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9화 〉블러드 카니발 (39/101)



〈 39화 〉블러드 카니발

세찬이가 돌아가자, 일행은 다시 떠들썩해졌다.
사진은 어떻게 됐냐고 묻자 일단 자기들끼리 찍었고 세찬이는 나중에 안색이 괜찮아지면 찍는다고 한다.

그럼 나중에 때를 봐서 한명씩 암시를 걸면 되겠지.
하늘이 돕는걸.


"이제 자이로드롭어때? 저것도 재밌어보이네!"
"아, 나 너무 높은건 무서워."

선민이의 여자친구, 이채연이 말했다.
고소공포증인가?


"그래? 그럼 다른거 타러갈까?"
"아냐, 괜찮아. 타고와. 기다릴게."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선민이의 등을 두드렸다.
선민이는 고맙다고하며, 다음은 범퍼카라도 타러가자고 했다.

한세찬도 줄을 서러 가긴했지만, 딱히 타고싶은 기색은 아니었다.

어쩌면 여기서 가장 못즐기는 녀석이 아마 한세찬 아닐까.
근데 엔진 마개조한 오토바이는 잘만 타고다니면서 놀이기구는  못타지?

그나저나, 사람 참 많다.
오늘은 주말도 아닌데 생각보다 사람이 있어서  놀이기구마다 줄이 꽤나 늘어져있어서 의아한걸.
무슨 날인가?


"아, 맞다. 이번주가 마지막행사라며?"
"맞아. 그 뭐야, 여름테마로 좀비나오는 그거?"
"어, 존나 무섭대. 알바가 연기 오진다더라."
"몇시부터한대?"
"그건 잘 모르겠는데. 팜플렛 없나?"


무슨날인가 고민하고있으니, 수많은 잡담사이에서 그런 대화가 들려왔다.
사람이 많을만도했네.
그런 행사가 이번주로 끝이라……. 주말이었으면 진짜 사람이 미어터질뻔했다.


"좀비라……."


내가 작게 말하자, 유디라가 흠칫 놀란듯이 말한다.


"좀비? 너, 좀비를 봤어?"
"아뇨, 이번주 행사에 그런게 있나봐요. 왜 그러세요?"
"좀비행사? 때이른 할로윈 페스티벌이라도 하는모양이지?"
"여름이니까요."

내 대답에 유디라가 이해할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여름인거랑 좀비가 무슨상관인데?"
"여름이면 더우니까, 공포컨셉이 인기잖아요. 납량특집같은거."
"처음들어. 그런건 보통 할로윈에 하지."
"그런가?"


그러고보니 그런것같기도하고…. 한국에서 태어나서 여름이면 TV든 컴퓨터든 무서운거 틀어놓고는 납량특집이다 뭐다 했는데.
생각해보니 요즘엔 그런거 잘 없긴하다.


너무 더워져서 그런가, 공포물 좀 본다고 해결될만한 더위가 아니긴 하지…. 그런의미에서 저기 토끼탈 인형쓰고 인사하며 돌아다니는 알바생은 경이로운 수준이다.

어떻게 살아있는거지? 저사람?

그렇게 경의를 담아 토끼탈 알바생을 조금 바라보고있자, 그 알바생과 눈이 마주친것 같았다.
하지만 금세 고개를 돌려버리는 토끼.


하긴 그럴리가.
지금 나는 인식저해를  상태인데  어떻게 보겠어.
그 마주쳤다는 눈도 사실은 인형눈이다.
내가 착각한 거겠지.

나는 다시 시선을 돌려서 실버나 유디라에게 물었다.


"그런데 좀비가 진짜로 세상에 있나요?"
"있습니다. 흡혈귀의 일회성 권속…. 이지만, 별로 쓰이진 않습니다. 세상이 너무 변했죠."
"진짜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런 대도시에서 그정도의 짓거리를하면…. 아주 큰일이 날겁니다. 흡혈귀들도 그 사실은  알죠."

좀비, 그건 영화에서 보던 바이러스같은 무언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같은 무언가인것은 맞았다.

