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교회
한바탕 쏟아낸 이라가 구역질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았다.
"다신 그러지마. 알겠어?"
"미안해요, 누나. 화내지마세요…"
"화난게 아냐."
휴.
나는 한숨을 쉬고 말았다.
애한테 뭐라고 하겠어. 얘가 마약을 알고 있는것도 아니고.
먹은걸 빨리 토해서 그런가, 다행히 심하게 중독된건 아닌모양이다.
근데 왜 풀을 뜯어먹은거야?
"아… 그냥, 풀을 보니까 뜯어먹고싶어져서…."
"그게 뭔 개풀뜯어먹는 소리야?"
"그냥… 본능같은거였어요. 마침 속이 좀 더부룩했거든요. 속이 안좋으니까 풀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막연히 들어서…."
속이 더부룩해서 풀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단말이지.
그건 확실히 개의 습성이긴한데…. 늑대도 개과니까 통하는 부분이 있는건가?
그런데 속이 왜 더부룩해?
"과식을 하긴 했지."
한세찬이 끼어들었다.
과식이라니?
"네가 삼계탕에 닭고기들을 전부 이녀석 밥통에 넣어줬잖아. 기억 안나냐?"
"아."
그렇네. 녀석은 이미 자기 밥을 다 먹고 난 뒤에, 내가 맛없다고 남긴 음식까지 전부 먹어치운것이다.
"미안해. 배부르면 먹지 말지 그랬어."
"아니에요, 그땐 저도 괜찮았는데…"
난 괜스레 또 미안해져서 뒤통수를 긁었다.
음… 그런데 어쩌지. 내가 마약에 대해 정통한건 아니지만, 그 중독성에 대해선 익히 들은바가 있었다.
한번이라도 하면 그날로 끝이라는 이야기가 들릴정도.
"뭐, 가공하지않고 식물만 먹는다고해서 중독되지는 않아. 대마초나 코카잎은 조금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지."
"그건 무슨 작용을 하는데?"
"환각작용. 그래도 중독성은 거의 없으니 안심해."
"그건 다행이네."
불행중 다행이었다.
어쨌든 어린나이에 마약에 손대면 인생 조지는거 한순간이니까.
"이라야, 이런건 어른이 된 다음에도 손도 대지마라. 알겠어?"
"네…."
그래. 그럼 이라는 됐고.
"너도! 마약이라니? 뭐 하나 물을 때마다 설명이 줄줄히 자동으로 나오는걸보니 한두번 해본 솜씨가 아니지?"
"뭐야, 나도?"
"그래!"
내 호통에 세찬이는 머리를 짚었다.
"어이가 없네. 나라고 좋아서 빤건 아니라고. 게다가 그것때문에……."
녀석은 애매하게 말을 끊었다.
저렇게 말을 끝맺지 않으니, 나는 세찬이가 정한 금단의 비기인 메아리화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
"뭐? 그것때문에 뭐?"
"후… 됐다. 이런것까지 말하고싶지 않아."
"이런게 뭔데? 또 뭘 숨기는건데?"
대체 뭘 더 숨기고있는거지?
난 이녀석이랑 충분히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와서 보면 그렇게 생각한건 나뿐이었고, 난 한세찬이 사냥꾼으로써 무슨짓을 했는지, 무슨짓을 당했는지는 전혀 모른다.
사실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그런걸 직접 듣지 않으면 모르는게 당연하다지만, 그리고 딱히 말해줘야할 의무도 없는게 사실이긴하지만, 이런일이 있은 와중에도 숨겨야할 일이 있다는게 난 이해가 되질 않았다.
"뭐, 뭐야?"
"바른대로 말해. 진짜로 화내기전에."
"화내면 어쩔건데?"
"…."
내가 다가가서 멱살을 잡고 올려다보자 세찬은 시선을 피했다.
제기랄, 원래도 내 키가 작았긴 했지만, 160센티가 되니까 진짜 압박감을 하나도 못주네.
거의 만세를 한채로 멱살을 쥐고있는 여자한테 무슨 압박감을 느끼겠냐고.
그런 생각을 하니까 억울해서 구속제어술식을 해제해서 죽탱이라도 꽂고 싶었으나, 그런 짓은 오히려 녀석의 도움을 받아야하는 내가 손해보는 짓이고, 녀석은 또 그 고통을 지우기위해 마약성 진통제를 맞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야 내가 녀석한테 마약을 주는것이랑 다를바가 없다.
