잠깐만, 이 지도 보여줘도 돼?
"어…. 잠깐만…."
나 수색지역 표시해놨단말이야! 이거 들키면 안되는 정보가 아닌가?
"응? 이 표시는 뭐야? 주토피아하고 블러드시티? 여기 가고싶어서 표시해둔거?"
"네?"
"에이, 가고싶은곳이 있으면 말하지. 이왕 같이 노는건데, 다같이 재밌어야하잖아."
"……네."
아, 맞네. 어차피 표시라고해봤자 동그라미표시랑 X표, 그냥 시간체크해서 길거리에 선으로 대충 그어놓은게 끝이잖아. 남이본다고해도 별로 대단한것도 아니었네.
괜히 혼자 쫄아있었다고 생각하자 살짝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냥 가고싶은데 체크해놓은 줄 알다니.
내가 무슨 놀 계획이라도 짜고 온것같잖아. 사실 결과만 보면 거의 그러긴했지만.
그건 너무 결과론적이고.
"그럼 주토피아 어때? 이채연씨도 동물들 보는건 괜찮으실거같은데. 고소공포증이라면서요."
"아, 그렇게 심한건 아닌데…. 그래도 동물들 보는것도 좋죠."
"그럼 해 떨어지기전에 동물들 보러가고, 밤엔 블러드시티 어때? 채연아, 그럴까?"
"좋아. 그렇게 하자."
선민이가 동물원이후 블러드시티꺼지 다 같이 가자고 말했다.
차라리 잘됐다. 걍 다같이 가, 시불.
게다가 내가 이 모임에 내가 있으니까 왠지 나한테 시선이 쏠려서 세찬이가 비교적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었다.
위화감을 지우는 암시를 건 이후로 그냥 입을 안 열고있는데도 별로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것 같고.
그런데 민석이는 블러드시티를 간다고하니 조금 흠칫했다.
아무래도 아까 그 유령의 집에서 부린 추태가 떠오른 모양이지.
"뭐, 블러드시티?"
"쫄?"
민석이가 빼는것 같자, 선민이가 단 한글자만을 내뱉었다.
그것은 마법의 단어.
남자라면 그 발음앞에서 도망치는것따위는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라고 평소 게임을 하면서도 누누히 말하던 민석이다.
저 '쫄?'만 나오면 질게 뻔한 싸움도 절대 물러서지 않고 당당히 맞서다가 회색화면으로 사출되던 놈이니까.
"내가? 쫀다고? 그럴리가. 난 그냥 릴리가 걱정돼서 그런거야."
그런데 여기서 내 핑계를 댄다고?
그리고 내가 싫든 좋든, 사실 모든 공원을 돌기는 해야한다. 그래서 블러드시티도 가기는 해야한다는 말이다.
녀석이 날 도와달라는듯이 애처롭게 바라보긴했지만 나는 그냥 무시했다.
귀엽지도 않은 남정네가 바라보는 시선따위, 아무렇지도 않아.
"전 괜찮은데요."
"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