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7화 〉블러드 카니발 (37/101)



〈 37화 〉블러드 카니발

"어, 역시 왔구나!"
"그래. 당연하지."

세찬이는 놀이공원에서 민석과 접촉했다.
그 장면을 나는 멀리 떨어진 위치에서 가로수나무 뒤에 숨은채 그 장면을 육안으로 확인한다.
꽤나 거리를 벌려둔데다, 인식저해까지 걸었으니 들킬일은 절대 없겠지.

나는 도민석의 눈에 띄지 않는게 좋을것 같았다.
왜냐하면 딱히 눈에 띌 필요가 없으니까.
만약 들키면 또 여자연기를 해야 하는 거잖아.
그런짓을 하기는 싫었다.

저번에야 민석이나 애들 머릿속에 '릴리'라는 캐릭터를 심어놓기 위해서 연기를 했을 뿐이었다.
김석주를 절대 연상하지 못하게 말이지.

그래서 세찬이가 날 대신해서 놀이공원에 진입하고, 만약 흡혈귀가 나타나거나 일이 터지면 자연스럽게 일행을 유도하고, 현장에 합류하거나 민석이 일행을 보호한다.
그리고 나는 실버와 함께 멀리서 미행하며 흡혈귀의 동태를 살핀다… 이게 내 작전이었다.


뭐, 적당히 세세한 부분은 실버나 세찬이가 조율하기는 했지만, 아무튼 내 작전인 것이다.


나는 내 옆에는 커다란 기타가방을 멘 실버 B 스팅레이가 허리를 쓰다듬으며 나무를 붙잡고있었다.
괜찮은건가? 걱정되는데.


"상처는 괜찮으세요?"
"아, 조금 쑤시긴하지만 괜찮을것 같습니다. 언제까지 쉬고있을수도 없으니까요."
"그런가요."

아직 쑤신다는 말에 이라가 거듭 미안한 티를 냈고, 실버도 괜찮다며 그 상황에선 그럴수도 있었다는 식으로 받아주었다.
참 착한 녀석이다. 오랜시간 갇혀있었다고해서 예절교육조차 받지 못한것 아닌 모양.
어린애들 특유의 고집도 보이지 않고, 고분고분하게 말을 잘 듣는건 새끼 강아지랑도 비슷하다.
귀여운 녀석.
나는 녀석의 머리를 헝클었다.
이라도 별로 싫어하는 기색은 아니어서 계속 두피마사지를 하던 중에 나는 생각했다.


놀이공원에 흡혈귀가 있다니.
대체 어디에 숨어있을지 상상이 가질 않는다.
인식저해가 아무리 만능이라지만, 아무도 모르게 사람 한둘 잡아먹는게 쉬운 일은 아닐텐데 말이지.


"이런곳에 흡혈귀가 있다면 어떻게 행동할까요?"
"글쎄, 나같으면 이런곳에선 흡혈 안하겠어."


유디라가 슬쩍 조언했다.

"왜요?"
"그야, 이런곳에 놀러 오는 사람들은 인맥이 두터운 놈들이 많아. 일행없이 돌아다는 녀석도 없고. 만약 한명을 먹어치운다면 분명히 큰 소란이 일겠지. 이런곳이라면 실종자체는 흔하지만, 인간이 많은만큼 체계도 잡혀있어서 실종자를 금방 찾아내기도 하고."
"그런가요?"


역시 태생부터 흡혈귀라서 그런지,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빠삭하다.
난 그냥 사람이 많으니까 있을법도 하다고 생각하고 말았는데 말이지.
유디라의 말대로다.
이런데서 흡혈을 한다해도, 사람하나를 완전히 먹어치우진 못하겠지.
그랬다간 확실히 잡히고말거다.
그럼 뭐지?
뭣때문에 이런곳에 자리를 잡은걸까.

"뭐, 나로썬 알 수가 없지. 다 무슨 생각이 있어서 그런것 아니겠어?"
"그렇겠죠. 으음…."


유디라도 생각하지 못한걸 내가 머리좀 굴린다고 알아낼  있을리도 만무하다.


"아, 지혜도 왔구나. 여기야!"