"……김치 안 담궈."
"…."
녀석은 나때문에 여태껏 김치를 먹지 못했다.
정확히는 내가 먹이질 않았다.
내가 마늘의 냄새를 맡으면 토하니까, 식사를 차리는 내 입장에선 김치를 쓰지 않는다는 거지.
뭐, 그래도 나 없는데서 김치정도야 먹긴하겠지만, 하지만 그건 내가 담근 김치가 아니다.
내가 담근 김치는 왜 특별하냐고 물을 수 있다.
그야 특별할 수밖에 없지.
왜냐하면 그 레시피는 내가 세찬이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배운거니까.
그러니까 밖에서 먹는 김치랑은 맛이 다르다.
김치찌개, 김치볶음밥, 김치전, 아무튼 그런것들도 전부 그 김치가 있어야 그 맛이 나는것들.
아마 녀석이 내 마늘에 걸린 제약을 풀어주려는 것도 그 맛이 그리워서일지도 모르겠는데.
"하아…. 금단증세때문이야."
결국 세찬은 자포자기한듯 입을 열었다.
금단증세? 그거야 뭐, 담배 끊을때도 있는거 아닌가? 손발 덜덜 떨리고 그런거.
마약의 금단증세는 뭔가 다른가?
내가 마약에 대해서 아는게 있어야 알아먹지, 마약은커녕 담배도 안하는데 금단증세가 뭐가 문제인지 알턱이 없다.
금단증세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모르는 나는 혹시 세찬이가 죽는건가 해서 가슴이 철렁했다.
"뭐가 문제야? 심각해? 혹시 죽는거야?"
"그런건 아냐. 끊어서 죽는다면 안 끊었겠지."
"그럼 뭔데?"
"…헤로인이……. 하아. 그만하자. 말하기가 좀 그렇다."
"뭔데! 시발새꺄!"
나는 소리를 빽 질렀다.
사람 애간장타게 자꾸 말을 하다가 말아!
진짜 죽는거아닌가? 헤로인 금단증세?
내가 이라때문에 안하던 욕을 해금하자 옆에서 녀석이 덜덜 떠는게 얼핏 느껴졌지만, 지금은 이라한테 쓸 신경이 하나도 없었다.
"진짜 똑바로 말 안해?"
"…."
"그래, 말안하겠다 이거지."
나는 휴대폰을 꺼내서 액정을 두드렸다.
세찬이 인상을 찌푸리며 나에게 묻는다.
"뭐하려고?"
"검색."
"…야!"
내 말을 들은 세찬이 갑자기 내 휴대폰을 빼았았다.
"내놔."
내가 싸늘하게 말해도 세찬은 휴대폰을 돌려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정말 굳이 알필요가 없는 정보야. 죽는것도 아니고, 중요한 것도 아니라니까."
녀석은 진짜 답지않게 다급한 말투로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 조금 식은땀까지 흘리는듯 했다.
"그건 내가 판단할테니까, 내놔. 아니면 네 입으로 말하던지?"
"…하아…."
세찬은 머릿속으로 뭔가 생각하는것 같았다.
결국 녀석은 한숨을 쉬고나서 내 휴대폰을 내밀었다.
어차피 세찬이가 말을 하든 말든, 검색은 할거였으니까.
말 안해주려고 이 난리를 피우는데 얘 입에서 나온 말을 무슨수로 믿겠어?
"…."
나는 휴대폰을 낚아채듯 가로챈후에, 검색창을 열었다.
아까 뭐라고했지? 헤로인?
나는 빠르게 그것을 타이핑했다.
-헤로인 금단증세
불안, 불면, 과민, 불쾌감, 식은땀, 눈물, 콧물, 소름, 한기, 식욕감퇴와 복통, 근육통, 갈망 현상, 맥박과 혈압상승, 호흡수 증가, 체온증가. 설사, 구토, 근육 경축, 장 경련…….
드럽게 많네. 이게 다 금단증세라고…?
이새끼 와꾸가 이토록 씹창이난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난 다시한번 세찬을 걱정스럽게 흘겨봤다가, 녀석이 포기한듯 근처 의자에 앉는걸 보고 다시 이어서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장기적으로 불면, 신체 증상에 대한 과민반응, 스트레스에 쉽게 노출, 약에 대한 갈망을 수주~ 수개월 느낄 수 있다.'
