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6화 〉교회 (36/101)



〈 36화 〉교회

음.
생리현상이라는건 본래도 쉽게 제어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생리현상인거다.
제어가 되면 그건 생리현상이 아니라 그냥 운동현상이지.
근데 거기에 금단증세가 더해진다면, 정말 참는건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울수도 있는것이다.


"그런 '사정'이 있었구나…."
"그 묘한 억양 안치워?"


웃음이 나왔다.
울다가 웃으면 똥꼬에 털난다던데, 사실 똥꼬에 털은 자라면 다 난다.
음, 그러고보니 지금은 안나있구나.
완전 매끈매끈하지.… 그걸 보면 이 몸은 성장기인건가?
그 털은 2차성징의 증거라고 했으니까.
그럼 나의 키도 더 클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네!


묘하게 텐션이 올라서 그런가, 시덥잖은 생각도 좋았다.
그래, 이놈 멱살잡기 편한 정도까지는 커야지.
그게 내 최소조건이다.


"기분나쁘게 처웃지마, 제기랄.…"
"그럼 겨우 그거때문에?"
"…."

어이가 없다. 거시기좀 서면 어떻다고.
내가 이해를 못해줄것도 아닌데.
그럼 설때마다 내가 놀려댈때 아무말도 못한것도 마약질 한게 들킬까봐 그랬던건가?
그럴리가없지, 방금 검색하기전만해도 마약 금단증세중에 그런 작용이 있는줄도 몰랐는데.
구태여서 그 이유를 설명하는것도 웃기고 부끄럽기도 하니까 입을 닫았던 거겠지 뭐.

"뭐, 됐어. 끊을거니까. 맞지?"
"그래. 니가  안했어도 줄여가는중이었다니까."
"담배도?"
"그건 참아줘라."
"…."

이왕 끊으라고 압박하는김에 담배까지 슬쩍 얘기해봤는데, 담배는  끊는댄다.
뭐, 마약보단 낫겠지. 피우라고그래.
이게 협상의 묘리인가. 먼저 엄청 큰걸로 허들을 높인뒤에, 상대적으로 작은걸 쉽게 허락하도록 하는 심리전.
그래. 마약보다는 담배 좀 피는게 훨씬 작은거니까….
세찬이 한숨을 푹푹 쉬면서 말했다.


"하아, 꼬마도 찾았으니 빨리 나가지. 그, 오늘자 도구 테스트도 해야하고."
"그래, 여기 오래있어봐야 좋을거 없겠다."


마약정원이라는 비현실적인  정원은 그냥 있기만해도  불안해지고 멍해지는 그런 부분이 있었다.
이라는 이제 풀때기를 보고 극혐을 하고 있었다.
앞으로 배가 더부룩하면 풀을 뜯지말고 소화제를 먹으라고.
진짜 개도 아니고 말이야.

정원을 빠져나오다가, 아까 진짜 늑대인간다웠던 이라의 꼴을 떠올렸다.
그건 이라가 늑대/인간이 아니라 진짜 늑대+인간이 된 느낌이었으니까.
뭐, 지금은 완전히 인간처럼 보이긴 하지만, 아까는 어떻게 그런 상태가 된 것일까?
만약 의사적으로 그 상태를 유지할수 있다면 복슬복슬한 털을 좀더 오래 만져볼 수 있을텐데.


"이라야, 아까 그…"
"아, 여기있었군요. 찾았습니다."
"아."


이라에게 묻기직전, 들려오는 여사제의 말에 나는 반사적으로 말을 끊고 고개를 돌렸다.

"도구의 조정이 거의 끝났습니다. 한번 보시겠습니까?"
"물론이죠."
"받으시지요."

나는 은색 머리핀을 받아들었다.
겉으로봐선 조금 두꺼운 머리핀이었는데, 뭔가 자잘하게 새겨져있었다.
문자같은게 꼬불꼬불 물결치는것처럼 되어있었다. 아랍어인가?


"히브리어에요. 내용은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이 일부분 들어갔죠."
"그런가요?"


대충 아는척하긴 했는데, 그게 뭐지.
나는 교회란곳을 애초에 다니질 않아서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중학생때부터 세찬이가 꼴값떠는걸 보면 그럴수도 있겠다고 생각할거다.
맨날 십자가 목걸이같은거 쥐고 기도하면서, 지는 신을 안믿는다잖아.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 정신적 충격을 너무 크게 받은게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
아무튼 그런게 어이가 없어서 나도 교회라던가 기독교같은거는 신경을 껐었다.


상념은 그쯤 해두고, 나는 머리핀을 대충 앞머리를 넘겨 끼웠다.
가르마를 잡아주는 느낌이 안정적이라서 좋긴하다. 긴 앞머리 몇가닥이 가끔 얼굴로 내려와서 귀찮게 할 일이 없어지니까.
이렇게 보니까 머리핀 생각보다 실용적이네?
몇개 사놓을까?


"으음… 잘 모르겠네요."
"여기, 한번 열어보세요."