그때 도민석의 외침이 들렸다.
민석이가 팔을 흔드는 방향을 보니, 그 말대로 지혜가 휴대폰을 들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세찬이와 민석이를 발견하곤 핸드백에 휴대폰을 집어넣고 걸어갔다.


세찬이가 지혜에게 가볍게 인사하자, 지혜도 '안녕'하고 가볍게 인사했다.
짧은 인사가 끝나자 민석이가 자신의 뒤쪽, 매표소를 엄지로 가르키며 말했다.


"선민이는 나중에 온대. 우리끼리 들어갈까?"
"그래."
"좋아."


지혜와 민석이 앞장서자, 그들이 보지않는 각도에서 세찬이 귓가로 손을 가져갔다.

-잘 들리나? 이제 입장할거다.
"라져, 혹시 대화중에 도움이 필요하면 뒤통수를 긁어라. 내가 답변을 정해주겠다, 오버."
-그러지. 그런데 이거 무전기 아니니까 그런  할 필요 없어.
"그냥 이러면 있어보이잖아."

무전기가 아니어도 라져나 오버정도는 말할수도 있는거지.

세찬이는 귀에 자세히 보지않으면 모를수도 있을 정도로 작은 블루투스 이어폰을 장착한채  휴대폰으로 전화를 연결해둔 상태다.
메신저를 통한 인터넷전화로 연결해뒀기 때문에, 혹시나 진짜 전화가 걸리더라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뭐, 나한테 전화가 걸릴일이 얼마나 있을까 싶긴한데, 대비는 확실히 해야했으니까.
나는 반대로 세찬이가 쓰는 휴대폰을 쓰고있다.


게다가 난 인식저해를 두르고 말소리가 들릴만한 거리에서 세찬이를 미행할것이다.
왜냐하면 세찬이의 행동방침에 피드백을 주기 용이함도 있고, 숨어있을 흡혈귀가 꽤나 고위급 흡혈귀일거라고 의심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흡혈의 흔적은 있다는데, 뉴스나 언론엔 아무런 언질이 없다.

그렇다는게 일단 지성이 있는 존재일 가능성이 높고, 사상자를 내지 않은건지, 결계나 혈인능력등의 모종의 방법으로 사상자를 숨길  있었던건지 확실치 않다고 한다.

흡혈귀가 사상자를 내지 않을 가능성은 높게 쳐주기 힘들고, 사상자를 숨길 수 있는거라면 정말로 위험한 존재일수도 있다.

뭐, 그 흡혈귀가 반드시 나타나리라는 보장도 없고, 흡혈귀가 반드시 민석이 일행을 노릴거라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그럴수도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수는 없는법이지.

 





"저희도 슬슬 입장하죠."
"그러죠, 릴리양. 그런데 굳이 그 나무 뒤에 숨어있을 필요가 있나요?"
"……."

실버가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 사람들은 첩보물안보나?
이런게 다 로망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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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코 고고?"
"처음부터?"
"줄이 가장 없을때 타줘야지. 가자가자!"

민석이가 하는말에 세찬이 살짝 반응했다.
음, 그러고보니 세찬이는 몰랐겠네. 저새끼는 원래 그런 새끼다. 생크림케이크 위에 딸기부터 먹는 타입.
나쁘진 않지. 남들한테 뺏기기 전에 자기 뱃속 채우는건데.
그런데 나도 롤러코스터 타고싶다.
태어나서 딱 두번밖에 못타봤는데.
하지만 롤러코스터에 양산을 들고 좌석에 들어갈 수 있을리도 없고….

나는 한숨을 쉬고는 양산을 고쳐쥐었다.
잠깐 재미보려고 고통을 감내하긴 싫었으니까.
시선을 옮기자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인식저해를 따로 두르고있는 유디라가 보인다.
약간 멀기는 하지만, 흡혈귀라면 충분히 대화할  있을만한 거리다.

"유디라는 괜찮아요? 덥지 않아요?"
"좋아. 더위정도는 참을 만 해."


유디라는 오히려 자신의 몸에 만족한듯이 보였다.
챙넓은 모자에 마스크와 선글라스, 몸을 덮는 바바리코트.
굉장히 수상해보이는 차림새이고, 엄청나게 더울것 같은 차림이다.
흡혈귀의 인식저해능력이 없었다면 당장에 112에 수상한 사람이라고 신고가 박혀도 이상하지 않겠지.
한여름에 온몸을 가리는 옷을 입은거니까.