"흡혈귀의 권속의 형태는 다양하죠. 그중에 '좀비'는 특별히 위험한데, 그것들은 육체능력이나 지속력, 지능을 전부 희생한 댓가로 전염성을 갖기 때문입니다."
"그런가요….?"
"흔한 이야기죠. 물리면 좀비가 된다. 바이러스로 인한 감염이 아니라 정신적인 감염이기때문에 백신을 만들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1단계 수준의 저급한 정신방호정도로도 좀비화에는 면역이니까 사냥꾼들에게는 상관 없지만요."
"그거 진짜 위험한거 아닌가요? 만약에 이런곳에 진짜 좀비가 나타난다면…."

게다가 마침 한다는 좀비페스티벌에 섞어놓아서 초기대응에 실패한다면…?
끔찍한일이 벌어질수밖에 없다.

"괜찮습니다. 좀비는 흡혈귀들도 사용하지 않은지 5~600년은 된 권속의 형태거든요. 통신기술과 무기술, 군중진압술이 발달하면서 흡혈귀들도 사용하지 않게 되었죠. 인간들에게 별로 큰 타격도 입히지 못하고 심각성만 강조하게 되니까 말입니다. 그래서야 자신에게 득될것도 없고요."
"그래도… 여기 있는 흡혈귀가 미친 싸이코 대량살인범일 가능성도 있잖아요."


유디라가 몇캔째일지 모를 캔커피를 원샷하고 캔을 찌그러트린뒤 말했다.

"겁도많아 우리 공주님. 좀비는말이야, 딱보면 티가나. 모를수가 없거든. 그리고 좀비화는 장로회의 늙은이들말고는 쓰는법도 모르니까 걱정마. 그 기술, 내가 추방당하기 훨씬 전부터 금지되어있어서 대부분은 쓸줄도 모르거든. 난 또, 진짜 좀비가 튀어나온줄알고 식겁했잖아. 좀비라니……. 미친것도 정도가 있지."
"흐음……."


나는 약간 안심이돼서 머리를 긁적였다.
유디라도 구겨진 캔을 아예 공처럼 만들어버리더니 멀리 떨어진 쓰래기통에 던져넣었다. 농구선수를 해도 되겠어.


"그런데  그렇게 놀라신거죠? 무슨 이유가 있나요?"
"그냥……. 내게는 트라우마같은거야. 500년 전의 그 비극을 다시 보려는 녀석은 없으니까."
"비극이라니요?"
"그거때문에 일어난 사건이거든. 마녀사냥이라는거."
"아."


유디라는 더이상 말을 하지 않겠다는 듯 입을 다물었으나, 너무 흥분한 탓인지 주먹을 세게 쥔 손에서 달콤한 혈향이 퍼져나왔다.

"유디라, 손에 피…."
"아 씨! 아까워! 너무 흥분했나!"

아까 흥분하며 캔을 찌그러트려서 그런지, 유디라의 손바닥이 빨간 피로 물들어있었다.
내가 그걸 지적하자 유디라가 경악하며 피를 지혈하고 손바닥의 피를 핥는다.
그녀는 흡혈박탈때문에 손실한 VP가 제대로 흡수되진 않겠지만 말이지.

"암튼, 좀비화는 걱정말라고. 흡혈귀도 뇌가있으면 지금 시대에 인간들한테 마녀사냥 당하긴 싫을테니까."


하긴, 과거 중~근대 유럽의 인간의 기술력과 현재 인간의 기술력의 격차는 하늘과 땅이라고해도 무방할정도지.
흡혈귀가 아무리 날고 긴다고해도 군대, 전차, 전투기, 폭격기등이 대동된 본격적인 전쟁앞에서도 승리를 장담할 수 있을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숨어서 활동하는 것이겠지.

"알겠어요. 뭐. 그렇게 말한다면야…."


나는 대화를 마치고 세찬이쪽을 바라보았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듯한 표정이 꽤나 볼만했다.

"짜샤,  원래 이런거 잘탔잖아! 뭐가 문제야?"
"아, 아니. 문제는 없지."

세찬의 등을 치며 격려(?)하던 유선민이 잠깐 놀란 표정을 짓는다.


"어… 뭐냐, 몸이 딱딱한데? 이새끼, 우리몰래 운동하냐?"
"응? 흐음… 글쎄. 조금 정도."
"어우, 야! 군대간 나보다 딱딱해."