여사제는 내게 반찬통을 하나 건넸다.
이 안에는 당연히 마늘이 들어있으리라.
나는 새삼스레 긴장하지는 않았다.
그동안 몇번이고 테스트를 위해서 반복한 행동이다보니, 무슨 눈을 질끈 감든가, 마음을 다잡든가, 심호흡을 한다든가, 그런건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이미 다 한번씩 해봤으니까.


"빨리 해."
"기다려봐, 임마."


그렇다고 내가 바로 그것을 열었느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그냥 성공이라고하면 무슨 반응을 할지 고민했다고할까.
음, 무슨 리액션을 해야하나.
이게 교회에 들어오자마자 두둥!하고 바로 주어진 도구였으면 공중제비라도 돌면서 오열했을지도 모르지.
근데 그동안 냄새를 아예 차단하던가, 마늘향을 아예 지워버리든가, 마늘냄새가 아니라 전혀 다른 냄새가 난다든가, 냄새가 뒤죽박죽이 되어버린다든가….

음, 뭔가 내가 대학에서 처음 프로그래밍을 배울때랑 비슷했던것 같다.
버그가 생겨서 고치면 다른 버그가 생기고, 그걸 또 고치면 다른 버그가 터지고…. 막 그런거 있잖아.
내가 그 디버깅툴이 된 기분이라고할까.

똑딱.

그리 잡생각을 하먼서 반찬통의 봉인을 해제한다.


"오."

마늘향이 난다.

"오오오오…."

마늘향이 난다!

내가 기억하고, 꿈에그리던 그 냄새…!
아. 흡혈귀가 된 이후로 꿈은 잘 안꾸고 있긴하지만.

난 다진마늘을 꺼내서 코에 가까이 가져갔다.
별로 감흥이 없을줄 알았는데!
오랜만에 맡아보는 냄새의 자극은 예상외로 나를 흥분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지금은 공중제비를 돌것같지는 않지만, 어째든 좋은 기분이었다.
흐흐흐, 이제 너무나도 강대한 나의 식욕을 제어하던 '마늘금지'의 제약이 사라졌다….
오늘로써 전국의 마늘간장치킨에게 종말을 고하리라…!


난 손바닥에 올려둔 마늘을 핥아먹으면서 부르르 떨었다.
생마늘? 원래 잘 먹지는 않았는데, 지금은  가능이었다.

 




"아… 너무 좋아…."

상상만해도 기분이 째진다.
그런데 이런 내 모습을 보던 한세찬이 여사제에게 귓속말로 속닥였다.

"… 저기, 사제님. 저기에 혹시 코카인 넣었어요?"
"…그럴리가요."
"다 들리거든."

멀리서 귓속말을 한거면 모를까, 이 거리에선 흡혈귀의 발달된 청각을 지닌 나에겐 다 들린다.
그리고, 마약중독자 아니랄까봐 마약이랑 연관짓는거봐.
일반인이랑은 생각하는 구조가 다르다니까.
크흠, 인정한다. 조금 오버를 한것같군.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에 올때 제가 담근 김치라도 가져올게요! 진짜 맛있을거에요!"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만, 주신다면야 고맙게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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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나와서, 집으러가는길. 날씨도 흐리고, 8시 45분이 되었기때문인지 상당히 눈이 편안했다.
양산을 펼칠 필요는 없겠어.
돌아가는것은 역시 지하철을 이용했다.
집에 도착하자, 나는 이라에게 눈빛을 보냈다.
이라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에게 말했다.


"저쪽 옷장 2서랍 깊숙한곳에 하나 있어요."
"오케이."

나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달려가 옷장을 뒤졌다.
세찬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뭔데?"
"찾았다!"


내가 찾은것은 한세찬이 집안에 숨겨둔 마약!
이새끼, 이런걸 내 집에다 숨겨놔!


"그걸 어떻게?"

한세찬이 눈을 크게 땄다.


방법은 간단하다.
이라의 후각은 늑대인간답게 초인적인 민감도를 자랑한다.
거기에, 녀석은 그 마약정원에서 마약의 냄새에 대한 정보도 획득한바, 이라는 거의 완벽한 마약탐지견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된것이다!
혹시나해서 이라에게 시켜본건데, 진짜로 집안에 마약을 숨겼을줄이야!
나는 무슨 육포나 김에 들어가는 방부제정도 크기의 작은 지퍼백에 하얀 가루를 들고 한세찬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설명해보시지."
"… 그건 나도 놔두고 잊고 있었던건데. 뭐였지."

놔두고 까먹었다고?

"뭐 임마? 이라야, 한두개가 아닌가보다.  찾아내!"
"네!"
"어? 잠깐!"


그후로도 집안 뒤집어엎기는 이라가 더이상 위치를 특정하지 못할때까지 계속됐다.
일종의 대청소였다.
찾아낸 물건들은 거실의 테이블에 모두 모았다.

"……."
"좀, 많네?"

이 좁은 집에 어떻게 이렇게 많이 숨겨둔거야?
작은 지퍼백이 10개정도, 작은 유리병에 액체로 담긴것이 4병, 알약통한개, 그리고….