나? 나는 자외선차단제정도면 일단은 괜찮다. 태양빛에 죽을정도로 심각한 피해는 입지 않으니까.
그것도 양산을 펼쳐서 대부분 막아내고 있고.
내게는 태양관련 대비책보단 더위따위가 문제였으니.
태양을 직접맞으면 아프긴 한데, 바람하나 안통하는 저런 옷을 입으면 너무 답답해서 미쳐버릴  같았다.
그래서 나는 전체적으로 펑퍼한 하얀 블라우스와 검은색  치마를 입었다.
태양은 가리고, 바람은 통하고. 최적의 조합 아닌가?
몸을 가리면서도 몸에 닿는 천을 최소화하는 이상적인 의상이다.
이렇게보니, 오히려 여성체가 되어버린게 다행일지도 모른다.
남자꼴로는 이런거 못 입었겠지.


잠시 유디라를 바라보니, 확실히 그녀는 일전에 우리집 앞에 찾아왔을때처럼 힘들어보이지는 않았다.


"난 정말 괜찮아. 오히려 흡혈박탈당하기 전보다 낮에 버티기 수월해졌는데?"
"그전에도 조금은 돌아다니시지 않았어요?"
"정말조금. 그때는 30분도 안되었으니까."

그렇구나. 설마 저것도 내 피를 흡혈한 효과일까?
대체 내 피가 무슨 효과를 갖고 있는건지 신기할 따름이다.
뽑아버린 송곳니까지 새로 자라게 할정도 아닌가?
오늘 만나서 확인해볼땐 그이상 자라지 않기는 했다만….


"그런데 그 흡혈귀가 낮에 활동할까요? 녀석도 굳이 낮에 활동하지는 않을것 같습니다만."
"그럴까요? 으음…."

실버씨가 하는말이 맞겠지. 대낮에 흡혈귀가 돌아다닌다는게 쉬운일은 아니다.
나 정도 되는 흡혈귀가 아니면 햇빛을 가릴 수단이 철저해야할테지.
그런데 나 정도 되는 흡혈귀가 뭐지. 사실 나도 내 몸은  모르잖아.

"그나저나, 이렇게 모여서 놀러온것도 오랜만이다. 그치?"

롤러코스터를 기다리며 지혜가 세찬이한테 말한다.


"오랜만은. 저번에 경복궁 갔었잖아."
"그때는…. 다른애들도 있었고. 그리고 그게 논거야?  과제 도와준거지."
"음…."


민석이가 반박했지만, 지혜가 다시한번 반박했다.
마치 태극권을 보는것 같군.


"……."


세찬이는 그냥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하긴, 현명한 선택이다. 괜히 말했다가 꼬투리잡히면 골치아파질 테니까.


"저게 롤러코스터인가요?"

이라가 흥미로운 얼굴로 롤러코스터를 바라보았다.
롤러코스터를  사람들이 때마침 꺄아악하고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이라는 그 소리를 들으니 더욱 흥미롭다는 듯이 철길을 질주하는 롤러코스터에 시선을 쫓는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참을 생각하던 이라가 입을 열었다.


"저게 뭐가 재밌는거에요? 그냥 기차에 묶어놓고 철길로 다닐뿐이잖아요."
"어…. 그건 설명하기 어렵네."


롤러코스터가  재밌냐고 물으면 할말이 없잖아.
그냥 재밌는거지….
한번 타고오라고 보낼수도 없고. 슬쩍 보니까 이라는 키제한에 걸릴것 같다.

"그래도 여긴 볼게 많아서 좋은것같아요. 사람들도 즐거워보이고요."


이라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확실히, 풍경에 원색적인 색채가  많이 보인다. 화려하고 씨끌벅적한 분위기도 맘에 든다.
놀이공원이라는건 이런 느낌이었지. 과거에 딱한번밖에 본적 없는 분위기였지만, 이 분위기는 언제나 그대로였구나.
그때와는 상당히 달라진 느낌이지만.
아, 그때는 네버랜드가 아니라 라떼월드였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이건 흡혈귀가 되기 전의 기억이라 잘 안떠오른다.