신체적으로 질병을 동반한 경우라면 금단 증상에 의해 사망할 수도 있다.
'사망'할수도 있다고?
난 그 부분에서 머릿속에 폭탄이 터진것 같았다.
죽어?
"야! 시발, 이거 뭔데?"
"하아…. 그래, 그것때문에…."
"왜 이걸 안 말했는데? 진짜 죽고싶어?"
"뭐야, 왜그래? 너 우는거냐?"
"그래 시발놈아! 왜 말안했는데?"
제기랄, 왜 눈물이 나지? 난 화가 나는건데. 너무 빡치면 눈물이 나올수도 있다는데 진짜네. 억울해서 빼는 눈물이랑 느낌이 색다르구나.
"그걸 어떻게 내 입으로 말하냐? 놀려댈게 뻔한데."
"내가 죽는걸로 왜 놀려?! 싸이코패스도 아니고!"
내가 흡혈귀가 되면서 사람의 시체에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게 되어버린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거의 반평생을 같이지낸 부랄친구의 죽음마저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할리가 없잖은가?
"죽어?"
녀석은 한쪽 눈썹을 올리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내 휴대폰을 가져가 검색결과를 슬쩍 훑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난 어이가 없어서 또르륵 떨어지는 눈물을 닦지도 못한채로 멍하니 세찬일 보고있었다.
"하하하! 이건 신체적인 질병이 있을때나 위험한거지. 내가 그렇게 병약해보이냐?"
"저,전혀. 그, 그럼 안죽어?"
"그런걸로 죽을거면 처음부터 안했어."
"……."
하씨. 이것도 운거라고 목이 메이네. 빡친다.
그런데 뭐야? 죽는거 아니면 뭐때문에 숨긴건데?
난 눈물을 비벼서 닦고 말했다.
"킁. 그, 그런거면 내놔! 다시,시 읽게."
내가 손을 내밀었지만, 세찬이는 이번에야말로 안주겠다는듯 휴대폰 검색창을 닫아버리고 돌려주지 않고 말했다.
"숨이나 고르시지. 꼴사나우니까."
"시, 씨발! 그런다고 못 볼줄알고! 이미 다 외웠거든?"
원래도 머리가 나쁜편은 아니었는데, 흡혈귀가 되면서 기억력도 상당히 좋아졌기 때문에 몇초전에 읽은 글귀정도야 떠올리는건 너무나 간단했다.
최근엔 아마 안했겠지.
했으면 죽는다 진짜로. 내가 안죽여도 마약이 죽일거다. 금단증세 개빡세더만.
최근에 헤로인을 한게 아니라면 장기적인 증상이 문제인가.
그렇다면 불면, 신체 증상에 대한 과민반응, 스트레스에 쉽게 노출, 약에 대한 갈망을 수주~ 수개월 느낀다고 했는데, 뭐지.
대체적으로 한세찬이랑 맞는것 같은데.
잠을 잘 못자고, 쉽게 빡치는건 딱 한세찬같으니까. 약에대한 갈망은 내가 알 길이 없고.
근데 신체증상에 대한 과민반응이 뭐지?
"신체증상에 대한 과민반응?"
흠칫.
생각을하다가 무심코 내뱉은 문장에 한세찬이 흠칫했다.
"뭐야. 그게 뭔데?"
"젠장, 몰라도 돼."
"진짜 몰라도 되는거 맞아? 이거 또 숨기는거아냐?"
"진짜. 몰라도. 되는거. 맞으니까. 몰라도 돼."
저딴식으로 말하면 더 수상해보인다는걸 모르는건가?
나는 추리력을 풀가동했다.
신체증상? 그게뭐지? 신체에서 벌어지는 증상이란게 한두개도 아니고. 왜 그딴말을 쳐 쓴거지?
말 할수 없는 것도 아니고, 신체증상이란 말로 우회적으로 표현할 이유가 있는게 뭘까?
"신체증상에 대한 과민반응, 신체증상…."
"곰곰히 생각하지마. 제발."
과민반응. 이것도 수수께끼의 열쇠가 될것이다.
신체증상중에 반응이라고 할만한게 뭐가있지?
음….
아.
"설마?"
"젠장…."
"발ㄱ…."
"그러니까 깊이 생각하지 말라니까!"
"악! 미친놈이, 갑자기 왜 때려!"
방귀뀐놈이 성낸다더니, 걱정해주는데도 지랄이야!