"이새끼, 이거 담배가 아니었어?"
"…그건 금단증세 때문에 어쩔수 없이…."

담배 한무더기.
담배도 담배의 형태를  무언가였다.
어쩐지 시중에 없는 담배더라고!

모아놓고보니 산더미같다.
난 소리나게 내 이마를 때렸다.
간접흡연을 그렇게 주의하던 이유가 있었구만! 일말의 양심이었나보지!

"담배도 압수야. 아니, 이거 담배 아니잖아? 아무튼 압수야."
"갑자기 끊으면 몸이 안받는데."
"헹, 그냥 정신력으로 버티시지."


마약은 어떻게 버려야돼?
일반쓰레기인가?
그냥 쓰레기봉투에 담아서 버렸다간 큰일날것같아서, 하나하나 변기통에 넣고 물을 내리고 있었다.
세찬역시 그 장면을 지켜보며… 아니, 눈을 질끈감고 하얀 가루랑 노란 액체들이 변기속에서 수프가 되어가는 현장을 지켰다.
아무래도 나를 말리느냐 냅두느냐 고민을 하는 듯하다. 근데 고민을 한다는게 이미 나를 냅둔다는 선택인데, 왜 굳이 좁은 화장실에 들어와서 고민하는거래.
설마 변기통에 풀어놓은걸 마시고싶어서 저러는건 아니겠지.
세찬이의 인간성에 대해 고민하며 마지막 지퍼백을 열어서 변기통에 풀던중 휴대전화가 울렸다.

뜬금없는 타이밍이네. 이시간에 누가 전화를 걸어?
발신인을 보니까, 도민석이었다.
아, 이놈은 같이 놀사람이 없나. 왜 나한테만 연락하는거냐.
어째든 내가 전화를 받을 수 있을리 없으니, 한세찬을 불렀다.

"세찬아, 네가 좀 받아봐라."
"하아…. 젠장, 그래."


세찬이가 내 전화기를 들고 화장실을 나갔고,
난 변기물을 내린뒤 손을 씻고 나왔다.
세찬이는 내가 아직 버리지 않은 담배를 물고 베란다에서 태우며 전화를 받고있었다.
이샠… 전화중이라 방해할수도 없고.
정말 느긋하게 통화를 마친 녀석은 결국 한개피를 다 피워버리고 베란다에서 나왔다.
나는 얼탱이가 나가서 녀석을 째려봤지만, 한세찬은 능글맞게 받아넘기며 이야기했다.


"놀이공원에 가자는 얘기더라. 개강하기전에."
"허, 놀이공원이라고? 말이되는 소릴."

내가 그런곳을 어떻게 가냐?
대낮에 태양빛 쬐면서 굳이 밖에서 돌아다니자고?
물론 내가 아직 김석주였으면 존나 당연히 따라가서 신나게 처놀고 왔을거다.
그러고보니 놀이공원은 고등학생때 가본이후로 없네. 그때 세찬이는 자퇴해서 나혼자 새로운 친구들이랑 너느라 어색해 죽는줄 알았는데.
그라고보니 그때도 지혜가 있었지? 지혜도 나름 고등학교 동창이니까.

"그럼 거절하면 되고."


세찬이 심드렁하게 내게 휴대폰을 던졌다.
난 엉겁결에 날아든 휴대폰을 잡아채고, 메신저를 열었다.

-야 우리 개강전에 놀이공원갈건데 ㄱ?
-ㄱ?
-ㄱㄱ???
-이제 씹네
-여보세요
-나야
-거기  지내니
.
.
.

등등 기타 헛소리가 많이 쓰여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톡을 안보니까 어그로끌려고 별 지랄 다하다가 전화한 모양이었다.
갑자기 차단하면 더 이상해보일까봐 간간히 연락한게 잘못인가.
음, 그런데 놀이공원이라….
뭔가 신경쓰이는데.
나는 자판을 두들겼다.

-놀이공원 이름이 뭔데?
-네버랜드.


어.
어어?


생각났다. 황동판에 쓰여져있던 의뢰,
놀이공원 이름이 네버랜드였다.
분명히 수색이라고 쓰여있기는 했는데, 뭔가 불안한 기분이 스멀스멀 피어난다.

아, 하필이면.
수많은 놀이공원중에 거기냐?

-누구랑 가는데?
-나랑 지혜, 다빈이는 모르겠고. 고등학교 동창끼리 모이기로 했음. 선민이도 간보는중 ㅋㅋ
-너 안와도 갈거긴 한데 앵간하면 오셈 ㅇㅇ. 선민이는 지 여친이랑 온다는것 같은데 그럼 내가 너무 쓸쓸하지 않겠음?
-같이 우정을 나누자.

우정은 스발, 이제 못나눠.


"세찬아. 아는 사냥꾼 있어?"
"그 일 이후로 내가 아는 사냥꾼들은 딱히."
"… 놀이공원, 아무래도 가야할듯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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