"그런데 누나, 저게 뭐에요?"
"어? 어떤거?"

이 놀이공원의 마스코트 토끼인형이다.
흰색털에 빨간눈을 한 귀여운 타입의 인형탈.
이라는 그 인형과 나를 번갈아보면서 말했다.


"저거 누나같아요."
"…."

어….
그렇긴하네.
하얀색털에 빨간눈이니까….

"저건 토끼라고 하는거야."
"토끼? 엄청크네요?"
"아니. 진짜 토끼는 훨씬 더 작지. 저건 인형이고."

그러고보니 이라는 토끼를 본적이 없나?
다른 동물들도 본적이 없을 수 있겠구나.
에이샤가 넣어준 책중에 동물관련 서적은 없었던 모양이다.
여기 동물원이 있던가?
나중에 그쪽이나 돌아봐야겠다.

-곧 롤러코스터를 탈것같다. 잠깐 쉬어.

그때 세찬의 보고가 들려왔다.
맞다,  일하는 중이었지.
이제와서 생각하니 계속 쉬고있었던거같은데. 흠….

에휴, 동물원은 무슨. 나중에 와야겠네.
난 세찬이와 민석, 지혜가 롤러코스터에 오르는걸 확인하고는 벤치에서 일어났다.
햇빛아래 좀 있었더니 갈증이 일었던 탓이다.
자판기에서 음료수나 하나 뽑아서 돌아오려다가, 이라가 뭔가를 가르키며 소매를 끌길래 그쪽을 바라보았다.


"이상해요. 솜을 먹고있어요. 웩."

이라가 가르킨 것은 어린 꼬마애가 부모님손을 붙잡고 솜사탕을 맛있다는듯이 먹으며 걸어가는 장면이었다.
이라는 대체 저걸 왜 먹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실제로 솜을 먹어본적이 있는걸까…?

"어…. 저건 진짜 솜이 아니라 설탕을 솜처럼 만든거야."
"진짜요? 설탕으로 솜을 만들어요?"
"응. 솜사탕 하나 사줄까?"
"네,네네!"


나는 귀여운 동생이 어리광을 부리는것 같아서 괜히 흐뭇해졌다.
게다가 월 양육비로 악마사냥꾼에게 매달 달달하게 돈을 타고 있기도 하다.
그러고보니 대체 이렇게 매달 나한테 돈을 줘가면서 이라의 격을 높이려는 이유가 뭐지.
단서가 없으니 전혀 알수가 없다.

난 주변에 솜사탕을파는 아주머니를 찾아서 돈을 내밀면서 말했다.

"솜사탕 하나 주세요."
"어이쿠, 언제 부터 있었니? 여기있다."


인식저해를 걸었으니 눈치채지못할법도 하지.
아주머니는 조금 놀란표정을 짓더니, 나와 이라를 한번 번갈아보고는 솜사탕 두개를 내밀었다.


"하나 달라고 했는데…."
"하나는 서비스야. 그쪽은 동생이니?"
"어…. 네…."


아주머니가 서비스가 좋은데.
하나만 사려고했는데 두개를 받았다.
그런데 그렇게 동생같이보이나? 나랑 이라는 별로 닮은 구석이 없는데.

"누나."


이라가 나를 불렀다.

 




"손이요."
"아, 하하. 미안."

나는 이라가 작은 손으로 솜사탕 두개를 움켜쥐고있는걸 뒤늦게 깨달았다.
음, 계속 손을 잡고있었구나.
그러니까 동생으로 보지.
 이라가 개가 되지 않도록 계속 신체접촉을 해두고 싶었을 뿐인데.
남들 눈에는 좀 다르게 보일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남들은 인식저해때문에 보지도 못할텐데 뭐 어때.

난 솜사탕을 이라에게서 하나 받아들고는 조금 맛봤다.
달다.
이라는 내가 먹는걸 미심쩍게 바라보며 물었다.

"맛있어요?"
"맛있네."


빈말이 아니라 진짜로 맛있는데?
단게 원래 이렇게 맛있었나. 솜사탕이란거 원래 그냥 설탕맛 아닌가?
이라는 내가 먹는걸 조금 더 바라보더니 한입 뜯어먹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맛있어요!"
"그치?"