유선민이 짐짓 오버하면서 말한다.
어…. 그게 '운동 조금'한 정도의 근육은 아닌것같지 않냐.
대체 쟤들눈에는 지금 세찬이가 어떻게 보이는지 너무 궁금하다.
남자였을때의 나보다 키도크고, 몸집도 쩔고, 얼굴도 완전 다르게 생겼는데.
저 팔에 문신들은 안보이는걸까?
지혜도 손가락으로 세찬의 팔뚝을 눌러본다.

 




"와, 진짜네. 엄청 딱딱해."


지혜의 표정을 본 유선민이 묻는다.

"그거 성희롱이냐?"
"뭐래?"


지혜야. 조금 얼굴이 붉어진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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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이 식사를위해 잠시 떨어졌다. 벌써 2시가 넘어가는 중이니까.
유선민과 이채연은 커플이니 식사정도는 단 둘이 하라고 자리를 떴고, 지혜는 세찬이를 끌고 김밥을 먹으러 갈 것 같으니, 도민석은 아무래도 혼자 먹을것같다. 불쌍한녀석. 모임이 홀수면 벌어지는 암울한 상황이다.
나는 팜플렛을 들고 행사일정을 읽어보고 있었다.

"블러디 카니발… 피의 축제?"
"진짜 그런 축제면 좋겠다."

유디라가 홀린듯이 말했다.
침도 흐를 기세.
나는 그녀의 앞에 손가락을 튕기며 말한다.

"…진짜 피가 나올리 없잖아요. 사람이야 많기는 하겠지만."
"그건 나도 알지. 그냥 그렇다고…."
"아무튼, 축제시작은 6시부터 한다나봐요. 그때쯤이면 태양도 조금 약해질것 같은데, 흡혈귀가 나오지 않을까요?"
"모르지. 그때가 가장 혼란스러울 것 같기는 한데."

그렇지. 만약 흡혈귀가 있고, 흡혈을 한다고하면 아무튼 혼란스러운 틈을 타는게 제일 좋을테니까.

"음, 지도가 나름대로 상세하군요."
"그러네요."

실버는 공중에 띄워뒀던 소형드론을 충전하며 나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기타가방에는 분해된 저격총과 드론, 그리고 충전팩이 다수 들어있었다.
아무래도 무거워보이는데, 허리도 다쳤으면서 저런걸 계속 짊어지고 다녔단건가.
작전브리핑중에  위성사진이랑은 다르게 간략하게 단순화된 마크로 표기된 지도는 훨씬 알아보기 쉬웠다. 놀이기구 중심으로 그려져서 길을 가늠하기도 좋았고.


"미리 얘기한대로 만약 밤이되면 저는 유디라와 이쪽포인트로가서 대기하겠습니다."
"그리고 만약 상황이 발생하면 세찬이가 제 친구들을 안전한곳으로 유도하고, 제가 도구함 찾아서 합류하고요?"
"맞습니다.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현재 세찬이의 도구함은 소지품보관함에 넣어둔상태다.
태양열에 약한 도구도 있어서 들고다니지 못하는 것이라나.
아마 흡혈귀 신체로 만드는 도구도 많으니까 그렇겠지.
이렇게보니 무슨 몬스터헌터같다.
뭐라도 사냥한다는 점에서 닮긴 했는데.


어째든 내가 물리저해를 끊고 죽어라달리면 금방 가져다줄수는 있을테니까 말이지. 밤이되면 양산도 필요없으니 더욱 빨리 움직일 수 있을것이다.

"어? 뭐야, 릴리? 가족여행왔나보네요?"
"…."

눈을 돌려보니 햄버거를 든채 나를 바라보는 도민석이 보였다.
어떻게? 분명 인식저해가…..

나는 문득 주변을 둘러보고 숫자를 셌다.
나, 이라, 실버, 유디라…. 4명이구나.
이제보니 유디라가 너무 가까운 상태였다.
이전에도 민석이는 4인 무리의 인식저해를 뚫은적이 있었지.
나는 이마를 짚고 싶었지만 정신을 다잡았다.
뭐, 최악의 상황은 아니다.

"아, 네… 반갑…습니다."
"이런 우연이 있나? 혹시 석주 따라온건가요? 저기 석주있는데, 합류할래요?"
"…."

아, 이러면 최악의 상황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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