녀석, 그렇게 맛있나.
근데 맛있긴 하다. 음. 요즘 왜이렇게 단게 맛있는지 모르겠단 말이지.
흡혈귀라서 그런건가?
이라는 홀린듯이 솜사탕의 맛을 탐닉했고, 그 증거는 녀석의 입가에 고스란히 증거로 남았다.

"이라 너, 얼굴에 너무 묻히고 먹는거 아냐?"


내가 핸드백에서 손수건을 꺼내서 이라의 입가를 닦아주자, 옆에서 흐뭇한 표정을 지은 실버도 한마디한다.

"릴리양도 얼굴에 너무 묻는것 같습니다."
"아."


솜사탕이 내 입보다 너무 커서 자꾸 묻는것같네….
실버도 셔츠 앞주머니에서 작은 손수건을 꺼내  입가를 닦는다.
기차놀이하는건가.


입가의 솜사탕을 대충  닦아내고 다시 얼굴에 묻히기 싫어서 손가락으로 떼어먹던중에, 잠시후 롤러코스터가 끝난건지 세찬쪽 일행이 걸어나왔다.


도민석의 텐션은 아주 높아보였으나, 세찬이랑 지혜는 별로였다. 그라고보니 한세찬 저녀석 롤러코스터 타본 적 없었던가?
마개조 오토바이는 잘만 타면서 롤러코스터는 멀미라는게 웃기네.

"다음엔 바이킹타자!"

도민석이 외친다. 하지만 지혜가 그 말을 거절한다.

"잠깐만, 나 쉴래."
"음…. 그럼 내가 먼저 줄 서있을테니까 저기 앉아서  쉬다가 와!"
"어. 그래…. 고마워…."


도민석이 가버렸다. 원래라면 한세찬이 따라가야하는데, 저놈도 그닥 상태가 좋아보이지 않는데. 난 유디라에게 눈길을 보냈고, 유디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민석을 쫓았다.

아, 이쪽으로 온다.
벤치에 앉으려는 모양이라서, 나와 실버와 이라는 자리를 슬쩍 옮겼다.


"석주야, 왜이렇게 안색이 창백해?"
"응? 아아, 아무것도 아냐."
"멀미하는거 아니지? 심해?"
"괜찮아. 정말로."


음, 생각해보니 녀석의 담배…가아니라 담배모양 마약을 전부 옥상에서 불태워버린후, 오늘아침부터 조금 창백했다.
딱히 멀미때문에 새삼 창백한건 아니다.

"괜찮으면 다행이고…. 아, 고등학교때 놀이공원간거 기억나? 그 도시락 싸갔을때."
"음, 그때? 아아. 그때말이지."

세찬이가 뒤통수를 긁어왔다.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다.
나는 세찬이랑 연결된 핸드폰 마이크를 입가에 가져다댔다.
고등학교때? 도시락? 무슨일이 있었더라…?


"그때 생각난다. 그때 니 김밥 진짜 맛있었는데."

그때, 그때 어땠더라? 나는 생각나는대로 마이크에 기억을 쏟아냈다.

"아, 그때…. 아마 지혜가 싸온 도시락에 벌이 들어가는 바람에 나랑 도시락을 나눠먹었을거다.
그때 내가 김밥에 단무지를 두개씩 넣어서 만들었고…. 아마 그걸 신기해했던것 같은데."


나는 원래부터 김밥에 단무지를 좋아해서 두개씩 넣고는 했다.
그러니 당연히 그렇게 만들어간건데 말이지.

내말을 들은 한세찬이 잠깐 생각하더니 대충 말했다.

"그렇지, 단무지가 두개나 들어갔으니까."
"맞아 그랬었어. 혹시  먹었어?"
"아니."

그러자 지혜가 핸드백에서 작은 도시락통을 꺼냈다.
핸드백이 좀 크다 싶었는데 저런걸 넣어놨었네.

"조금만 만들어봤는데, 같이먹자. 단무지 두개짜리야."
"음…."


어…. 잠깐만, 이건 예상치못했던 전개인데.
분위기 왜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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